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의 여행 을유세계문학전집 88
알렉산드르 라디셰프 지음, 서광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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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라디셰프'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내게 매우 생소한 작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 책을 읽은 것도 단순히 그의 작품을 찾아서 읽고자 했던 게 아니라 우연히 읽게 된 것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라디셰프를 알고 읽었던 게 아니다.

그저 도서관에서 '러시아 소설'로 나왔길래 한 번 읽어 본 거다.


아무튼, 알렌산드르 라디셰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의 여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인 라디셰프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여행 도중에 친구인 '쿠투조프'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겉으로 보면 평범한 에세이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저자인 라디셰프는 여행 도중에 지나치는 수많은 시골 마을들을 지나치며 러시아 사회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사실주의처럼 완전히 똑같이 묘사하진 않으나 당시 낭만주의적 감상과 이성을 추구하는 계몽주의적 사고로 러시아 사회에 만연한 전제주의적 가치관, 농노제, 폭력, 무지 등등을 비판하는데, 이게 정말 1700년대 러시아에서 나올 법한 생각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매우 개혁적이었다. 오늘날의 사고방식과 흡사하달까. 특히 자유에 대한 열망과 개혁에 대한 의지는 이후에 등장하는 혁명적 사상보다 강렬했다. 자칭 '계몽 군주'로서 군림한 '예카테리나 2세'의 치세 중에 출간된 본 책은 훗날 여제로부터 '푸가초프보다 더한 놈!'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할 말 다 했다고 본다.


물론 라디셰프가 대안으로써 전제 정부를 여전히 따랐다는 점과 도중에 보이는 심한 낭만주의적 말투(?)(거의 우리나라의 유교학자처럼 도덕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에서 읽기 힘들었으나 적어도 이때 러시아에서도 자유 사상과 인간 해방을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라디셰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 7월 30일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에서 레닌의 주도 아래 '사회주의와 혁명의 위대한 활동가들' 및 작가, 시인들의 동상 제작 의결에서 제일 먼저 언급된 인사가 되었으며, 본 책은 18세기 러시아의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연구할 때 중요하게 인용되는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한다.


사회 고발적인 쓴소리(?)를 듣고 싶거나 18세기 러시아 사회가 어떠한지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러시아 민중 노래의 음조를 안다면, 그 속에는 영혼의 슬픔을 암시하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런 노래의 대부분은 부드러운 톤이다. 부디 민중의 이러한 음악 취향처럼 통치권을 세우시라. 그 속에서 우리 민중의 영혼의 구조를 찾게 될 것이다. 러시아인을 보라. 그가 사색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 P13

당신의 농노들 모두의 이마에서 당신의 낙인을 볼 수 있다. 나는 내 하인을 보았다. 갑자기 내 핏속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내 정수리에 닿았다가 얼굴로 화끈거리며 퍼져 나갔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수치심을 느껴, 하마터면 울 뻔했다.
넌 빵 한 조각, 누더기 한 장이 너와 비슷한 인간을 팽이처럼 대할 권리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넌 그 팽이를 자주는 내리치지 않는다고 자만하고 있구나. 넌 인간의 가슴속에 새겨진 최초의 근본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만약 내가 누군가를 때린다면, 그 역시 나를 때릴 수 있다. - P22

작은 총알 하나가 넓은 바다에 떨어진다고 수면이 넘실거리지 않듯, 사회의 작고 부분적인 부조리가 사회적 결합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애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작은 총알 하나여서 바닥까지 닿을 수 있겠지. 그리고 물론 그것이 핀란드 만에 폭풍을 일으키지도 못할 거야. 그렇다 해도 나는 바다표범들과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 P34

시민에게서 이익을 빼앗아 간다면, 그는 곧 적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제일의 의무는 자신의 보존, 방어, 복지입니다. 어떤 출신으로 태어나든 한 사람의 시민은 언제나 한 명의 인간이고 인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인간인 이상, 자연법은 마르지 않는 지복의 원천과 같이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 P96

이제는 이런 상황을 전율하십시오. 먹구름이 당신의 머리 위에 일어날 것이고, 징벌의 천둥이 화살이 되어 당신의 파멸시키기 위해 준비를 마칠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을 예고한 듯한 문장 같다!)
만일 사람들의 무리 중에 당신을 비판하는 용감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당신의 진정한 친구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를 대중의 선동꾼으로 오해하여 처형하지 마시고 잘 보호하여 주십시오.
당신(황제) 스스로가 사회에서 최초의 살인자, 최초의 도둑, 최초의 배신자, 최초의 사회 질서 파괴자, 약자를 향해 자신의 악함을 휘두르는 가장 야만적인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53

진리와 망상에 대해 우리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그 과정을 밝혀내면, 단 몇 명이라도 파멸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무지가 활개 치는 것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글로 계몽시킬 수 있는 작가들이라면 복 받을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덕을 심어 줄 작가가 있다면 그 또한 복될 것이다. - P65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게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두가 동일한 사지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이성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고려치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행동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의 한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모든 일에서 의지대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도 동의하고 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명령에도 스스로를 복종시킵니다. 즉, 한 명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 P95

만일 군주가 너희들에게 법을 어기라고 명령하거든 그의 말을 따르지 말거라. 왜냐하면 군주는 자기 자신과 사회의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너희들에게 죽음을 주려 한다면, 그들은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고 너희들을 여러 세기가 지나더라도 고귀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라. - P120

그런데 우리 중에서 누가 족쇄를 차고 있는가? 누가 노예의 짐을 지고 있는가? 농민들이다! 그들은 여윈 우리를 먹여 주는 사람들이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며, 우리에게 건강을 가져다 주고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수확하고 가공한 것에 대한 처분권이 없다. 도대체 일하지도 않으면서 경작지에 더 막강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땅에 대한 자연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땅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의 땅을 경작하면서도, 그의 권력에 자신의 생계를 의탁하고 있다. - P160

(러시아 혁명을 예언 한 듯한 또다른 문장)
우리가 농노들의 족쇄를 풀어 주는 데 완고하고 주저했던 것만큼, 그들의 복수는 더욱더 가혹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반드시 닥칠 무엇이다. 낫을 들 시간이 다가왔으며, 적당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다가 선동가나 인류애로 가득 찬 사람이 나타나 불행한 이들을 각성시킨다면, 낫질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싸움 붙이고, 결혼의 결합을 갈라놓을 것이다. - P175

내(시민)가 너(군주)를 선택했다는 것도 잇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월계관을 쓴 것이며,
내가 아니라, 네가 주인이라 생각하였다.
내가 아니라 신을 호출하였다.
그리고 너는 나를 거부하고자 하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내가 심은 과일을
피를 토해 가며 모았고,
너와 나눠 가졌다.
이를 위해 내 몸도 돌보지 않았다.
너에겐 온갖 보물도 부족하더냐!
말해 다오, 내 누더기 옷을 찢어 버리는 것도
충분치 않단 말이냐?
아첨하는 첩에게 줄 것이냐?
아니면 너는 신을 황금으로 만들기 위함이냐?
- P240

입 다물라! 파렴치한 서생들아.
너희들은 박해의 앞잡이일 뿐이니라! 너희들은 항상 평화와 평온을 설교하지만, 너희들이 내리는 결론은 족쇄를 달고 있는 사람의 아첨에 불과하다. 너희는 타인의 소동도 두려워한다. 너희들은 오직, 사람들이 권위에서 만족을 취하며 정념에 빠져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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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1-15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사람이 있는줄 처음 알았네요.
저런 글을 쓰고도 살아남았을까 궁금해서 찾아 보니 시베리아 유형을 갔었네요.끝도 안좋구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