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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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역자는 이 책의 원전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이라 밝히고 있다. 그는 정치와 종교, 사회와 철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가득한 원전의 내용을 일반 독자가 읽기 쉽도록 순한 맛으로 다듬어 내놓았다고 설명한다. 니체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 원전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갈림길’이라 할 수 있다. 그전까지 예술과 음악의 무대 뒤에서 무겁고 조심스러운 비평을 쓰던 니체는 이 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철학의 정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대의 거물이었던 바그너와 절연하고 정신적 방황을 겪던 시기에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그 과정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역설적으로 위기의 순간이 한 인간을 진정한 철학자로 밀어 올린 셈이다. 이후의 작품들, 즉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안티크리스트』도 모두 이 책을 씨앗 삼아 자라난 철학적 열매들이다.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은, 삶이 고단하다고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고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당신이 약한 것은 아니다. 인생이 혼란스럽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다. 정말 약한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p49. 정말 쉬운 길이 있을까?)

 

이 책은 형식부터 범상치 않다. 아포리즘, 즉 짧은 격언이나 단상으로 구성된 문장들이 마치 철학적 스냅사진처럼 나열된다. 때로는 상반되거나 모순적인 말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건 단순히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려는 배려(?)로 보인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형식이지만, 니체는 그 틀 안에서 훨씬 더 자유롭고 공격적인 사유를 쏟아낸다. 말하자면 아포리즘은 니체 철학을 담기엔 조금 작지만 그만큼 응축된 진심이 느껴지는 그릇이다.

 

이 책은 자기 극복과 성장, 인간관계와 감정 조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 113가지 조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엮었는데, 영역별로 세분하자면 철학, 심리학, 예술, 정치, 종교, 가족, 문화까지 안 건드리는 데가 없다. 한마디로 ‘전방위 조언 종합세트’다. 표현만 부드럽다 뿐이지 읽다 보면 어느새 정면으로 호되게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인데, 문제는 그게 굳이 부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니체의 날카로운 조언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기존 가치들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새로운 토대를 세우자는 제안에 가깝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신박하다. 예를 들면, 니체는 종교를 인간의 나약함이 낳은 허상이라고 본다. 신이 사랑이라 말할 때 그는 냉소한다. 기독교 도덕은 자연의 이치와 충돌하며 인간을 병들게 하는 체계라고 일갈한다. 플라톤이나 쇼펜하우어마저도 형이상학적 환상에 빠진 인물로 평가절하한다. 음악과 예술조차 그의 비판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키고 그 틈에 형이상학적 믿음을 슬쩍 끼워 넣는다고 지적한다. 꽤 무례한 비평 같지만 곱씹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남을 깍아내리지 않고도 충분히 빛나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남의 그림자를 지우려 애쓰지 말고, 스스로의 빛을 더 밝히는 데 집중하라. 결국 그 빛이 당신을 진정으로 높여줄 것이다.』 (p145. 타인의 성공을 비웃지 마라)

 

니체의 자유에 대한 시선도 흥미롭다. 그는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신화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은 ‘권력 의지’라는 본능적 추동력에 이끌려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단지 지배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내적 에너지에 가깝다. 그 말인즉슨,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려는 존재이며 그 본성 속에서 진짜 윤리를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유는 이후 푸코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권력’이라는 말이 주는 인상을 제외하면 의외로 낭만적인 철학이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초인(Übermensch)’이다. 초인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이 책 이후에 나온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많은 사람이 초인을 어떤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쯤으로 오해한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울퉁불퉁한 근육질과 삼각팬티에 망토 입고 하늘을 날며 악당들을 혼내주는 그런 마블 캐릭터가 아니다. 초인은 기존의 도덕과 관습을 넘어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자율적인 인간이다. 그는 외부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내면에서 삶의 방향을 찾는다. 니체는 이 초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당대의 상투적인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수려 했다. 이 개념은 ‘영원회귀’ 사상과도 맞물린다. 지금의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며, 그런 삶을 살아내는 존재가 바로 초인이다. 영원회귀는 단순한 순환론이 아니라 한순간 한순간을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에 가깝다. 초인은 그 명령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존재이다. 이런 초인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무한한 정보, 가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실은 더 혼란스럽고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니체는 그런 시대일수록 더더욱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너답게 살아라.”라는 말이 철학의 이름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들린 적이 있을까? 하긴, 나답게 살기가 그리 쉬운 일이었으면 진작에 고민하지도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미워하기보다는 자기 삶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까 하는 질문 대신, 이렇게 바꿔보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만큼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까. 아마 답은 거의 아닐 것이다.』 (p224. 악은 여유로운 자의 사치다)

 

물론 초인은 자주 오해받는다. 일부는 이를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인간상으로 해석하지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타인과의 조화를 무시하지 않으며 자기 삶의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직면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 그것이 초인의 본질이다. 그러니 초인은 영웅이기 전에 ‘참 인간’이다. 사족이지만, 그런 점에서 최근에 바뀐 대통령이야말로 현실 세계에서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초인의 모형 아닌가 싶다. 자기 말을 실천으로 보여주던 그의 과거 행정 실적, 사법 탄압으로도 어쩌지 못한 그의 진실성, 국가의 미래 희망을 건설하기 위한 국민적 권력 ‘위임’에 대한 그의 생각 등을 듣고 판단한 결과이다.

 

또한, 니체의 철학은 개념 놀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삶의 태도를 묻는다. “그래서 너는 대체 어떻게 살 건데?”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니체의 문장을 계속 곱씹게 된다. 초인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매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책임지는 삶을 통해 다가가는 목표이자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인 나는 니체가 종교를 해부하는 방식에 깊이 공감한다. 약간의 흥분과 함께 야릇한 쾌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예술가와 작가의 정신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그 날카로운 분석에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고 얇아 손에 쥐기 편하지만 의외로 내용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간결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어 오히려 읽는 내내 긴장과 집중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니체가 철학자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 순간을 담아낸 작품이다. 고전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서 오늘의 우리를 마주하게 되고 익숙한 것들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것이 이 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니체가 단지 19세기의 철학자가 아닌 ‘지금, 여기’의 철학자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인생수업 #니체 #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 #위버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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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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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답게 살기가 그렇게 쉬었으면 진작에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후회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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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스 콜 - 주의력 자본주의는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와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크리스 헤이즈 지음, 박유현 옮김 / 사회평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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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이렌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바다의 반인반어 신 또는 요괴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암초에 부딪쳐 죽게 만든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사이렌은 오랫동안 ‘파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오디세우스는 이 유혹을 피하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노래를 듣는 방법을 택했고, 결국 배를 무사히 지켜냈다. 아마 호기심에서라도 사이렌의 노래는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의 로고도 바로 이 사이렌에서 따온 것으로, ‘이 커피의 향과 맛이 당신을 유혹할 만큼 강렬하다’는 의미를 은근히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는 사이렌을 ‘우리의 주의력을 빼앗아 가는 존재’로 비유하고 있다.

 

이 책의 초입에서 헤이즈는 유발 하라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을 언급한다. 두 책 모두 우리가 집중하기 어려워진 이유를 다루지만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다르다. 헤이즈는 우리의 주의력이 어떻게 광고나 통신 회사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이에 따라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뉴스나 소셜미디어 같은 미디어 환경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까지 조종하려 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하라리는 좀 더 넓은 역사적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디지털 기술과 정보 과잉이 개인의 집중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판단력과 민주주의까지 위협한다고 본다. 결국 헤이즈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문제들’에 주목하고, 하라리는 ‘더 큰 틀에서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대 사회는 주의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터다. 스마트폰, SNS, 각종 뉴스와 알림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한다. 이 책은 우리의 소중한 주의력이 어떻게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며, 우리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진보적 성향의 TV 쇼 진행자로서 이 문제를 날카롭게 바라본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자기 경험을 통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가 소개하는 심리학 연구와 일상의 경험담은 우리가 매일 느끼는 혼란을 잘 보여준다. 이제는 책 한 권을 집중해서 읽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조차 어려워진 현실이 안타깝다.

 

헤이즈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한 집중력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우리의 주의력에 대한 소유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화가 노동을 상품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의 주의력을 상품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주의력은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엇에 집중할지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기업의 광고나 기술이 대신 정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헤이즈는 주의력을 단순히 ‘무언가에 관심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의식 그 자체’라고 본다. 우리가 가진 정신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지금은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하려고 경쟁 중이다. 그는 주의력을 ‘상품’처럼 설명하며, 기술 기업, 언론, 정치인들이 어떻게 우리의 짧은 관심을 붙잡아 돈으로 바꾸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슬롯머신 모델’에 대한 분석은 인상 깊다. 소셜미디어는 단순히 주의를 빼앗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사마귀에 기생하는 연가시처럼 아예 사람의 뇌를 조종하듯 설계됐다고 말한다. 짧은 자극, 새로운 정보, 긴장과 해소, 반복되는 패턴이 사람을 중독시키는 구조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뇌를 어떻게 반응하게 만드는가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흥미롭다. 그는 트럼프를 ‘주의력 시대의 상징’이라 부른다. 트럼프는 부정적인 관심도 긍정적인 관심만큼 효과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분노와 논란을 만들어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런 방식은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더 잘 맞는다. 그래서 사회의 대화는 점점 시끄럽고 산만해진다. 헤이즈는 이런 현상을 ‘주의력 군벌주의’라고 표현한다.

검색 엔진이나 SNS 같은 기술 플랫폼은 처음엔 유용했지만, 점점 광고와 의미 없는 정보로 가득 찬 혼란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괜찮은 이성 찾기’조차 상업적인 광고로 도배된 페이스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결국, 이렇게 상업화된 관심 경쟁에서는 자극적인 이슈나 화제를 만드는 사람들만 주목받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들이 능력보다 ‘주의를 끄는 능력’으로 성공하는 모습은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헤이즈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주의력 위기’를 과거의 역사적 변화와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는 오늘날 주의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19세기 신문의 변화 같은 과거 사례와 비교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링컨과 더글러스의 90분 토론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었던 시대를 보여준다. 반면 오늘날 대선 토론은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험담만 쏟아내기 바쁘다. 이 차이는 우리가 얼마나 집중력을 잃었는지를 보여준다.

 

헤이즈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동이 상품이 되며 인간이 소외됐던 것처럼 주의력의 상품화도 사람을 소외시킨다고 경고한다. 그는 인공지능(AI)이 만든 콘텐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AI가 자동으로 만든 콘텐츠는 깊은 성찰이나 창의적 사고 없이 그저 표면적이고 기계적인 결과물일 뿐이며 이런 콘텐츠는 우리의 사고를 더 얕고 산만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AI를 사용할 줄 모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호들갑을 떨고, 경쟁적으로 열리는 chatGPT 사용법 강연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가 처한 이 정보 과잉 시대의 혼돈은 매우 심각하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스스로 주의력을 관리하고 깊은 사고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개인의 실천 없이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주의력을 되찾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작은 실천을 권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 책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헤이즈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다소 미약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대신 단순한 전화기를 쓰자는 조언이나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은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으로서는 부족하다. 또 일부 내용은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는 해도 이런 점들이 책의 전체적인 가치를 크게 해치는 것 같지는 않다.

 

헤이즈는 단순히 ‘산만한 주의력’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의 정보 시스템이 우리의 사고방식, 소통 방식, 그리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의력을 지키는 일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 의식을 흔드는 큰 힘들과도 맞서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요즘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 책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무엇을 잃게 될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관심비즈니스 #주의력자본주의 #집중력 #사이렌스콜 #크리스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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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스 콜 - 주의력 자본주의는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와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크리스 헤이즈 지음, 박유현 옮김 / 사회평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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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주의력‘에 이어 새롭게 살펴보는 주의력 자본주의 시대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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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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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에릭 라인하르트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고전 동화 신데렐라를 차용한 책 제목에서 시와 풍자를 버무린 어른들을 위한 현대 동화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실망감은 없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독서 경험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 놀라움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교차하며 얽히는 구조였다. 두 번째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달리 등장인물이 전부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세 번째로는 그중 한 인물이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후 다른 인물들도 모두 작가가 투영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작가는 자신을 등장인물로 삼고 그와 닮은 세 명의 분신, 즉 아바타를 교차해 등장시킨다. 그들은 작가가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 실제 그렇게 되었을 법한 인물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부유한 주식 중개인인 로랑 달이라는 캐릭터가 집중적으로 그려지며, 나머지 두 사람—자존감 낮은 백수 파트리크와 지질학자 티에리—는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질학자는 거의 300쪽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한 인물의 기억이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인생이 재구성되는 장면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벗어나 독특하고 대담한 실험을 감행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따로인 듯하면서도 결국 하나로 수렴되고, 독자는 책장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자신을 드러낸 이유를 자기애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다. 신화나 특정 상황을 변주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가 점점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동화 속 신데렐라에 빗댄다.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인해 화려한 마차가 호박으로 변한 자신의 경험은, 평범한 환경에서 출발해 문학이라는 무대에 오르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데렐라는 작가 자신이었고, 동시에 사회적 제약에 맞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신데렐라의 시선으로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를 삶들을 상상한다. 만약 23살 때 마고라는 매혹적인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독자들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정이 가까워지고 소설이 끝나갈 무렵, 작가는 독자에게 종이와 잉크로 만든 유리구두를 남긴다. 언젠가 그 유리구두가 독자와 작가를 다시 만나게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등장인물이 수시로 바뀌고, 이름이나 설정이 겹쳐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서서히 매혹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불편할 정도로 강렬하거나 음울한 장면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냉소적인 유머와 세련된 문장은 끝까지 독자를 끌고 간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문체는 빠르면서도 꼼꼼하고, 밀도가 높으며, 때로는 지나칠 만큼 서정적이고 풍자적이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부류의 작가와는 달리 작가는 반대로 모든 것을 복잡하게 표현한다. 그는 지나치게 정확한 디테일을 통해 거의 현실에 근접한 묘사를 완성한다. 이 덕분에 독자의 상상력이 끼어들 틈은 줄어들지만, 그 정밀함 자체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랑과 섹스, 헤지펀드와 세계화, 가을의 분위기, 샴페인 사회주의자의 위선, 파리의 거리와 카페 테라스, 젊은 여성들의 시선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기록하며, 독자가 그 세밀한 세계 속에 완전히 들어가도록 만든다. 등장인물들의 삶은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흔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질 만큼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이 소설은 작가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프랑스 사회의 경제 구조와 관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는 삶을 보여준다. 성공에 대한 집착 속에서 좌절을 겪고, 부모와 사회에 대한 분노로 파괴적인 선택을 하고, 성적인 일탈로 현실을 외면한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독자들을 통해 그 파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작품 이름을 신데렐라로 지었을까?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의지와 그걸 가로막는 벽 사이의 싸움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작가 개인의 성적 강박과 집착도 은근히 드러난다. 사회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이 작품은, 때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주식 중개인의 삶에 대한 서술조차도 광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몽상가 기질이 있고 감성적인, 특히 길고 지루하고 정신없는 텍스트에도 잘 견디는 인내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을 사랑하는 이라면 더욱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적 실험이자 매혹적인 혼돈 자체인 이 작품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잊을 수 없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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