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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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기아안나"라는 작은 마을 근처 만에서 화재가 일어난다. 관광객을 태운 배에 불이 난 것이었다. 언덕 위, 자신의 식당에서 화재를 목격한 안드레아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지만, 언덕을 올라온 관광객들의 반응으로 화재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슬퍼한다. 그 배의 주인이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난 것을 보고 놀란 관광객들은 안드레아스의 가게에 머물게 된다. 미국에서 온 토머스, 독일인 엘자, 아일랜드에서 온 피오나와 남자친구 셰인, 그리고 잉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였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그들은 안드레아스를 위로하며 그가 내온 요리를 먹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안드레아스는 이 사건이 다른 나라에도 전해졌을지도 모르니 고향에서 걱정할 가족, 친구들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를 써도 좋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각자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선뜻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다. 작은 그리스 식당의 주인인 안드레아스의 슬픔에서 이 아름다운 마을의 비극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네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각자의 사정도 다양했지만, 복잡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같았다.

우선 이곳에 살고 있는 안드레아스는 9년 전 자신과 싸우고 시카고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집스러움이 닮았는지 안드레아스와 그의 아들은 서로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아내와 이혼 후,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의 새 남편과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떠나 이 먼 곳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엘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독일을 떠났다. 피오나는 부모님과 친구 모두 셰인을 싫어하고 헤어졌으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무작정 그와 여행을 떠나 어느 곳에든 둘이 자리를 잡기를 바라고 있다. 데이비드는 가업을 잇길 바라는 사업가 아버지에게서 무작정 떠나왔다.

얼마간 그 마을에 머물면서 관광객들과 안드레아스, 그리고 마을에 일어나는 온갖 일에 도움을 주는 보니가 친구가 되면서 각자가 도망치고 있었던 문제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조언을 해줬고, 때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이들의 고민, 걱정거리는 서로 묘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는 다르다고 여겼다.

외아들인 자신에게 사업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아버지를 답답해하던 데이비드는 안드레아스 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가 아들과 싸운 이유가 데이비드의 사연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재혼한 전처와 아들에 대한 복잡한 사연이 있던 토머스는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아들까지 빼앗겨 늘 아이를 그리워했던 보니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와 자신의 문제는 다른 것이라며 말이다. 엘자와 피오나도 조금은 겹치는 감정이 있었고, 엘자는 보니에게 고민을 말했다가 말다툼을 조금 하기도 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은 경험하지 못했고 상황이 다르니 해결책도 다르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해 방법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줘도 딱히 듣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 혜안을 가진 보니가 그 역할에 가장 큰일을 해줬다.

 

등장인물 중 가장 답답했던 사람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싹수가 훤히 보였던 셰인만을 사랑하던 피오나였다. 삐딱하고 부정적이고 심지어 염치까지 없던 셰인은 임신했다고 말하는 피오나를 때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아테네로 추방되었다. 안타깝게 유산한 피오나는 셰인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 했지만, 그는 아테네에서 마약을 팔다가 붙잡혀 보석금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 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피오나를 말려도 듣지를 않았다. 고향에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그것 때문에 도망쳐왔으니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어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니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데, 피오나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인지 그런 게 전혀 보이질 않았나 보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 나쁜 놈과 완전히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감정을 나누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이 좀 상하기도 하고 섭섭해질 때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게 참 신기했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포근한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에게 감정이 언제 생겼나 조금 의아했고 문제가 딱히 해결되지 않은 몇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은 해피엔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인 그리스가 배경이라 마을을 상상하며 읽으니 좋았다.

"우리의 행운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거죠." - P307

"우리는 각기 다른 네 나라에서 왔어요. 독일, 잉글랜드, 아일랜드, 미국요.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는 모두 그 기억을 가지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거예요."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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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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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센스 만점의 그림으로 재미와 감동을 모두 주었던 키크니 작가님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에 이어 최근 출판된 두 번째 책을 읽었다. SNS를 통해 주문을 받아서 그림을 그렸던 지난번 책과는 달리 이번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4컷 그림과 글이 담긴 책은 작가 특유의 개그 코드가 많아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편한 복장, 때로는 후줄근한 복장에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프리랜서라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하는 부분이 웃겼다. 편의점에서 백수 취급을 받기도 하고, 대기업 작업 미팅이라 나름 잘 차려입고 갔는데 역시나 좀 후줄근했다던 곤란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키크니라고 알리지 않아서 별로 하는 일 없이 집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던 부분도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됐다. 나도 주변에서 블로그 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고 블로그 주소까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둘뿐이니 말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거리감을 두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작가님처럼 내 글을 본다고 하면 오글거려서 알려주기 민망스럽다.

 

저번에 읽은 책에서 눈치챘지만, 아무래도 작가님은 치킨을 아주 잘 알고 계신 것 같다. 또래오래 갈릭반 핫양념반이 여기서 또 나와서 확신을 했다. 나도 애정하는 치킨 조합인데 못 먹은 지 꽤 됐네. 먹고 싶다.

 

키가 커서 "키크니"라는 필명을 쓰고 계신 작가님은 무려 188센티미터의 장신에 살도 잘 찌는 체질이라고 한다. 근데 먹는 걸 좋아해서 금방 몸이 불어난다고. 심지어 태어났을 때는 5.3킬로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말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에 내가 눈물이 다 나네.

아무튼 그래서 먹는 얘기가 몇 번 나오는데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는 거 왜 이리 공감이 되던지. 돼지들의 돼지런한 하루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개그는 아재개그라고 취급했을 텐데 웃기는 걸 보니 아재의 나이가 됐나 보다. 월세 까까에 상평통보 읽으면서 빵 터져버렸다. 이런 개그 정말 좋아!

본인이 올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웃기고, 제주도 행 비행기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한 말도 너무 웃겼다.

 

그런가 하면 가족분들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특히 아버지는 짧게 등장한 4컷 그림에서보다 실제론 더 유쾌하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2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제지만 역시 형은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내 동생에겐 누나의 무서움 따윈 없는데.. 부럽다.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뭉클하게 했다. 글과 그림에 다 표현하지 못했을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작가님의 일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프리랜서도 직장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든 일은 모두에게 있었다. 사람에 치이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의뢰를 받아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에게도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힘듦은 모두에게 존재했다.

결론은 우리 모두 힘내자는 이야기.

 

 

 

 

 

책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었던 삶의 이야기였다. 일상다반사 아니고 일상 다 반사! 해버리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떤 부분은 공감되기도 해서 맞아맞아 하며 끄덕거렸고 뜨끔하기도, 때로는 뭉클하기도 했다.

센스 넘치는 개그와 말장난, 그리고 일상마저도 코믹했던 책이었다. 작가님은 왠지 살면서 재미있던 일이 많았을 것 같아서 가끔 이런 일상 코믹 시리즈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리뷰는 샘터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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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이
헬렌 피츠제럴드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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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애나와 그의 애인 앨리스터, 그리고 태어난 지 9주 된 그들의 아이 노아가 글래스고에서 멜버른으로 가기 위해 공항 보안검색대에 선 순간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조애나의 중이염 항생제와 노아의 해열진통제가 기내에 반입 가능한 액체 용량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빈 병을 사서 나눠 담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21시간의 비행 내내 노아가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조애나가 기저귀도 만져보고 젖도 물려보며 이런저런 일을 다 해봤지만 노아는 엄마를 비롯해 함께 비행기에 탄 다른 승객 모두를 짜증 나게 했다. 자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 아빠 앨리스터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런 어려움 끝에 멜버른에 겨우 도착한 그들은 빌린 오두막에 짐을 풀고 앨리스터의 어머니를 뵈러 향한다. 그러다 작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두 사람이 시간차를 두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온 잠깐 사이에 뒷좌석에 있던 노아가 사라졌다.

 

 

 

그들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장거리 비행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앨리스터의 전 부인 알렉산드라가 데려간 딸 클로이를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조애나와 앨리스터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알렉산드라가 말도 없이 딸을 데리고 호주로 가버린 게 벌써 4년 전이었다. 앨리스터는 그 시간 동안 클로이를 찾아가지 않았지만, 최근에 알렉산드라가 클로이를 태우고 가다가 음주단속에 걸려 체포됐기 때문에 아이를 자신이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조애나는 앨리스터의 그런 의견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데 10대 소녀를, 그것도 자기 아빠와 관계를 하던 걸 목격한 아이와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클로이의 양육권 문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갓난아기를 잃어버렸으니 그들은 혼란에 빠졌고, 바로 경찰이 투입되어 앨리스터와 조애나의 증언을 토대로 아기를 유괴했을 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사건이 이슈가 되어 기자들은 연일 그들을 따라다녔고 자원봉사단과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 소개를 통해 소설 내용이 아기 유괴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 줄 알았지만, 중요한 비밀은 극 초반에 밝혀졌다. 사건이 벌어지고 곧바로 거짓말이 시작되어 모두를 속이게 되면서 자신마저 속이는 것 같아서 나중엔 정신까지 이상해지는 혼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비밀이 드러나고 뒤이어 누군가가 이 행동을 하게 됐을 때부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따위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건 부모로서의 행동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부모가 돼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라 정말 싫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점점 화를 불러일으키면서 마지막엔 또 다른 비밀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였다.

 

소설은 조애나의 시점과 알렉산드라의 시점을 오가면서 진행됐다. 노아를 잃은 슬픔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조애나와 앨리스터에게 클로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말 안 듣는 딸을 제어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알렉산드라였다.

초반엔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두 여자의 입장이라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두 엄마의 서로 다른 모습은 어느새 서로를 향한 공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나쁜 감정보다는 입 밖에 낼 수는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앨리스터가 개차반이라는 게 밝혀지고 난 뒤에 차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조애나의 상태 때문이기도 하고 초반에 비밀이 밝혀진 마당에 끝엔 어떻게 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 그래도 답답했었는데 돌덩이 하나가 더 얹어진 기분이었다. 그걸 내내 숨기고 있으면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다니 진짜 인간이 맞나 싶었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처벌을 받긴 했지만 결말은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 비밀을 말했어야 했는데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 사람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했나 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역시 아이는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말 못 하는 갓난아기는 물론 의사 표현이 너무나 확실해서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10대 아이까지 직접 겪은 게 아닌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힘들어서 진이 빠졌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한 두 엄마와 한 아빠의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완벽히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아기를 낳고 키워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결말까지 답답하게 만들기는 했어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누가 우리 애를 훔쳐갔어요!" 그렇게 그녀는 이 사고를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자, 세상아, 이제 이건 네 거야. 가져가. - P106

그녀는 자백하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딱 그 순서대로 하고 싶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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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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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에서 기괴한 바이러스가 퍼졌다. 백신을 만들면 진화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길 반복했다.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어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어댔어도 사람들은 먼 나라의 이야기라며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류는 11살 된 자신의 아이, 해림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학교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류는 어린 자식을 앞세운 절망에 남편 단, 해림보다 어린 해민과 함께 한국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돌아가신 뒤, 도리에게 남은 사람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여동생 미소뿐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도리에게 미소를 부탁했기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살아남아 동생을 지켜야 했다. 도리는 동생을 데리고 터무니없이 비싼 배 티켓을 훔쳐 칭다오로 달아났다가 울란우데로 향한다.

바이러스가 퍼질 때쯤 지나의 아빠는 사업을 몽땅 정리하고 탑차 두 대에 생필품을 가득 채워 가족, 친척들과 러시아로 향했다. 그들 중 유일하게 피가 섞이지 않은 건지는 지나가 함께 가야 한다고 우겼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던 아이였다. 어느 날 밤, 머무르기로 한 마을에서 지나는 도리와 미소를 만난다.

 

 

 

종종 여러 책, 영화를 통해 접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원인을 몰라 피할 수조차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다움을 잃어버렸다. 강도나 방화 정도는 약과였고, 인신매매나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더 심한 것은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살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 좁아터진 한국 땅을 떠나 대륙으로 향한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류는 기도소에서 만난 같은 한국인 도리에게 잠깐 동안 해민을 맡겼었고, 도리와 미소 자매를 발견한 지나는 아빠에게 그들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이웃에 살았던 건지를 데려가자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말이 안 통하고 글조차 읽을 수 없는 러시아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기에 서로를 보듬어주며 사람답게 대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일 때야말로 사람들의 본성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면 낯선 사람일 뿐이었고, 언제든지 뒤통수를 치고 도망갈 사람이라 여겼다.

무장 단체가 지나 일가 무리를 습격해 친척들 중 한 남자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도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폭행했다. 걱정하는 지나가 도리 자매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이 끔찍한 상황에 더러운 성욕은 남아있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받아냈던 시선의 의미를 도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쩜 그렇게 짐승만도 못하게 구는 인간들이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더 어이가 없던 반응은 함께 지내게 해줬으니 한 번 줄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너무 끔찍하고 역겨웠다. 미친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게 아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미쳐가고 있었다.

도리는 당연히 동생과 도망쳤고, 건지마저 쫓겨나게 됐다. 마음을 내준 도리와 미소, 건지를 잃은 지나는 왠지 체념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는, 그저 하루하루 버텨가는 삶에서 희망이 되어준 것은 사랑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마음, 곁에 있어 몰랐다가 어느새 깨닫게 된 사랑, 서로를 지켜주고자 했던 자매간의 사랑과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고, 이렇게라도 살다 보면 언젠가는 헤어진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했다. 미움만 남아 사람들을 다 악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따뜻했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이 끔찍한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지옥에도 사랑은 있었기에 삶은 희망으로 충만했다. 비극 속에서 말하는 사랑이라 너무 따뜻하고 때로는 애틋해서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기적이면서도 기적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 기적은 없다. 기적이 정말 있다면 등장할 기회를 놓쳤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끝내 몇몇이 살아남는다고 치자. 그따위를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 P56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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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미술사 결정적 순간에서 창조의 비밀을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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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술의 형성: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전반기까지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고전미술의 "Classics"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를 모델로 삼고 계승, 발전시킨 결과물을 일컫는다고 한다. 당연히 고대의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미술의 핵심 주제였다. 교회가 가장 큰 고객이었다고 하는데 그리스 신들의 그림만 그려댔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당혹스럽다.

 

 

"마사초"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림에는 원근법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사초는 그림을 그리던 초창기에는 다른 화가들처럼 원근법 따위 없는 그림을 그렸으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만나게 된 이후 원근법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조각가 경력을 가진 건축가라니 예사롭지 않은 감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사초는 서양미술 최초로 원근법을 제대로 구현한 작가였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 이어 원근법으로 이름을 알린 화가는 "파올로 우첼로"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초만큼의 천재성이 없어 원근법이 반영된 그림에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통해 신체 비율의 어색함을 이제야 느끼게 됐다. 얼굴의 묘한 각도, 심하게 축 처진 좁은 어깨, 다소 길이가 안 맞고 굵기도 뭔가 이상한 양팔 등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니 인간의 신체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은 아니었다. 분위기만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그림이라 여태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신체의 어색함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자연히 따라온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천재성을 보인 그는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총애를 받아 당시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던 교회의 눈을 피해 여러 구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 빈치보다 23살 어린 14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주관으로 가문에서 벌어진 비밀 해부학 강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그것에 깊이 빠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예술가지만, 작품 스타일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다 빈치는 자신의 해부학 지식을 은은하게 드러냈고,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신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절제와 과시라는 상반된 스타일이기에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크 시대를 연 천재 화가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의 명암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이전의 그림들을 보다가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밝고 화려한 색채의 그림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던 어두운 부분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카라바조의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스타일과 거기서 파생된 테네브리즘(Tenebrism) 스타일의 그림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가장 열렬하게 받아들인 스페인에서는 "후세페 데 리베라"와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자 "조르주 드 라 투르"가 유명하고, 네덜란드에서 빛의 마술사라 불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남겼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빛과 어둠의 화가라는 별명을 지닌 "렘브란트 판 레인"을 통해 명암법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단다.

 

 

 

 

고전미술의 해체: 바로크 후반기에서 인상주의까지

 

 

1985년, 미술 전문가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었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을 빼앗기는 많은 지점이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가까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정교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 마르지 않아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유화의 특성 때문에 마르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를 연마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통으로 그린 유화와 알라 프리마로 그린 유화의 두 개의 모습에서 확연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나 잘 그린 그림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조지 스텁스"의 개와는 달리 "마네"가 그린 개는 개털의 결이 느껴지는 생생함이 돋보였다.

 

 

선 중심의 회화는 아이작 뉴턴을 통해 색채 중심의 회화로 변모한다. 그리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색채 연구가 미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정석적인 그림 스타일보다 작가의 시선을 중점으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밝게 빛나는 듯한 "모네"의 그림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현대미술의 개화: 세잔에서 현대미술 전반까지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은 이제 그림은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옮기는 그림이 아닌 작가의 표현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은 사실적인 풍경을 그린 게 아니기 때문에 왠지 더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 1>은 화려한 금색 빛이 시선을 잡아끌며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표현주의 이후엔 추상주의가 이어졌다. 무얼 그린 건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변화하는 그림을 보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들이 있는 풍경>에서 책을 다른 각도로 봤을 때 깨닫게 된 그림 제목이나 "피에트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이 추상화로 변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정교하게 표현된 조각이 예술적이라 인정받는 건 당연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마냥 그림만 봤을 때와 달리 시대의 흐름을 통해 그림에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어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보이지 않았던 미술의 이면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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