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처럼 “나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 법”을 이야기하는, 가볍지만 꽤 도발적인 자기계발서다. 처음에는 “쉬운 구어체 영어로 쓰였다”는 말만 듣고, 솔직히 말해 영어 원서를 날로 먹어볼(?)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한 달 동안 천천히 읽어나가 보니, 일상적인 표현과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익히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내용의 깊이와는 별개로 영어 원서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에게는 ‘구어체 영어 교재’처럼 활용해도 괜찮은 책이다.
내용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함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타인의 생각·감정·행동을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이야기를 “Let Them(그냥 두자)”과 “Let Me(나는 이렇게 하자)”라는 두 문장 구조에다 거의 다 집어넣어 버린다. 남들이 어떻게 하든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두고, 그 대신 지금 여기에서 내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책 전체에 걸쳐 반복하다 보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시선에서 한발 물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뭘 선택할 건가?”라는 질문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복잡한 이론 대신 알기 쉬운 구조를 계속 되풀이하는 방식이라, 이미 머릿속이 복잡한 젊은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고 실천하기 한결 수월한 편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스토아 철학을 아주 현대적인 영어와 사례들로 가볍게 요약해 놓은 입문서를 읽는 느낌이다.
이 단순함은 곧 ‘마음이 좀 편해지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가족이 내 연애를 못마땅해하든, 동료가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든, 책 속 화자는 계속해서 묻는다. “그건 그들의 문제고,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타인의 판단과 기대를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내 반응과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다시 또렷해진다. 저자 본인이 바로 이 “Let Them”이라는 간단한 구호 하나로 특히 미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결국 경제적 성공까지 거둔 인물이라는 점도 책의 설득력에 어느 정도 힘을 보탠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기계발서들이 여전히 잘 팔린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어 온 입장에서 보면, ‘그냥 두자’는 조언을 아주 새로운 통찰이라며 떠받들기는 어렵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내가 어쩔 수 없는 건 내려놓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자”는 말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오래된 격언에 가깝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초반부에 거의 다 제시되고, 이후 장들은 그 메시지를 다양한 사례와 일화로 반복해서 변주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미움받을 용기』나 대중적인 스토아 철학 입문서를 읽어 본 독자라면, 문제의식과 제안의 방향이 아주 새롭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이 정도 내용이 한 권의 책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저자를 일약 스타 강사로 올려놓을 만큼 혁신적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표절·아이디어 도용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쪽 온라인 기사와 칼럼들을 보면, 멜 로빈스가 책과 강연에서 전면에 내세우는 “Let Them/Let Me” 구도가 사실은 작가이자 시인인 Cassie Phillips가 2019년에 쓴 시 「Let Them」과, 그 시가 2022년 무렵 SNS에서 퍼져 나가면서 만들어낸 ‘Let Them’ 흐름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시는 문신 문구와 각종 용품, 자기계발 글귀로 재사용되며 일종의 작은 운동처럼 확산된 바 있다. 필립스는 자신의 시와 로빈스의 책·강연 사이에 표현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최소한 출처 표기와 크레딧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로빈스는 그 시를 알지 못했고, 자신의 아이디어는 자녀와 나눴던 대화와 개인적인 고민, 따로 해 온 조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한다. 아직 법적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로빈스가 “Let Them”이라는 표현을 상표로 등록·보호하려 했던 점, 그리고 책과 오디오북 어디에도 필립스의 시나 선행 사용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 때문에, 독자로서는 이 구호가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인지, 혹은 이미 떠돌던 문장을 비교적 세련되게 재포장한 결과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 보게 된다.
실천 단계에서도 한계는 분명하다. 책은 “가족이 내 연애를 싫어하게 두자”, “친구가 나를 오해하게 두자”처럼 다소 과감한 문장들을 앞세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와야 할 질문들, 이를테면 현실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어디까지는 설명해 보고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거리를 둬야 하는지, 정말 끊어야 할 관계와 버텨 봐야 할 관계를 어떻게 구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그냥 두자”는 메시지가 어떤 독자에게는 책임 있는 자기 돌봄이라기보다, 불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핑계처럼 들릴 위험도 있다. 타인의 행동을 무조건 내버려 두는 태도가 정작 지켜야 할 소중한 관계에서 필요한 대화와 조율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짚어볼 지점은, 저자가 자신의 개념에 ‘이론(theory)’이라는 이름을 직접 붙였다는 점이다. ‘Let Them’이 단순한 생활 조언을 넘어 학문적 의미의 ‘이론’으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핵심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그냥 둔다”는 것인지, 그로 인해 마음가짐과 행동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어떻게 관찰·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이어서 “이렇게 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식의 예측이 제시되고, 실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장기 관찰을 통해 그 예측이 검증되어야 한다. 다른 연구자가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니, 재현 가능성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 ‘이론’이 잘 작동하는 상황과 사람의 범위, 즉 적용 가능성과 한계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 효과가 크고, 어디서는 약한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작동 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타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줄이면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지고, 아낀 에너지가 자기 선택과 실행으로 옮겨 간다는 흐름을 나름의 틀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연구와 결과가 논문 형태로 공개되고, 동료 연구자들의 평가를 거쳐 여러 연구를 종합했을 때도 일정한 효과가 꾸준히 확인되어야 비로소 ‘생활 꿀팁’이 학문적 의미의 ‘이론’에 가까워진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저자가 책 제목에 ‘이론’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장 학문적인 이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중서를 홍보할 때 ‘이론’이라는 단어를 아이디어나 원칙을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으로 쓰는 일은 흔하고, 그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학계에서 말하는 ‘이론’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개념 정의, 측정 가능성, 반복 검증, 작동 원리, 적용 범위, 동료평가와 누적된 증거까지 갖춘 체계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Let Them Theory』라는 제목은 실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자기관리 요령’이나 ‘생활 조언’에 더 가깝고, 엄밀한 의미의 학술 이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마케팅과 대중적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이론’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매력적인 포장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적 맥락에서라면 ‘이론’보다는 ‘법칙’, ‘요령’, ‘실천법’ 정도로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책을 펼치면, 제목이 주는 과장된 기대와 실제 내용 사이의 간격에서 느끼는 실망은 조금 줄어들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불필요한 죄책감과 타인의 기대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는, 단순하지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정신적 도구를 제공한다. 동시에 영어 원서를 큰 부담 없이 읽어 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구어체 영어를 익히기 위한 읽기 자료로도 충분히 쓸 만하다. 반면, 인생에 대한 깊은 조언이나 학문적 엄밀성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메시지가 다소 얕고 반복적일 수 있으며, 제목이 내세운 ‘이론’이라는 표현도 학술적인 이론이라기보다 잘 만든 구호에 가깝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책은 “삶을 통째로 바꾸는 혁신적인 통찰”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진실을 다시 한번 또렷한 문장으로 확인시켜 주는, 잘 팔리는 자기계발 구호의 한 사례로 읽는 편이 더 공정한 평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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