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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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경찰서에 붙잡혀 왔다. 주류 판매점에서 자판기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렸고, 그를 말리려던 직원을 폭행한 혐의였다. 잡혀온 남자 스즈키 다고사쿠를 마주한 경찰 도도로키 이사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취자 사건이기에 적당히 조사를 하고 돌려보내려고 했다. 스즈키가 1시간 뒤인 10시에 아키하바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촉에 대해 운운하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던 스즈키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도도로키는 10시가 됐을 때 대로변 건물 3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도도로키는 스즈키를 달리 보게 되지만, 그는 앞으로 3번 폭발이 더 일어날 거라고 예고한다.


도쿄돔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난 이후 경시청 소속의 기요미야 데루쓰구와 루이케가 스즈키를 맡게 됐다. 스즈키는 도도로키에게만 말하겠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을 바꿔 기요미야를 상대했고 도도로키는 CCTV 등의 증거를 찾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러는 한편 스즈키가 주류 판매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출동했던 순경 고다 사라는 동료 야부키 다이토, 차출되어 온 다른 경찰들과 함께 어딘가에 숨겨놨을 폭탄을 찾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엔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잡혀 온 스즈키는 차림새도 허름했고 말도 어수룩했는데, 경찰의 눈치를 보는 듯 헤헤거리며 웃어넘기려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도도로키 역시 처음엔 그가 촉을 운운하는 예고를 흘려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스즈키가 예고한 시간에 폭탄이 터지면서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즈키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수수께끼 같은 걸 내며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도쿄돔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상자가 나오면서 경시청 수사관 기요미야가 사건을 맡게 됐다. 폭탄 테러는 어느 나라에서나 중대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기에 더 전문적인 이들이 맡는 게 당연했고, 도도로키가 이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동료들과의 관계가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요미야가 후배 수사관인 루이케와 함께 스즈키를 수사하면서 마치 스무고개 같은 게임이 이어졌다. 말장난처럼 보이기만 했던 그 게임을 통해 엉뚱하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루이케가 몇 번이고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탄이 터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즈키가 낸 스무 고개의 답이 너무나 광범위했기 때문에 현장을 돌아다니는 경찰이 미처 확인할 새가 없었고, 날이 밝은 뒤에는 일상생활을 하는 수많은 시민들로 인해 통제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장으로 나간 도도로키가 조사를 하면서 성과가 있었고, 스즈키를 처음 체포했던 사라 역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는 폭탄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즈키의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미 몇 년 전에 어떤 폭로로 인해 경찰직을 내려두고 자살을 한 하세베 유코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하세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져 충격을 줬고, 도도로키가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조직 내에서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다는 게 드러났다. 스즈키가 하세베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관련된 단서가 드러났고, 이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눈에 들어왔다.

스즈키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걱정하지 않았다. 번화가나 이용객이 많은 역에서 폭탄이 터져 생사의 위협을 받을 때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는 나서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돕고 곁을 지키기도 했다. 대체로 그러했다. 기요미야와 루이케는 얼굴을 맞대고 있던 스즈키를 향한 증오가 솟구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인을 자신과 같이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후반에 활약을 한 사라 역시 한때의 인연을 잊지 않으며 감싸기도 했다.

결국 스즈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될 리가 없었다. 도도로키가 초반에 말했듯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연대의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대의식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선의로 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의 책은 네 번째 읽는 건데, 이번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좋아서 무척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있었다.

"어디선가 무언가가 폭발해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슬퍼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한테 10만 엔을 빌려줄 건 아니겠죠. 제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죽는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 겁니다. 분명." - P27

그 순간, 규칙의 선을 넘어 네놈의 손가락을 부러뜨린 순간 나는 분명 충만감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감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욕망. 억누르고 있던 야만적 충동.
이 자식은 내 동료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것을 허락했다. - P419

이유 있는 살인이다. 복수, 청산. 상대는 희대의 살인마. 인간의 탈을 쓴 괴물.
무엇이 잘못됐나? 죽여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곳은 법치 국가다.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살아 있는 그를 분석해서 얻은 식견이 미래의 수사에 도움 될 것이다. 사회 문제를 밝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런 건 상관없다. 이 증오 앞에서, 내 증오 앞에서 당신들의 하찮은 이익 따위 알 바 아니다. - P545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해 가는 동료라는 연대의식이 느껴지는 사람들은 엄연히 있다.
그 말을 들은 스즈키의 얼굴.
‘범죄자도 포함되나요?‘라고 묻는 목소리. - P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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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걷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1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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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다코타의 런던.

사냥꾼 할 파커가 자신의 암소를 죽인 늑대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수색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가 숲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부검을 마친 시신처럼 가슴이 Y자로 꿰매진 여성이었다. 놀란 할 파커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런던 지역의 경찰인 조 켈리가 수사를 시작했다.

그 여성의 정체는 지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종교 단체 '브라더스'의 교사 아이린 크레이머로 밝혀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성이 낮에는 종교 단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매춘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FBI 소속인 에이머스 데커와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이 런던으로 향하게 됐다. 어느 시기 이후 과거가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아이린 크레이머의 사건을 수사하라는 윗선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이 노스다코타의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이 석유 시추 사업으로 외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지역이라는 걸 알았고, 동시에 흉물스러운 공군 기지 옆에 브라더스의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의아해한다.




일을 찾는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는 석유 도시에서 밤에는 매춘을 했다는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 건 이상하게 여길 부분은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책에서 보면 이런 특정 여성들에 대한 범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여성 크레이머에겐 특이점이 몇 가지 있었기에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이미 죽어서 부검이 됐었다는 사실인데, 사냥꾼이 발견했을 때 그녀의 사체가 깨끗했다는 점이다. 암소를 죽였을 정도로 굶주린 늑대를 쫓는 사냥꾼이 있었으니 죽은 크레이머의 시신은 진작에 훼손되어야 마땅했다. 그건 사냥꾼이 크레이머를 발견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발견 장소에 옮겨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의문스러운 점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그녀의 죽음이 FBI를 이곳에 불러온 것이었다. 과거를 깊이 파헤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데커와 재미슨이 그녀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과 같은 시스템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사를 시작한 데커와 재미슨은 현지 경찰인 켈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노스다코타 런던에는 흉하다는 표현이 적합한 공군 기지가 있었는데, 그곳은 뭔가 의심스러운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종교 단체 브라더스의 공동체 구역이 붙어 있었다는 게 의문스럽기만 했다. 크레이머가 그 종교 단체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었기에 공군 기지와 무슨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을 파헤쳤다.

그런가 하면 지역의 거물인 휴 도슨과 스튜어트 매클렐런을 알게 되기도 했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대부분 두 사람의 것이었기에 그들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반면에 도슨의 딸 캐럴라인과 매클렐런의 아들 셰인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었고 현재는 셰인이 캐럴라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심지어 경찰 켈리 역시 고등학교 때 친했었고, 더욱 놀라운 건 이 지역에 일을 하러 온 데커의 매형 스탠 베이커가 캐럴라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누나와 스탠은 현재 이혼 협의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데커는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지지만, 그런 감정은 치워두고 스탠에게 여러 도움을 받기도 했다.

스릴러 소설 시리즈이니 만큼 살해된 사람은 아이린 크레이머만 있던 건 아니었다. 종교 공동체의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앞서 언급한 사냥꾼의 창고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공군 시설에서 일하던 병사가 실종되기도 했다. 데커와 재미슨에게는 정부의 또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윌 로비와 제시카 릴이 위험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지역에 있는 공군 시설과 관련된 사항들을 파헤치면서 추악한 비밀이 드러났고, 살인 사건과 관련된 범인은 소설 후반에 얼굴을 비췄다. 범인에 관한 건 당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돈과 연결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다른 부분은 그런 기미조차 못 느껴서 충격이긴 했다.

3년 만에 읽는 '데커 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꽤 두꺼운 분량으로 여러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범인은 이번에도 당연히 알아맞히지 못했다. 비밀을 알고 나니 잘 숨긴 것 같으면서도 눈치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새로 등장해 도움을 준 캐릭터인 윌 로비와 제시카 릴의 콤비가 너무 멋졌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인공인 데커 역시 점점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게 눈에 들어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된다.

"크레이머는 우리에게 분명히 중요한 존재일 겁니다."
"어쩌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중요한 존재가 됐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크레이머가 당한 것 같은 죽음은 반드시 정의 실현과 처벌로 마무리돼야 한다고 믿네." - P232

"우리 모두가 망할 놈의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다는 거야." - P169

"내 극복 방식은 그냥 진실을 찾아내는 겁니다, 알렉스. 그걸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어요."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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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신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카다 에미코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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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할 것이다. 소설 외의 장르를 드물게 읽는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을 정도니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신들에 대해 줄줄 외울 만큼 섭렵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여러 문학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 외에 다른 신화에 대해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는 단군 신화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게 신화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다른 신화에 대해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페르시아 신화에 대해 소개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란에서 널리 알려진 신화를 읽으며 처음엔 신선함을 느꼈고, 왕족의 신화적 이야기나 형제들 사이의 질투,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통용되는 비슷한 부분이 있어 친숙하게 다가왔다.




왕위를 계승하며 이어져 내려온 페르시아 신화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700년 동안 이란을 다스렸다는 잠시드왕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는 사려 깊고 자애롭고 정의로운, 더할 나위 없이 왕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이였다. 잠시드왕의 치세 700년 동안 백성이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자만하게 되면서 행운이 잠시드왕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이 시기에 마르다스왕의 아들 자하크에게 악신 아리만이 다가와 그를 꾀어냈다. 악신의 꼬임에 넘어간 자하크는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리만이 입을 맞춘 자하크의 어깨에 뱀 두 마리가 자라났다. 뱀왕이라 불리게 된 자하크가 이란으로 군대를 보내 잠시드왕을 죽이고서 이란의 모든 것을 차지했다.

신화라는 것이 그저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는 걸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졌다.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선하고 너그럽게 세상을 다스리던 잠시드왕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등의 자만을 하자 모든 걸 단번에 앗아갔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왕으로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덕목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하크와 악신 아리만의 이야기는 분별없는 시선으로 인해 악을 악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가 다스리는 세상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보여줬다.

악신 아리만은 이후로도 몇 번이고 등장해 페르시아 신화의 공식 악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도 존재했다. 이란의 무장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빛나는 은발을 가졌다는 이유로 버려져 신령한 새 시무르그가 기른 잘 이자르는 뒤늦게 그를 찾아 용서를 구한 아버지의 아들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잘 이자르에 관한 소문이 이웃나라 카불에게까지 알려졌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루다베 공주는 얼굴을 보지도 않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잘 이자르 역시 카불을 방문했다가 루다베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의 사랑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던 건 앞선 시대의 잠시드왕과 악신 아리만에게 지배된 자하크왕 때문이었다. 역사로 인해 현재의 왕이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으나 아버지의 애원과 잘 이자르의 현명함 덕분에 그들은 부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위대한 영웅이었던 잘 이자르와 루다베의 아이 역시 영웅의 풍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게 당연했기에 출생의 신비 또한 신화적으로 그려냈다.

나에게는 멀고 낯선 나라 이란, 페르시아의 신화에 대해 재미있게 들려준 이 책은 어느 나라나 옛날 옛적 이야기들은 비슷하다고 여겨져 높은 줄만 알았던 벽이 조금은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왕과 꾀임에 빠져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된 자, 막내를 질투한 두 형의 끔찍한 행동이 불러일으킨 파멸 또한 있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치 이란의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풀어나간 책 덕분에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화는 그 나라의 종교이고 철학이며 문학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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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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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의 소방관은 '아지카와 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가 보니 엄마인 듯한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물에 흠뻑 젖은 채 발견되었는데, 웬 남자가 인공호흡을 하며 두 사람을 살리려 하고 있었다. 소방관과 동료가 확인해 보니 두 사람 모두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다.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옮기려는데 곁에서 인공호흡을 하던, 역시나 옷이 흠뻑 젖은 남자가 냉정한 눈빛을 띠고 있던 게 소방관의 기억에 남았다.

이후 '아지카와 강 사건'이라 명명된 이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다.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배달을 가던 중이었다던 목격자가 없었더라면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익사사고로 남았을 것이다.


여자와 아이를 죽인 사람은 놀랍게도 두 사람의 남편이자 아빠인 니토 도시미였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는 미남이었고, 주변 평가 또한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내와 딸을 죽인 이유는 집에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라고 했다.




살인의 이유는 평범하지 않지만 추리 장르인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논픽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자신을 소설가라 지칭하는 화자가 니토 도시미가 살인을 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해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을지, 현재 관계를 맺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학생, 고등학생을 거슬러 초등학생 때까지 그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형식으로 인해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사건과 관련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니토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이유는 가히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 사랑하는 이들을 죽였다는 게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무엇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는지 사고체계 자체가 무너진 것처럼 여겨졌다. 놀랍게도 니토가 선선히 자백한 것이었기에 더욱 경악스러웠다. 이 자백으로 인해 화자인 소설가가 그에 대해 파헤쳐 볼 생각이 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설가는 일단 니토가 다녔던 은행 동료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은 가명을 사용했고 더러 실명을 사용한 사람이 있음을 밝혔다. 니토의 직장 동료들은 입을 모아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했다.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반듯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경찰이 엄한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거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생 때는 물론이고 고등학생 때, 심지어는 초등학생 때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웃들까지 니토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으로 인해 니토가 대외적인 이미지를 정말 잘 만들어 놓았든지 아니면 한 번씩 초점이 나가는 그런 타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가 취재를 하면서 가끔씩 니토의 주변에서 의심스러운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은행에서 일하다가 2년 전에 실종됐다가 최근에 백골이 발견된 가지와라 게이지로가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트럭 바퀴에 깔려 사망한 마쓰야마 아키라가 있었는데, 그보다 한참 전인 니토가 중학생 때 이웃 남자가 트럭 바퀴에 치여 죽은 똑같은 사망 사건을 알게 된다. 또한 초등학생 때는 죽인 아내 쇼코와 이름이 똑같은 같은 반 여학생 쇼코의 의붓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뒤늦게 니토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혹은 사고로 보이는 이 죽음들에는 '책 놓을 자리가 없어서'와 비슷하게 어처구니없는 이유의 죽음도 존재했다. 그로 인해 이 사망 사건과 연관 지어 니토의 심리를 파헤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후반에 초등학생 때 가까웠던 쇼코와 관련된 사람의 증언이 밝혀지고서 니토의 심리에 대해 납득을 한 이후에 뒤통수를 치는 결말로 인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주변의 가까운 이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데, 기묘한 동기로 살인을 저지른 이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이러한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논픽션 스타일의 추리 소설이라 읽는 내내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전개 방식 덕분에 실화 같다는 인상을 받아 더욱 몰입감이 있었다.

사람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것 아닐까. 당신의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이미 일이 터져 버린 뒤다. - P12

니토는 터무니없는 동기로 살인을 저질렀으면서 그 터무니없는 동기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거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동기로 저지른 범죄라면 체포할 수 있는데 동기가 별나면 체포도 못 하다니 커다란 모순입니다. - P211.212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한 척하며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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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수 지음 / 엘릭시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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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임연지는 꽤 알려진 대기업을 오랫동안 다니고 있다. 같은 팀 팀원들과 가깝게 지내며 연애에 관한 얘기를 나누지만 연지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녀는 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회사 내에서 모든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획팀 김준영 과장을 연지 역시 때때로 훔쳐보며 확실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것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다 준영이 연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해 퇴근 이후에도 종종 만나는 관계가 되는데, 이게 사귀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연지에게 12년 전 대학 시절 동아리 회원들과 찍은 사진이 택배로 도착했다. 발신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이 사진을 벌써 세 번째 받는 거라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걸 연지는 알고 있다. 동아리 회원 중 1, 2학년들 8명이 술자리에서 찍은 이 사진 속 한 사람이 사진 촬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땐 내가 어쩐 일로 이런 스타일의 소설을 보겠다고 메모해뒀을까 생각했다. 로맨스 소설은 거의 안 읽는다고 볼 수 있는데, 직장 내 연애, 대학 시절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뤄서 약간 당황했다. 근데 남의 연애가 재미있어서인지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읽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릴러가 끼어들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였다. 그제야 이 소설이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후부터는 로맨스와 스릴러의 결합을 기쁘게 받아들여 쭉쭉 읽어가기 시작했다.


현재의 연지가 같은 회사의 준영과 썸을 타는 내용은 어른의 사랑 그 자체였다. 굉장히 쿨해 보여서 이 사람들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느꼈다. 연지는 약간 모호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연지는 과거 회상인 대학생 때도 사랑에 있어서 모호하게 행동했다고 보였다. 만인의 연인 타입인 동아리 회장 제국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9월에 동아리에 들어온 동갑내기 상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마음이 분명하게 보이는 행동도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해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연지의 현재와 과거의 연애 아닌 연애를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과거 동아리 회원이 죽은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의 죽음은 처음엔 타살을 의심했으나 정황상 사고사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현재의 연지에게 누군가가 몇 번이고 사진을 보내면서 사고사가 아니라는 의심으로 11년 만에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때로는 그때의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준영이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길을 잡아줬고, 현재 변호사가 되어 다시 만난 상호와 여러 인물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알리바이를 맞추기도 했고 또 다른 단서들이 의외로 풀려나가기도 해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의 벽에 가로막혀 이대로 끝날 것 같다 싶었는데, 역시나 의외의 행동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 부분에서 캐릭터의 변화가 좀 당황스럽긴 했는데,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약간 애매하긴 했으나 로맨스와 스릴러가 결합되어 무난하게 읽기 좋았던 소설이었다.

"그 애는 어린애같이 착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을 뿐이야. 걔 주변을 둘러싼 우리들이 속물이어서 멋대로 판단한 거지."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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