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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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경찰서에 붙잡혀 왔다. 주류 판매점에서 자판기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렸고, 그를 말리려던 직원을 폭행한 혐의였다. 잡혀온 남자 스즈키 다고사쿠를 마주한 경찰 도도로키 이사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취자 사건이기에 적당히 조사를 하고 돌려보내려고 했다. 스즈키가 1시간 뒤인 10시에 아키하바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촉에 대해 운운하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던 스즈키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도도로키는 10시가 됐을 때 대로변 건물 3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도도로키는 스즈키를 달리 보게 되지만, 그는 앞으로 3번 폭발이 더 일어날 거라고 예고한다.


도쿄돔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난 이후 경시청 소속의 기요미야 데루쓰구와 루이케가 스즈키를 맡게 됐다. 스즈키는 도도로키에게만 말하겠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을 바꿔 기요미야를 상대했고 도도로키는 CCTV 등의 증거를 찾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러는 한편 스즈키가 주류 판매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출동했던 순경 고다 사라는 동료 야부키 다이토, 차출되어 온 다른 경찰들과 함께 어딘가에 숨겨놨을 폭탄을 찾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엔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잡혀 온 스즈키는 차림새도 허름했고 말도 어수룩했는데, 경찰의 눈치를 보는 듯 헤헤거리며 웃어넘기려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도도로키 역시 처음엔 그가 촉을 운운하는 예고를 흘려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스즈키가 예고한 시간에 폭탄이 터지면서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즈키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수수께끼 같은 걸 내며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도쿄돔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상자가 나오면서 경시청 수사관 기요미야가 사건을 맡게 됐다. 폭탄 테러는 어느 나라에서나 중대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기에 더 전문적인 이들이 맡는 게 당연했고, 도도로키가 이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동료들과의 관계가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요미야가 후배 수사관인 루이케와 함께 스즈키를 수사하면서 마치 스무고개 같은 게임이 이어졌다. 말장난처럼 보이기만 했던 그 게임을 통해 엉뚱하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루이케가 몇 번이고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탄이 터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즈키가 낸 스무 고개의 답이 너무나 광범위했기 때문에 현장을 돌아다니는 경찰이 미처 확인할 새가 없었고, 날이 밝은 뒤에는 일상생활을 하는 수많은 시민들로 인해 통제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장으로 나간 도도로키가 조사를 하면서 성과가 있었고, 스즈키를 처음 체포했던 사라 역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는 폭탄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즈키의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미 몇 년 전에 어떤 폭로로 인해 경찰직을 내려두고 자살을 한 하세베 유코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하세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져 충격을 줬고, 도도로키가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조직 내에서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했다는 게 드러났다. 스즈키가 하세베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관련된 단서가 드러났고, 이후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눈에 들어왔다.

스즈키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걱정하지 않았다. 번화가나 이용객이 많은 역에서 폭탄이 터져 생사의 위협을 받을 때 누군가는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는 나서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돕고 곁을 지키기도 했다. 대체로 그러했다. 기요미야와 루이케는 얼굴을 맞대고 있던 스즈키를 향한 증오가 솟구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인을 자신과 같이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후반에 활약을 한 사라 역시 한때의 인연을 잊지 않으며 감싸기도 했다.

결국 스즈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될 리가 없었다. 도도로키가 초반에 말했듯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연대의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대의식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선의로 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의 책은 네 번째 읽는 건데, 이번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좋아서 무척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있었다.

"어디선가 무언가가 폭발해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슬퍼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한테 10만 엔을 빌려줄 건 아니겠죠. 제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죽는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 겁니다. 분명." - P27

그 순간, 규칙의 선을 넘어 네놈의 손가락을 부러뜨린 순간 나는 분명 충만감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만감이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욕망. 억누르고 있던 야만적 충동.
이 자식은 내 동료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것을 허락했다. - P419

이유 있는 살인이다. 복수, 청산. 상대는 희대의 살인마. 인간의 탈을 쓴 괴물.
무엇이 잘못됐나? 죽여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곳은 법치 국가다.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살아 있는 그를 분석해서 얻은 식견이 미래의 수사에 도움 될 것이다. 사회 문제를 밝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런 건 상관없다. 이 증오 앞에서, 내 증오 앞에서 당신들의 하찮은 이익 따위 알 바 아니다. - P545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해 가는 동료라는 연대의식이 느껴지는 사람들은 엄연히 있다.
그 말을 들은 스즈키의 얼굴.
‘범죄자도 포함되나요?‘라고 묻는 목소리. - P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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