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콜라이 고골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뽈따바 지역의 미르고로드에서 태어난 고골은 한 마디로 '저주받은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리뷰했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 크뢰거가 말했던 '문학의 저주'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고골이다. 그는 살아가는 내내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하고자 했다. 관리가 되고자 페테르부르크로 갔지만 냉혹한 현실에 좌절해야 했고, 시인이 되고자 시집까지 냈으나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가 고향인 우크라이나 지역의 민담과 설화를 모은 <디칸카 근교 마을 야회>라는 작품으로 문학의 재능을 꽃피웠지만 그가 쓴 다른 작품들이 러시아 사회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보수 언론들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고골은 해외로 도피해 몇십 년 동안이나 돌아다녔는데 이때부터 잘나가던 문학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결국엔 극단적인 신앙과 보수적 신념 사이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1852년에 굶어 죽는다.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삶이었던 만큼 고골의 작품은 빛이 난다는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스토옙스키도 러시아 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골의 작품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읽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고골의 중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대체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의 배경은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저 거대한 도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또 어떻게 미쳐가는지를 보여준다. 아시다시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철저한 '계획도시'이다. 표트르 대제는 과거 늪지대였던 곳을, 유럽을 향한 창구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독일 비롯한 외국 기술과 양식으로 만들어진 페테르부르크는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낯선 곳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고골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페테르부르크를 향한 러시아인들의 오묘한 감정을 묘사했다. 이번에 읽은 작품들도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외투>와 <광인 일기>였다. 사실 <코>도 최고인데, 예전에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위의 두 작품을 중심으로 읽었다(<초상화>나 <네프스끼 거리>는 흠.. 딱히 주인장 취향이 아니었음 ㅎ).

​

<외투>에서는 만년 9급 관리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름부터가 특이한 아까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소심하고 관청 내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취미도 없고, 놀러 다니지도 않고, 사귀는 사람도 없이 그저 관청 내의 서류를 필사하는 재미로만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건 아까끼가 평소 즐겨 입던 아주 낡은 외투가 너무 낡아버려서 더 이상 입고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난했던 아까끼는 어떻게든 수선해 보려 하지만 불가능했고, 재봉사인 '빼뜨로비치'는 이참에 새 외투를 장만하라고 설득한다. 값싼 털로 만들면서도 고급져보이는 외투를 만들어주겠다는 빼뜨로비치의 말에 아까끼는 겨우겨우 돈을 마련해 새 외투를 장만한다. 이때 아까끼가 외투를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부터 점차 달라지는데, 예전과 달리 멋진 외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빛난다. 그리고 외투를 장만했을 때 아까끼는 뭔가 자신이 대단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 그를 가엾게 여겼던 동료들은 아까끼의 새 외투를 장만한 기념으로 동료 직원의 집에서 파티를 열고 아까끼를 초대한다. 그러나 말이 아까끼를 위해서지 실제로는 자기들이 놀려고 하는 파티였기에 중간에 아까끼는 홀로 파티를 빠져나와 집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늦은 저녁 시간 때라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아까끼 앞에 덩치가 큰 남자 두 명이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그들은 다짜고짜 아까끼를 위협해 그의 새 외투를 훔쳐 달아난다. 기겁한 아까끼는 근처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경찰은 귀찮은 듯 이미 범인은 도망쳤으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보라고 말한다. 이후로 아까끼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까끼가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어떤 최후를 맞이하고, 그 뒷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

주인공 아까끼는 전형적인 '작은 인간'이다. 스스로 고립된 채 살아가며, 자기만의 세상 안에서만 살아가려 한다. 직장 상사가 서류 정서 작업을 성실히 하는 모습을 보고 약간 다른 일을 하는, 조금 높은 직급으로 승진시켜줘도 아까끼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래 정서하는 역할로 돌아간다. 이런 아까끼의 작은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하고, 누군가 괴롭혀도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러다가 괴롭힘이 너무 심하면 슬픈 목소리로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라고만 말할 뿐이다. 여기서 이 작은 인간을 향한 연민과 슬픔을 고골은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게 결정적으로 내가 <외투>를 좋아하게 된 이유다.


그 밖에도 <외투>에서는 당시 러시아 관료 사회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외투를 잃은 아까끼가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 제발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아까끼를 돕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을 과시하며 내쫓는다. 이는 당시 러시아의 경직된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관료 집단의 무능함과 허영심이 그러한데, <외투>뿐만 아니라 고골의 전반적인 작품에선 관료제의 폐단이 나온다. 아마 현직 공무원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 후반부에 죽은 아까끼가 유령이 된다는 식의 내용은 고골 특유의 환상적 느낌을 주고 있어 좋았다. 앞서 페테르부르크가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낯선 존재이자 비현실적인 곳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고골은 이런 점에서 중간에 환상적인 설정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광인 일기>이다. 말 그대로 미쳐버린 사람이 쓴 일기인데, 후반부에 갈수록 공포소설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을 향한 증오 + 질투로 인해 점차 미쳐버린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스페인 황제라고 생각하는 망상에 빠지는 모습은 마찬가지로 환상에 미쳐버린 인간의 모습 그 자체이다. 자신은 결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얻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 허영심 가득한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보여준달까.

​

전체적으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앞뒤로 꽉 막힌 답답한 사회 앞에 선 자잘한 인간들의 파멸과 슬픔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이러한 현실을 풍자하는 것에 있어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모르게 슬펐다. 괜히 고골의 작품을 '눈물로 가려진 웃음'이라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고골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걸 추천한다.

농담이 도를 넘어 너무 지나치게 그의 팔을 건드리며 일을 방해하면, 그제서야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단어들과 목소리에는 어떤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연민의 정이 솟아나,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 남들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조롱하던 어떤 젊은이는 갑자기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 젊은이는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한때는 유쾌하고 사교적인 사람들로만 여기고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멀어지게 되었다. - P59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 젊은이는 이마가 벗겨진 작은 관리가 애처롭게 스며드는 말로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절절이 스며드는 애처로운 말속에서는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또 다른 소리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가련한 젊은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 후 평생 동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를, 누구나 알 만한 세련되고 품위 있고 명예로운 사람들조차 그 고상하고 점잖고 자랑스런 인품 뒤에 얼마나 잔인하고 무례한 면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알고서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 P59

그는 자신의 중요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다 동원했다. 예를 들자면, 부하 관리들로 하여금 자신이 출근할 때 층계까지 나와서 맞도록 한다든지,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직접 방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경비원을 통하도록 한다든지, 14급은 12급에게, 12급은 9급이나 아니면 다른 관등에게 각각 보고를 하여 그 끝에 자신에게 보고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략) 심지어 어떤 9급은 조그만 부서의 책임을 맡게 되자, 칸막이로 된 자신의 방을 만들어 ‘집무실‘이라고 이름을 짓더니 문 앞에는 붉은 깃에 넥타이를 매고 방문객에게 문을 여닫아주는 안내원까지 세워둔 일이 있었다는데, 그 ‘집무실‘이라는 것도 보통 크기의 책상이 겨우 들어갈 만한 넓이였다고 한다. - P84

그가 가장 중요시하게 체계는 엄격함이었다. "엄격, 엄격, 또 엄격" (중략) 아랫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역시 엄격함이 드러나 거의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나?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나? 누구 앞인지 아느냔 말일세" - P84

아, 하느님! 놈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가요! 내가 놈들에게 무엇을 했단 말인가요? 왜 나를 괴롭히는 건가요? 나 같은 가난뱅이한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요?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그만 지쳐버렸고, 이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없다, 머리통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고, 눈앞이 핑핑 돈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바람처럼 질주하는 트로이카를 주세요. 자, 마부도 올라타라. 말방울을 울려라. 말도 힘차게 달려라. 나를 세상 끝까지 데려가 다오! 눈앞에서 하늘이 날아오른다. 멀리서 별이 반짝인다. 숲이 검은 나무와 달과 함께 달려나간다. 한쪽에는 바다가 있고 저 다른 쪽에는 이탈리아가 있다. 그리고 저쪽에는 러시아의 농가가 보인다. 저기 푸르게 보이는 것은 우리 집이 아닌가? - P134

창문가에 앉아 있는 것은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 이 가엾은 아들을 살려주세요! 이 아픈 머리통에 눈물이라도 한 방울 떨어뜨려주세요! 보세요, 그놈들이 당신의 아들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이 가엾은 고아를 당신의 가슴에 꼭 껴안아 주세요! 이 세상엔 당신의 아들이 기댈 곳이 없어요! 사람들이 괴롭혀요! 어머니! -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