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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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에 대한 저자 유근표의 관심은 지난 20여 년간 그를 성곽과 병자호란에 대한 연구를 하게 했고 '서울성곽 탐방안내도'를 완성하여 관련 역사를 여러 곳에서 강의할 만한 체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중 남한산성에 주목한 그는 10여 년간 인조실록, 승정원 일기, 만문노당 등 1차 사료와 인조와 병자 호란과 관련되 수많은 저작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미 <남한산성과 병자호란>를 그리고 이번에는 병자 호란 전의 조정과 중국정세 전쟁 중의 인조와 굴욕적 외교, 전란 후의 정세까지 세세히 살펴보고 <인조1636-혼군의 전쟁, 병자호란>을 엮어냈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친명배금 정책으로 멸시하던 후금과 중국에서 명을 제치고 세력을 확장하고 대륙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청으로 이어지는 정세 속에 인조 반정으로 권력을 지키려는 내부의 문제에만 신경 쓴 나머지, 국방과 백성의 삶을 도외시 한 '정권의 나쁜 예'였고 예견된 치욕이었다.<인조실록>에서 이 전쟁 직후 청군이 잡아간 이들을 '피로인'이라 지칭하고, 그 수가 5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최명길 문집에 전하는데 대부분 노예가 되고 젊은이들은 청나라 장수에 첩이 된 여인들, 군제에 편입되어 총받이가 되는 남자들로 당시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 청, 명 3국이 얽힌 2개월의 기록은 단순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 그리고 8년 간 청의 볼모였던 소현세자 일가가 국환한 후 얼마 안가 죽음에 따른 의혹 등 단순 추정이나 흥미 위주의 그 간 나온 이야기는 배제하고 전란 중 대중이 잘 몰랐던 내용을 싣고자 했다고 전한다.

1623 인조 반정 이듬해 인 1624 이괄의 난이 남긴 상처는 컸다. 선조의 적자가 아니지만 왜란 중에 나라를 재건하려고 노력한 광해군을 몰아내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인조의 반정 주체들은 1등 공신부터 3등 공신까지 총53명에 이르고 거사 중에 김류와 이귀 등이 1등 공신에 책록된 반면 결정적 역할(병력)을 했던 이괄이 2등 공신에 머물렀다. 병력을 부릴 수 있는 그의 권력을 견제하고자 김류와 이귀는 인조를 설득하여 반대파 제거하듯 역모 혐의를 씌우려했다. 나라의 부름대로 변방 수비에 매진하고 있던 이괄은 반기를 들었던 것. 반군은 관군을 물리치고 도성까지 진격한 사이 인조 일가는 공주로 몸을 피했다. 반군은 새 왕으로 흥안군을 내세우고 입성했으나 이틀만에 진압되는 과정에, 도성 안의 백성들은 임진왜란 때 조정대신과 임금(선조)를 떠올려 인조 정권에 실망이 컸다. 인조가 환궁한 이후에도 반군에 협력했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애꿎은 백성들을 처형하는 모습은 민생을 외면한 채 자신들만 살 길을 찾아 떠났던 왕과 조정이 책임을 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후 인조는 왕의 경호를 강화하고 어영군을 늘리며, 신라 문무왕이 쌓았던 성이 남아있던 폐허나 마찬가지인 곳에 선조 때와 광해군에 수축을 시작했으나 자금확보 등의 문제등으로 중단되어 방치된 남한산성. 인조는 후금의 침입에 대비해 유사시 입보처로 삼고, 반대론을 누르고 만2년에 걸쳐 수축 공사를 완성한다.

책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남한산성 지도를 보니 경기 북부인 하남에서 남부인 성남, 광주까지 넓게 분포된 이 성은, 둘레가 총 11.76킬로미터로 내성과 외성을 이루며 4개의 성문, 4개의 장대, 5개의 옹성, 16개의 암문, 2개의 봉화대 125개 군포 시설을 갖추었다. 행궁 뿐아니라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등 유사시 임시수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풀이 된다는 것이다.

압록강 건너 요동 땅은 본래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여진족) 세력이 발해를 이루었고 거란족의 나라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여진을 괴롭히고 탄압했다. 천여년이 이르는 탄압 속 명맥을 잇던 생여진에서 금을 세운 태조는 불과 건국 10년 만에 요를 멸망시켰다. 끊임없는 대륙의 힘겨루기는 금이 '정강지변'으로 송나라를 멸하고 이후 몽골제국의 2대 태종은 영토확장에 탁월했던 칭기즈칸에 의해 멸하게 된다. 거란족과 몽골족 이후 한족이 세운 명에게 온갖 설움을 당한 여진은 여러 부족으로 찢어져 대항하는 세력을 누르고 누르하치가 통일하여 후금으로 칸에 오르며 여진의 패권을 쥐게 된다. '팔기군'이라는 강력한 군을 확립해 타락해가는 명에 대적하는데, 이에 명은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보냈다는 이유를 들어 조선에 원군을 요청 압박해온다. 누르하치의 강한 복수극에 광해군은 후금과의 마찰을 우려해 명나라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적당히 싸우다 항복을 해도 좋다는 의미로 원군을 보내게 된다. 압록강을 건넌 조선군은 군량도 충분치 않아 굶주리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명군은 기세등등한 팔기군에 패전을 거듭하여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1만3천명 중 8천을 잃었다고 한다.

누르하치의 숙원인 명을 정벌하는 일은 아들 홍타이지 대에 실현된다. 요동 벌을 제패하긴 했으나 농사지을 땅에 사람이 부족했고 명이나 조선과의 무역이 아니면 경제적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기마병을 앞세우고 약탈했던 것 과거와 달리, 홍타이지는 영민했고 대외정복의 명분으로 조선을 정벌하기로 한다.

정묘년 1627년 1월 여진족, 한족, 몽골족의 다국적군 3만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들어와 3천 병력으로 주둔 중인 의주성이 함락된다. 당시 의주부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 결사항전을 했으나 후금군에 패해 전사했다고 한다. 안주와 평양을 거쳐 한양까지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조정에 알려지자 당황한 인조는 세자에게 26명을 붙여 분조를 맡기고 종묘의 신주와 종실 가족들을 이끌고 강화도로 몽진을 가며 후금군이 수전에 약하리라 생각해 안전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후금은 여러 패륵들의 연합으로 한양으로 오기도 전 분열을 겪으며 화친을 제의해오고 '조선은 명과의 왕래를 끊고 형제국이 되자'는 것이다. 강화를 반대하는 척화파와 찬성하는 주화파는 격렬하게 나뉘는 중에 결국 후금과 협상으로 3월3일 후금 대신들 앞에 강화를 맹약하게 된다. 조정은 외교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압록강 하구 용천부와 철산부에서 백성을 대피시킨 용천부사 이희건은 100여 명의 군사에 불과해 용골산성을 지키려다 전사. 정봉수 의병장 같은 이는 왜구 토벌에서 활약해 따르는 의병들이 4천명을 모집해 반격했으며 백성들은 이에 힙입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싸웠다고 한다. 개전 이래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 조선군을 격파하던 팔기군도 용골산성전투에서는 패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끈질기게 맞선 백성들과 의병들이었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조가 강화를 맺고 후금에 꺽인 반면, 그의 아들인 소현세자는 어떤 행보를 보였는가? 이괄의 난과 같은 비상시 분조를 대비해 원자를 바로 세자로 책봉된 소현세자는 열여섯에 불과했고 세자의 어린 나이를 감안해, 세자를 가르치는 무리 세자시강원의 강관들 26명을 분조행렬로 1월24일 도성을 떠났다. 수원을 지나 여타 고을에서 군사와 백성들에게 전란으로 인한 고충을 묻고 충청도 감영 공주에서 그리고 전주에 이르며 의병을 모집해 전장으로 보내는 등의 분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세자는 삼남 지역 민심을 고려해 문.문과의 과거를 총괄하고 후금과의 정묘약조 이후 강화행궁을 떠나 4월 도성에 환궁한다.

평안도와 황해도의 피해는 심각했으며 정묘호란을 바라보는 명에서는 조선이 가도의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후금을 끌어들이고 군량까지 지급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후금은 실제로 약조에 포함되지 않은 세폐까지 욕받고 군비와 전함까지 요구했지만 인조는 숭명 사상이 아니어도 약해진 국방력과 파탄 직전의 경제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명과 후금 사이 균형있게 외교를 했던 광해군이 전쟁을 피해갔지만 인조 정권은 엄청난 피해로 곤욕을 겪고도 10년 동안 가도의 모문룡 문제로 혹은 집권 후 권력 유지를 위한 일에 몰두하고 팽창하는 후금을 배척하는 외교를 함으로써 병자호란을 자초한 것이라 평가된다.

' 오랑캐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러 조만간에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충의로운 선비는 각기 있는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은 종군을 자원하여 다 함께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는 교서를 발표하고 기밀문서를 역관 정명수에 의해 홍타이지에게 까지 들어가며 1636 병자년 12월 마침내 몽골, 청군, 한군 총 12만 대군에 침략을 당한 것이 병자호란이다.

적병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고립된 성에서 인조와 군신들은 위태로움을 느끼고... 막강한 청군에 대항한 조선군은 수많은 외침에 훌륭한 작전 경험 기개있는 무장들이 있어 승리와 패배를 반복. 류림의 지휘하에 치뤄진 승전 김화전투같은 기록도 있었다.

오늘의 전투에서는 우리가 천행으로 승리했으나, 화살과 탄환이 이미 떨어져 더이상 싸움을 지속할 여력이 없게 되었다.

..전열을 정비한 후 남한산성으로 달려가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출동했던 근왕병이 거의 격파되고 장수들과 병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 이조는 1637 정축년이 밝자 청군에 화친을 청했지만 국서들이 오가는 중, 척화파 김상헌은 후금의 홍타이지를 황제라 칭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의 답서를 보고 찢어버렸다고. 이에 죄없는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찢어진 국서를 다시 정서해 청 진영을 보내자 화친을 반대한 척화신과 세자를 보내어 결국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고 정축조약을 이행하게 하였다. 소현세자 일행이 서울을 떠난 후에도 북으로 끌려가는 수많은 피로인 행렬이 어마했다고 전한다. 청은 세자와 봉림대군을 심양에 볼모로 잡고 중요한 제사나 행사 명과의 전쟁을 치를때에도 세자 형제를 참가시켜 전투 장면을 직접보게 했다고 한다.

소현세자는 청에 머무는 동안, 1644년 청나라 군대에 의해 명의 최후를 목격했고 북경 자금성에 머물며,천문과 역법에 밝은 선교사를 원했던 중국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요청으로 1622년에 북겨에 와 있던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게 된다. 명 황제의 신임을 받아 온 이후 청이 1644년에 입성해서도 서양 과학 문명을 인정했던 조정에 신임을 얻고 있던 아담 샬 지닌 서양 과학 문명. 세자는 언젠가 조선에 돌아가 부강하게 만들 꿈을 꾸는 조선이 떠받들던 명나라가 무너지며 인질 신분의 세자의 조선 환국이 결정되며 아담 샬을 조선 행에 동행하고자 했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아 좌절되었다. 소현세자는 8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다 돌아왔지만 아버지인 인조는 세자의 귀환을 겉으로와는 달리 속으로 반기지 않았고, 세자의 독살 의혹도 있을 만큼 세자와 세자빈을 냉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함께 귀국한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이듬해 소현과 세자빈의 아들 삼형제까지 제거하며 끝까지 왕권에 대한 광기와 집착을 보였다.

물론, 자신의 자녀이나 다른 후궁들의 입김에 조선의 왕들은 같은 핏줄을 내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군신들 또한 자신들의 세력 팽창이나 입신을 위해 왕가와 결혼시키며 정치적 도모를 했다고 감안하더라도 인조가 무리하게 왕권을 빼앗고 허술하게 국방을 유지했던 방식과 외침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해 무능한 정권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작금의 외교적 상황이 소환되며 훌륭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권의 결말이 심히 걱정되는 것은 이 책이 절묘한 시기에 나와주어 오욕의 역사마저 되돌아보는 일이 매우 의미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만 같다.


이 리뷰는 북루덴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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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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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신 앞에선 피조물일 뿐

자신의 죄 인정 않는 사람이 대역죄 짓는 것

이 책은 우리나라 문학계의 큰 별이셨던 이어령 선생님이 타개하신 작년 이전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기독교 관련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의 7가지 대담을,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묶은 것이다.

서구 합리주의와 실존주의로 무장한 채 항상 자신은 무신론자라 주장했던 이어령.

이제 내가 신자가 된다고 했을 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차원이 달라진 것이지요. 내가 해온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또 하나의 시선이 생긴 것입니다. 내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가 생긴 거죠.

그는 메타언어인 바이블의 언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일반 교회에서는 안 믿던 사람이 믿는 프로세스의 간격을 설명해주지 않아 세속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그 간격을 설명해주고자 한다고 했다. '선생 말은 안 들어도 학생들 중에 잘나 보이는 애들 말은 듣는 학생'처럼 본인이 그 가교 역할이라고...

그리고 그가 교회나가는 걸로 평가하지 말아달라 평생 말하고 글 쓰는 것을 배웠으니 그걸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겠다라고 밝혔다.

무신론자로서 살던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계기는 하와이에서 살던 딸이 실명 진단을 받고 딸이 다닌 자그마한 교회에서 맹세하기를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인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라고 했고 이후 딸을 한국에서 재검사했을 때 하와이 병원의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얼마 안가 딸의 큰아들, 손주의 병을 알게 되고 신앙심이 흔들리게 된다.

신이 정말 존재하는가. 있다면 참 잔인하다, 혹은 무분별하다. 왜 악인은 멀쩡하고 선한 자는 비참한가.

그때는 경황이 없었어요. 절실했고. 딸애가 내 앞에서 그릇도 깨뜨리고 더듬더듬했거든요.

성서도 못 읽고. 믿음이든 지성이든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렇게 무릎 꿇고......이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구나.

내 지적판단이나 이성적인 사고로 어찌 못하는 신의 세상이 있구나. 나를 넘는 어떤 힘이 있구나. 그래서 그냥 포기한 거예요. 아유, 그냥 맡기자. 마음대로 하십시오.

p101.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

신을 받아들여도 삶의 모순, 세상의 모순, 역사의 모순은 해결되지 않았고 부조리를 뛰어넘으려는 그이 노력은 계속되었다. 아멘이나 할렐루야가 쉽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고 아직도 경계인 '문지방'에서 한 다리는 여기에, 다른 다리는 저기에 걸치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 신을 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구원의)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믿는다면서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함께.

지금 나는 생명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테마를 얻어 그걸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세살마을'이니 '창조학교'니 하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건.

처음으로 에고이스트가 아닌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p127

요즘 '나는 신이다'(넷플릭스 2023)로 공개된 사이비 교주에 대한 다큐가 세간의 화제라 종교 서적을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일로서 지나간 사람들의 행적, 피조물로서 가소롭게도 세치혀로 창조자가 되기로 한 범죄자들을 하늘에서 심판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나또한 하루하루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를 믿기 전에도 허욕을 부리거나 재물을 탐내지 않고 평생 살았던 그가 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법, 타자를 배려하게 된 것, 생명 자본주의를 노래하는 걸로 세상에 변화된 문학세계를 선보인 것. 생명가치 사랑의 시스템이 우위에서 번영을 꽤하여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이 여러 대담으로 저서로 울림을 준다.

이 리뷰는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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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마주하기 - 우울과 불안을 극복해낸 한의사가 전하는 '행복 매뉴얼'
문서환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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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한의학)과 정신의학을 접목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겠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저자 문서환. 그는 일찍부터 진로를 스스로 정하고 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듯하다. 그러나, 한의사가 되고나서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겪었고 대인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동시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왜일까? 우울과 마음의 고통은 현대 사회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여서일까? 왜라는 물음을 간직하고 정신의학을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한 한의사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한의사라는 타이틀은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직업 중의 하나지만,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고 할만큼 공허한 마음을 느낀 저자는 너무 우울감을 느낀 나머지 진료실이 딸린 원룸에서 극도로 외출을 자제하고 자동차 운전도 못할 만큼 세상 사람들과 멀리했다고 한다.

나는 세상에 나갈 용기가 없었다. 원룸과 진료실이라는 새장 속에 나를 가두는 게 편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그런 생활을 이어나갔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음에도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특히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하고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고, 삶의 가치를 못느낀채 울면서 시간을 축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에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하는 일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몰두하고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도 운동을 잘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프로이트, 융, 아들러, 니체의 철학 그리고 종교 서적 등 정신의학적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이 먼저 겪었던 처절한 여정에서 바득바득 기어나오려고 하면 다시 우울과 불안은 여전히 이따금 찾아와 괴롭혔고, 마침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까지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고자 했다. 자신처럼 우울과 불안증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의학용어를 배제한 친절한 가이던스를 제시하고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10명 중 4명은 물질적 풍요와는 별개로 우울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당장 활용가능한 지식을 쉽게 풀어내는 내용을 보자.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음에도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특히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하고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고, 삶의 가치를 못느낀채 울면서 시간을 축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에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하는 일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몰두하고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도 운동을 잘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으로, 프로이트, 융, 아들러, 니체의 철학 그리고 종교 서적 등 정신의학적 지식을 익히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이 먼저 겪었던 처절한 여정에서 바득바득 기어나오려고 하면 다시 우울과 불안은 여전히 이따금 찾아와 괴롭혔고, 마침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까지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고자 했다. 자신처럼 우울과 불안증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의학용어를 배제한 친절한 가이던스를 제시하고자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10명 중 4명은 물질적 풍요와는 별개로 우울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당장 활용가능한 지식을 쉽게 풀어내는 내용을 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 과거나 미래의 나가 아닌 현재의 자신에게 감사와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훈련은 자연적으로 샘솟는 감정이라기보다 일종의 기술에 가까우므로 장기간 노력을 해야 습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비로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식사와 수면이 잘 이루어지는가 또한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과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는 식사를 명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팁도 알려준다.

나는 이 책을 강박증, 결벽증, 건강염려증 그리고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내밀었다. 어느 정도 수긍을 했지만 글쎄...과연 몇 퍼센트를 실행할지 의지는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고 수렁에서 건질 수 있는 사람도 바로 자신이기에 스스로 깨닫고 노력해주길 바랄뿐^^;

이 책은 원인모를 우울과 불안을 겪고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생각을 극복한 한의사가 전하는'행복을 비는 따뜻한 편지'같다. 동네에 이러한 획기적 한의원, 마음까지 치료하는 선한 의사가 있는 곳이라면 평생 다니고 싶을 것 같다.

이 리뷰는 미래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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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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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재영은 논픽션 작가로서 여성, 어린이 혹은 동물 등에 관한 서사를 바탕으로 보다 생활 밀착 에세이를 쓴 분이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 이야기, 공적 주제가 한 사람의 내밀한 삶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타자와 연결되는 글쓰기를 소망한다'는 작가의 스탠스가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자신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마음을 한번이라도 먹어본 딸이라면 제목에서부터 서문까지 증폭되는 호기심과 좌절을 먼저 예감한다.

흔히 대중문화에서 그리는 엄마와 딸의 감동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아닌 것이다. 제목 I never had a mother의 의미는 물론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듯 여성의 힘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적 사회, 소위 권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였던 과거에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생생하게 현재 60-70 이상의 어머니들을 보면 그들의 자회상은 사회적 약자에 속해있다. 남아 선호로 집안의 소득원으로 남자 형제의 교육 수준에 대부분은 미치지 못했으며 식모로, 버스 안내양으로 공장 노동자로 의 삶을 살고 결혼 후에는 '아버지'에서 '남편'(아버지 세대들)의 권력 아래에 속해 규정되고만 개인들의 집합이었던것.

그래서 저자는 첫번째 앨범(1장) 에서 평범한 여자아이 되기로 그 문제 의식을 끄집어 낸다.

저자는 가깝기에 묻지 못했고 관심 밖이었던 엄마의 인간으로서 사적 영역에 관해 정식으로 인터뷰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간다. 어머니는 당시 드물게는 아니지만 비교적 덜 차별적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대학 교육까지 받았음에도 결혼에 대해서 스스로 정할 입장을 갖추지 못했었다고 회고한다.

집안끼리 중매로 너무 쉽게 결혼 제도 안에 편입이 되었고, 30년 이상 시어머니를 모시며 '오래된 이야기'를 거부하지 못한 여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각 가정마다의 사정들은 다르겠지만, 시부모님과 물리적으로 함께 살았는지 아닌지와의 차이만 있을 뿐 장남이었던 내 아빠 그리고 맏며느리로서 받았던 기대와 치뤄야할(?) 의무들은 비슷한 데서 작가의 기록들은 씁쓸하고도 애달픔을 느꼈다.

그걸 회한이라고 부를지...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이자 시어머니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일에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일에, 나는 시어머니를 시중들고 너희를 양육하고 살림하는 일에.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살아도 집안에서 내 위치가 그랬어.

대소사에 관여할 수도 없고, 상의할 상대로 아니고, 중요한 결정에 의견을 말할 수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서로를 애달프게 여겼고 그런 속사정을 알면서도 같은 여자로서가 아닌 남성 중심의 가족 안에서 잘못 기대된 위치에서 손내밀지 못했던 고부 관계를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를 가둔 것이 할머니라면 할머니를 가둔 것은 가부장제라는 공고한 체제였는지 모른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두 사람은 갇혀 있는자가 아니었을까?

다섯 번째 앨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이제 어느 인간이나 그렇듯 사회적인 것을 내려놓으면 '자아'는 노년에 상처받고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타자화된 자아'를 경험하는데 치매라는 범현대적인 질병의 덫에 걸린 '훼손된 자아 이미지'를 경험하는 할머니, 어머니, 그들을 보는 손녀와 딸로서 작가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현대화 된 시부모님, 즉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며 자녀 세대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우지 않으며 앞으로 노후는 일정 부분 준비하는 중이기에 깨어있으신 분들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둔 며느리이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정 엄마를 가진 딸이다. 하재영 작가나 그 이전의 여성들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거대한 사회적 흐름이 동등한 여성의 위치 혹은 양성 평등한 사회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고전적이고 한물 간 이데올로기적 악습을 들추어내고 평가하고 있기에 어쩌면, 나 이후 내 딸들은 더욱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년에 대한 기울어진 마음과 보편화되지 못한 인권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실제 가족 안에서의 세 여성인 할머니-어머니-자신을 회고하며, 사회 속의 여성들과 교차 혹은 대비시키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 결론 또한 '비존재'를 살았던 할머니 세대보다는 페미니스트 작가의 책을 내미는 딸로 인해 성장한 어머니의 시선으로 '존재'의 삶을 늦게나마 깨닫는 회고로 마무리하는 에필로그가 인상깊다.

미국 에밀리 디킨슨 여성 시인에게서 읽은 문학 혹은 레베카 솔닛같은 현대 페미니스트 등을 본인만의 색깔로 읽어내고 독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하재영의 다음 책이 더욱 기다려진다.


이 리뷰는 휴머니스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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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어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23
필립 C. 스테드 지음, 강무홍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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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펼쳐진 창, 그러나 창밖은 무지개가 집안은 늙은 개와 빨간 새 그리고 비내리는 이상하고도 쓸쓸한 표지 그림입니다.

오은 시인이 '읽고 나면 소중한 존재들을 위하는 마음이 절로 움튼다'라고 추천해주셨다는데 소중한 존재를 이렇게 쓸쓸하게 표현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집안에 갇힌 늙은 개는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비가오거나 비온 뒤 갠 후에도 날씨와 관계없이 집에 머무르게 하는 주인은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이 반려견에게 어떤 병이라도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깥 풍경을 보며

아, 나는 거북이 등딱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빗방울보다 황소개구리가 뛰어들 큰 웅덩이가 되고 싶기도, 혹은 코끼리기 씌워 주는 우산이...하지만, 무엇보다 되고 싶은 것은 ?

나의 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어.

아하 이제야 알겠네요. 작가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반려견을 바라보며 애정어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상상하는 어떤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필립 C. 스테드의 애견 Wednesday를 모델로 했다는 책 정보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은행나무의 가지가 드리우고 무지개가 아름다운 창 그림 그리고, 지상의 다양한 동물들 바다고래 들소 특히 정글의 커다란 코끼리와 남극의 펭귄까지 실로 전지구적 생명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상상의 세계가 다채롭게 그려져 있어요.

반려견이 무엇을 바라보든 실내의 편안하고 안온한 삶이 실제 와일드 라이프의 그것들보다 덜 '좋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지혜로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창 너머 풍경은 행복한 꿈일 뿐이지만,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양이를 피하는 작은 생쥐처럼 삶의 지혜를 갖춘 한 생명체에게서 일종의 존엄을 보는 듯합니다.

되어 본 적 없는 것도, 되어 본 것도 꿈꾸도록.

즐겁게, 자유롭게

평생을 주인 곁을 지켜온 반려견이 있다면 혹은 이미 곁을 떠난 반려동물에 대해 일종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지금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꿈꾸는 창'을 선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특히 아이들에게 생명을 사랑하고 돌본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서사의 논리성을 따지지 않고 '생명 자체의 따뜻함'을 느끼기에 좋은 책입니다.


이 리뷰는 주니어RHK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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