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그리스 "아기아안나"라는 작은 마을 근처 만에서 화재가 일어난다. 관광객을 태운 배에 불이 난 것이었다. 언덕 위, 자신의 식당에서 화재를 목격한 안드레아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지만, 언덕을 올라온 관광객들의 반응으로 화재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슬퍼한다. 그 배의 주인이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난 것을 보고 놀란 관광객들은 안드레아스의 가게에 머물게 된다. 미국에서 온 토머스, 독일인 엘자, 아일랜드에서 온 피오나와 남자친구 셰인, 그리고 잉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였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그들은 안드레아스를 위로하며 그가 내온 요리를 먹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안드레아스는 이 사건이 다른 나라에도 전해졌을지도 모르니 고향에서 걱정할 가족, 친구들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를 써도 좋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각자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선뜻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다. 작은 그리스 식당의 주인인 안드레아스의 슬픔에서 이 아름다운 마을의 비극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네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각자의 사정도 다양했지만, 복잡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같았다.
우선 이곳에 살고 있는 안드레아스는 9년 전 자신과 싸우고 시카고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집스러움이 닮았는지 안드레아스와 그의 아들은 서로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아내와 이혼 후,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의 새 남편과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떠나 이 먼 곳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엘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독일을 떠났다. 피오나는 부모님과 친구 모두 셰인을 싫어하고 헤어졌으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무작정 그와 여행을 떠나 어느 곳에든 둘이 자리를 잡기를 바라고 있다. 데이비드는 가업을 잇길 바라는 사업가 아버지에게서 무작정 떠나왔다.
얼마간 그 마을에 머물면서 관광객들과 안드레아스, 그리고 마을에 일어나는 온갖 일에 도움을 주는 보니가 친구가 되면서 각자가 도망치고 있었던 문제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조언을 해줬고, 때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이들의 고민, 걱정거리는 서로 묘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는 다르다고 여겼다.
외아들인 자신에게 사업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아버지를 답답해하던 데이비드는 안드레아스 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가 아들과 싸운 이유가 데이비드의 사연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재혼한 전처와 아들에 대한 복잡한 사연이 있던 토머스는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아들까지 빼앗겨 늘 아이를 그리워했던 보니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와 자신의 문제는 다른 것이라며 말이다. 엘자와 피오나도 조금은 겹치는 감정이 있었고, 엘자는 보니에게 고민을 말했다가 말다툼을 조금 하기도 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은 경험하지 못했고 상황이 다르니 해결책도 다르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해 방법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줘도 딱히 듣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 혜안을 가진 보니가 그 역할에 가장 큰일을 해줬다.
등장인물 중 가장 답답했던 사람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싹수가 훤히 보였던 셰인만을 사랑하던 피오나였다. 삐딱하고 부정적이고 심지어 염치까지 없던 셰인은 임신했다고 말하는 피오나를 때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아테네로 추방되었다. 안타깝게 유산한 피오나는 셰인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 했지만, 그는 아테네에서 마약을 팔다가 붙잡혀 보석금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 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피오나를 말려도 듣지를 않았다. 고향에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그것 때문에 도망쳐왔으니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어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니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데, 피오나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인지 그런 게 전혀 보이질 않았나 보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 나쁜 놈과 완전히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감정을 나누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이 좀 상하기도 하고 섭섭해질 때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게 참 신기했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포근한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에게 감정이 언제 생겼나 조금 의아했고 문제가 딱히 해결되지 않은 몇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은 해피엔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인 그리스가 배경이라 마을을 상상하며 읽으니 좋았다.
"우리의 행운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거죠." - P307
"우리는 각기 다른 네 나라에서 왔어요. 독일, 잉글랜드, 아일랜드, 미국요.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는 모두 그 기억을 가지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거예요." - P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