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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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는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 Top 3 안에는 드는 작품이다. 예전에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이참에 재독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 읽어 본 결과, 정신병 오는 줄 알았다. 장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찾아오는 신체적 병(어깨 결림, 목 아픔, 엉덩이 아픔 등등)을 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정도는 아니다. 거긴 거의 지옥불 수준이지만 다행히(?) <그 후>는 거기까진 아니고, 다만 주인공인 '다이스케'가 서서히 파멸해가는 순간이 괴로울 뿐이었다.

작중 다이스케는 30살 먹고서도 아무 직업도 가지지 않은 '백수'이다. 그나마 잘 사는 집안의 둘째 아들이라 매달 집에서 주는 생활비로 덕분에 유유자적한 생활을 한다. 사회적 의무를 멀리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는 다이스케는 저자 나쓰메 소세키가 말한 '고등유민(高等遊民, 고등교육을 받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먹고사는 사람을 일컬음)' 그 자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스케의 옛 친구인 '히라오카'가 그가 사는 곳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히라오카는 취직한 직장에서 빚을 지고 생활고에 시달린 채 초라하게 도쿄로 왔는데, 그의 곁에는 아내 '미치요'가 있다. 사실 히라오카, 다이스케, 미치요 이 셋은 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미치요의 오빠 '스기누마'는 다이스케와 히라오카의 친구인데, 미치요를 두 사람에게 맡기고 병으로 죽었다. 다이스케는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본인이 직접 히라오카와 미치요의 결혼을 주선한다. 그렇게 해서 결혼한 히라오카와 미치요.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재회한 세 사람의 관계는 변해 있었다.

특히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갑작스레 끌린 건 아니고, 옛날부터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마음이 있었으나 사랑보다 우정을 택해 그녀를 히라오카에게 순순히 넘겨준 것이다. 그러나 히라오카의 생활고 문제와 아내 미치요를 향한 푸대접(?)을 보고 다이스케는 점차 미치요를 향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생활력 제로에 백수이다. 더욱이 남의 아내를 좋아한다니!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용서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망치겠지만 작중 다이스케는 굉장히 고집 있는 인물이라 파멸될 게 뻔한데도 그 길을 걷기로 한다.


여기까지가 <그 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작품엔 소세키가 생각한 근대인의 고뇌가 잘 녹아들어가 있다. 대표적으로 관념과 현실, 정신과 물질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정확히는 '자아'와 '현실'의 대결인데, 주인공인 다이스케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자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활고 때문에 어떻게든 현실에서 아득바득 살아가고자 하는 히라오카 앞에서 재수 없게 '빵(현실)보다 고귀한 것(정신, 자아)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이 이런 이유다. 예전엔 이런 다이스케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별꼴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잘난 척이라기보단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 자신에게 매몰된 '병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이스케는 자기 본위와 고상한 인간을 대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중 타락했다고 표현되는 여느 현실적인 사람들보다 나은 인간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결국 나쓰메 소세키 본인의 모습이라 본다. 그 역시 근대인의 불안을 몸소 겪은 적이 있고(영국을 유학하면서 큰 정신적 불안을 겪음), 다른 작품에서도 근대인보다 과거의 인간(정신적 인간)이 근대의 문명개화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빈번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이스케도 그런 인물로 나온 게 아닐까. 히라오카와의 불화도 그렇고, 현실의 관계를 무시한 채 미치요와의 사랑이라는 탐미적인 관계만을 쫓던 다이스케가 처참하게 파멸해가는 과정은 도덕적인 걸 떠나서 강렬한 자아(정신)를 고집하던 한 인간이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소멸해가는 걸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섬뜩하게 말이다.

이런 정신과 현실의 문제는 작품에서는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관계를 다룰 때 '자연의 인간'과 '의지의 인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회의 관습과 타산적인 현실에 순응하는 '의지의 인간'이 되어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할 것인가, 아님 자연스러운 감정과 자기 본위적(어찌 보면 이기적)인 일에 온몸을 바치는 '자연의 인간'이 되어 정신적 안정을 찾을 것인가. 결국 앞서 말한 고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이스케가 겪는 불안은 근대인의 불안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21세기의 현대인의 불안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극단적이진 않을지라도 누구라도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자아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이 한 번쯤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제목으로 '백수가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백수를 비하하고자 한 게 아니라 취업이나 기타 사회적 의무의 압박감이 심한 상태에서 섬세한 심리를 가진 사람은 능히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오는 불안과 고통은 작중 다이스케가 느끼는 불안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괜찮을지 몰라도, 작품은 마지막에 정신(자기 본위, 자아)을 선택한 다이스케의 파멸을 그리고 있기에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봤다간 맨 처음에 말했듯이 정신적 괴로움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주인장 경험상 그렇다 ㅎ....).


그치만 카타르시스 or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 마음속에 담아뒀던 부정적인 감정을 되려 부정적인 걸 보면서 해소하는 것도 좋다. 분명 <그 후>는 우울하고 때로는 답답한 소설일지는 몰라도 작중 다이스케의 심리 묘사와 근대인의 불안을 다루는 면에서는 소세키의 여느 작품들 중에서 단연 최고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면 무척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행인>과 함께 읽는 걸 추천드린다!

그 밖에도 이 작품은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다이스케는 탐미적이고 심미적인 인간이라 푸른색을 선호한다. 고요하고 물속에 잠긴 득한 차분함을 좋아하는 다이스케는 처음엔 붉은색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어한다. 하지만 미치요와 만나면서 점차 붉은색에 먹혀가는데, 뜨거운 햇빛은 물론이고 도리이와 우체통, 장미 등등 붉은색으로 된 것이라면 그게 뭐든 다이스케를 괴롭게 한다. 파멸의 비유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을 읽을 때 이 점을 생각하고 읽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여러 꽃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등장인물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걸로 보이니 참고하시길!

빵과 관련된 경험은 물론 절실하겠지만 사실 그건 저열한 것이지. 빵을 떠나고 물을 떠나서 고상한 경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지.

다이스케는 모든 도덕의 출발점은 사회적인 사실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처음부터 머릿속에 굳어진 도덕관념을 가지고 그 도덕관념에서 반대로 사회적 사실로 발전시키려 하는 것만큼 본말이 전도된 일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중략) 다이스케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마음속으로 서로를 모욕하지 않고서는 서로 접촉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20세기의 타락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는 근래 급격히 팽창된 물질에 대한 욕심의 큰 압력이 도덕의 붕괴를 초래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또한 그것을 신구 세대의 가치관의 충돌로 간주했다. 결국 눈에 띄게 심해진 물질 욕의 발전은 유럽에서 밀어닥친 해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자연의 아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지 다이스케는 헤맸다. (중략) 처음부터 왜 자연스러운 흐름에 저항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빗속에서, 백합 속에서, 다시 살아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 어디에서도 욕망은 없었다. 이해관계도 없었다. 자신을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났다. 이 순간의 행복에서 비롯된 영원한 고통이 갑자기 다이스케의 머리를 침범했다. 그의 입술은 색깔을 잃었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톱 밑으로 흐르고 있는 피가 부들부들 떠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합 쪽으로 다가갔다. 입술이 꽃잎에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현기증이 날 때까지 진한 향기를 밭았다. 그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입술을 옮기며 달콤한 향기에 숨이 막혀 정신을 잃고 방 안에서 쓰러지고 싶었다.

인간은 열정을 가지고 대할 정도로 고상하며 진지하며 순수한 동기나 행위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열등한 존재다. 그런 열등한 동기나 행위에 열정적인 사람은 무분별하고 유치한 두뇌의 소유자 거나 열정을 가장해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이스케의 냉정함은 진취적인 태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을 깊이 분석한 결과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평소 자신의 동기나 행위(사회적 행위)를 깊이 음미해 본 결과 교활하고 진지하지 못하고 대개는 허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그 일에 매달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다이스케는 단눈치오처럼 쉽게 자극을 받는 사람에게 지극히 자극적인 색깔인 빨간색이 왜 필요한지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스케 자신은 이나리의 도리이만 봐도 그다지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머리만이라도 좋으니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편히 잠들고 싶을 정도다. 자신도 그렇게 가라앉아 차분한 분위기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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