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사람꽃이 피었습니다 - 김현진의 학교 인권 이야기
김현진 지음 / 에듀니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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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년간 교사 생활 이후 전문직인 장학사로 전직하신 선배 교사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와 가벼운 마음으로 술 한 잔 나누듯 공부를 잘했던 가난한 집안의 딸로, 대차고 올곧으면서도 아이들과 지내는 게 더없이 행복한 교사로, 고부 갈등으로 첫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 후회하는 엄마로서 지나온 인생과, 오늘날 몸살을 앓고 있는 교육 현장의 이야기 그리고 인권과 교권 등 교육계가 앞으로 진정 바라보고 개념을 세워야 할 것들에 관해 소탈한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저자는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과 교사들의 교권을 말하지만 그럴 수 있으려면 정작 학교 내부적으로 교사들 간에 어떤 이야기든 자유로이 말할 수 있고 의견이 수렴되는 민주적인 장치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상 학교야말로 관리자와 평교사, 교육자와 피교육자 관계라는 일방적 특수성으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장 힘든 집단이 아닐까 싶다. 모 연구에 의하면 기업체와는 정 반대로 사회 변화의 속도에 가장 대응이 늦는 정부기관 및 관공서 부류에 속한다고도 한다.

 

교사들이라면 학생들과 부대끼는 생활에서 오는 모든 희로애락의 요소를 익히 알 터이지만, 저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애로사항을 매우 잘 이해하며 위로와 공감을 나누고 있다. 일례로 교대로 진학하기 위해 학창시절 말 그대로 언행이 타의 모범이어야 했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공부가 어렵거나 행동이 거친 학생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이런 자기 틀에 갇혀 학생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이미 정해놓은 답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점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두게 된 지금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보고 들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러한 맹점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사와 학생으로 지식을 나누고 배우기에 앞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학생들은 학교 밖의 일로 학교에서도 존중받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한편 교사들은 30여 명의 각기 다른 작은 우주를 일일이 상대하느라 엄청난 감정 소모가 요구된다. 일방적으로 감정소모 및 육체적 노동 강도로 인하여 담임교사를 기피하는 절대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운 직업이라는 오해 속에 어느덧 철밥통으로 불리며 공공의 적이 되어간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학교 인권이다. 인권의 본질을 쉽게 말하자면 교사와 학생 모두 사람이고 그냥 사람으로 봐주는 것, 교사와 학생이 서로 만남의 시간을 갖도록 보장해 주는 것 아닐까. 건강한 생계형 교사였음을 표방(?)하는 저자는 그러나 학생들이 마땅히 국가로부터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의 올바른 개념과 제대로 된 수업을 보장받을 교권의 차이를 잘 설명하면서, 힘들고 상처받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입장에 처한 선생님들을 위한 장학사가 되고 싶었음을 토로하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저자를 내 곁에도 있어 주었으면 좋았을 선배교사의 전형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나도 어느 날 그러한 모습의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구에 왠지 뭉클한 여운이 남는다. ‘선생님, 당신은 참 멋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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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수포자를 위한 수학 선천적 수포자를 위한 수학
니시나리 카츠히로 지음, 이진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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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대학 4학년 때 옆집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친구 동생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러 갔다가 속절없이 도망 나왔던 아픈 기억부터 떠오른다. 나 자신이 중학생 되던 시절부터 수학 포기자였음을 잊고 살았다. 아마 집합 부분이었던 것 같다. 교집합, 부분집합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이후로 수학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수학 그까짓 걸 배워서 어디에 쓰느냐며 몇십 년을 살았고 내 집 마련하느라 은행 대출이자 계산하던 게 산수의 전부였다. 이만하면 수학은 버렸어도 영어는 건졌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문과생으로 손색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 같은 장기 수포자를 위한 수학 안내서가 나왔다. 누워서도 읽는 수학책이고 이 책을 읽은 문과생이 자기 딸에게 중학 수학을 가르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수학에서 말하는 논리적 사고를 저자는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로 구별해 놓았다. 첫 번째 설명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아~! 그래 내가 수학을 포기한 이유는 바로 저거였구나 싶었다.

 

자기 구동력=사고의 엔진.

단계적 사고력=끈질기게 생각을 이어가는 힘.

의심력=자신의 판단과 답을 의심하는 힘.

전체 판단력=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처럼 사물의 전체를 파악하는 힘.

상황 판별력=복잡한 과제에서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정확하게 판단하는 힘.

점프력=번뜩임 또는 엉뚱한 발상.

 

자기 구동력은 수학을 배우는 목적을 이해시켜 학습자가 자발적으로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라 했는데, 수포자가 된 원인이 바로 이 지점이었음을 40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았다. 집합을 처음 배우던 날 저런 건 대체 왜 배우는지, 배워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불행히도 나는 이 의문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얻지 못하였고, 어린 학습자일수록 꼭 필요한 동기부여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수학에 대한 흥미 상실이 반드시 수학적 능력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책의 저자처럼 단 6일 만에 중학교 3년 과정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문과 외길 인생을 걷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진로의 폭이 훨씬 더 넓어져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으리라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어딘가에 써먹을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써먹으려 들지 않았을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애써 수학을 외면하고 살아왔지만, 수학이란 과목의 위력은 논리적인 사고방식, 즉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었다. 인생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차분히 풀어나가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마치 방정식 연산과 닮아있으니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수학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지만 인생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일 뿐. 차분히 끈덕지게 정확한 답을 추구하는 생각의 힘이 나에게는 아직도 모자람을 일깨워준 책, 감사하다.

수학을 사용하면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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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진화, 신의 출현 - 초기 인류와 종교의 기원
E. 풀러 토리 지음, 유나영 옮김 / 갈마바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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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처럼 어릴 적 공짜 사탕과 과자를 주는 아주머니(?)들을 따라 들어갔던 교회당에서 처음 들어 본 하나님. 고등학교 목사님을 교목이 아닌 선생님으로 불렀다고 엉덩이에 불이 나던 날. 기독교계 학교라 의무 수강하지 않으면 졸업시켜주지 않던 대학교의 채플. 논산 훈련소에서 반강제 사역이 싫어 시원한 그늘에서 초코파이를 얻어먹기 위해 나섰던 불당과 성당. 이와 유사한 종교에 얽힌 기억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법하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대체 종교가 뭐길래 내게 이런 강렬한 기억들을 선사하는 걸까?’ 하는 질문은 항상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인류의 인지 능력 진화와 궤를 함께하는 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1)과 농경문화의 발흥에 힘입은 신의 출현(2)을 다루고 있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생 인류가 진화하기까지의 뇌 구조와 기능을 그림으로 제공하였으며, 신의 기원에 앞서왔던 대안적 가설들을 짧고 이해하기 쉽도록 요약하여 깊은 통찰력과 사고의 자극으로 이어지도록 결론을 맺고 있다. 극도의 단순함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았다.

 

<1부 신이 만들어지기까지>


1. 호모 하빌리스 : 더 영리한 자아. 230~140만 년 전, 이전 유인원보다 뇌용량 50% 증가, 소수집단 먹이활동, 깬 석기 사용, ‘자기의식못 갖춰 이성 미발달 상태.


2. 호모 에렉투스 : 인식하는 자아. 180~30만 년 전, 최초로 불을 사용, 정교한 무기와 사냥기법, 아프리카에서 북방으로 이동, 집단생활은 곧 자기 인식의 발달.


3. 옛 호모 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 공감하는 자아. 2세 아동 발달단계, 23~4만 년 전, 현생 인류보다 큰 체격, 불을 사용하여 추위에 적응, 동굴에 살며 집단사냥, 동료를 돌보고 타인에 공감, ‘자아 인식의 단계에 돌입.


4. 초기 호모 사피엔스 : 성찰하는 자아. 6세 아동 발달단계, 10만 년 전, 조직적인 집단생활, 조개껍데기 치장, 몸에 맞는 의복, ‘자기객관화이차순위 마음심리상태로 자기 성찰 가능.


5. 현생 호모 사피엔스 : 시간 속의 자아. 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주 유럽으로 진출, 동물의 뼈로 만든 도구 사용, 장신구와 부장품 세련됨, 동굴 채색벽화 등 다양한 예술행위, ‘자전적 기억능력으로 삶의 지평 확대, ‘죽음에 대한 인식 발달과 매장 의식.

 

<2부 신의 출현>


6. 조상과 농경 : 영적인 자아. 12천년 전, 농경 정착 생활로 인구 증가, 동물 가축화, 기초적 언어 사용, 원시 종교형태인 토템 등장, 잉여 농산물로 위계질서 발생, 조상신 숭배로 조상의 혼령이 곧 신.


7. 정부와 신들 : 유신론적 자아. 65백 년 전 최초 기록된 메소포타미아 물의 신 엔키’, 다양한 부족의 인격신 등장, 부족 국가에서 도시국가로 발달 과정에 승리자의 신이 지배, 28백 년 전 현생 모든 종교가 등장, 유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등장, 유대교는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분화. 인류 창조-대홍수-바벨탑은 메포소타미아 종교에서, 유일신-동정녀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차용.


8. 신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이론들

- 사회적 이론 : 에밀 뒤르켐의 신과 종교의 기원은 사회구조와 제도에 기인함.

- 친사회적 행동 이론 : 누군가 나를 지켜보니 선한 행동을 한다는 마음이론에서 발생 주장.

- 심리적 이론과 위안 이론 : 프로이트의 심리적 위안 욕구에서 신과 종교 발생.

- 패턴 추구 이론 : 종교가 지적, 인지적 위안을 줌.

- 신경학적 이론 :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유체 이탈 등 다양한 비현실적 체험 증명.

- 유전적 이론 : 신과 종교 신봉은 유전적 요인이라 주장하나 곧 반박당함.

 

전 세계의 종교와 신화는 유일신 또는 보통의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가르친다. 한편 이를 긍정하지 않는 무신론자, 인본주의자 혹은 물질주의 비평가들은 종교가 인간의 발명품이라며 처음부터 신학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논박에, 저자는 첨단 신경과학 연구자료와 더불어 깜짝 놀랄만한 답변으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 종교적 신념은 진화의 부산물이며 신의 기원은 인간의 두뇌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의학 연구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신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에 진화론적 답변을 하기 위해 신경과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및 종교적 연구물들을 풍부하게 제공한다. 이에 관련된 본문 말미의 주석만 해도 무려 60페이지에 이른다. 호모 하빌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호미닌 계열의 2백만 년 기간에 걸쳐 일어난 다섯 차례의 발달단계를 지적하면서, 그는 약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자전적 기억(우리 자신을 시간의 앞뒤로 투영하는 능력)이 발달의 정점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특징이 인류 각자에게 신의 개념을 상상하는 능력을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이로써 호모 사피엔스는 경쟁적 우위를 부여하였으나, 한편으로 죽음의 대안인 사멸 너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한 신의 개념이 초기 인류의 마음속에 완전히 형성되는데 좀 더 많은 요인이 필요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추가 요인은 약 7천에서 1만 년 전의 농업 혁명 기간에 발흥하였고 동식물 길들이기뿐 아니라 신격화의 바로 전 단계인 조상신 길들이기로 이어졌다. 기본적으로는 찰스 다윈이 제안하였던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신의 출현이 여러 혁명적 요인에 의한 우연한 결과임을 보여주는 넘치도록 많은 증거를 열거하고 있다. 고대 두개골 유물부터 두뇌 영상, 영장류 동물학 및 아동 발달 연구에 이르는 자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새로운 인지 능력이 새로운 행동을 탄생시켰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는 어째서 신은 하필 그 당시에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을 의복, 예술, 농경 및 인지발달의 도시화 등의 고고학적 발견물에 연결해가며 신경생물학적 자료를 상세히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종교적 믿음을 두뇌 발달의 불가피한 결과물로 보는 동시에, 분명하고 확인 가능한 진화론적 신경과학의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종교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고 있다. 지금의 추세로 인류의 이성적인 뇌가 계속 진화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획기적인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숭배가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종교의 유물처럼, 결국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두뇌 속에서 만들어진 신의 존재를 스스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음을 예견한다. 요즘처럼 종교의 신성성을 빌어 혹세무민에 앞장서고 사회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존재일 뿐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족이기는 하나, 무수히 많은 인류 진화의 증거와 자료로 말하는 과학을 전공씩이나 하고도 신의 존재와 창조설을 믿으며 과학의 증거를 부정하는 분들이 혹시라도 주변에 있다면, 더욱 넓은 시야의 확보를 위해 이 책을 필독 권장해 주시기를 조심스럽게 부탁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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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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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만 첫 등교 날 지각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학교는 인생이고 등교 첫날은 바로 오늘이다. 철학 시간에 내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실체를 세네카, 에피쿠로스, 몽테뉴, 실러 등 여러 철학자의 시선에서 들추어 주고 있다, 아무리 철학의 거장들이 도와준대도 마음을 열고 듣지 않으면 그들의 말을 온전히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 수업은 잘 들어야 하지.

 

고등학교 이후로 나에게 철학은 (당시의 과목명은 윤리였다) 등장인물이 많고 사상이 복잡한, 이것저것 외워야 하는 시험 대비 암기과목이요 서양 철학의 계보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읊어주시던 내용은 하나도 이해를 못 하면서 그저 암기만 했을 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모양새는 오늘날까지도 별반 다를 바 없어서 철학은 막연하고 어렵다는 선입견과 그로 인해 생겨난 방어기제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게다가 저자가 특별히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내놓은 책이 아니므로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으리라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나이 어린 소년도 철학하기를 꺼려서는 안되고, 나이 많은 노인도 철학하기를 피곤해해서는 안 된다. 영혼의 건강을 얻는 데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p40, p283)

 

철학이라는건 언제나 삶의 지침이며 쉬운 언어로 생활 속에 배어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아무래도 생각 짧은 나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편이었지만 위 에피쿠로스의 인용처럼 언제 어디서나 철학을 권장하는 저자가 건네주는 메시지는 이렇게 읽힌다.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먹고 사느라 바빠 자신이 어디로 쓸려가는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어먹고 사시나 본데, 이참에 한 번 돌아보고 가시게. 그래 봐야 겨우 다섯 가지야. 세상일에 쫓겨 닦달당하는 자네 영혼, 단단히 붙잡아 매시게. 세상 무섭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눈 크게 뜨고 잘 보라고. 죽음? 그건 삶의 연속이야 열심히 아름답게 자신에게 충만하게 살다 보면 무서워할 겨를도 없을걸. 물질에 얽매이지 말고 숭고한 정신, 자네 영혼을 소중히 여겨 봐. 남들 질투할 필요 없어. 없는 것은 곧 채워지고 있는 것은 또 비워지지. , 친구는 있나? 좋은 친구 하나 만들고 가. 서로 돕고 비밀도 나누고 죽을 때까지 믿고 가라고. 3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보면 인생이 좀 덜 힘들지. 인생이 한바탕 장난이고 유희야 그러려니 생각하고 자신을 놓아주라고. 그게 삶의 아이러니이긴 하지 힘들지만 즐길 수도 있는 거야. 하루하루를 신성하게 모셔 허투루 보내지 말고. 너무 말이 많은 거 아니냐고? , 그렇다고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기왕 사는 거, 잘 알고 가면 인생이 더 즐겁지 않겠나. 언제냐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지. 이렇게 해서 결국 뭘 얻느냐고? 그거야 자네 영혼의 평화지. 많이 듣던 말 있을 거야 inner peace라고 쿵푸팬더 시푸의 대사 있잖나. 비어있는 용 문서를 생각해봐!”

 

나처럼 생각이 단순한 독자에겐 설명이 단순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보았다. 철학 수업의 결론은 바로 이러하다. 내 마음을 지키고 못 지키는 건 결국 자신의 마음 먹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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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도망친 스물아홉살 공무원
여경 지음 / 들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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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공무원이 선망의 직업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건 경기가 안 좋고 살기 팍팍한 시절이면 어김없이 철밥통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으로 칼 퇴근과 4대 보험, 복지카드 및 신분이 보장되며 무엇보다 특별히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퇴임 후 공무원 연금이 있어 웬만하면 뿌리치기 힘든 직업. 개인의 자발성이나 창의성보다는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특성상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있는 건 안 비밀.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남들의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무원 신분을 어렵사리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던지고 도망을 친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녀는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가 공무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관심도 많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던 유형이었다. 틀에 박힌 대로 움직이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목표를 세운 후 달성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자기주도 학습자였다. 심지어 적성검사를 받아보면 매년 기업가 또는 활동가의 특성이 지배적이었지만,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주리라는 기대감은 애당초 접어두고 각자도생의 사회임을 파악하였고 국가는 망하지 않을 테니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결정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는 아무런 특출한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흙수저인 자신에게 남은 기회라고는 공무원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많은 젊은이들처럼.

 

, 죽을 만큼 힘들었던 공부를 뒤로하고 드디어 저자는 공무원의 세계에 들어선다. 자신이 그토록 노력하고 원했으니 성취감에 행복해야 하겠지만,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마치 물에 뜬 기름처럼 여전히 어딘가 있을 그 무언가를 찾고 있던 자신을 발견한다. 유일한 즐거움은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여건이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책을 읽고 필사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이 습관으로 곧 지방에서 서울로 독서모임에 오가게 되고 독서를 통해 서서히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구의 크기와 개수를 넓혀간다.

 

배움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타이거 우즈의 전처 엘린의 졸업사 연설처럼, 저자는 독서와 필사를 통해 배움의 영역을 확장해가며 모든 분야의 고른 독서로 자신의 내면을 더욱 잘 들여다보게 된다. 한 가지 공부를 하더라도 해당 분야의 책 한권을 쓰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제대로 공부임을 알게 된다. 자신을 찾기 위해 반드시 해외여행을 가고 유학을 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자신을 찾는 길은 자신의 가슴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드디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생각은, 대한민국은 왜 젊은이들에게 방황할 시간과 자유를 허락하지 못했나 하는 점이었다. 청소년이 십대 초반부터 자기 진로를 설정하고 매진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심지어 경제력이 확보된 30대라 하더라도 여전히 자기 꿈을 찾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는지. 따라서 기성세대와 사회는 청년들이 방황하며 꿈을 찾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록 저자처럼 모든 청년들이 서른 살 무렵 일찍(?)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건 아니겠지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일찍 발견할수록 그 인생은 분명히 행복할 테니까.

"나는 당신에게 성공을 위한 확실한 공식을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실패를 위한 공식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_허버트 바야드 스워프, 최초의 퓰리쳐상 수상자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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