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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평점 :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이애미 저택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범죄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나 솔깃한 소문이지만, 집안에 있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발견한다고 해도 특수 제작 금고에 폭탄이 설치가 되어있어 잘못하면 금괴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기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거기다 집은 중개인의 관리하에 얼마 동안 대여만 가능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보안장치와 밤에는 상주하는 관리인 카리 모라가 있었다. 집안에 있는 온갖 이상한 물건들 때문에 그동안 많은 관리인들이 일을 때려치웠지만, 잘못하면 미국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태였던 카리는 돈이 너무 필요했기에 그곳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스코바르의 숨겨진 금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스 피터는 영화 촬영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 집을 빌린다. 부하들에게는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라고 시키고, 한스 피터는 아름다운 카리를 보며 좀 가지고 놀다가 장기 등을 팔아넘길 계획을 세운다.

카리가 집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경험 때문이었다. 어릴 때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에게 끌려가 온갖 훈련을 받으며 살았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소년과 도망쳐 살다가 결혼하는 날 끝까지 자신들을 쫓는 그들에게 예비 신랑을 처참하게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보호 상태라 이민국의 주시를 받고 있었다. 돈이 필요한 불안정한 상황이 카리를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녀를 눈독 들이는 한스 피터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긴 했다. 여자의 장기를 꺼내 팔고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액화 화장 기계에 넣고 녹여 변기에 흘려보냈다. 그 어떤 추적도 할 수 없었기에 한스 피터의 악랄한 행동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 외에 에스코바르의 금을 노리는 "텐 벨스 절도단"이 등장해 카리의 도움을 받았고, 집을 습격당한 경찰 테리 로블레스도 등장했다. 저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에스코바르의 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던 셈이었다.
책 제목이 <카리 모라>라서 당연히 카리를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될 줄 알았지만, 온갖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한스 피터는 그렇다 쳐도 텐 벨스 절도단의 몇 명과 중간에 사망한 사람들 두어 명이 있었고, 테리 로블레스의 개인사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사망한 사람의 변호사의 시점도 등장했다. 읽으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왜 하는 건지 의문을 갖게 했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내용에는 걸맞은 등장이었지만 굳이 한 챕터씩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초반과는 다르게 점점 흥미를 잃어 읽는 동안 딴짓을 좀 하느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을 예상보다 오래 읽었다.
결말엔 금괴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이제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뒤통수를 치고 그것마저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설마 후속편이 나오나?) 그나마 카리와 한스 피터의 긴박한 상황이 등장하긴 했지만 아주 짧기 때문에 스릴이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한니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토머스 해리스의 13년 만의 소설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주진 않았다. 책 뒤편과 띠지에 쓰인 찬사가 무색하게 별 재미를 못 느꼈다. 그냥 읽었을 뿐이었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한스 피터는 별 볼일 없는 사이코패스였고(근데 무모증이란 설정은 왜 필요했을까?) 카리 모라는 뭐 여전사까진 아니고 그냥 강한 여자 정도였을 뿐이었다.
작가가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가 요즘 인기를 끄는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