레미제라블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2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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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틴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장 발장은 자신을 잡기 위해 쫓아오는 자베르에게서 달아난다.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못해 붙잡혀 다시 지옥과도 같은 감옥에 들어갔다.

수감 중에 노역을 나간 장 발장은 위험에 빠진 선원을 앞장서서 구출하게 된다. 선원은 무사했지만 안타깝게도 장 발장은 바다에 빠졌고, 이후 그의 시체조차 떠오르지 않아 모두들 그가 죽었다고 여긴다.


1823년.

8살이 된 코제트는 여전히 테나르디에의 식당 겸 여관에서 하녀처럼 일을 하고 있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코제트를 구박만 하며 제대로 먹이지도, 제대로 입히지도 않는다. 너무 어릴 때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온 코제트는 테나르디에 부부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늦은 밤에 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코제트는 테나르디에 부인의 성화에 어두운 밤길로 나갔다. 물을 길어 돌아오는 길에 코제트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자신의 물동이를 들어주며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을 해줬고, 쉴 곳이 필요하다는 그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온다.




가여운 팡틴은 사랑하는 딸을 다시 안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팡틴의 유언을 들은 마들렌 씨, 즉 장 발장은 어떻게 해서든 코제트를 찾아내 보살펴주려고 했다. 아이를 찾고서 자신의 벌을 달게 받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쁜 짓을 조금이라도 한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자베르로 인해 장 발장은 도망을 쳐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장 발장은 다시 붙잡혀 옥살이를 하게 됐으나 선원을 구출하다가 바다에 빠진 덕분에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 코제트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그동안 공장을 운영하며 번 돈을 찾아 코제트를 성심껏 키우려고 마음먹었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코제트는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괴로움을 전부 깨달아 버렸다. 테나르디에 부부가 원하는 대로 돈을 보내주던 팡틴이 이제는 유명을 달리해 그들은 돈을 뜯을 구석이 없어 아이를 학대했다. 어린 코제트에게는 그렇게 못되게 굴면서도 자신의 딸들은 인형처럼 곱게 기르는 그들이 과연 사람인가 싶었다. 측은지심이라는 게 없는 못된 인간들이라 제발 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악행을 괴로워하며 읽었다.

어린 코제트에게는 억겁과도 같았을 시간이 지나고 장 발장이 추레한 행색으로 아이를 찾아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상황이라 장 발장은 코제트의 안내로 테나르디에 부부의 여관에 묵었고, 그들이 바가지를 씌운 대로 숙박비와 잡다한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를 버리고 싶다는 테나르디에 부인의 말에 그럼 자신이 데리고 가겠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남편 테나르디에는 이 기회를 붙잡아 빚을 조금이나마 탕감하고자 잔꾀를 부리지만 장 발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함께 떠난 장 발장과 코제트는 한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조용하고 단출한 집을 빌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며 진정한 부녀 관계로 거듭났다.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끈질긴 자베르로 인해 장 발장과 코제트는 안락했던 집을 떠나 다시금 도망을 쳐야만 했다. 장 발장은 코제트가 자신으로 인해 도망쳐야만 하는 게 괴로웠지만 이제야 찾은 이 아이를 두고 그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행히 장 발장은 마들렌이었던 시절에 목숨을 구해줬던 포슐르방 노인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수녀원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포슐르방 덕분에 장 발장은 자베르의 매서운 눈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코제트는 수녀원의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레 미제라블> 2권은 붙잡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장 발장이 코제트와 재회하는 과정과 쫓아온 자베르로부터 도망을 쳐 수녀원에 숨어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분량은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았고, 나머지 부분은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부분과 수녀원에 관한 사설을 길게 담아내고 있었다. 내용과는 관련이 거의 없어서 상당히 지루했던 2권이었다.

3권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가 만난 두 번째 흰빛의 출현이었다. 미리엘 주교는 그의 마음의 지평선에 미덕의 여명을 떠오르게 해 주었고, 코제트는 사랑의 여명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 P232

코제트의 본능은 하나의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마치 장 발장의 본능이 하나의 어린아이를 찾고 있었듯이. 서로 만나는 것, 그것은 서로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두 손이 맞닿은 신비로운 순간에 이 두 손은 꼭 붙어 버렸다. 이 두 영혼이 서로를 보았을 때,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서로 알아보고 서로 꼭 껴안았다. - P233

그는 이제부터는 자기 생활의 근본인 다음과 같은 진실을 똑똑히 깨닫고 있었다. 즉 코제트가 거기에 있는 한, 이 아이를 자기 곁에 가지고 있는 한, 자기는 이 아이를 위해서밖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이 아이 때문에밖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 P275.276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그 평화로운 정원, 그 향기로운 꽃들, 즐겁게 떠드는 그 어린아이들, 근엄하고 소박한 그 수녀들, 그 고요한 수녀원, 이런 것들이 서서히 그의 속에 스며들어가 그의 마음은 점점 그 수도원 같은 고요로, 그 꽃들 같은 향기로, 그 정원 같은 평화로, 그 수녀들 같은 소박함으로, 그 어린아이들 같은 기쁨으로 되어 가고 있었다. - P45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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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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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는 딸 하원이와 아들 상원이, 그리고 가족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 원우와 함께 살고 있다. 22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며 백 원단위로 아껴가며 사는 정하는 원우가 일찍 들어오든 말든 신경 안 쓴 지 오래다. 그녀는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과 왕래가 거의 없는 정하는 자신의 집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수다쟁이 아줌마 자영이 엄마에게서 이런저런 소문을 듣지만, 그녀의 방문이 달갑지는 않다. 자영이 엄마는 60평에 사는 사모님의 집에 다녀왔다고 떠들어댔는데, 정하는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60평의 그 여자가 껄끄럽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원우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선잠이 든 정하가 눈을 떴다. 정하와 침대를 같이 쓰기보다는 거실의 좁아터진 소파에서 씻지도 않고 자는 그가 웬일로 욕실에서 아주 오래 씻고 있어서 이상하게 여긴 그녀는 살짝 열린 욕실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벌거벗은 남편은 핏물이 빠져나오고 있는 양복을 빨고 있었고 변기 위에는 부러진 칼이 놓여 있었다. 놀란 정하는 침실로 살며시 돌아와 자는 척을 했다. 이튿날,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일찍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뒤 호프집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용의자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후 탐문을 통해 용의자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는 보도가 나온 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출근한 후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두 살 터울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전업주부인 아내, 외벌이인 남편의 삶은 정하와 원우 부부와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아니라서 유치원과 놀이방 등에 보내고 난 후에 정하는 좁긴 해도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정리하고 꾸려나가는 일을 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집에 돌아왔고, 수다쟁이 아줌마의 방문도 이어졌으며, 늦은 시각에 돌아오는 남편의 식사를 챙길 때도 있었다.

정하와 원우는 어린 자식들을 보살펴야 해서 바쁘다 보니 부부가 조금은 내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애정이라는 건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걸 원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작부터 잘못된 관계였지만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결혼을 했고, 첫아이인 하원이를 낳았다. 2년 뒤 상원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발을 빼기엔 너무 늦어버린 부부, 가족이 되었다.


이들 부부의 관계가 처음부터 명확했기 때문인지 호프집 살인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 그들이 각자 향해야 할 방향 역시 분명했다. 원우는 처음부터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이라 사라지는 선택을 했다. 납치가 됐다거나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죽었다거나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하는 적어도 그가 가족을 위해 떠났다고 믿고 싶어 했다. 원우와는 다르게 두 아이들과 남겨진 정하는 욕실에서 핏물이 밴 옷을 빨던 남편을 본 이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게 자신은 물론이고 앞날이 창창한 어린 두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자신을 위해 도망치고, 한 명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남는 걸 보면서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온 건 당연했다. 원우의 일기장인지 뭔지 모를 노트가 발견된 이후에 그가 얼마나 야비하고 비겁한 인간인지 낱낱이 드러나서 더욱 화가 났다. 상황을 알고는 있지만 어찌 됐든 정하는 남편의 실종 신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현실도 암담했다.

정하가 실종 신고를 하고 3개월이 지났을 때 일명 앞 동 사모님, 쓰레기장에서 정하를 노려보던 60평 여자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남편이자 종종 인사를 나누고 정하의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다 줬던 우성은 장례를 치렀고, 정하를 비롯한 아파트 주민들이 참석해 조의를 표했다.

이후 우성은 정하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녀가 만들어준 반찬을 우성의 아이들이 잘 먹는다며 감사를 전했고, 우성이 아파트 사람들과 치킨 반상회를 열어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13년이 흘러 소설은 또 다른 관점으로 모든 걸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이긴 했다. 정하에게 숨기는 게 많았던 원우가 있었고, 정하 역시 원우의 사건을 눈감아줬기 때문에 우성에게도 반드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작가의 필력이 좋은 탓인지 다음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캐릭터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인 건지 헤아려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결국 소설 속에 등장한 여러 캐릭터들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선택을 했던 걸로 보였다. 원우가 제 안위만을 걱정해 도망치는 선택, 혹은 부득이한 태도를 보였다면 정하는 아이들을 위해 도망치지 않고 숨기는 선택을 했다. 그건 우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성에게도 고등학생인 자녀가 있었기에 아내로부터 그 아이들을 지키고 보살피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아이들 역시 각자 선택을 했다는 데서 부모의 성격을 일부분 물려받은 거라고 보였다. 하원이와 상원이의 선택이 달랐고, 우성의 두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전쟁을 치러왔기에 같은 선택을 했다. 지키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보면 소름이 끼치는 한편으로 애정을 바탕으로 한 보호였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 <배니시드>에 대한 칭찬을 종종 들었었는데 이제야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하루 만에 다 읽었을 만큼 흡인력 있고, 재미도 있는 소설이었다. 때때로 어떤 상황이나 캐릭터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드라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든 위험이 나와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고민은 불과 몇 초였다. 난 그 몇 초의 마지막 초침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결심했다. 모르는 척을 하기로. 내가 모르고 아이들이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거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그건 남편 혼자만의 일이었다. 혹시나 경찰이 들이닥쳐도 ‘우리는‘ 모른다. 남편을 제외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 P57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는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 P272

우리는 서로를 위해 서로를 외면했고 서로를 위해서 숨고 숨겼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서로를 위한답시고 했던 행동들이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아닐까.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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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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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124번지 집에는 세서와 딸 덴버, 그리고 세서의 죽은 아기의 혼령이 살고 있다. 덴버의 오빠들인 하워드와 뷰글러는 오래전에 집을 떠났고, 그들이 떠난 후에 할머니 베이비 석스 또한 세상을 등졌다. 세서의 남편이자 덴버의 아빠 핼리는 가너 씨의 농장, 일명 '스위트홈'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는지, 아니면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둘만 살던 이 집에 두 사람이 나타나 함께 지내게 됐다. 한 사람은 세서가 스위트홈에서 함께 일했던 폴 디였다. 18년 만에 만난 세서와 폴 디는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다 어느새 함께 지내게 되었고, 침대 옆자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덴버는 그 사실이 영 마뜩잖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이 함께 서커스 구경을 다녀오던 길에 깔끔하게 차려입고 새 구두를 신은 흑인 아가씨가 집 앞에 드러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목이 말라죽어가는 그녀를 집안에 들인 이후 돌봐주게 되고, 특히 덴버는 그녀 빌러비드를 돌보는 일에 몰두한다.




소설의 도입부만 읽었을 때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착각했다. 그것도 그럴 게 집에 혼령이 나타나 가족들을 괴롭히고, 시달림에 견디지 못한 사내아이 두 명은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나이가 많아 이제는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할머니 베이비 석스는 해를 끼치지 않는 아기 혼령이니 그다지 신경 쓸 게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흑인 여성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베이비 석스가 겪은 인생에 비하면 아기 혼령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세서나 덴버 역시 아기 혼령에 익숙해져 있었던 듯 보였다.


이후 폴 디가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되면서 세서와 관련된 과거가 등장했다. 흑인 노예였던 그들은 가너 씨의 농장에서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가너 씨는 집에서 일하는 흑인들에게 보통의 노동자처럼 대접을 해줬고, 그들을 짐승처럼 때리거나 부리지 않았다. 또한 핼리가 어머니 베이비 석스를 해방해 주는 대신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말에 선뜻 허락해 줬을 정도로 가너 씨는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가너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가너 부인이 농장을 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친척들에게 관리를 맡기면서부터 세서와 핼리, 폴 디와 다른 세 명의 흑인들은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칠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세서는 이미 세 아이를 낳은 상태였고, 뱃속에는 덴버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세서는 아이들을 먼저 도망치게 했고 이후 핼리와 함께 떠나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그녀는 부득이하게 혼자 떠나게 됐다. 핼리의 생사는 세서는 물론이고 폴 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과거가 등장했을 때 별로 특별할 게 없다고 여겨졌다. 당시엔 절대 흔하지 않았을 자비로운 백인 농장주를 위해 일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도망칠 계획을 짠다는 건 비슷한 소재의 여느 소설과 다를 바 없었다. 베이비 석스가 먼저 자유의 몸이 되어 살게 된 집에서 도망친 세서가, 그것도 도중에 덴버를 낳아 만신창이가 되어 도달했을 때 기적이라고 여겨지긴 했다. 안타깝게도 핼리는 어떻게 됐는지 끝내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핼리의 자식들이 살아서 그 집에 살고 있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노예 사냥꾼이 기어코 베이비 석스와 세서, 덴버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그 집에 찾아왔을 때 차마 상상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단순하게 그 사건만 놓고 보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은 세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차마 그녀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었다. 도망친 흑인 노예, 그것도 값을 지불하지 않고 더 많은 노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는 여성 노예라는 그녀의 처지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세서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자신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서는 자식을 가축이나 재산이 아닌 한 인간으로 남기고 싶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사건이 빌러비드와 연결되면서 그냥 모든 게 안타깝고 슬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덴버와도 뗄 수 없는 그 상황이 아직 어린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덴버가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했다.

그냥 모든 게 다 비극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그 집의 이야기는 살아가고자 하는 자와 삶의 빛으로 이끌어준 자로 인해 조금은 희망이 엿보이는 끝을 맺었다. 오해했던 덴버도, 경악하며 떠났었던 폴 디도 세서를 건져올릴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 소설은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의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거릿 가너라는 흑인 여성 노예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서 다 읽은 후에 해설 부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역사지만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이 의미가 있었다.

"대체 이 집에는 어떤 사악한 게 사는 거야?"
"사악하지는 않아, 그저 슬플 뿐이지." - P22

그때는 너와 함께 그곳에 누울 수가 없었어. 아무리 간절하게 원해도 말이야. 그때는 평화롭게 누울 수 있는 곳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어. 지금은 그럴 수 있어. 지금은 익사한 것처럼 깊이 잠들 수 있어. 감사한 일이지. 내 딸, 그애가 내게 돌아왔어, 그애는 내 것이야. - P335

"세서, 내가 당신이랑 덴버랑 여기서 지내면 당신은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어. 원하면 뛰어내려도 돼. 내가 붙잡아줄 테니까. 당신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줄게. 필요한 만큼 당신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도 좋아. 내가 당신 발목을 붙잡고 있을 테니까. 확실히 다시 나올 수 있게 해줄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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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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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   그럭저럭 알려진 아이돌 그룹 멤버인 '나'는 요즘 학교에 매일 출석한다. 새로 들어온 메인 보컬 언니가 그룹 내 따돌림을 폭로해 논란이 되어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회사에서는 반박 기사를 내지 않고 그저 소문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진 탓에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나를 따돌린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학교에 매일 나가며 반에서 원래 왕따인 '원따'와 친하게 지내려 애를 쓴다.

안녕, 장수극장   중학생 윤송의 할아버지는 배우가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해 고향에 '장수극장'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곳이었던 소읍에서 장수극장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찾는 이가 드물어 사장이 된 아버지 윤장수는 폐업을 결정했다. 중학교 축제를 위해 장수극장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학생회장이 귀찮은 윤송이었는데, 축제날 강당 스크린에 펼쳐진 장수극장에 대한 영상에 뭉클해진다.


엄마만큼 좋아해   주비는 바쁜 엄마 대신 자신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이모에게 머리를 땋아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한다. 이모는 약속했지만 이튿날 주비의 머리를 땋아주지 않아 속상하기만 하다. 주비가 매일같이 머릴 땋으려는 이유는 밤이 오빠 때문이다.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고, 또 소꿉놀이를 할 때 늘 아빠 역할을 하는 밤이 오빠라서 주비는 엄마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슨 머리 모양을 하고 가도 예쁘다고 해주는 친구 시아에게 주비는 밤이 오빠가 엄마만큼 좋다고 고백한다.

보름지구   사람들이 달로 이주하기 시작한 미래. 1차로 이주한 '나'는 수업 시간에 추석에 대한 발표를 한다.

고─백─루─프   밴드부 보컬인 우지현이 축제 전야제에 노래를 부를 때 보러 오라고 했다. 김현지는 얘가 고백을 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기 많은 애가 나 같은 애한테 그럴 리 없다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이 되어야 마땅했지만, 김현지는 축제 전야제 날에 눈을 떴고 어김없이 우지현이 찾아오는 날들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가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서울에서 미용실에 다니며 일을 하는 언니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됐다. 엄마 없는 삶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엄지손톱 밑에 가시가 박혔지만 빼내지 않는다. 그게 마치 엄마의 속눈썹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발톱   아빠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맡은 건 '나'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다. 아빠의 재혼 상대인 그 여자는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다. 그 여자는 나에게 나름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에 그 여자와 함께 사는 게 내키지 않는다. 그러다 그 여자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낀 이후 나의 마음 역시 조금 바뀐다.





박서련 작가의 소설집 <고백루프>가 다른 소설집과 달랐던 이유는 비단 청소년 문학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작가가 실제로 청소년이었던 시절에 쓴 단편을 공개했다는 점이 이 소설집을 특별하게 여겨지게 했다. 나도 10대 시절에 인터넷 소설 카페에 글을 쓴 적이 있고 친한 친구에게만 알려줬던 기억이 있는데,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라 소설집에 게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보였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에 쓴 단편은 <가시>와 <발톱>이다. 단편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정말 짧은 이야기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좋아서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여성 서사에 관심이 있었던 건지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해 말하다 언니에게로 이어진 <가시>와 젊은 새엄마와 완전한 남이지만 어느새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된 <발톱>의 엔딩이 좋았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안녕, 장수극장>이었다.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왠지 모를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소읍의 유일한 유흥거리였던 극장이 어느새 쇠락해 이제는 찾는 사람이라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친구와 상영관에 몰래 기어들어가는 백수 아저씨뿐이라 윤송은 이걸 애물단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윤송이 다니는 중학교 축제에서 장수극장을 마을 사람들이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영상에서 나도 모르게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다. 극장이 그저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가 아닌 마을 모든 이들의 삶이자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또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엄마만큼 좋아해>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주비가 주인공인데 꼬마 아이의 일상이 왠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오빠와 함께 하는 소꿉놀이에서 엄마 역할을 맡고 싶어서 양 갈래머리를 하려는 마음이 깜찍하게만 보였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예쁜 시아와 관련된 해프닝이 일어나면서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인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주비가 인지하고 있었기에 밉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선 이어진 엔딩은 그 어떤 선입견이 전혀 없이 좋아하는 감정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보여 흐뭇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장르가 담긴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한 소설집이었다. 로맨스와 SF, 추억과 여성 서사 등등 각기 다른 매력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왜 처음에 가시를 뽑지 못했나. 당신은 왜 암에게 당신의 낡은 아기집을 내주었는가. 아니, 애초에 왜 언니와 나에게 그 아기집을 빌려주었다.
왜 몸에다 다른 삶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알게 했는가. <가시> - P177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걷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서 자란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수극장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안녕, 장수극장> - P61

내가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지? 사탕만큼? 돈가스만큼? 마이 멜로디만큼?
어쩌면…… 로즈 공주만큼? 아니지, 그보다는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엄마만큼."
(……중략)
응, 난 엄마만큼이나 밤이 오빠가 좋아. 밤이 오빠도 그러면 좋겠어. <엄마만큼 좋아해> - 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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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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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장 발장은 남편을 잃은 누나와 누나의 일곱 아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걸려 감옥에 갔다. 겨우 빵을 훔치고서 몇 년의 형기를 받은 장 발장은 몇 번이고 계속된 탈옥으로 인해 형기가 늘어 무려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렇게 모든 형벌을 마치고 장 발장이 세상에 나왔다. 그것도 죄인이라는 표시가 명백하게 새겨진 노란색 통행증과 19년 동안 감옥에서 일해서 번 푼돈을 가지고서 말이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오랫동안 걸어 다닌 장 발장은 디뉴에 도착했다. 여관에 가서 허기를 달래고 하룻밤을 지내려고 했으나 가는 곳마다 주인들이 통행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통행증을 본 이들은 당연히 그를 쫓아냈다. 오갈 데가 없어 길에서 잠을 청하려던 장 발장에게 어느 친절한 부인이 미리엘 주교의 집 문이 열려 있다고 하며,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1817년.

공장에서 일하는 팡틴은 사랑하는 톨로미에스와 그의 친구들, 함께 일하는 여직공들과 나들이를 떠났다. 즐거웠던 그들의 하루는 톨로미에스와 그의 친구들이 영원히 떠나면서 끝이 났다. 팡틴에게 남은 건 지독한 가난과 곧 3살이 되는 딸 코제트뿐이었다. 고향에 가서 일자리를 찾으려고 마음먹은 팡틴은 식당을 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매달 돈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딸을 맡기고 떠났다.

고향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도착한 팡틴은 마들렌 씨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지만, 아름다운 금발과 예쁜 용모를 질투하는 이들로 인해, 그리고 코제트를 맡긴 테나르디에 부부의 사기로 인해 점점 삶이 버거워진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장 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팡틴도 아니었다.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만한 인물인 미리엘 주교였다. 그는 청렴결백한 성직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고, 인간적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 거의 없던 그는 남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너무나 재치 있는 사람이라 많은 시민들이 미리엘 주교를 사랑했다.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집을 방문하게 된 건 운명이나 다름없는 듯 보였다. 빵을 훔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몇 년의 형기를 받은 그는 몇 번이고 계속된 탈옥 시도로 인해 무려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세상에 나오게 된 장 발장에게는 범죄자라는 표식이 된 통행증과 몇 푼의 돈이 전부였기에 증오나 악밖에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로 인해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그릇과 은촛대를 훔쳐 달아났지만, 안타깝게도 그놈의 통행증 때문에 잡혀 왔다. 그러나 그런 장 발장에게 미리엘 주교는 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스스로 깨달아야만 했던 선한 영향력이었다.

장 발장이 새롭게 다시 태어났을 때 팡틴은 내리막길 인생을 걷고 있었다. 의지가지했던 톨로미에스가 떠나면서 팡틴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가난과 딸 코제트만 남았다. 고향으로 일을 하러 떠나기 전에 마음씨 좋아 보이는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코제트를 맡겨두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악독하기 그지없는 이들이었다. 고작 3살밖에 되지 않은 코제트로 돈을 벌 궁리를 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아이를 핍박하고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향에서 돈을 벌고 있는 팡틴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기에 테나르디에 부부가 원하는 대로 코제트를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을 부르는 대로 보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화가 난 건 당연했다. 자신들도 딸을 키우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를 학대할 수 있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돈에 미친 인간들로만 보였다. 이들이 제대로 된 벌을 받기를 바랐지만, 책이 아직 1권이기에 그 바람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팡틴이 고향에서 취직한 일자리는 마들렌 씨의 공장이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뻔하게 알 수 있듯 그는 당연히 장 발장이었다. 과거를 감추고 미리엘 주교의 뜻에 따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었던 그는 어느새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사를 했는데도 시장이 되어 더욱더 깊은 선을 행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번 죄를 지은 이를 결코 놓는 법이 없었던 사복형사 자베르의 의심을 피할 길 없던 장 발장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상황을 모면하게 된다. 하지만 엉뚱한 이가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벌을 받는다는 걸 견딜 수가 없었던 장 발장은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다. 가여운 코제트를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엄마 팡틴에게 데려다준 뒤에 말이다.

고의로 신분을 세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는 현재의 장 발장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를 바랐었다. 스스로 깨닫고 바뀌어 이 삶을 이뤄냈고,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샹마티외가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발장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지금 이뤄놓은 걸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고 한 그 고백이 고결하게 보인 건 당연했다.


이후 소설은 팡틴의 사망과 도망친 장 발장, 그를 잡으러 나타난 자베르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도망친 장 발장은 죽으면서까지 제 딸을 찾았던 가련한 여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이를 구해야만 했다.

도망친 장 발장과 한 번 문 범죄자는 절대 놓치지 않는 자베르, 그리고 가여운 코제트가 어떻게 될지는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 할 수 있을 듯하다.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내게 약속한 일을.
(……중략)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 P192.193

이 팡틴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빈궁에게서.
굶주림에게서, 추위에게서, 고독에게서, 버림에게서, 궁핍에게서. 비통한 매매. 한 영혼과 한 조각 빵과의 교환. 빈궁은 제공하고, 사회는 받아들인다. - P334.335

분명히 사람들은 눈앞에 장 발장을 보고 있었다. 그는 빛나고 있었다. 그의 출현은 조금 전 그렇게도 알 수 없었던 그 사건을 백일하에 드러내 놓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그 모든 군중은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에 유죄 판결을 받지 않도록 자수하는 그의 그 단순하고도 숭엄한 행위를 대번에, 그리고 한눈에 이해했다. 그 세세한 사실들이며 망설임,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저항 같은 것들은 이 빛나는 거대한 사실 속에 사라져 버렸다. -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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