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읽기 세창명저산책 50
최형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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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읽었던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 지옥에서 꾸며진 책 '신학정치론'>. '메튜 스튜어트'가 쓴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만났나>에 이어 인상 깊었던 스피노자 관련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를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초보자로서 처음부터 원본(?)을 읽기엔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비교적 '신학정치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책을 찾아보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읽기>였다. 세창미디어의 명저산책 시리즈 중 한 권인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시리즈이기에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완독한 결과, 확실히 예전보다 '신학정치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역시 내들러의 책을 많이 인용한 것 같다.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두껍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다른 해설서보다는 끊김이 없는, 빠른 이해가 가능했다.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스피노자가 생각한 성서 연구 방법이었다. 스피노자는 성서를 분석하는데 있어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처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성서학자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희랍 철학 사상에 기대어 성서를 해석하려고 했으며, 이를 복잡하게 풀이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보다 직관적인 시선으로 성서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즉, 다른 복잡한 사상으로 괜히 본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단순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본인이 이해하는 바대로 읽어야 한다는 거다. 또한 스피노자는 이에 따른 개개인의 성서 해석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어느 특정 교단의 교리만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정말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을 통해 학문 연구의 기초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가치 있는 인간 욕구의 대상'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세 가지 요건으로 첫째, 사물의 제1원인을 통해 그 사물을 아는 것', 한 마디로 어떠한 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져야 하며, 둘째는 덕의 습관을 알아야 한다는 정념의 통제, 마지막으론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 세 가지를 학문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특히 마지막에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스피노자는 국가와 통치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신학과 함께 정치를 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 부분에서 스피노자는 민주정을 옹호했다.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을 썼을 당시엔 조국인 네덜란드는 '총독 없는 총독 시대'인 공화국 시기였다. 그가 당대에 많은 탄압을 받았던 건 사실이나, 적어도 '신학정치론'을 작성했을 땐 평화로운 글쓰기가 가능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가 민주정을 주장하고 또 옹호했던 건 아마도 공화정 시기가 이어져 사람들의 자유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스피노자는 이 부분에서 홉스의 '자연권'과 비슷하지만 다른 '자연법'을 이유로 들어 인간 개개인에겐 자신만의 욕망과 희망을 실현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자연법은 쉽게 남들과 충돌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최대 권력에 이를 일임하여 앞서 말한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오직 안전한 삶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덕의 습관을 비롯해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에게 자연권을 준 것이지, 무조건 권력자에게 복종하기 위해 준 것이 아니다. 때문에 권력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또 있다. 아무리 학문의 요건으로 안전한 삶을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고 쳐도, 왜 굳이 종교를 들먹여야 할까. 일단 스피노자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봤다. 맨 처음 스피노자는 성서의 해석을 개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성서의 민주화' 이외에도 스피노자는 직관적으로 파악한 성서의 가르침이 지혜나 철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서에 나온 예언자들 역시 위대한 철학자나 똑똑한 사람이라기보단 다른 사람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도덕적으로 우월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성서는 배우지 못한 민중들을 위한 책이며, 이들이 도덕을 지키도록 쉬운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스피노자가 성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는 점이다. 성서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런 간단한 성서의 가르침이 복잡한 수사를 쓰는 자칭 성서학자들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봤다. 때문에 순수한 종교는 도덕적인 면에서만 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종교적 결정권은 최종적으로 정치권력자에게 맡겨야 한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은 지금까지 종교가 정치까지 지배했던 중세와 차별화된, 제법 '근대화'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신학정치론'의 대략적인 구성과 스피노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고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 그와 관련된 챕터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스피노자가 생각한 '진정한 종교'와 '진정한 정치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 언젠가 '신학정치론' 전문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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