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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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갱단의 돈다발이 든 가방을 훔쳐서 무사히(?) 도망친 알란은 현재 발리 호텔에서 율리우스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율리우스의 생일에 거금을 들여 초대한 가수가 까만색 판때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 알란은 태블릿이라 불리는 그것의 작동법을 배우고, 호텔 매니저에게 부탁해 손에 넣기까지 한다. 그 후 매일같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율리우스에게 들려주는 게 알란의 일과가 됐다.

 

 

율리우스가 알란의 돈으로 아스파라거스 사업을 시작한 뒤,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가방의 돈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호텔 숙박비도 어마어마하게 밀리고 만다. 그런 와중에 율리우스는 알란의 101세 생일을 맞아 열기구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해주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바람에 실려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게 된다. 인도양 한가운데에 내려앉긴 했지만 열기구 바구니로 물이 새어들어와 곧 죽겠구나 싶었던 두 사람은 마침 지나가던 화물선에 구조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배는 농축 우라늄을 싣고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인생을 살면서 죽을 고비를 수십 번은 무사히 넘긴 알란이 101살이 되어 돌아왔다. 무사태평하게 잘 지내시는가 싶더니 돈은 탕진했고, 호텔 숙박비는 15만 달러나 밀려 매니저가 감시를 하는 상황임에도 알란과 율리우스는 생일 파티를 위해 열기구를 탔다가 바다에 떨어져 버렸다. 거기다 북한측 배에 구조되는 바람에 알란은 살기 위해 자신이 핵 전문가라고 거짓말을 하고, 함께 평양으로 가서 김정은을 만나 핵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까지 한다.

 

 

 

북한이라니, 핵이라니! 전문 사기꾼 율리우스마저 덜덜 떨게 만드는 거짓부렁이었지만, 알란은 너무나 평온하고 느긋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상황은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평양에 꽤 오랫동안 머물게 될 줄 알았는데, 마침 그곳을 방문한 스웨덴 외무 장관 겸 UN 특사 덕분에 무사히 탈출해 미국에 트럼프를 만나러 간다. 그것도 북한에서 훔친 농축 우라늄을 들고 말이다. 이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초반의 관건이었는데, 다행히도 트럼프의 성격을 금세 알아차리고 다른 이에게 줄 방안을 찾아 넘겨주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알란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혼자 가게를 하는 사비네를 만나 신세를 지다가 관 사업에 뛰어들고, 이 사업으로 인해 네오 나치에게 쫓기게 된다.

정말 끝도 없이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처음엔 율리우스만 벌벌 떨며 고생했었지만, 나중엔 사비네까지 그들과 동행하게 되어 알란이 몰고 오는 사건들을 몸소 체험해야 했다. 이 정도면 알란은 무인도에 가서 사셔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거기에 갔더라도 어떻게든 온갖 사건들을 일으켜 세계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100살의 알란을 통해 20세기 역사의 발자취를 보여줬고, 101살의 알란은 현재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모험 내지는 추격전을 펼쳤다. 제목에도 들어가 있듯 북한 핵무기부터 신나치주의, 난민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문제를 실감 나게 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앙겔라 메르켈 등의 익숙한 사람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줬고, 마르고트 발스트룀이나 도리스 로이타르트 등의 낯설지만 실제로 그 직책에 있는 사람들까지 출연해 온갖 활약을 했다. 물론 알란 때문에 말이다.

 

전작을 읽을 땐 알란이 참 재미있고 매력적이라 함께 있으면 즐겁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가 의도를 한 게 아니었지만 조금 자제를 해줬으면 싶기도 했다. 더불어 가끔은 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고.(율리우스와 사비네가 노이로제 걸리겠어.)

 

왠지 전작이 더 재미있었다고 느껴졌다. 쉴 틈을 주지 않는 사고의 연속이라 읽다가 지쳤나 보다. 그래도 나름의 모험이 흥미로웠다.

알란이 이제는 평화로운 노년을 만끽하길 바란다. 제발!

101세 노인은 여러 가지 결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적어도 한 가지 재능은 특출했으니, 바로 어느 상황에서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 P96

「만일 두 분이 얌전히 지내신다면, 우리와 함께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까지 갈 수 있을 거요.」
「우리가 얌전히 지낸다면?」
「그렇소. 그다음에는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두 분의 일을 처리하실 거요.」
「일전에 자기 형을 처리했던 것처럼?」 - P65

이 사람이 정말로 대통령이야, 아니면 그냥 미치광이야? 뭐, 역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인 동시에 미치광이인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 P184.185

그는 단지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가 있는 재주가 특출났을 뿐이다.
무려 101년 동안 말이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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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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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토요일.

캘리포니아에 사는 얼리사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가족들에게 알린다. 가족들은 뉴스를 통해 콜로라도 강물이 캘리포니아주로 유입되지 않아 주 전체가 단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실 물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지만 물은 진작에 동이 나버려서 얼리사는 기지를 발휘해 얼음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단수 2일 차에 바질 삼촌은 가뜩이나 물도 없는데 집에 얹혀있는 게 불편하다며 여자친구 대프니가 있는 도브캐니언으로 떠난다.

그리고 3일 차, 바닷가에 담수화 설비에서 물을 얻어오겠다며 부모님이 떠났는데 이후로 연락이 되질 않는다. 그 후 전기가 끊겨 불안한 얼리사와 개릿 남매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옆집 켈턴이 도와준다.

 

 

 

어느 날 갑자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불편하더라도 잠깐이면 이 단수가 끝날 거라며 참을 수 있겠지만, 주 전체에 공급되는 물이 끊기고 이 단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몇 시간만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목이 타고, 음식을 만들 때도 물이 필요하다. 거기다 씻고 용변을 보는 문제 모두 물과 관련이 있었기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 며칠 만에 워터좀비가 됐다. 마트에서 물을 가지고 싸우는 건 예삿일이었고, 물을 가진 자는 얼마가 됐든 가격을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물을 사고파는 거라면 다행이었다. 한 모금의 물을 위해 욕구를 취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런 배경에 16살 얼리사와 옆집에 사는 같은 학교 켈턴, 얼리사의 10살짜리 남동생이 부모님을 찾기 위해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위기에 빠진다. 그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준, 왠지 껄렁껄렁한 19살 재키와 동행하여 집에 오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들끼리 떠나 켈턴 아버지가 준비한 벙커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바질 삼촌에게 큰 차를 빌리기 위해 도브캐니언에 갔다가 혼자 남은 집에서 물을 파는 헨리를 만나 함께 가게 된다.

 

모두가 10대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운전면허도 재키만 있을 뿐이라 오로지 그녀의 차지였는데, 나중엔 서로 돌아가면서 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위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총으로 허세를 떨긴 했어도 진짜로 총을 쏘기에는 너무 겁이 나기만 한다.

거기다 그들은 성격까지 서로 다 달라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얼리사는 차분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고, 켈턴은 어디로 튈지 몰랐다. 재키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삐딱하게 굴었고, 10살 개릿은 딱 그 나이 아이답게 다소 철이 없었다. 그리고 헨리는 말 잘하는 사기꾼 타입이라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인간다움이나 인류애 따위는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단수가 되어 하루, 이틀까지는 괜찮았지만 워터좀비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물만 얻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혐오스러우면서도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하긴 목이 그렇게 마른데 다른 사람,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3일째부터 위험하고 최대 8일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알고 있다.(기적 같은 사례는 논외.)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너무나 목이 말랐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물을 마실 수 있는데도 고통스러웠다.

 

물은 인류에게 최고로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물을 아끼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는 더욱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로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는 느낌이다. 꿈속으로 빠져들 때의 느낌. 그렇다고 잠이 든 것은 아니다. 깨어 있었다. 그럼 뭘까? 가만, 혹시 이게 워터좀비로 변하는 현상인가? - P385

"문을 활짝 열어 주든가, 아예 걸어 잠가야 해요. 애매하게 믿기엔 사람들은 너무 복잡해요."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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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느긋하겠습니다 - 여유만만 늘보 슬로틸다의 행복한 마이웨이 라이프
단테 파비에로 지음, 타일러 라쉬 옮김 / 와이즈맵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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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가족>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던 애니메이터 단테 파비에로가 블로그에 게시한 글을 출판한 책이다.

주인공은 느림의 대명사인 나무늘보 캐릭터로 이름은 "슬로틸다"라고 한다. 나무늘보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캐릭터화를 해서 귀엽게 표현됐다. 반려견 웰시코기 "피넛"과 함께 사는 슬로틸다의 느긋하고 느릿한 하루하루를 보여줬다.

 

 

 

 

어릴 땐 몰랐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운동은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든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근데 운동을 하고 나면 허기가 져서 뭔가를 많이 먹게 되고, 그러고 나면 또 배가 부르니 움직이고선 또 먹고. 이런 반복적 패턴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먹으려고 운동을 하는 것이지!

 

좋은 운동 기구를 살 필요가 없고, 헬스장을 몇 개월씩 끊는 것도 소용없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러닝머신이 빨래걸이가 되는 왜 똑같은지, 정말 웃겼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정말 굉장하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맛있는 걸 먹거나 매운 걸 먹으면 기분이 조금은 풀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정말 좋다.

 

절반을 먹고 이따 먹겠다고 남겨두고선 얼마 안 가 먹는 거, 왜 나를 보는 것 같지? 이래서 남는 음식이 없다.

내가 육식파이긴 하지만 감자도 정말정말 좋아한다. 감자는 삶든, 찌든, 튀기든, 굽든 다 맛있다. 감자 얘기하니까 문득 감자전이 먹고 싶어지네.

 

 

 

 

일상과 일에 대해 말하는 부분도 왜 그리 공감이 되던지. 난관에 봉착하면 걱정, 절망을 거쳐 타협을 하는데, 그 타협이 일단 회피라는 것도 비슷하다. 월요일에 일하기 싫어하는 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테고. 일할 때 딴짓하는 것도 역시나!

 

셀카 사이클은 공감하는 사람이 정말 많을 듯!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그러다가 건지면 저장하는 거고 못 건지면 그날 셀카는 접는다는 거. 그러고 보니 나 요새 셀카 안 찍은 지 오래됐다. 찾아보니 마지막 셀카가 4월이네? 와우!

 

나는 카페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안 마시면 이상하게 졸리긴 한다. 조금이라도 카페인이 들어가줘야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잠을 못 자는 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카페인은 대환영!

 

 

 

 

슬로틸다가 키우는 피넛과의 에피소드도 등장했다. 어릴 때 강아지를 몇 번 키웠던 적이 있어서 흐뭇하게 웃으면서 읽었다. 역시 반려동물은 사랑이야!

 

 

 

요즘엔 뭐든지 빨리 바뀌고, 빨리빨리 하면서 살게 되는 세상이다. 느긋하면 왠지 뒤처지는 것만 같기도 하고.

빠른 세상에 때로는 느긋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나무늘보 캐릭터를 보며 공감하며 읽었다. 빠른 것도 좋지만 여유를 갖는 것도 정말 필요하다.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라고 그래서 그림체가 어떨까 싶었는데, 귀엽고 깜찍해서 상품화 시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끼워져 함께 온 스티커가 더욱 반가웠다. 피넛도 정말 귀여웠고.

단순한 그림에 포함되어 있는 짧은 코멘트를 재미있게 번역한 방송인 타일러 라쉬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와이즈맵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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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3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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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 주에 사는 신사 셸비는 사업으로 빚을 져서 데리고 있는 흑인 노예를 팔아야 되는 상황이다. 셸비의 약속어음을 가지고 있는 노예상인 헤일리는 데려가고 싶은 콕 집어 노예를 요구한다. 한 명은 일 잘하고 신앙심이 깊으면서 셸비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섬겼던 톰이었고, 다른 한 명은 쿼드룬(흑인의 피가 1/4 섞인 혼혈) 아이인 해리였다.

 

어린 해리의 엄마 엘리자는 그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 후, 자신의 주인 셸비 부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셸비 부인 역시 엘리자를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기에 가족처럼 생각해 절대 그들을 팔지 않겠다고 했지만, 남편의 사업이 안 좋아서 그들을 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는 해리를 데리고 밤중에 도망치기로 하고, 가기 전 톰의 오두막에 들러 그에게도 소식을 전한다. 톰은 자신의 몸값으로 주인의 빚이 청산될 수 있다면 도망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하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톰이 가기 전, 셸비의 아들 조지를 비롯해 셸비 부인까지 그를 꼭 되사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톰은 헤일리를 따라 멀리 떠나게 된다.

 

제목은 정말 익숙한 책이지만, 정작 처음 읽어본 소설이다. 무슨 내용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흑인 노예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끔찍한 사고방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해서 경악했다.

어떤 백인들은 흑인을 감정을 가진 하나의 존재라고 보질 않았다. 그런 백인들에게 흑인 노예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인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흑인을 팔고, 죽으면 묻어주기는커녕 갖다 버리고선 새 노예를 샀다. 그리고 부모에게서 아이를, 유일한 가족인 형제, 자매를 서로 떼어내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렸다. 자신의 가족이 누구에게 팔려가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흑인을 백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정말 말이나 되는 걸까 의심했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으로도 보지 않고 감정도 다르다고 여기는 게 당시 일부 사람들이 실제로 가졌던 생각이라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었다. 셸비 부부처럼 흑인을 노예로만 보는 게 아닌 가족이라 생각하고 글자도 알려주며 충실함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었다. 톰이 셸비를 떠나게 된 후 혹시라도 끔찍한 주인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톰이 목숨을 구해준 귀여운 소녀 에바가 아빠 세인트클레어에게 톰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사달라고 졸라서 그의 집에서 한동안 행복하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세인트클레어의 부인 마리는 흑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수발을 드는 흑인 하녀는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마리는 누군가의 유언이자 죽기 직전 톰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행동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유언인데!! 그 후로 톰이 온갖 힘든 일을 겪게 된 건 다 이 여자 탓이었다. 그래서 정말 끝까지 밉고 싫었다.

 

좋은 주인만 만났던 톰은 이기적인 마리로 인해 목화를 따는 면화 농장 리그리에게 팔려가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 같은 흑인을 채찍으로 때리라고 하는 리그리는 정말 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톰은 신앙과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올곧고 바른 마음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더 숭고하게 느껴졌다.

 

흑인 노예에 대해 주제 의식을 가진 소설이지만, 때로는 의아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톰이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몇몇 인물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해설에도 나와있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인위적인 장치였다. 정말 뜬금없이 죽어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는 점이었다. 성경이 인용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고 어떤 등장인물과 일어나는 사건은 성경 내용을 투영한 것 같은데, 성경을 안 읽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긴 했어도 이 소설이 일으킨 파장을 생각하면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1800년대 중반에 흑인 노예에 대한 이런 소설을 감히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지금이라면 부당하다고 당연히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때는 지금과 다른 시대였으니 이렇게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굉장한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여성 작가가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나라가 있지만 제게 무슨 나라가 있습니까? 저처럼 노예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들이 무슨 나라입니까? 우리에게 무슨 법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법을 만들지도 않았고, 동의하지도 않았고, 그런 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 법은 우리를 깨부수고 우리를 짓누를 뿐입니다." 1권 - P202.203

"부인, 당신의 두 아이가 갑자기 당신과 헤어져서 팔려나간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감정 기준을 저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겠지요." 1권 - P224

감정을 갖고 있고, 살아 있고, 피 흘리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이 ‘물건‘을, 미국의 국법은 톰이 누워 있는 짐 꾸러미, 짐 뭉치, 상자들과 똑같이 판매 가능한 ‘물건‘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1권 - P237

"아무리 세련된 형태로 노예제도를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본질 면에서는 같습니다. 즉, 한 인간 집단이 자신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다른 인간 집단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팔려가는 집단의 이익과 발전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2권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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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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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이애미 저택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범죄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나 솔깃한 소문이지만, 집안에 있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발견한다고 해도 특수 제작 금고에 폭탄이 설치가 되어있어 잘못하면 금괴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기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거기다 집은 중개인의 관리하에 얼마 동안 대여만 가능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보안장치와 밤에는 상주하는 관리인 카리 모라가 있었다. 집안에 있는 온갖 이상한 물건들 때문에 그동안 많은 관리인들이 일을 때려치웠지만, 잘못하면 미국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태였던 카리는 돈이 너무 필요했기에 그곳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스코바르의 숨겨진 금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스 피터는 영화 촬영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 집을 빌린다. 부하들에게는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라고 시키고, 한스 피터는 아름다운 카리를 보며 좀 가지고 놀다가 장기 등을 팔아넘길 계획을 세운다.

 

 

 

 

 

 

카리가 집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경험 때문이었다. 어릴 때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에게 끌려가 온갖 훈련을 받으며 살았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소년과 도망쳐 살다가 결혼하는 날 끝까지 자신들을 쫓는 그들에게 예비 신랑을 처참하게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보호 상태라 이민국의 주시를 받고 있었다. 돈이 필요한 불안정한 상황이 카리를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녀를 눈독 들이는 한스 피터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긴 했다. 여자의 장기를 꺼내 팔고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액화 화장 기계에 넣고 녹여 변기에 흘려보냈다. 그 어떤 추적도 할 수 없었기에 한스 피터의 악랄한 행동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 외에 에스코바르의 금을 노리는 "텐 벨스 절도단"이 등장해 카리의 도움을 받았고, 집을 습격당한 경찰 테리 로블레스도 등장했다. 저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에스코바르의 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던 셈이었다.

 

책 제목이 <카리 모라>라서 당연히 카리를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될 줄 알았지만, 온갖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한스 피터는 그렇다 쳐도 텐 벨스 절도단의 몇 명과 중간에 사망한 사람들 두어 명이 있었고, 테리 로블레스의 개인사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사망한 사람의 변호사의 시점도 등장했다. 읽으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왜 하는 건지 의문을 갖게 했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내용에는 걸맞은 등장이었지만 굳이 한 챕터씩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초반과는 다르게 점점 흥미를 잃어 읽는 동안 딴짓을 좀 하느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을 예상보다 오래 읽었다.

 

결말엔 금괴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이제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뒤통수를 치고 그것마저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설마 후속편이 나오나?) 그나마 카리와 한스 피터의 긴박한 상황이 등장하긴 했지만 아주 짧기 때문에 스릴이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한니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토머스 해리스의 13년 만의 소설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주진 않았다. 책 뒤편과 띠지에 쓰인 찬사가 무색하게 별 재미를 못 느꼈다. 그냥 읽었을 뿐이었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한스 피터는 별 볼일 없는 사이코패스였고(근데 무모증이란 설정은 왜 필요했을까?) 카리 모라는 뭐 여전사까진 아니고 그냥 강한 여자 정도였을 뿐이었다.

 

작가가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가 요즘 인기를 끄는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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