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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에 바라본 삶 - 시대의 지성 찰스 핸디가 말하는 후회 없는 삶에 대하여
찰스 핸디 지음, 정미화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평점 :
이제 은퇴가 점점 가까워지니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교직이라는 긴 여정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정년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그동안 익숙했던 일상이 서서히 형태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 같다. 교무실 책상 위 달력을 넘기다가 ‘아 이제 정말 몇 년 남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괜히 미묘한 정적이 마음 안쪽에 자리 잡곤 했다. 이런 시기에 읽게 된 이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조언을 건넨다. 아흔이라는 나이는 멀리 있는 숫자 같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통찰은 오히려 지금의 내 고민을 깊이 건드린다.
저자 찰스 핸디는 조직·일·커리어의 변화를 ‘철학적 언어’로 풀어낸 아일랜드 출신 경영사상가로 알려졌다. 대기업 중심의 평생직장 모델이 흔들릴 것을 일찍부터 짚으며, 오늘날의 프리랜서/프로젝트형 노동, 유연한 조직, 의미·목적 중심의 일 같은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들을 널리 퍼뜨렸다. Shell에서의 기업 경험을 거쳐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활동했고 이후 작가·강연가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넓혔다.
저자의 열아홉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 책은 분명 그의 저서 중 가장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중요한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장 ‘묵직한’ 책일지도 모른다. 그는 2024년 12월,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큰 상실이었겠지만 동시에 삶과 일, 비즈니스에 대해 인간적이고도 선견지명 있는 통찰을 평생 남긴 데 대한 고마움도 컸을 것이다. 그는 조직이 지닌 답답하고 우울한 현재를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바꿀 수 있는지를 꾸준히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이 책의 끝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낮춰 말한다. “나에 관해 남는 것이라고는 어딘가에 실린 추모 기사와 몇 장의 사진,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추억뿐일 것”이라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비이성의 시대(The Age of Unreason, 1989)』, 『텅 빈 우비(The Empty Raincoat)(미국에서는 『역설의 시대』, 1994)』, 『굶주린 영혼(The Hungry Spirit, 1998)』 같은 책들이 남아 있다. 여기에 그의 강연까지 더해지며 그는 ‘경영 구루’로 알려졌고, 본인은 ‘사회철학자’라는 표현을 더 좋아했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철학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특히 스토아 철학이 많이 등장하고 영성도 다룬다. 아일랜드에서 대주교 보좌 성직자의 아들로 자란 성장 배경이 말년에 다시 울림을 만든 듯하다.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신에 대한 의심을 솔직히 털어놓다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혼자 떠나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도와줄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다고.
그가 말하는 좋은 경영과 통솔력은 결국 한 가지로 압축된다. 사람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제로 쓰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 비즈니스의 경직된 관행을 겨냥한 비판도 여전하다. 많은 리더가 보이는 자기중심성, 사익 추구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는데 그 대상은 도널드 트럼프까지 포함된다. 그는 “조직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운영하라”고 말한다. 또 직원들에게는 “긍정적으로 기여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쉬운 길인 “부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경영과 통솔력이란 “사람 안에 있는 선물을 찾아내 그걸 쓰게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주 언급하는데, 특히 아내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엘리자베스는 오랫동안 그의 비공식 에이전트이자 홍보 담당자였고, 대화로 부딪치며 생각을 다듬어 준 토론 상대이기도 했다. 아내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반적으로 그는 삶의 끝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냈다는 사실에 오히려 담담하게 놀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맞춰 살려고 했고, 독자에게도 그 기회를 허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자가 나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특히 흥미롭다. 그는 신체가 늙어가는 속도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는 다르다고 말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마음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향해 미세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 경험과 정확히 겹치는 말이었다.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기술 변화가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외국어를 배우고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부자연스럽다거나 민망한 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나이 듦을 괜히 ‘감춰야 할 변화’처럼 여겼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성취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교직에서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숫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성적표, 평균, 수행평가, 입시 결과, 등급. 학생들에게는 “점수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계속해서 수치로 평가받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순간들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다시 한번 교사로서의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학생과 나눴던 짧은 대화, 동료가 건넨 한마디, 뜻밖의 감사 인사. 이런 장면들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기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꽤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일이라는 것을 직책이나 급여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자기 능력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쓰는 모든 활동이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은퇴 이후의 삶을 ‘공백’으로만 바라보던 내 생각을 바꿔 놓았다. 학교를 떠나도 여전히 누군가와 지식을 나누거나, 작은 모임을 만들거나, 배움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다. 글을 쓰는 일,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는 일, 새로운 취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일 등 일의 형태는 달라질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은퇴 후의 시간이 ‘잃어버릴 시간’이 아니라 ‘다르게 채울 수 있는 시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관계의 재구성에 대해서도 중요한 조언을 남긴다. 교사로 지내는 동안 내 관계의 대부분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되었다. 퇴직을 앞두고 그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은퇴가 관계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지도를 다시 그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뤄 두었던 가족과의 시간,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 취미 모임에서 만날 사람들, 새로운 배움의 공동체 등이 앞으로의 관계를 채울 수 있다는 그의 관점은 현실적이면서도 긍정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세며 불안해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은퇴를 앞두고 ‘앞으로의 시간’을 계산하듯 바라본 적이 많았는데, 그의 조언을 읽으며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 시간의 양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은퇴 후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데 힘을 얻을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은퇴를 앞둔 교사인 나에게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야를 넓혀준다. 은퇴는 단절이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며 그 과정 안에서 일도, 관계도, 시간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의 시간이 막연한 빈칸이 아니라 아직 쓰지 않은 페이지처럼 느껴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인생의 새 공책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저자의 조언은 결국 이런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제부터는 자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음 장을 써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