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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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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개월 전, 아빠 탐이 가방과 옷 주머니에 돌을 넣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그리고 7개월 뒤 엄마 캐럴라인이 아빠와 똑같은 방법으로 같은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갑자기 부모를 모두 잃은 애나는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상담사 마크를 찾아갔다가 잠자리를 하게 됐고, 딸 엘라가 생겼다.

 

부모님이 남긴 집에서 마크와 동거하며 엘라를 키우는 애나는 엄마의 1주기 날에 카드를 한 장 받는다. 주소가 쓰여있지 않은 봉투 안에는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라는 짧은 글의 카드만 들어있었다. 애나는 여태까지 의문을 가져왔던 부모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드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고, 형사 은퇴 후 민간인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일하는 머리가 사건을 혼자 조사하게 된다.

 

 

 

 

 

 

 

처음엔 아빠가, 몇 달 뒤에는 엄마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애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중고차 판매점을 삼촌 빌리와 운영하여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부모님은 사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을 할 만한 감정적인 이유도 전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 때문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나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때 마침 집으로 배달된 의문의 카드로 애나는 자살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빌리 삼촌을 먼저 찾아갔지만, 그는 괴로워하며 애나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찾아간 경찰서에서 사람 좋은 머리를 만나 마을에서 모방 자살로 유명했던 부모님의 사건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

 

경찰을 찾아간 후 애나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거라 생각했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누군가가 자꾸만 애나와 가족을 위협하고 있었다. 내장이 보일 정도로 찢긴 토끼가 피 범벅이 되어 집 앞 현관에 놓여있었고, 경찰을 찾아가지 말라는 쪽지가 묶인 벽돌이 딸 엘라의 방 창문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애나는 진실을 찾고자 했고, 1부가 끝나면서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수사권이 없는 머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건을 밝히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사건을 파헤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 애나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 머리는 때로 아내 세라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소설은 애나의 시점과 머리의 시점, 그리고 애나의 부모 중 한 명인 것 같은 누군가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됐다. 그래서 부모가 모두 살아있을 수도, 적어도 한 명은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이 좀 더 진행되면서 그 생각은 왔다 갔다 하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알던 사람, 그것도 평생 곁에서 봐온 부모의 모습에 이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술에 의존하고 폭력을 일삼으며, 빚을 지고 자살을 계획한 것도 모자라 나중엔 가족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사람이 부모라는 걸 알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여태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고, 부모 중 한 사람에게 정말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될 터였다.

 

부모의 자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어느 한 쪽을 욕했다가 다시 상황이 뒤집혀 욕한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에 이 모든 계획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면서 마지막엔 정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럴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사실 결말에는 모든 사람을 의심했을 정도로 애나 주변 사람들 전부를 믿을 수 없었다. 혹시 저 사람이 공범인가 싶기도 했고, 중간에 과거를 고백한 누군가가 뒤통수를 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등장한 캐릭터 모두 의심할 부분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진짜 공범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아서 역시 난 추리는 꽝이구나 싶었다.

 

사건의 진실은 모두 밝혀졌지만 애나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전혀 개운치 않은 사실이었다. 엘라와 자신이 정말 위험할 뻔했고, 더군다나 절대로 봐서는 안 될 사건을 목격하게 됐으니 그 기억이 평생토록 가슴에 남을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사건을 조사한 머리의 사연도 슬프게 만들었다.

 

때로는 진실을 덮어두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부모님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아빠가 죽기 전으로 수없이 자주 되돌아갔다. 그리고 자살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 P21

나는 부모님 덕분에 웃었다. 두 분은 매사에 흥미를 가졌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계획, 정치, 사람들에 대해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골치 아픈 일도 의논했다.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다. 아니, 부모님은 그런 척했다. - P164.165

"때로 사람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도 해."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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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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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트릭의 어머니 엘리너가 '마침내' 사망해 장례식이 열린다. 아버지 데이비드와 친했던 니컬러스 프랫을 비롯해 허영 많은 엘리너의 동생 낸시, 패트릭과 이혼한 메리, 메리와 바람을 피웠던 남자, 그리고 패트릭의 전 애인과 친구들까지 모두 장례식에 참석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해야 마땅한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깊이 빠지고, 심지어는 속물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리즈의 4편인 <모유>에서 엘리너는 자신의 재산과 프랑스의 집을 아들 패트릭이 아닌 샤머니즘 단체에 몽땅 기부를 했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나 다름없는 셰이머스는 기부를 받기 전까지는 엘리너에게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어대더니 재산을 모두 기부받자 입을 싹 닦고 요양원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열받은 패트릭은 다시금 알코올 중독 증세에 빠져버렸고, 치매가 와서 말을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른 엘리너는 아들에게 죽여달라는 의사 표시를 간신히 했었다.

 

그런 엘리너가 2~3년 만에 사망한다. 생전에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던 그녀의 장례식에는 옛 친구들과 자매가 참석했고, 장례식 이후 조문객을 대접하는 자리에는 연락이 끊어졌었던 사람까지 찾아온다.

아버지의 친구 니컬러스뿐만 아니라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우울증 병동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에게까지 부모의 위대한 인성과 선함에 대해 들어야 했던 패트릭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자신이 아는 부모와 타인에게서 듣는 부모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칭찬에 참다못해 시니컬하게 대응을 하면 잘못 키운 자식 취급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차마 말할 수 없었던 패트릭은 부모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에게만 나쁜 부모였을 뿐이지 실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엘리너의 과거에서 드러난 데이비드의 만행은 비단 패트릭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엘리너가 프랑스 집에 초대했던 어린아이들을 데이비드가 강간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쓰레기 같은 소아성애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을 욕하면 좀 그렇지만 패트릭의 아버지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추접스러운 인간이면서도 자신의 친구, 지인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유쾌한 신사였다는 게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데이비드에게서 패트릭을 방치한 엘리너 역시 제 자식에겐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패트릭 이전에 부부의 첫 아이는 세상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사망했고, 데이비드는 배를 타고 나가 아기를 버렸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혐오스러워서 잠자리를 거부했던 엘리너는 강간을 당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아이가 패트릭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데이비드 이 미친놈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모르겠다고 욕이 절로 나왔다. 한 인간의 바닥 중의 바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런 쓰레기가 존재할까 싶어 무서울 정도였다.

 

20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패트릭이 후련해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최근엔 우울증 때문에 자살 감시 병실에 입원했던 패트릭이 이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한 부모에게 증오의 마음만 있었던 게 아닌 애증이라는, 일말의 애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차마 눈에 보이는 애정을 가질 수도 없었던 패트릭이 안타깝고 가여웠다.

 

패트릭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까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시작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조금은 다행이라 느꼈던 결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야…… 아니, 아버지의 죽음 다음으로." - P196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앙상함에 깜짝 놀랐다. 몸을 구부려 어머니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그 차가움에 깜짝 놀랐다. 이 선명한 느낌에 그의 방어 체제는 더 약화되었다. 그러자 그는 앞에 놓인 한 파괴된 인간을 향한 복받쳐 오르는 연민에 압도되었다. - P70

"오늘 내가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분명하지 않은 생각을 가졌는지 계속 깨닫고 있어. 최종적인 진실이란 없다는 것이지. 한 건물 안의 다른 층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 - P249

그가 오늘 느낀 압박감은 유년기로 돌아간 듯한 무엇이었다. 아버지는 분노와 수술칼을 들고 거기에 있었고 어머니는 피로와 술에 절어 거기에 있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이야기나 한 세트의 관계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깊이 박힌 ‘표현되지 않음‘의 응어리로 존재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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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배심원
윤홍기 지음 / 연담L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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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일찍 찾아온 11월의 어느 날, 노숙자 강윤호와 지적장애를 가진 정명구는 화산역 대합실 내 자신들의 지정석에 10대 소녀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비키라고 하다가 시비가 붙는다. 20대 성인 남자인 강윤호는 어린 소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고, 일주일 뒤 저수지 공원에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대합실 CCTV에 촬영된 영상을 증거로 강윤호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범행을 인정했고 늘 함께 다니는 정명구는 강윤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화산지방법원에서 국민 참여 재판 전담 공판검사로 일하고 있는 윤진하 검사에게 강윤호 사건이 떨어지고, 김수민 국선 변호사가 강윤호의 변호를 맡게 된다.

20대 노숙자의 10대 가출 소녀 상해치사 사건은 전직 대통령 장석주가 배심원으로 뽑힌 후 재판이 주목받게 된다.

 

 

 

윤진하 검사는 서울대 법대를 중심으로 한 학연과 혈연, 지연 등의 라인이 중요한 검찰 내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없었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라인이 없었기에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공판검사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런 윤진하가 맡은 강윤호 사건에 전례 없이 전직 대통령이 배심원이 되면서 검찰은 물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것도 대검찰청 중수부 과장인 차병준까지 화산지방법원으로 찾아와 윤진하에게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있기 때문에 윤진하는 이번 재판에서 자신의 목표대로 강윤호의 10년형을 받아내야 했다.

 

국민 참여 재판에서 유리한 말주변과 호소력, 좋은 목소리에 심지어 배우 뺨치는 외모를 가진 윤진하의 상대는 로스쿨 출신의 또라이라 불리는 김수민 변호사가 아닌 인권 변호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 장석주였다. 한낱 배심원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더군다나 현장검증이나 다른 의문도 제시하는 바람에 윤진하는 물론 판사조차도 그를 어려워한다.

그리고 중반으로 가면서 장석주와 관련해 다른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묘해진다. 김수민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윤진하는 화산을 벗어나 서울로 입성하지만 좌천이나 다름없는 한직일 뿐이었다.

 

소설은 강윤호 사건으로 시작되어 후반으로 갈수록 검찰, 전직 대통령 등의 인물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음모와 비리가 등장했다. 알아주는 엘리트와 일 잘한다고 소문난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부터 꿍꿍이가 있을 것 같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그런 캐릭터는 한치의 예상을 빗나가질 않았다.

이러한 사건들을 윤진하의 시점에서 주로 보여주고 있었기에 출세욕이 있는 그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늘 착하고 바른 선택만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양심을 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눈먼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드라마틱 한 전개와 마지막에 반전의 키를 쥐고 있던 캐릭터가 상당히 다혈질이라 아쉽긴 했지만, 그 사람을 통해 복잡하게 설계해놓은 사건을 해결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작가가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동안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특정 인물이 등장할 때나 언급되는 사건을 볼 때마다 누군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많고 욕심 많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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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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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계약직 강사로 일하고 있는 세라는 최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다. 곧 있을 승진 심사위원회를 통해 전임 강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세라는 그녀의 상사인 러브록 교수의 성추행 및 성희롱을 어떻게든 피하고 폭발하지 않기 위해 견뎌내며 강력한 인사권을 쥔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하고 책을 출판하기도 하는 러브록은 대외적으로 뛰어난 학자이자 연구자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여자와 단둘이 남게 되면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들먹이며 슬쩍슬쩍 선을 넘는 신체 접촉을 했고, 빙빙 돌려서 잠자리를 요구했다. 지난 2년간 러브록의 타깃이었던 세라는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그를 피하고 적당히 거절하며 넘겼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중, 세라가 우연찮게 한 아이를 구해주게 되면서 선택권이 그녀에게 넘어온다. 구해준 아이의 아빠인 러시아 남자 볼코프는 세라에게 빚을 졌다면서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이름을 하나 말해준다면 그 사람을 흔적도 없이, 세라와 엮일 가능성도 전혀 없이 사라지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세미나가 끝나고 동료들과 호텔로 돌아가려던 세라를 러브록이 납치하다시피 택시에 태웠기 때문이었다. 좁은 택시 안, 옆에 앉아 술 냄새를 훅훅 풍기며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리가 예쁘다는 성희롱에 허벅지까지 만지며 자신의 방으로 가서 얘기를 더 하자는 러브록이 정말이지 시작부터 너무 역겨웠다. 궁지에 몰린 세라가 시작부터 안타까웠는데 러브록의 더러운 수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 자꾸만 잠자리를 강요하고, 세라가 자꾸만 피하자 승진에서 가장 유력했던 그녀를 탈락시키고, 그녀의 아이디어조차 자신의 것이라고 가로챈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난 건 물론이고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찢어 죽였을 인간이었다.

 

이런 미친놈 때문에 앞길이 막막해진 세라 앞에 생각지도 못한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그녀는 일단 없다고 한다. 하지만 볼코프는 생각할 시간을 72시간이나 줬고, 그 사이에 러브록은 세라에게 또 나쁜 짓을 적립했으니 분노 때문에 그야말로 돌아버린 세라는 볼코프가 준 구형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29초 동안 통화를 하게 된다.

 

이후로는 사이다만 나올 줄 알았으나 당황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길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러브록을 찾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고 직원들 모두를 면담하는데, 세라에게 하는 질문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거기다 어떤 실수로 세라는 이전보다 더 나쁜 상황에 떨어지고 만다. 이보다 더 나쁜 곳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세라가 정말 시궁창으로 떨어져서 차마 눈뜨고 못 볼 끔찍한 상황에 처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가슴을 졸였다.

 

읽는 내내 어찌나 답답하고 조마조마했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짜증스러운 상황은 더 심해져서 진짜 읽는 내내 욕을 했더랬다. 제발 저 xx를 엿 먹여달라고 말이다. 어쩜 저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있을 수 있는지 너무 역겨웠다.

소설을 읽는 것일 뿐인데도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실제로 이런 일을 겪었을,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을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싶었다. 권력을 업고 마구 휘두르며 개인적인 욕구까지 해결하려고 하는 더러운 인간들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결말은 통쾌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금 씁쓸했다. 러브록이 가진 권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누군가가 나타나 상황을 완전히 뒤집지 않는 이상 힘없는 계약직처럼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인간관계를 망가뜨리고 미래를 향해 걸었던 과거까지 없던 일로 만드는 권력이 이런 폐기물 쓰레기에게 주어져선 안 되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게 안타깝고 갑갑했다.

아무튼, 이런 쓰레기들은 제발 소크라테스의 명언처럼 너 자신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추접스럽고 너무 더러운 인간들이다!

 

내용은 좀 답답하고 짜증났지만 소설은 금세 읽어버렸을 만큼 재미가 있었다. 세라가 어떻게 될지, 결말이 어떨지 궁금해서 후다닥 읽어버렸다. 마지막 복수는 정말 유쾌, 상쾌, 통쾌했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누가 러브록을 하느냐.)

T. M. 로건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소설인 <리얼 라이즈>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믿고 읽는 작가가 될 것 같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 당신을 위해서." - P135

당연히, 세라는 볼코프에게 알려줄 이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우 말하고 싶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다. 그렇지 않은가? - P150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 해서 끝에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어. 상대가 이미 시궁창에 있다면, 때로는 너도 시궁창으로 내려가서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려야 해."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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