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에 바라본 삶 - 시대의 지성 찰스 핸디가 말하는 후회 없는 삶에 대하여
찰스 핸디 지음, 정미화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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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은퇴가 점점 가까워지니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교직이라는 긴 여정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정년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그동안 익숙했던 일상이 서서히 형태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 같다. 교무실 책상 위 달력을 넘기다가 아 이제 정말 몇 년 남지 않았구나싶은 생각이 들 때면 괜히 미묘한 정적이 마음 안쪽에 자리 잡곤 했다. 이런 시기에 읽게 된 이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조언을 건넨다. 아흔이라는 나이는 멀리 있는 숫자 같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통찰은 오히려 지금의 내 고민을 깊이 건드린다.

 

저자 찰스 핸디는 조직··커리어의 변화를 철학적 언어로 풀어낸 아일랜드 출신 경영사상가로 알려졌다. 대기업 중심의 평생직장 모델이 흔들릴 것을 일찍부터 짚으며, 오늘날의 프리랜서/프로젝트형 노동, 유연한 조직, 의미·목적 중심의 일 같은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들을 널리 퍼뜨렸다. Shell에서의 기업 경험을 거쳐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활동했고 이후 작가·강연가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넓혔다.


저자의 열아홉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 책은 분명 그의 저서 중 가장 두꺼운책은 아니지만 중요한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장 묵직한책일지도 모른다. 그는 202412,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큰 상실이었겠지만 동시에 삶과 일, 비즈니스에 대해 인간적이고도 선견지명 있는 통찰을 평생 남긴 데 대한 고마움도 컸을 것이다. 그는 조직이 지닌 답답하고 우울한 현재를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바꿀 수 있는지를 꾸준히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이 책의 끝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낮춰 말한다. “나에 관해 남는 것이라고는 어딘가에 실린 추모 기사와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추억뿐일 것이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비이성의 시대(The Age of Unreason, 1989), 텅 빈 우비(The Empty Raincoat)(미국에서는 역설의 시대, 1994), 굶주린 영혼(The Hungry Spirit, 1998)같은 책들이 남아 있다. 여기에 그의 강연까지 더해지며 그는 경영 구루로 알려졌고, 본인은 사회철학자라는 표현을 더 좋아했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철학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특히 스토아 철학이 많이 등장하고 영성도 다룬다. 아일랜드에서 대주교 보좌 성직자의 아들로 자란 성장 배경이 말년에 다시 울림을 만든 듯하다.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신에 대한 의심을 솔직히 털어놓다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혼자 떠나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도와줄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다고.

 

그가 말하는 좋은 경영과 통솔력은 결국 한 가지로 압축된다. 사람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제로 쓰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 비즈니스의 경직된 관행을 겨냥한 비판도 여전하다. 많은 리더가 보이는 자기중심성, 사익 추구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는데 그 대상은 도널드 트럼프까지 포함된다. 그는 조직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운영하라고 말한다. 또 직원들에게는 긍정적으로 기여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쉬운 길인 부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경영과 통솔력이란 사람 안에 있는 선물을 찾아내 그걸 쓰게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주 언급하는데, 특히 아내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엘리자베스는 오랫동안 그의 비공식 에이전트이자 홍보 담당자였고, 대화로 부딪치며 생각을 다듬어 준 토론 상대이기도 했다. 아내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반적으로 그는 삶의 끝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오히려 담담하게 놀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맞춰 살려고 했고, 독자에게도 그 기회를 허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자가 나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특히 흥미롭다. 그는 신체가 늙어가는 속도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는 다르다고 말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마음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향해 미세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 경험과 정확히 겹치는 말이었다.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기술 변화가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외국어를 배우고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부자연스럽다거나 민망한 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나이 듦을 괜히 감춰야 할 변화처럼 여겼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성취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교직에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숫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적표, 평균, 수행평가, 입시 결과, 등급. 학생들에게는 점수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계속해서 수치로 평가받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순간들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다시 한번 교사로서의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학생과 나눴던 짧은 대화, 동료가 건넨 한마디, 뜻밖의 감사 인사.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기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을 바라보는 시각도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꽤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일이라는 것을 직책이나 급여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자기 능력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쓰는 모든 활동이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은퇴 이후의 삶을 공백으로만 바라보던 내 생각을 바꿔 놓았다. 학교를 떠나도 여전히 누군가와 지식을 나누거나, 작은 모임을 만들거나, 배움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다. 글을 쓰는 일,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는 일, 새로운 취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일 등 일의 형태는 달라질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은퇴 후의 시간이 잃어버릴 시간이 아니라 다르게 채울 수 있는 시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관계의 재구성에 대해서도 중요한 조언을 남긴다. 교사로 지내는 동안 내 관계의 대부분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되었다. 퇴직을 앞두고 그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은퇴가 관계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지도를 다시 그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뤄 두었던 가족과의 시간,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 취미 모임에서 만날 사람들, 새로운 배움의 공동체 등이 앞으로의 관계를 채울 수 있다는 그의 관점은 현실적이면서도 긍정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세며 불안해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은퇴를 앞두고 앞으로의 시간을 계산하듯 바라본 적이 많았는데, 그의 조언을 읽으며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 시간의 양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은퇴 후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데 힘을 얻을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은퇴를 앞둔 교사인 나에게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야를 넓혀준다. 은퇴는 단절이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며 그 과정 안에서 일도, 관계도, 시간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의 시간이 막연한 빈칸이 아니라 아직 쓰지 않은 페이지처럼 느껴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인생의 새 공책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저자의 조언은 결국 이런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제부터는 자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음 장을 써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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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처럼 나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을 이야기하는, 가볍지만 꽤 도발적인 자기계발서다. 처음에는 쉬운 구어체 영어로 쓰였다는 말만 듣고, 솔직히 말해 영어 원서를 날로 먹어볼(?)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한 달 동안 천천히 읽어나가 보니, 일상적인 표현과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익히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내용의 깊이와는 별개로 영어 원서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에게는 구어체 영어 교재처럼 활용해도 괜찮은 책이다.

 

내용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함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타인의 생각·감정·행동을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이야기를 “Let Them(그냥 두자)”“Let Me(나는 이렇게 하자)”라는 두 문장 구조에다 거의 다 집어넣어 버린다. 남들이 어떻게 하든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두고, 그 대신 지금 여기에서 내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책 전체에 걸쳐 반복하다 보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시선에서 한발 물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뭘 선택할 건가?”라는 질문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복잡한 이론 대신 알기 쉬운 구조를 계속 되풀이하는 방식이라, 이미 머릿속이 복잡한 젊은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고 실천하기 한결 수월한 편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스토아 철학을 아주 현대적인 영어와 사례들로 가볍게 요약해 놓은 입문서를 읽는 느낌이다.

 

이 단순함은 곧 마음이 좀 편해지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가족이 내 연애를 못마땅해하든, 동료가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든, 책 속 화자는 계속해서 묻는다. “그건 그들의 문제고,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타인의 판단과 기대를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내 반응과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다시 또렷해진다. 저자 본인이 바로 이 “Let Them”이라는 간단한 구호 하나로 특히 미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결국 경제적 성공까지 거둔 인물이라는 점도 책의 설득력에 어느 정도 힘을 보탠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기계발서들이 여전히 잘 팔린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어 온 입장에서 보면, ‘그냥 두자는 조언을 아주 새로운 통찰이라며 떠받들기는 어렵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내가 어쩔 수 없는 건 내려놓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자는 말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오래된 격언에 가깝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초반부에 거의 다 제시되고, 이후 장들은 그 메시지를 다양한 사례와 일화로 반복해서 변주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미움받을 용기나 대중적인 스토아 철학 입문서를 읽어 본 독자라면, 문제의식과 제안의 방향이 아주 새롭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이 정도 내용이 한 권의 책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저자를 일약 스타 강사로 올려놓을 만큼 혁신적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표절·아이디어 도용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쪽 온라인 기사와 칼럼들을 보면, 멜 로빈스가 책과 강연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Let Them/Let Me” 구도가 사실은 작가이자 시인인 Cassie Phillips2019년에 쓴 시 Let Them, 그 시가 2022년 무렵 SNS에서 퍼져 나가면서 만들어낸 ‘Let Them’ 흐름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시는 문신 문구와 각종 용품, 자기계발 글귀로 재사용되며 일종의 작은 운동처럼 확산된 바 있다. 필립스는 자신의 시와 로빈스의 책·강연 사이에 표현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최소한 출처 표기와 크레딧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로빈스는 그 시를 알지 못했고, 자신의 아이디어는 자녀와 나눴던 대화와 개인적인 고민, 따로 해 온 조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직 법적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로빈스가 “Let Them”이라는 표현을 상표로 등록·보호하려 했던 점, 그리고 책과 오디오북 어디에도 필립스의 시나 선행 사용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 때문에, 독자로서는 이 구호가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인지, 혹은 이미 떠돌던 문장을 비교적 세련되게 재포장한 결과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실천 단계에서도 한계는 분명하다. 책은 가족이 내 연애를 싫어하게 두자”, “친구가 나를 오해하게 두자처럼 다소 과감한 문장들을 앞세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와야 할 질문들, 이를테면 현실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어디까지는 설명해 보고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거리를 둬야 하는지, 정말 끊어야 할 관계와 버텨 봐야 할 관계를 어떻게 구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그냥 두자는 메시지가 어떤 독자에게는 책임 있는 자기 돌봄이라기보다, 불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핑계처럼 들릴 위험도 있다. 타인의 행동을 무조건 내버려 두는 태도가 정작 지켜야 할 소중한 관계에서 필요한 대화와 조율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짚어볼 지점은, 저자가 자신의 개념에 이론(theory)’이라는 이름을 직접 붙였다는 점이다. ‘Let Them’이 단순한 생활 조언을 넘어 학문적 의미의 이론으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핵심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그냥 둔다는 것인지, 그로 인해 마음가짐과 행동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어떻게 관찰·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이어서 이렇게 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식의 예측이 제시되고, 실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장기 관찰을 통해 그 예측이 검증되어야 한다. 다른 연구자가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니, 재현 가능성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론이 잘 작동하는 상황과 사람의 범위, 즉 적용 가능성과 한계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 효과가 크고, 어디서는 약한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작동 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타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줄이면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지고, 아낀 에너지가 자기 선택과 실행으로 옮겨 간다는 흐름을 나름의 틀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연구와 결과가 논문 형태로 공개되고, 동료 연구자들의 평가를 거쳐 여러 연구를 종합했을 때도 일정한 효과가 꾸준히 확인되어야 비로소 생활 꿀팁이 학문적 의미의 이론에 가까워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저자가 책 제목에 이론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장 학문적인 이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중서를 홍보할 때 이론이라는 단어를 아이디어나 원칙을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쓰는 일은 흔하고, 그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학계에서 말하는 이론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개념 정의, 측정 가능성, 반복 검증, 작동 원리, 적용 범위, 동료평가와 누적된 증거까지 갖춘 체계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Let Them Theory라는 제목은 실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자기관리 요령이나 생활 조언에 더 가깝고, 엄밀한 의미의 학술 이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마케팅과 대중적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이론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매력적인 포장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적 맥락에서라면 이론보다는 법칙’, ‘요령’, ‘실천법정도로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책을 펼치면, 제목이 주는 과장된 기대와 실제 내용 사이의 간격에서 느끼는 실망은 조금 줄어들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불필요한 죄책감과 타인의 기대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단순하지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정신적 도구를 제공한다. 동시에 영어 원서를 큰 부담 없이 읽어 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구어체 영어를 익히기 위한 읽기 자료로도 충분히 쓸 만하다. 반면, 인생에 대한 깊은 조언이나 학문적 엄밀성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메시지가 다소 얕고 반복적일 수 있으며, 제목이 내세운 이론이라는 표현도 학술적인 이론이라기보다 잘 만든 구호에 가깝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책은 삶을 통째로 바꾸는 혁신적인 통찰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진실을 다시 한번 또렷한 문장으로 확인시켜 주는, 잘 팔리는 자기계발 구호의 한 사례로 읽는 편이 더 공정한 평가에 가깝다.

 

#렛뎀이론 #그냥냅둬유소나멕이게 #애쓸거없슈 #영어원서 #영어공부 #LetThem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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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 삶이 흔들릴 때 꺼내 읽는 문장들
부아c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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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들어 어느 해부터인가 별일이 없는데도 신경이 곤두선다. 예전 같지 않게 몸이 쉬 피곤하고, 별말 아닌데도 짜증부터 올라오고, 밤에는 잠이 쉽게 오지 않는데 푹 자고 싶어도 새벽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건강 검진표의 각종 지표가 정상 범위에서 경계선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라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더 낯설고 불안하다. 혼자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울음이 터지기도 하고, 슬픈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울컥한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내가 무서워진 지는 이미 제법 되었다. 흔히 남성 갱년기라 부르는 시기, 호르몬 분비의 변화는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뒤흔들어 놓는다. 나만 이상해졌나 하는 생각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말해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외로움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감정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영혼이 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였다. “더 이상 마음이 닿지 않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는 조용한 메시지였다. (32)

 

부아c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책으로 어울린다. 제목도 그렇지만 아직 더 성장할 게 남았나 싶은데 진짜 성장은 혼자일 때 시작된다는 부제 역시 도발적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외로움은 실패와 결핍의 신호다. 중년의 가장에게는 거의 돌직구다. 가정에도, 회사에도, 친구들 사이에도 어딘가 잘 섞여 있어야 정상이라는 강박 속에서 외로움은 가능한 한 빨리 지워야 할 감정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의 말을 건넨다. 외롭다면, 어쩌면 당신은 잘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당신의 삶을 평가하려 할 때, 그저 ,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라고 답하면 된다.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진짜 당당함이다. (78)

 

저자는 여러 해 동안 블로그와 SNS에 매일 같이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고 한다. 그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을 네 개의 장으로 엮어낸 것이 이 산문집이다. 1부는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타인에게 맞추느라 잊고 있었던 라는 존재와 다시 마주하는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2진짜를 가진 사람은 조용하다에서는 조용히 버티고 꾸준히 살아내는 태도의 가치를 말하고, 3인생이 망했다고 느낄 때에서는 무너짐과 실패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4행복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에서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그 무게를 견디는 새로운 시선을 건네준다.

 

그러니 기억하자. 힘들수록, 포기하고 싶을수록, 더 오래 버텨야 한다. 기회는 늘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긴 바로 그다음 코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은 결국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141)

 

이 구조는 몸과 마음이 함께 요동치는 중년 남성의 심리 곡선과 묘하게 겹친다.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온 나이, 가족과 조직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 겉으로 보기엔 자리를 잡은 어른 남자의 이미지지만, 속으로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커지는 시기다. 이때 찾아오는 공허함과 짜증, 무력감은 단순히 테스토스테론 수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미뤄 두었던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그에게 내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고 믿었기 때문에 실망하게 되고, 그 실망이 곧 상처가 된다. (191)

 

이 책이 좋은 점은, 그 신호를 지나치게 거창하지 않은 언어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각 제목의 글은 길지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점심 먹고 자투리 시간에, 밤에 불 끄고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한 편씩 읽기 좋다. 그래서 더 취약한 순간에, 자꾸만 핸드폰을 붙들고 의미 없는 뉴스나 영상만 넘기게 되는 손을 잠시 멈추게 한다. 눈앞의 한 페이지에 적힌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건 나만이 아니다라는 최소한의 안도감이 생긴다. 특히 강하게 와 닿는 지점은, 이 책이 외로움을 없애야 할 부정적 감정으로 보지 않는 태도다. 중년의 남자는 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가장이고, 회사에서는 상사이자 팀장이다. 역할이 많을수록 속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은 곧 무능의 증거, 실패의 낙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남에게 맞추느라 미뤄 두었던 나 자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외로움이 찾아올 수 있다고. 그건 오히려 이제라도 나 자신과 친해지려고 하는건강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주변을 행복하게 하면서 자신도 행복해진다.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여러모로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된다. (240)

 

물론 이 책은 자기계발서도, 심리 치료 교범도 아니다. 호르몬 수치나 전문적인 상담이 꼭 필요한 상황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손에 들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진단 대신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은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만 이상하고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한 번쯤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 소소한 토닥임이 상처를 덜어내는 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호르몬 변화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이 예민해졌다고 느끼는 중년 남성이라면, 이 책을 하루에 한두 장씩만이라도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렇게 말할 힘을 얻게 될지 모른다. “외로운 내가 망가진 게 아니라, 그런데도 꽤 잘 버티며 살아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에세이 #산문집 #삶이흔들릴때꺼내읽는문장들 #성장 #외롭다면잘살고있는 것이다 #페이지2북스 #리뷰어스북클럽 #책추천 #부아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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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 삶이 흔들릴 때 꺼내 읽는 문장들
부아c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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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은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만 이상하고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한 번 쯤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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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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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줄거리>

해리 오거스트는 20세기 영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생을 마친 뒤, 기억을 지닌 채 같은 시대로 되돌아오는 존재이다. 소설은 그가 여러 차례의 생을 반복하며 자신과 같은 이들이 모인 비밀 결사 크로노스 클럽과 관계를 맺고, 반복되는 시간을 지식과 기술로 가공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어느 생의 말년에 해리는 같은 부류의 소녀로부터 세상의 종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경고를 받게 되며, 이 메시지가 릴레이 방식으로 과거로 거슬러 전달된 것임을 알게 된다. 해리는 이후의 생들에서 경고의 원인을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여러 생에서 해리는 학문과 정보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케임브리지에서 천재적 물리학자 빈센트 랭키스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환생을 반복하는 칼라차크라임을 눈치채며 우정과 경쟁의 묘한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세계의 파국을 앞당기는 발원이 빈센트가 주도하는 양자 거울프로젝트임이 드러나면서 관계는 균열을 맞는다. 양자 거울은 하나의 관측으로 우주의 총 상태를 역 추론하려는 시도이며, 이를 위해 빈센트는 칼라차크라들의 축적된 지식을 동원해 기술 발전을 비정상적으로 가속하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역사적 사건과 발명이 예정 시점보다 앞당겨지며, 세계의 균형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다.


빈센트는 크로노스 클럽의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하고, 해리의 출생 정보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과 회유를 반복한다. 칼라차크라에게 출생 정체의 노출은 영구적 제거로 이어질 수 있기에, 두 사람의 대립은 지식전이자 심리전이 된다. 해리는 여러 생을 전략적 자원으로 삼아 자금줄을 끊고, 연구 인맥을 이간하고, 핵심 기술의 계보를 끊는 등 장기적 방해 공작을 설계한다. 마침내 해리는 빈센트의 프로젝트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 교란에 성공하며 기술 가속의 광란을 멈춘다. 그 결과, 앞당겨지던 종말의 징후는 사라지고 해리는 다시 다음 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서사는 기억의 지속이 자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무한에 가까운 삶이 윤리적 책임을 어떻게 변형하는지, 그리고 지식이 언제 선이 되고 악이 되는지를 묻는 이야기이다. 해리와 빈센트의 대립은 자유의지와 결정론, 진보와 오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철학적 논쟁의 형식으로 수렴한다.


 

<세계관과 설정>

해리는 크로노스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서로를 돕는 칼라차크라의 규칙을 배우는 인물이다. 이들은 죽으면 다시 같은 인생으로 태어나고, 이전 생의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돌아오는 존재들이다. 특히 유년기에는 성인의 기억을 숨기고 연기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이다. 클럽의 기본 방침은 역사에 큰 간섭은 금지라는 원칙이다.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크게 뒤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누군가 이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세상의 끝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품 곳곳에는 우리는 그저 마음일 뿐이고, 마음은 불완전해 잊는다같은 문장이 배치되어 있으며, 환생과 기억, 상실과 소속감, 기쁨과 두려움의 스펙트럼이 섬세하게 포착되어 있다. ‘여섯 살이면서 백오십 살인 아이라는 모순을 다루는 상상력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든다.

 

환생과 기억 유지라는 전제는 여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해리가 반복되는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애정, 선택의 무게 같은 감정이 꽤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칼라차크라가 이루는 비밀 네트워크, 메시지가 세대를 거슬러 전달되는 구조는 독특한 긴장감을 만든다. 이들이 시간의 앞뒤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 전생의 기억을 지워 새 출발을 시도하는 방법, 심지어 영구적으로 죽는 법까지, 세계의 규칙이 비교적 치밀하게 펼쳐진다.

 

주제 차원에서도 인과의 복잡성, 정신질환의 역사, 친밀한 관계의 미묘함, 가속하는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함의 같은 문제들이 성숙하게 제기된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곧 맞서 싸워야 할 네메시스가 되는 구조는 복수 서사이자 라이벌 서사의 전형을 충실히 변주한 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극도로 느리다. 정신없이 빠른 서사보다야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느린 호흡은 굳어가는 시멘트를 지켜보는 것 같다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인내를 요구한다. 둘째, 설정의 논리가 다소 성기게 느껴진다. 세계의 스케일이 큰 만큼 논리 또한 촘촘해야 하는데, 서사 진행의 편의를 위해 뚫리는 듯한 대목이 눈에 밟힌다. 대표적인 예가 죽음의 취급이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칼라차크라에게 동시에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자 매우 위험한 사건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죽음을 가볍게 농담처럼 다루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독자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심각한 위험 요소로 강조한다. 이 두 톤이 반복적으로 충돌하면서 감정선이 흔들린다. 셋째, 간섭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큰 역사 변경 금지라고 선언하지만, 실제로는 해리의 결혼 상대가 바뀌기도 하고, 전쟁에 참전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식의 변화가 허용된다. 어느 선까지가 큰 변화이며, 누가 어떤 기준으로 통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화자의 매력이 기대보다 약하다. 열다섯 번의 환생을 겪은 인물의 내면이라기에는 1인칭 내레이션이 의외로 밋밋하다. 장치와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목소리 자체는 다소 심심하다. “시간이 곧 지혜는 아니고, 지혜가 곧 지성은 아니다와 같은 문장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개별 문장의 멋이 서사의 추진력을 충분히 대신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총평>

제목 그대로, 해리 오거스트는 칼라차크라이자 우로보란이다. 죽으면 다시 같은 인생의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이전 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삶을 반복하는 존재이다. 해리는 열한 번째 삶의 끝자락에서 더 어린 우로보란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세상의 종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 뒤에 태어날 세대들은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을 해리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이다.

 

읽기 전에는 같은 인생을 계속 반복해서 사는 이야기가 과연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몇 장 지나지 않아 설정 자체의 매력이 서서히 드러난다. 기억을 가진 채 인생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가정, 그리고 그 존재들이 개인의 삶과 세계의 구조에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하는 방식은 분명 흡인력이 있다.

 

그러나 인물의 매력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다. 해리는 작품 속 다른 인물이 직접 밋밋하다고 지적할 만큼, 의도된 평범함을 넘어선 무색무취한 인물로 남는다. 도덕적 판단 역시 애매하게 흔들려서 강렬한 관계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1인칭 서사임에도 정서 표현이 지나치게 임상적이고, 독자와의 거리감이 커서 감정선에 깊이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조연들의 경우도 대부분 단면적인 성격에 그치며, 비중이 얇게 흩어진다.

 

숙적이 등장하는 지점에서는 이제 라이벌 케미가 폭발하겠구나하는 기대를 품게 되지만, 실제 서사 전개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애초에 라이벌 구도를 이토록 공들여 세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플롯 역시 끝까지 매끈하게 굴러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결말부는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 인상을 준다. 어떤 상대방은 충분한 예고나 축적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기능을 수행하고 사라지며, 반대로 오랫동안 차근차근 예고된 다른 인물은 막판에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반복하다 허무하게 패배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와 설득력이 모두 약해지고, 클라이맥스가 의외로 너무 쉽게 꺼져버린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분명 선명한 장점을 가진 소설이다. 시간과 환생을 다루는 상상력을 촘촘한 규칙과 조직 설정으로 확장시키고, 인과와 도덕, 기술 발전의 윤리를 천천히 곱씹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이디어 소설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인물과 플롯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한 번 구축된 세계관 안에서 시간을 여러 방향으로 비틀어 보려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따라서, 이 소설은 시간·환생·평행우주 같은 테마를 좋아하며 빠른 전개보다 느린 호흡 속에서 세계관과 아이디어를 음미하는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Speculative Fiction(사색적 허구)답게 서사의 탄탄한 긴장감보다는 설정과 철학적 질문을 따라가며 생각하는 시간을 즐기는 독자라면, 느린 전개와 다소 밋밋한 인물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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