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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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재영은 논픽션 작가로서 여성, 어린이 혹은 동물 등에 관한 서사를 바탕으로 보다 생활 밀착 에세이를 쓴 분이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 이야기, 공적 주제가 한 사람의 내밀한 삶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타자와 연결되는 글쓰기를 소망한다'는 작가의 스탠스가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자신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마음을 한번이라도 먹어본 딸이라면 제목에서부터 서문까지 증폭되는 호기심과 좌절을 먼저 예감한다.

흔히 대중문화에서 그리는 엄마와 딸의 감동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아닌 것이다. 제목 I never had a mother의 의미는 물론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듯 여성의 힘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적 사회, 소위 권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였던 과거에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생생하게 현재 60-70 이상의 어머니들을 보면 그들의 자회상은 사회적 약자에 속해있다. 남아 선호로 집안의 소득원으로 남자 형제의 교육 수준에 대부분은 미치지 못했으며 식모로, 버스 안내양으로 공장 노동자로 의 삶을 살고 결혼 후에는 '아버지'에서 '남편'(아버지 세대들)의 권력 아래에 속해 규정되고만 개인들의 집합이었던것.

그래서 저자는 첫번째 앨범(1장) 에서 평범한 여자아이 되기로 그 문제 의식을 끄집어 낸다.

저자는 가깝기에 묻지 못했고 관심 밖이었던 엄마의 인간으로서 사적 영역에 관해 정식으로 인터뷰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간다. 어머니는 당시 드물게는 아니지만 비교적 덜 차별적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대학 교육까지 받았음에도 결혼에 대해서 스스로 정할 입장을 갖추지 못했었다고 회고한다.

집안끼리 중매로 너무 쉽게 결혼 제도 안에 편입이 되었고, 30년 이상 시어머니를 모시며 '오래된 이야기'를 거부하지 못한 여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각 가정마다의 사정들은 다르겠지만, 시부모님과 물리적으로 함께 살았는지 아닌지와의 차이만 있을 뿐 장남이었던 내 아빠 그리고 맏며느리로서 받았던 기대와 치뤄야할(?) 의무들은 비슷한 데서 작가의 기록들은 씁쓸하고도 애달픔을 느꼈다.

그걸 회한이라고 부를지...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이자 시어머니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일에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일에, 나는 시어머니를 시중들고 너희를 양육하고 살림하는 일에.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살아도 집안에서 내 위치가 그랬어.

대소사에 관여할 수도 없고, 상의할 상대로 아니고, 중요한 결정에 의견을 말할 수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서로를 애달프게 여겼고 그런 속사정을 알면서도 같은 여자로서가 아닌 남성 중심의 가족 안에서 잘못 기대된 위치에서 손내밀지 못했던 고부 관계를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를 가둔 것이 할머니라면 할머니를 가둔 것은 가부장제라는 공고한 체제였는지 모른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두 사람은 갇혀 있는자가 아니었을까?

다섯 번째 앨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이제 어느 인간이나 그렇듯 사회적인 것을 내려놓으면 '자아'는 노년에 상처받고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타자화된 자아'를 경험하는데 치매라는 범현대적인 질병의 덫에 걸린 '훼손된 자아 이미지'를 경험하는 할머니, 어머니, 그들을 보는 손녀와 딸로서 작가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현대화 된 시부모님, 즉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며 자녀 세대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우지 않으며 앞으로 노후는 일정 부분 준비하는 중이기에 깨어있으신 분들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둔 며느리이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정 엄마를 가진 딸이다. 하재영 작가나 그 이전의 여성들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거대한 사회적 흐름이 동등한 여성의 위치 혹은 양성 평등한 사회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고전적이고 한물 간 이데올로기적 악습을 들추어내고 평가하고 있기에 어쩌면, 나 이후 내 딸들은 더욱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년에 대한 기울어진 마음과 보편화되지 못한 인권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실제 가족 안에서의 세 여성인 할머니-어머니-자신을 회고하며, 사회 속의 여성들과 교차 혹은 대비시키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 결론 또한 '비존재'를 살았던 할머니 세대보다는 페미니스트 작가의 책을 내미는 딸로 인해 성장한 어머니의 시선으로 '존재'의 삶을 늦게나마 깨닫는 회고로 마무리하는 에필로그가 인상깊다.

미국 에밀리 디킨슨 여성 시인에게서 읽은 문학 혹은 레베카 솔닛같은 현대 페미니스트 등을 본인만의 색깔로 읽어내고 독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하재영의 다음 책이 더욱 기다려진다.


이 리뷰는 휴머니스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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