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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4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평점 :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의지의 아들이 될 것인가‘
이 대사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그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말한 대사이다. 읽어본 사람은 아시다시피 ‘그후‘는 불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불륜을 저지를 것인가, 저지르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주위의 관습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몸을 맡기는 ‘자연의 아들‘이냐, 아니면 불륜이 될 수 있는 사랑을 버리고 관습에 따르는 ‘의지의 아들‘이냐. 결국 다이스케는 자연의 아들을 선택했고 끝으로는 파멸에 이른다.
이런 ‘용납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고뇌는 E.M 포스터의 작품 ‘모리스‘에서도 나타난다. (‘그후‘에서는 불륜을, ‘모리스‘에서는 동성애를 다룸)
조금 둔하지만 어느정도 강직함이 있는 모리스와 이성적이고 섬세한 클라이브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틀이지만 솔직히 나는 이 둘의 사랑 이야기보다 주인공 모리스가 이로인한 갈등과 고뇌를 겪으며 마침내 성장하는 모습이 훨씬 인상 깊었다.
물론 이 둘의 사랑은 플라토닉 사랑(클라이브에 주장에 따르면)에 가까운, 언뜻 아름다워 보이는 관계인 것은 사실이나 별로 큰 감흥이 없었다.
때문에 초반 부분을 읽을 때 ‘내 타입이 아니군‘라며 책을 덮을 뻔 했으나 클라이브가 모리스가 아닌 사회적 발판을 선택하면서부터 흥미진진했다.
모리스가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며 여자보다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닌가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특히 자연묘사와 배경묘사가 뛰어난데, 저자의 깔끔한 문체에 어울린다.
클라이브와의 사랑이 끝난 후에도 그의 저택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던지 꽃과 어둠이 내린 방 등등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대신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공감하고 만다.
자연 풍경을 보며 모리스가 ‘자신은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대사(자연적으로 남성은 여성에게 끌리고, 그렇게 가정을 이룸으로서 후손을 남기므로)는 위의 다이스케의 대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를 보면 모리스는 ‘자연의 아들‘도 아니요 그렇다고 ‘의지의 아들‘도 아닌 상태인데, 정말 씁쓸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해서 꺼릴 필요가 없는 작품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요새 2차 창작물이라든가 웹소설 같은 가벼운 소설이 아니라 정말 ‘진지한 소설‘이니 말이다.
그는 고객과 직원과 동업자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진정한 기쁨을 모른다는걸 깨달았다. 사회는 그들을 너무도 완전하게 만족시켰다. 그들은 투쟁을 몰랐지만, 감상과 욕정을 엮어 사랑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투쟁뿐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내 인생이 이렇게 지옥 같은 거라고요. 무슨 일을 해도 저주받고, 안 해도 저주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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