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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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목소리 소설‘을 접했다.
‘목소리 소설‘은 인터뷰 형식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인터뷰 기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소설도 아닌, 그럼에도 마치 바로 옆에서 인터뷰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아무튼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공습을 받은 러시아 아이들의 증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인터뷰 당시 중장년층이 된 그들이 십수 년이 지난
어렸을 때 겪은 일들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이 증언한 내용 또한 충격적이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연들만 적어보겠다.

˝우는 년은 쏴버리겠다˝
이름 : 베라 지단
나이 : 14살
…… 독일군 놈들은 아버지와 오빠에게 구덩이를 팔 삽을 주었어요.
또 엄마와 날 나무 밑에 세워놓고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게 했지요.
우리는 두 사람이 구덩이를 파는 것을, 오빠가 마지막 삽을 파는 것을 봤어요.
오빠는 겨우 16 살이었어요…… 16………… 겨우, 겨우………
엄마와 나는 두 사람이 총살당하는 광경을 지켜봤어요………
독일 앞잡이들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게 하지 못하게 했어요.
엄마와 나는 이틀 동안 계속 울었어요.
사흘째 되던 날, 바로 그 독일군 한 명과 앞잡이 두 명이 왔어요.
˝너희 악당들을 매장할 채비를 해˝
우리가 그 장소로 가서 보니까 아빠와 오빠가 구덩이에 둥둥 떠 있었어요.
우리는 삽을 쥐고 그 위에 흙을 덮으며 울었죠.
그러자 놈들은 말해요.
˝우는 년은 쏴버리겠다. 미소를 지어˝
그자들은 우리에게 억지 미소를 짓게 했어요………
내가 침울하게 있자, 독일군 한 명이 다가와 제 얼굴을 들여다봤어요.
내가 웃고 있나, 울고 있나 보려고요.
놈들은 가만히 서 있어요……… 다들 젊고 잘생긴 남자들인데………
그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공처럼 가라앉지 않았어요˝
이름 : 발랴 유르게비치
나이 : 7살
…… 동생과 나는 드비나 강으로 달려갔어요.
그곳에는 다리가 없었고, 보트가 사람들은 게토로 나르고 있었어요.
독일군이 강가를 포위하고 있었죠.
눈앞의 보트들에는 노인들과 아이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독일군이 경비선으로 보트를 강 한가운데로 끌고 가서 홱 뒤집어버리더군요.
보트가 뒤집히자, 어른들은 어른들은 금방 강바닥으로 가라앉는데
아이들은 계속 떠올랐어요.
독일군들은 낄낄거리면서 노로 아이들을 팼어요.
그놈들은 한 곳에서 아이들을 두들겨 패다가,
그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떠오르면 그곳으로 쫓아가 또다시 때렸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공처럼 가라앉지 않았어요………

˝그자들은 고양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죠˝
이름 : 루냐 루다코바
나이 : 5살
그자들이 우리를 집 안으로 몰아넣기 시작했어요.
이웃집 아주머니가 풀 위에 털썩 엎드려 장교의 부츠에 입을 맞춰요.
테이블 밑에는 이웃집 소년이 숨어 있었고, 오빠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죠.
이웃집 아주머니는 문지방 옆에서 무릎을 꿇고 모두를 위해 애원했어요.
˝나리,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려요. 나리, 우리 집 아이들은 콩알만 한데………˝
장교는 테이블로 다가가 테이블보를 들추더니 총을 쏘았어요.
그곳으로부터 비명이 들렸죠.
장교는 한 번 더 총을 쏘았어요. 다섯 발의 총소리가………
그가 나를 쳐다봤어요.
마당비 뒤에 몸을 감추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몸을 숨길 수가 없었어요.
그 장교의 눈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물론 기억나요……
난 어찌나 무서웠던지, 겁에 질려 이렇게 물었어요.
˝아저씨, 날 죽일 거예요?˝
하지만 장교는 나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더군요.
마침 그때 다른 방에서 한 병사가 나왔어요.
그 병사가 장교를 부르더니, 침대에 누운 작은 새끼 고양이들을 보여줬어요.
그자들은 새끼 고양이들을 품에 안고 빙그레 웃더니, 고양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어요.
잠시 놀아주던 장교는 고양이들을 병사에게 넘겨주며 집 밖으로 데려가라고 했어요.
그자들은 고양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죠.

˝보기 좋으라고 삽으로 두드리기까지 했지요˝
이름 : 레오니트 샤킨코
나이 : 12살
우리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나치 친위 대원이 두 명 앉아 있었죠.
놈들은 무언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더군요.
심지어 낄낄대기까지 하고요.
젊은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통역자가 그 장교의 말을 통역해줬죠.
˝장교님께서 파르티잔(빨치산)과 내통하는 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신다. 조용히 해라. 전부 쏴 죽이겠다˝
사람들은 앉거나 서 있던 자세 그대로 계속 있었어요.
˝3분이 지나면 총을 쏘겠다˝
통역자가 이렇게 말하더니 세 손가락을 위로 쳐들었습니다.
˝2분이 지나면 총을 쏘겠다˝
사람들은 눈짓으로 서로를 바라봤어요.
˝마지막 1분이 지나면, 너희는 끝이다˝
군인들이 격발 장치를 벗긴 후 기관총 탄띠를 장전하고 기관총을 잡는 것이 보였습니다.
놈들은 앞에 있는 사람 가운데 14명을 세더니, 그 사람들 보고 땅을 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세 사람씩 총살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제자리에서 서서 지켜봤습니다.
놈들이 흙을 던지고 부츠로 다지는 모습을, 보기 좋으라고 삽으로 위를 두드리기까지 했지요.
꼼꼼하게요.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모서리까지 매끈하고 깔끔하게 다듬더군요.
한 중년의 독일인은 마치 밭에서 일하는 양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습니다.
작은 개 한 마리가 그자에게 달려왔습니다. 그 개가 누구의 개인지는 몰랐지만 그 자는 개를 쓰다듬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의 시점에서 당연히 무서운 장면이었으리라.

아마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인터뷰 한 사람 중 하나인 다비트 골드베르크의 말이 인상 깊다.
˝전쟁 기간에 어린애였던 사람이 전선에서 싸운 자기 아버지들보다 종종 더 빨리 죽는답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들도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이 전쟁 후 제대로 사회에 적응을 못해 가족들에게 버림받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이 책에서 가장 내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바로 어린이 특유의 ‘착함‘ 이었다.


˝우리는 공원을 먹었어요˝
이름 : 아냐 그루비나
나이 : 12살
봉쇄의 고리가 뚫리자, 당국은 우리를 레닌그라드로부터 생명의 길을 따라 우랄 지역의 카르핀스크 시로 이주시켰어요.
카르핀스크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공원으로 달려갔어요.
공원에서 산책을 한 것이 아니라 공원을 먹었죠.
시내에 살던 사람들은 푸른 것이라면 전부 먹어치웠지요.
공원과 식물원에는 이미 봄부터 잎사귀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 처음으로 독일인 포로를 봤을 때……… 난 독일군 포로들이 도시 근교의 탄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그 사람을……… 그 독일인을 봤을 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부탁을 하지도 않았고요. 우리는 막 식사를 끝낸 참이라, 아마 몸에 아직 음식 냄새가 남아 있었나 봐요.
그 사람은 내 옆에 서서 공기 냄새를 맡더니, 마치 무언가를 씹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턱을 움직였어요.
그 사람은 두 손으로 그 무언가를 잡으려고, 멈추게 하려고 애썼어요.
그 턱은 움직이고 또 움직였죠.
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을 도저히 볼 수 없었어요. 도저히요.
왜냐면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잖아요.
난 뛰어가서, 빵 한 조각을 갖고 있던 여자아이를 불렀어요.
우리는 독일인 포로에게 그 빵 조각을 주었죠.
그 사람은 거듭 감사를 표했어요.
˝당케 셴(고맙습니다)……… 당케 셴˝


이 사연을 보고 저는 ‘이럴 수가‘를 반복했다.
레닌그라드를 봉쇄한 것은 독일군 들이었고, 전적으로 그녀를 굶주리게 만든 것도 다 독일군 때문인데
그녀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독일군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인다.
정말 어린이 다운 ‘착함‘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다음 세대인 우리들에게 절대 이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말이다! 그것은 저주받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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