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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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퍼니 프레스턴은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생태 신경과학 연구소 소장으로, 기능적 신경 영상, 정신 생리학, 행동 연구를 통해 감정이 공감과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이 고통받거나 어려움에 부닥친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들을 돕게 되는 충동과 동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감정이 우리 종의 진화와 공동체 형성의 핵심 요소이며,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다른 인간에게 공격적이라는 생각에 반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경험과 동물(주로 설치류와 영장류) 및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타주의가 우리 뇌라는 시스템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은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으로서 자손을 살아남게 하려는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본능이 덜 절실해졌지만, 저자는 우리의 도움이 다른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이타주의가 진보와 성장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예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심리학, 신경과학, 신경생물학, 행동 및 생물학 분야의 진화 연구를 통해 얻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행동하는 이타주의의 예는 대중의 상상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007년 웨슬리 오트리는 한 청년이 발작을 일으켜 뉴욕 지하철 선로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곧바로 뛰어내려 다가오는 열차가 바로 위를 지나가는 동안 청년의 몸을 자기 몸으로 눌러 목숨을 구했다. 몇 년 전 수중 동굴에 갇힌 태국 축구 선수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에 전 세계가 열광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구조대원 중 한 명이 작전 중 사망했지만, 소년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류 문명의 첫 번째 흔적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선사 시대의 골절된 대퇴골이 치유된 것을 언급했다. 이렇게 치명적인 부상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할 때, 이 고대 조상은 다른 사람들의 엄청난 보살핌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이지만 칭찬받을 만큼 베풀기도 하고, 때로는 차갑고 이기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며, 시간이나 돈뿐만 아니라 생명과 사지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복잡한 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이중적 성격의 놀랍고 따뜻한 면을 설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가설을 세운다. '이타적 반응 모델'은 자손을 돌보려는 성인의 광범위한 본능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성향은 부모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부모의 성향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며, 인간의 어머니나 오로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광범위한 선함을 설명하고픈 게 아니다. 다만 인류의 유전자에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여러 종에 걸쳐 존재하는 특정 유형의 이타주의가 존재하며, 심지어 영웅적으로도 돕고자 하는 동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생태신경과학연구소 소장인 프레스턴은 이타주의가 다차원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돈이나 관심을 기부하기로 마음먹기란 종종 시간이 걸리는 의식적인 숙고의 결과이다. 반면, 이타적 반응 모델은 오트리의 경우처럼 신속한 정신적 처리와 즉각적인 반응에 적용되며, 종종 생각에 앞선 자동적 행동으로 묘사되고는 한다.

 

저자는 이러한 충동이 돌봄에 특화된 포유류로서의 우리 조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손이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고 발달이 느려서 엄청난 양의 보살핌이 필요한 '알트리셜' 종이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달릴 수 있는 어린 영양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보살핌을 제공하려는 충동을 부여받지 못한 성체는 진화적 의미에서 적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다시 말해 자기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리고, 무력하고, 취약하고,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에게 실천 가능하며 즉각적인 도움을 주고픈 충동을 느낀다.

 

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존경스러운 행동을 공로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이타적 충동이 부모의 보살핌에서 비롯된 다소 자동적인 반응 때문에 동기가 부여되고 다른 많은 포유류가 공유하는 행동이라면, 아마도 그 행동 역시 별로 존경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신경이나 쓸까? 감탄할 만한 일에 감탄을 표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타적 반응 모델은 도우려는 결정이 의식적일 필요가 없으며, 종과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시카고 동물원의 암컷 고릴라가 자기 새끼를 돌보던 중 우리에 빠진 3살짜리 남자아이를 구해낸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그 좋은 사례다.

 

프레스턴의 가설의 기초가 된 연구는 수십 년 전에 수행되었는데, 출산 후 몇 시간 동안 새끼를 계속 찾아다니던 어미 쥐는 연구원들이 지루해지고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도 계속 새끼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이타심이 쥐에서 사람으로 단순하게 추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오히려 진화의 시간 동안 본능 깊숙이 보존된 성향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유추와 상동성의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한다. 전자는 기능의 융합(새와 파리의 날개)이고, 후자는 진화적 조상을 공유한 결과(박쥐의 날개와 인간의 팔)로 나타난다.

 

끝으로, 이 책의 장점은 과학적 엄격함과 타인에 대한 지원, 도움, 배려에 대한 진심 어린 예시가 섞여 있다는 것으로, 저자의 공감이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진화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통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고, 사랑하도록 설계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혐오가 난무하고 인륜이 바닥을 치는 부정적인 상황의 압박 속에서 이 사실을 잠시 잊을지 몰라도, 인류의 진정한 본성은 생존과 배려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타주의와 배려가 우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심이 있거나, 우리의 뇌가 어떻게 남을 돕는 행동과 태도를 진화시켜 왔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해 드린다.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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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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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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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정한 본성은 생존과 배려에 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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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키퍼의 딸
안젤린 불리 지음, 김소정 옮김 / 문학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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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다우니스 폰테인은 프랑스/이탈리아계 어머니와 오지브웨족 파이어키퍼인 아버지라는 두 세계의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고, 삼촌 데이비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몇 달 전에 돌아가셨으며, 할머니는 삼촌이 돌아가신 직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큰 상실과 슬픔을 경험한다. 그녀는 또한 오빠의 죽음과 어머니의 병환을 모두 힘들게 받아들인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예정되었던 미시간 대학교의 입학을 연기한다.

 

하나둘씩 여러 등장인물이 소개되면서 주인공 주변의 정황이 설명된다. 다우니스의 가장 친한 친구 릴리의 전 남자친구가 마약 조직과 싸우고 있고, 부족(部族) 선거가 진행 중이며, 데이비드 삼촌의 원인 모를 죽음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등 지역 사회에 뭔가 석연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우니스의 할머니 펄은 ’세 명이 모이면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난다‘며 복선을 깔아준다.

'하키의 신'인 다우니스의 이복오빠 리비는 팀에 새로 들어온 제이미 존슨과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제이미와 그의 삼촌 론은 다우니스의 삼촌 데이비드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던 교사 자리를 대신하려고 마을로 이사 온다. 다우니스는 제이미와 가까워지면서 그가 해주는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발견한다. 제이미는 다우니스의 삶과 가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 밤, 릴리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살해한 후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 다우니스는 제이미가 고등학교 하키 스타이자 전학생이 아니라 동네에서 누군가 제조 유통하는 필로폰을 수사 중인 22살의 잠복 경찰임을 알게 된다. 론과 제이미는 다우니스에게 데이비드 삼촌이 맡았다가 사망하면서 중단했던 수사의 기밀 정보원(Confidential Informer)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던 다우니스는 이것이 지역 사회를 진정으로 도울 방법임을 깨닫고 동의한다. 과학도인 다우니스는 직접 필로폰을 제조하는 연습을 통해 FBI가 필로폰 제조 방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작업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후보자였다. 게다가 다우니스의 이모 테디 덕분에 FBI는 이 필로폰을 특히 강화하는 성분이 그녀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행해지는 전통 의학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수사가 진전되면서 다우니스는 점점 진실을 분간하기 어려워지고, 제이미와 다우니스가 수사하면서 함께 보낸 시간을 위장하려고 '사귀는 척'하는 동안 서로에 대해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는다. 다우니스의 전 팀 동료이자 친구였던 원주민 로빈과 헤더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자 다우니스는 그들이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론과 제이미가 정보원으로서 본연의 임무에서 여러 번 벗어나지만, 다우니스는 이 수사에서 자신의 강점은 단순히 FBI를 돕는 데 그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녀의 진짜 목표는 지역 사회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마약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선 다우니스는 지역 사회의 원로들과 시간을 보내고, 해서는 안 될 일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린다고 알려진 '작은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환각성 버섯이 첨가되었을 것이라는 FBI의 시각에서 벗어난다. 또한 다우니스는 트래비스가 마약을 만들 때 첨가한 것으로 의심되는 '나쁜 약'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결국 다우니스는 오빠와 그의 친구들이 하키계의 일부 부모들과 함께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고 있었다는 진실을 밝혀내는데, 심지어 부족 판사 리바이의 어머니도 마약 제조를 은폐하는 데 한 몫 거들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녀는 아들의 신변과 돈벌이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우니스와 제이미를 납치하고, 이 계획은 경찰의 추격과 다우니스의 병원 입원으로 이어진다. 다우니스는 오빠와 지역 사회 사람들의 배신에 슬퍼하지만, 소설이 끝날 무렵 선명한 시력(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선물 받는다. 다우니스와 제이미는 다우니스가 납치와 추격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헤어지지만, 언젠가 함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마약 조직이 소탕되고 10개월 후, 다우니스는 하와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민족 식물학과 전통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음을 알린다. 조상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은 과거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라는 다우니스의 굳은 믿음과 함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 소수민족과 인종 차별의 현실 고발

다우니스는 두 지역 사회 사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미시간주 소트 세인트 마리(Sault St. Marie)에 살며 아니시나베족인 친가 파이어키퍼스(Firekeepers)와 부유한 외가 폰테인(Fontaines) 가문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에 적응해나간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미래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만, 외할머니가 뇌졸중에서 회복 중이기 때문에 대학 진학 계획을 미루기로 한다. 파이어키퍼 이복동생인 리비와 하키를 하며 여가를 보내다가 누군가 위험한 신종 마약을 판매하고 있으며 시체가 쌓여가는 것을 발견하면서 비극이 닥쳐온다.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노력하는 동안 다우니스는 가족과 떨어져 자신의 과거를 은폐한다.

 

이 책은 강간, 마약, 인종 차별, 죽음과 같은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지브웨족의 문화적 질감과 잘 만들어진 캐릭터로 어둠과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다우니스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불안한 소녀이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대처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인칭 화법으로 내면의 독백을 드러내고 있으며, 독자들은 그녀가 반인종적 편견에 대항하고 사회악에 대처하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함께 겪는다. 강렬한 인상의 표지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현대 미스터리라는 점이다. 이 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문화, 하키 경기, 마약 수사, 사실과 수치로 사고하는 STEM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우니스에게 비밀 정보원이 되어 달라는 FBI 위장 요원 제이미가 접근하면서 약간의 로맨스가 펼쳐지기도 한다. 다우니스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슈가 아일랜드에 계속 등장하는 시체들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흥미롭다.

 

질문하는 사람과 이유에 따라 원주민이라는 사실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결코 원주민이 될 수 없는, 입장의 차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다우니스는 혼혈이지만 여전히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 내의 편견에 직면해 있다. 하키는 대부분 남자 선수와 남성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녀가 소속감을 느끼는 유일한 곳이다. 전통 의학과 과학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대단히 돋보인다. 그녀는 확실히 강인한 성격의 주인공이며 그녀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어둡고 무거운 사회악을 주제로 삼았다. 마약 제조와 유통에 관한 내용이 심도 있게 다뤄지며 심지어는 FBI 요원들과 함께 마약 제조법을 배우는 수업도 등장한다. 또한 다수의 살인과 강간 등 강력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며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는 책 전반에 걸쳐 강력한 담론으로 엮여 있다. 죽음과 흥미진진한 새로운 역할, 전통 의학에 관한 관심 표현 등으로 강렬하게 시작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상당히 지루해진다. 수사의 대부분을 다우니스가 직접 수행하면서 FBI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일 없이 진행된다. 동료 하키 선수들과 어울리고,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이미에 대한 감정을 키우는 등 그녀의 일상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매우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현대 소설치고는 분량이 많은 편이라 내용을 좀 더 압축적으로 구성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침내 수사에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내용의 정체가 풀리지만, 중반부만큼은 별다른 진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매끈하지는 않아도 그간 주류 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란 점은 분명하다. 이제 곧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공개된다고 하니 원작과 어떻게 달리 표현될지 사뭇 기대된다. (2023-03-3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미소설 #파이어키퍼의딸 #소수민족 #인종차별 #미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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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키퍼의 딸
안젤린 불리 지음, 김소정 옮김 / 문학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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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인종차별과 마약밀매의 어두운 사회 이면을 정면으로 다룬 현실 고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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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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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은 본래 평등하며 서로 돕는 관계였다. 늑대는 스스로 가축이 되어 야생을 버리는 대신 인간과의 오랜 동반관계를 유지한다. 고양이는 늑대보다는 늦게 가축화의 길을 걸었고 아직은 인간을 자신들과 동격으로 여긴다. 범고래의 시각에서 보자면 어느 날 불쑥 그들의 삶터에 인간이 끼어든 것이고 잠시 협력관계를 유지했지만 결국 생존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인간의 치명적인 간섭으로 망가진 지구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동물을 희생하여 이룬 문명의 발달로 많은 혜택을 받는 지금, 인간은 이제라도 동물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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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에 동물들은 단지 인간의 돈벌이와 쾌락의 대상, 정권 유지 수단, 전쟁 병기로 쓰였으며, 문명이 발달한 산업화 시기 이후에는 공해와 오염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다 못해 멸종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연계에서는 서로 맞닥뜨릴 일조차 없지만, 순전히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해 서로 다른 종끼리 목숨을 놓고 싸우는 구경거리이자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인간은 생태계 파괴와 같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돌려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의 삶 역시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고 문명화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다시피 하지만, 그것이 동물들을 학대해도 되는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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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 채집의 시대에 인류는 동물에게도 이성과 감정이 있음을 믿었다. 사냥당한 동물을 섭취하기 전에 영혼을 위로하며 그들과 한 세계에 살았다. 진화에 결정적 구실을 한 불의 사용으로 대뇌피질 용량이 커지고,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가축으로 길들인 동물의 힘을 이용했다. 자유와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사회적 기술을 터득한 개의 경우처럼, 인류도 소통과 협력으로 문명을 일구어냈다. 인간의 대뇌피질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월등히 큰 이유는 복잡한 사회성 때문이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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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서 밭갈이에 동원되었던 누렁이는 가축이면서도 든든한 일꾼이자 집안의 한 밑천 재산으로, 누가 도회지에 유학이라도 간다 치면 처분 1순위의 동산(動産)이었다. 누렁이가 암송아지를 낳자 할아버지는 동네 막걸리 잔치를 벌였고, 늙어서 더 이상 일을 못 해 읍내 우시장에서 헐값에 처분하던 날은 목놓아 우셨다.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옮겨오면서 동물은 더 이상 반려 관계가 아닌 인간의 자본 확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누리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열매는 사실 동물들이 희생된 결과이다. 할배가 이름 붙여준 누렁이는 차마 못 잡아먹지만 이름 모를 육우는 고급진 단백질 공급원으로 뱃속에서 녹는다. 오늘날 내연기관과 농기계가 노동하는 동물을 대체했지만, 아직도 동물원과 수족관 등지에 갇힌 동물은 간신히 목숨만 이어가고 있다. 동물을 친구라 여긴다면서 과연 언제까지 가두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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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자연계에는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되고 모든 물질이 자연분해 되기 때문에 쓰레기가 생겨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이었다. 인류가 지금처럼 잘 먹고 잘살게 된 지는 문명이 생겨난 이래 불과 300년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섭식을 위해 동물을 대량으로 생산 소비하는 무자비한 자본주의가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우리는 오늘도 아무 거리낌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육류를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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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닮은 구석이 많은 동물일수록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그렇지 않은 동물보다 훨씬 덜 잡아먹힌다는 주장은 흥미로우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류는 서로에게 공감하는 지능을 키움으로써 협력할 수 있었고 지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축을 위해 기차에 실려 가는 영국의 어린 양 얼굴이나 진통제 주사로 고통의 존재를 입증하는 물고기 실험의 결과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감 역시 그간 주목받지 못했을 뿐 분명 작용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이런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무감각하게 만든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이 지닌 또 다른 욕망의 그늘이 아닐까.


윤리적 삶과 동물 해방에 관한 내용을 학교 교육과정에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는 한편, 법제화된 안전교육마저도 서면 자료 제공이나 시청각 자료 시청 등 다분히 형식적으로 흐르고 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동물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여건이기 매우 어려운 도심지의 학교이기도 하고, 스마트폰 밖의 세상과 만나기도 그리 쉽잖은 아이들의 생활 습관에서, 과연 이들의 삶 속에서 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 수 있을까. 동물 해방이라는 좀 거창한 명칭 대신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적, 구조적 문제점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한 탐구발표의 소재로 추천해봄 직하다. 동물성 단백질 식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소비해야 하므로, 육가공 제품의 생산 유통 등 최종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부터 공유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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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든 GMA(Generically Modified Animals)를 접해보니, 공상과학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떠오른다. 어느 외딴섬의 비밀 연구소에서 동물의 특별한 능력을 인체에 결합하는 실험으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던 모로 박사의 빛나는 업적이,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한 인체 유전자 조작이었음이 드러나고 끝내는 괴물이 된 합성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며 자기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과학에 대한 몰이해와 기술의 오남용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온토마우스, 형광 물고기, 품종견 대회처럼 비단 의약품 개발뿐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호기심이나 재미로 행하는 동물 유전자 실험의 비윤리성 그리고 동물들에게 남겨지는 고통스러운 유전병 등은 모로 박사처럼 창조주를 빙의해 저지르는 인간의 크나큰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저지르는 객기가 있다면 미리 방지하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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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살던 유인원이 자신이 사는 우리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해준 똑같은 두 경우가 있는데, 결과는 판이했다. 먼젓번 경우의 침팬지는 우상으로 취급받았고 나중의 경우는 즉각 사살당했다. 동물은 말을 못 하니 그 행동을 보고 의중을 짐작할 뿐이라 이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생겼다. 단지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울 뿐, 동물은 자신들 나름의 소통 방식과 체계를 지녔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히 동물을 말 못하는 미물로 치부해왔고 인간에게만 언어능력이 있다며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 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좀 더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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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랫동안 가장 저열하고 폭력적인 정치 수단인 전쟁터로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동물들을 동원하고 희생하였다. 말과 당나귀는 수송과 의무병으로, 귀소본능을 이용한 비둘기는 통신병으로, 뛰어난 후각을 지닌 개는 가스와 폭발물 탐지병으로, 힘 좋고 순박한 코끼리는 대형 병기이자 운송 수단으로 투입되었다. 일부 인간의 목숨을 구하려는 선의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나, 거의 모든 동물에게 자아의식이 없다는 점을 활용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의 목숨을 마음껏 빼앗았을 뿐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심지어 군-동물 산업 복합체를 통해 동물의 노동과 사체를 밟고 야욕을 채우려 드니, 동물 착취를 생각하면 이제 만물의 영장이라는 호칭은 좀 삼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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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미국 동부 끄트머리의 도시 시애틀과 바로 위 밴쿠버 사이의 리아스식 해안지역을 방문했을 때, 고래 박물관에 전시된 뼈대만 보고 시큰둥했다가 바닷가에서 실물 범고래, 일명 오르카를 보고 그 크기와 헤엄 속도에 탄성을 질렀던 적이 있다. 너그럽게도 자신들의 사냥터를 인간에게 내어주며 협업으로 고래를 사냥하던 이들은 불과 40년쯤 전 처음 생포되고 좁디좁은 수조에 갇혀 학대받으며 인간의 돈벌이에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본래 친구라는 뜻으로 이름 붙었던 범고래 틸리쿰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세 차례나 인명사고를 일으키며 살인자 고래(Killer Whale)라는 오명이 생겼음을 그때 알았다. 두 살 때 인간에게 잡힌 이후 33년을 놀이공원에서 인간의 쾌락을 위해 착취당하다가 숨을 거둔 틸리쿰의 마지막 이후 세계는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범고래쇼는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니 사필귀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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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대 사냥 허가 정책의 경우는 병 주고 약 주는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울러 자연을 정복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인 특유의 세계관은 다른 세계에는 오만함으로 비쳤으며 오늘날 세계의 서구화에 힘입어 지배적 시각이 되어가는 점이 우려스럽다. 이 같은 시각은 자원확보를 핑계로 아무 거리낌 없이 원주민을 학살하는, 우주판 미국 서부 개척사를 연상케 하는 영화 <아바타>에서 잘 드러난다. 다소 희망적으로 보자면 동물에 대한 인간의 고압적 태도는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1세기 들어 가장 유명한 두 동물은 범고래 ’틸리쿰‘과 사자 ’세실‘로 대표된다. 이들은 동물원 혹은 수족관, 국립공원 보호구역이라는 장소만 다를 뿐 동시대 야생 동물을 이용한 착취 수단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수의 왕 사자는 인간이 만든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만, 국립공원만 벗어나면 트로피 사냥꾼의 표적일 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트로피 사냥으로 엄청난 액수의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는 동안 엄청난 수의 야생 동물들이 사라지고, 동물들에게 역차별당해 국립공원 안에 살다 쫓겨난 원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고 황폐해진다. 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을 뿐, 동물에 대한 착취는 오늘날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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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나 범고래처럼 동료 혹은 새끼의 죽음을 애도하고 오랜 기간 장례식을 치르는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에게도 사람과 닮은 감정을 지녔다는 어렴풋한 인식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들에게는 매우 미안하게 앞으로도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소중한 식자재가 되어줄 그들의 운명에 공감하고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으로 윤리적 육식을 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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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언어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언어와 다를 뿐, 돌고래, 코끼리, 유인원 등 일부 동물에게도 엄연한 의사소통 체계가 있을 것으로 능히 짐작된다. 왜 굳이 인간 언어의 체계와 비슷해야 언어로 인정한단 말인가? 만약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고 정교한 언어를 지닌 외계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언어로 소통해야만 인정받는다면, 우리가 순순히 따를 수 있을까? 1977년생 오랑우탄 찬텍과 같은 유인원들의 교차 양육과 수화 교육 실험은 처음부터 비극적 종말이 예고된 것으로, 인간의 호기심과 오만함으로 그들을 섣불리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인간도 동물도 아닌 존재로 만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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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전철역에서 집으로 향하는데 웬 남성이 목청 돋워 외친다. “여러분,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되었지만, 저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리람? 나는 선택받지 못한 원숭이 가운데 하나였단 말인가? 원숭이-인간 진화설 주장도 경천동지할 말이거니와, 인류와 유인원의 공동 조상이 있었다는 사실과 아주 오래전 과거 어느 지점에선가 분기했다는 기초 개념조차 모르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말 한마디로 뭉개버리는 저 용기는 대체 무어람. 오랑우탄 거울 실험에 드러났듯 수동적 객체이기를 거부한 동물(비인간인격체)도 있건만, 어찌 인간이면서 그리 자의식 없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연과 동물은 그대로이건만 때로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바보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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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기도 마땅찮은 좁은 국토를 지닌 우리나라만 해도 지리산 오삼이의 경우처럼 동물에게 그들의 공간을 마련하고 내어주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동물에게서 그들의 영역을 빼앗아 오기는 매우 쉬웠을 것이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린다는 명분을 앞세워 국토개발에 열중하느라 자연을 훼손한 결과는 어떠한가. 한 번 손을 댄 자연이 복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던가. 그나마 개발에 앞선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동물 이웃이 설 자리를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연 방사 프로그램이 왜 자꾸 성공하지 못하는지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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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래의 외로운 노래가 같은 고래가 아닌 인간으로부터 응답받았다. 고래에 매료된 활동가들이 동물과의 교감, 정동을 통해 그들 존재의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인간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스스로 자, 그러할 연.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인간의 오만한 간섭이나 탐욕 대신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는 태도가 자본의 달콤한 유혹을 극복하기란 참으로 쉽잖아 보인다. 그러나 자연 앞에 겸손했던 탐사대의 마음가짐처럼 아주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애지중지 키운 동물 가운데 특히 개의 경우는 자신이 사람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소위 개 버릇 남 주지 못하는 부류인데, 개통령 강형욱 씨를 만나야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운명이다. 애완동물이 아무리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주인이 동물을 개별 존재로서 인식하고 키우지 않으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져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후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연민의 정과 같은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나아가 나 자신부터 동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대할 마음이 생겼으니 더더욱 훌륭한 일이다. 사소한 시각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힘의 시작이다. 굳이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일독을 권해드린다.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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