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 외 서문문고 312
클라이스트 지음 / 서문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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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작품이다.


저자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칠레의 지진>으로 처음 접한 작가이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통해 인간 사회의 멸망과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한 <칠레의 지진>은 비극적으로 끝나긴 하지만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문명 밖, 자연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점에서 인간이란 사회보다는 원래 자연 그대로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이상적이라는 클라이스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인상을 가지고 다시 클라이스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미하엘 콜하스>를 읽기 시작했다.


일단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미하엘 콜하스는 말 장수이다. 그는 평소대로 시장에 말을 팔기 위해 가라말들을 데리고 작센의 어느 융커가 다스리던 성에 다다른다. 그가 목적지로 가려면 반드시 이 성을 지나가야 하는데, 마침 해당 성의 늙은 융커가 사망하고 젊은 아들이 새로이 융커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과거 늙은 융커가 인자했으며 이번에 새로 융커가 된 그 아들도 분명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곳 성지기와 집사가 콜하스에게 느닷없이 통행증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원래 통행증 없이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통행증을 요구하자 콜하스는 당황해한다. 그는 젊은 융커를 만나 분명 착오가 있을 것이라 말한 뒤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콜하스가 가지고 있던 훌륭해 보이는 가라말들이 탐난 젊은 융커와 성지기, 집사는 만약 통행증이 없다면 그 대신에 가지고 있는 가라말 3마리를 담보로 성에 잠시 맡겨두라고 말한다. 의심쩍었으나 어쩔 수 없었던 콜하스는 담보로 가라말들을 융커에게 넘겨주고 그 말들을 관리할 한 명의 하인을 성에 남겨 둔 채 길을 떠난다.


이윽고 시장에 도착한 콜하스는 근처에 있던 관청을 방문해 정말로 해당 성을 지나가려면 통행증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당연히 답변은 NO! 애초에 통행증 따윈 필요 없었다. 이 사실에 콜하스는 흥분하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온다. 혹시나 착오가 생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니 담보로 맡긴 말들을 관리하라고 성에 두고 온 하인이 구타당한 채 쫓기듯 집에 돌아와 있었다. 하인 왈, 그곳 융커와 성지기, 집사 일행들이 콜하스가 떠나자마자 담보물로 맡긴 가라말들을 사적으로 마구 부려 먹었던 것은 물론이요, 이를 말리려던 자기를 도리어 도둑놈이라며 때리고 내쫓았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의심할 것도 없는 상황. 평소 다른 이들보다 정의감이 뛰어났던 콜하스는 분노하며 융커를 고소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콜하스의 아내가 분노한 남편을 말리며 자기가 대신 높은 분에게 사정을 설명해 볼 테니 당신은 잠시 참아달라고 간청한다. 남자인 남편보다는 여자인 자기가 눈물로 간청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콜하스는 불안하지만, 아내를 높은 분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의 아내가 가슴에 큰 부상을 입은 채 집으로 되돌아온다. 알고 보니 그녀가 관리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호위병이 그녀를 창대로 마구 쳤던 것이고, 이때의 상처 후유증으로 인해 결국 콜하스의 아내는 사망하고 만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마저 죽자 콜하스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이며 농장을 모두 처분하고 그걸로 무기를 모아 평소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과 함께 정부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다. 콜하스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말을 빼앗고 하인을 학대한 융커를 처벌하는 것!


여기까지 보면 콜하스가 단순히 괜히 자기 분에 못 이겨 난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콜하스는 비합법적인 반란을 일으키기 전까지 합법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시도했었다. 그는 관청에 작센의 융커를 고소했으나 번번이 퇴짜 당했고, 그보다 더 높은, 무려 선제후에게까지도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고소장을 작성했지만 이를 알아차린 작센 융커와 그 친척들은(친척들이 전부 선제후의 측근 신하들이었음) 선제후 몰래 콜하스의 고소장을 빼돌려 거절하는 등 부정을 저지른다. 결국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없다고 판단한 콜하스는 반란을 일으키고야 만 것이다. 


아무튼, 그의 분노에 찬 콜하스네 군대는 작센 일부 지역, 특히 그 융커가 성을 공격에 불을 지르고 융커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런 콜하스의 사정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퍼지자 일반 시민들도 융커를 빨리 콜하스에게 넘기라는 둥 불만이 폭주한다. 물론 겁에 질린 융커는 살아남아 이곳저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지만 말이다.

콜하스의 민란 소식은 선제후 귀에도 들려오고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선제후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할지 신하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미하엘 콜하스>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임꺽정>, <홍길동전>, <홍경래전> 등등과 마찬가지로 <마하엘 콜하스> 역시 기본적으로 부패하고 부정한 나라의 권력에 맞서 난을 일으킨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미하엘 콜하스'의 행보가 정의로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그 정의로움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분명 융커와 권력자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고작 가라말 3마리의 일 때문에 난을 일으켜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는 등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분명 콜하스의 행동은 잘못된 게 맞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콜하스의 모습과 별개로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작품에서 언급했듯이 콜하스에겐 말이 문제가 아니었다. 표면상으론 손해 본 말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난을 일으킨 동기로서는 '그것이 말 때문이든, 개 때문이든, 뭐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콜하스는 융커의 사과와 사회적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일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도 몇몇 사람들, 심지어 적들도 콜하스의 이런 올곧음에 놀랐다고 하니 말이다(물론 고집스러운 부분이 다분했지만...). 이렇게 반항적이고 격정적이지만 동시에 정의를 생각하는 미하엘 콜하스라는 캐릭터는 한평생 세상과 반목했던 클라이스트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아무튼, 후반부에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같았지만 콜하스라는 사람은 분명 매력적인 인물임은 틀림없다고 본다. 왜 이 작품을 '독일 작품의 백미'라 불렀는지,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가 10번씩이나 돌려보며 애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후반부의 예언이나 미신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빌리고 있다는 것과 전체적인 작품 번역이 다소 이상해서 읽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쉬웠다. 읽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최근에 번역된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읽었으면 한다. 

미하엘 콜하스는 가장 정의롭고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하나의 덕성을 너무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이웃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그의 선행이나 그의 정의감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간단히 말해서 온 세상이 그를 기억하고 축복하였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의감 때문에 그는 강도가 되었고 또 살인자가 되었다. - P17

콜하스는 이 세계가 끔찍한 무질서 속에 있음을 알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제 자기 가슴 곳에 질서를 발견하고 내심 만족하여 어깨를 으쓱했다. - P41

"사랑하는 리스베트, 나는 사람들이 내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나는 사람으로서 발길로 짓밟히느니, 차라리 개가 되겠소!" - P45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권위로서 융커 벤쩰 폰 트롱카를 단죄하는데,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말들을 밭에서 일을 시켜 멸망시켰으므로, 이 판결문을 본 후 3일 이내에 콜하젠뷔르크로 끌고 올 것이며, 직접 나의 마구간에서 말들을 살찌워야 한다.‘ - P51

"존귀하신 분이시여!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드레스덴에서 받은 소식이 저를 속였고 나쁜 길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인간 사회를 상대로 하여 싸우는 이 전쟁은, 당신이 제게 확신을 주신 것처럼, 제가 그곳으로부터 추방되지 않은 한 악행입니다! 추방당한 자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화로운 제 생업의 번창을 위해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예, 바로 그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저는 제 가족과 제가 모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이 사회로 피난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법의 보호를 부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를 황량한 들판으로 몰아 냅니다. 바로 그가 저 자신을 방어할 곤봉을 제 손에 쥐어 줍니다. 당신이 어떻게 이를 부정하시겠습니까?" - P72

콜하스는 그 안에서 융커 폰 벤쩰을 2년간 징역에 처할 것을 판결한 한 구절을 발견하고, 감격하여 두 손으로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멀리 떨어져 선제후 앞에 꿇어 앉았다. 그는 다시 일어서면서 한 손을 자기 무릎에 놓고 재상에게 자신의 지상 최대의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기쁘게 확신시켰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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