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가명의 소방관은 '아지카와 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가 보니 엄마인 듯한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물에 흠뻑 젖은 채 발견되었는데, 웬 남자가 인공호흡을 하며 두 사람을 살리려 하고 있었다. 소방관과 동료가 확인해 보니 두 사람 모두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다.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옮기려는데 곁에서 인공호흡을 하던, 역시나 옷이 흠뻑 젖은 남자가 냉정한 눈빛을 띠고 있던 게 소방관의 기억에 남았다.

이후 '아지카와 강 사건'이라 명명된 이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다.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배달을 가던 중이었다던 목격자가 없었더라면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익사사고로 남았을 것이다.


여자와 아이를 죽인 사람은 놀랍게도 두 사람의 남편이자 아빠인 니토 도시미였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는 미남이었고, 주변 평가 또한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내와 딸을 죽인 이유는 집에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라고 했다.




살인의 이유는 평범하지 않지만 추리 장르인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논픽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자신을 소설가라 지칭하는 화자가 니토 도시미가 살인을 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해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을지, 현재 관계를 맺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학생, 고등학생을 거슬러 초등학생 때까지 그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형식으로 인해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사건과 관련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니토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이유는 가히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 사랑하는 이들을 죽였다는 게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무엇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는지 사고체계 자체가 무너진 것처럼 여겨졌다. 놀랍게도 니토가 선선히 자백한 것이었기에 더욱 경악스러웠다. 이 자백으로 인해 화자인 소설가가 그에 대해 파헤쳐 볼 생각이 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설가는 일단 니토가 다녔던 은행 동료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은 가명을 사용했고 더러 실명을 사용한 사람이 있음을 밝혔다. 니토의 직장 동료들은 입을 모아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했다.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반듯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경찰이 엄한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거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대학생 때는 물론이고 고등학생 때, 심지어는 초등학생 때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웃들까지 니토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으로 인해 니토가 대외적인 이미지를 정말 잘 만들어 놓았든지 아니면 한 번씩 초점이 나가는 그런 타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가 취재를 하면서 가끔씩 니토의 주변에서 의심스러운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은행에서 일하다가 2년 전에 실종됐다가 최근에 백골이 발견된 가지와라 게이지로가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트럭 바퀴에 깔려 사망한 마쓰야마 아키라가 있었는데, 그보다 한참 전인 니토가 중학생 때 이웃 남자가 트럭 바퀴에 치여 죽은 똑같은 사망 사건을 알게 된다. 또한 초등학생 때는 죽인 아내 쇼코와 이름이 똑같은 같은 반 여학생 쇼코의 의붓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뒤늦게 니토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혹은 사고로 보이는 이 죽음들에는 '책 놓을 자리가 없어서'와 비슷하게 어처구니없는 이유의 죽음도 존재했다. 그로 인해 이 사망 사건과 연관 지어 니토의 심리를 파헤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후반에 초등학생 때 가까웠던 쇼코와 관련된 사람의 증언이 밝혀지고서 니토의 심리에 대해 납득을 한 이후에 뒤통수를 치는 결말로 인해 묘한 감정을 느꼈다. 주변의 가까운 이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데, 기묘한 동기로 살인을 저지른 이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이러한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논픽션 스타일의 추리 소설이라 읽는 내내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전개 방식 덕분에 실화 같다는 인상을 받아 더욱 몰입감이 있었다.

사람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것 아닐까. 당신의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이미 일이 터져 버린 뒤다. - P12

니토는 터무니없는 동기로 살인을 저질렀으면서 그 터무니없는 동기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거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동기로 저지른 범죄라면 체포할 수 있는데 동기가 별나면 체포도 못 하다니 커다란 모순입니다. - P211.212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한 척하며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 P3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