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쯤에서 나를 만난다 -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16가지 인생철학
박돈규 지음 / 더좋은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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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담당 신문기자가 열여섯 명의 인사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아는 인물도 있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름도 있다. 단 한 명도 독특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겹치는 줄거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식은 서로 닮았다는 점이다.

 

바둑 챔피언 조치훈

평생 바둑 하나만 바라보고 사느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관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였음을 후회한다.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발레리나 강수진

영광스러운 오늘은 지루한 반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연약하지만 끝까지 버텨내는 근성으로 강철 나비라는 별명을 얻음. 하루하루가 복권에 당첨된 기분으로 살자.

 

가수 장사익

열다섯 번의 이직 후 얻은 마지막 직업이 가수. 진정한 위로는 같이 울어주는 것. 사소한 일에도 죽을힘을 다하면 길이 트인다. 속 마음을 울부짖는 것 같은 그의 노래 꽃구경을 유투브로 듣다가 작고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다. 다행히도 혼자여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100세의 현직 철학자 김형석 교수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면 행복하다. 나를 잊는 순간 나는 타인에게 각인되는 것.

 

야구선수 박찬호

실패도 자산이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승리가 아니라 패배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봐야 인생을 이해한다. 인생이란 얻어맞으며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냐는 것으로, 포기만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

 

안과의사 공병우

까꾸로 살라우. 한국어 음성을 문서로 변환시킨 일대 혁명의 시초인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다. 편안한 삶은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다. 안이하게 살지 말라.

 

사회봉사자 가부라키 레이코

WHO 사무총장 이종욱의 처. 사람과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서로 이해하는 게 행복이다. 인생은 빌린 것.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죽음은 축복이다. 어차피 죽는다고 생각하면 크고 작은 근심은 대부분 무의미하다. 죽음 덕분에 감정이나 진짜 바라는 것에 좀 더 용감해질 수 있다.

 

탈북화가 선무

중국 그림 전시회에서 중국 당국으로부터 작품을 압수당한 일을 계기로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를 이해하지 못함. 예술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언론인 알파고 시나

자유분방한(?) 이슬람 교인이자 터키 출신 언론인으로 경계를 넘은 사람 특유의 넓은 시야와 여유, 균형감각을 지님.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나 개그콘서트 등에도 진출하여 활약 중. 한국인들은 웬만큼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시동조차 걸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불안과 위험에 취약한 사회상과 현실성이 떨어지며 지나치게 학문화된 공부의 개념을 되돌아보게 함.


 

캄보디아 댁당구선수 스롱 피아비

가난한 고국에서 볼 때 한국은 기회의 땅인데 왜 노력하지 않고 안 되는 이유부터 찾는지? 불쌍한 고국의 동포들을 도우려면 당구로 성공해야 가능하다는 목표의식을 지님. 이 사회의 최고 약자라 할 수 있는 국제결혼 이민자로 살며 어려운 현실에 부딪혀도 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시각장애인 최정일 조현영 부부

장애인 수급자로 편하게 사는 요령보다는 힘겹지만 스스로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 보이지 않는 마음을 비장애인에게 건넬 줄 아는, 봉사하며 이타적인 삶에 행복해하는 사람들.

 

문장 수리공 김정선

책마다 판권 페이지가 있지만 저자, 역자, 편집자, 디자이너와 달리 교정자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교정 교열은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책에 흔적이 드러나면 안 되는, 있지만 없는 존재이다.

 

호통 판사 천종호

비행 청소년을 내버려 두어 성인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범죄 재발 방지에 노력하는 판사님. 떨어지지 않는 재범율을 염려하며 저출산 문제 해법의 하나로 사회 전체가 아버지처럼 나서야 한다. 소년 재판을 떠나더라도 자신은 늘 아이들 편에 서리라고 다짐.

 

작가 무라타 사야카

어렸을 땐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세상에서 버려지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쓸 만한 도구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됨. 미혼 독신의 편의점 직원으로 19년째 일하며 쓴 글로 유명 작가상을 받고 거액의 상금도 받았지만, 수상 다음 날도 여전히 편의점에 출근하여 일상과 똑같이 지냄. 세상의 편견에도 자유로이 사는 사람들을 보며 편견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소설을 씀.

 

유니크한 배우 유해진

주연과 조연 사이 애매하게 걸쳐있는 자신을 비관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존재라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좀 더 독특해지는 자신이 되자고 생각함. 하찮은 인생이란 없다는 말에 끌려 성공이 아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 애쓰는 배우.

 

저자는 각기 다른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행복감의 원천을 살펴보는 동시에, 이들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이나 사실들을 글의 앞뒤에 배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사람당 책으로 한 권씩, 열여섯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내용이지만 간략하나마 이 인터뷰 글을 통해 각 인물이 뿜어내는 사람의 향기를 맡아보시길 권유하는 바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문교양 #여기쯤에서나를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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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심리학 - 교사와 학생의 마음이 함께 성장하는
이해중 지음 / 푸른칠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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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1/3이라는 적잖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학교 그리고 그 안의 더 작은 공간인 교실이 있다. 1학기 초반 한 달 정도는 그나마 새로운 시작이라는 분위기 덕분에 교사나 학생 모두 그럭저럭 지내지만,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상승하는 봄볕 온도와 함께 아이들의 긴장감도 함께 풀어지기 시작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간직해온 본색(?)도 서서히 드러난다.

다행히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장을 의식한 듯 성숙하고 자제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녀석들의 본질은 초등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3 남학생들이라 덩치가 커지고 말솜씨도 늘어 조금 세련된 초등학생이랄까? 점심 급식을 줄 안 서고 조금이라도 빨리 먹겠다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공부를 저렇게 하면 참 훌륭하겠다는 바람만 반복한다.

예전에는 수업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들의 ‘문제적’ 행동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요즘은 ‘낯선’ 이란 말로 바꿔 쓰는 추세이다. 용어 자체를 새로이 적용한다는 것은 학생들을 통제와 평가의 대상에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반가운 시도로 보인다.

교실에서 30여 명의 학생과 혼자뿐인 교사를 놓고 보면 수적으로 당연히 교사가 약자인 셈이다. 이를 만회하고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학기 초라는 시기적인 특성상 교사와 학생 간에 인간적 만남으로서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위계와 질서유지가 먼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연배가 좀 있는 교사라면 3월 한 달간은 양복 정장에 웃음기 거둔 표정 관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익히 아실 터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은 심리학이지만 교실에서의 일상 대화를 지면에 옮긴 정도이며, 저자는 이 책을 학생들의 학습과 성장을 관찰하는 법(1장), 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살펴보고(2장) 학생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나를 만나는 법(3장)으로 구성하였다.

이 책은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부대끼며 생길법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편지글을 주고받는 형식을 취했다. 각 사례 말미에는 쉽게 풀어쓴 심리학 용어를 제시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편지를 보내오는 학생이 초등학생이라는 설정을 보니, 곧 입대 신검을 앞둔 형님 같은 고등학생들에게도 내용이 과연 유용할는지 궁금했다. 다행히도 덩치 큰 초딩(?)들이라도 그리 복잡한 존재들은 아니니 그런대로 쓸모를 발견할 수 있겠다.

교사로서의 원초적 본능이랄까, 연수나 공부를 마칠 때마다 항상 궁금한 점은 바로 현장 적용성 여부이다. 그리 어렵달 것도 없는 심리학 입문 개념의 책 내용을 익힌다고 해서 바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낯선 행동을 비롯하여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내공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다가오는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을 만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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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규칙은 관계 중심인가? - 통제의 힘에서 자율의 힘으로 관계를 해치는 규칙에서 관계를 살리는 규칙으로
원은정.신동엽.박성근 지음 / 착한책가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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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사제 간의 관계개선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부터 달라져야.

학교로부터의 체벌과 학생 간의 거친 몸싸움이 일상다반사고부모님에게 체벌 받은 사실을 들키면 더 얻어맞던 시절을 지나 다시 학교로 돌아왔더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달라진 것이라고는 엉덩이에 매를 맞는 대신 회초리를 휘두르게 된 입장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10년쯤 전 어느 날 나 자신이 학부모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를 맞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사용하던 회초리를 모두 꺾어버렸다통제의 대상으로 보이던 학생들에게 내 자식의 모습이 겹치면서학생들이 학교에 와 있는 동안이라도 잠시 아버지나 큰 형 노릇을 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매를 들었을 때 보다 생활지도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매를 내려놓으니 아이들이 보였다주변에서 사람 달라졌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달라진게 아니라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


 

 

사례 2. 학교규칙은 미래 인재를 위한 디딤돌.

일선 경찰처럼 학교규칙을 사법(?) 적용하는 부서인 학생부에서 학교규칙 개정에 앞서 교사들에게 규칙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알려왔다이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숫자가 극소수인 점에 한 번 놀랐고,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같은 분위기의 규정에 두 번 놀랐다폭력 써클 조직 및 운영패싸움백지동맹단체휴업조직적인 부정행위 등등 검정 교복과 삭발 머리로 기억되는 추억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용어들로 학생들을 온갖 규제 속에 묶어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한편 교복 착용을 의무화한 규정과는 달리 학생들은 옷이 작아졌다는 주된 이유로 체육복이나 생활복 또는 사복까지 섞어 입는 튜닝’ 복장으로 생활하는데굳이 이러한 실정을 뒤로하고 장기간의 여론조사와 수렴을 거쳐 복장 규정을 개정하였다사실상 학생들은 규정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복장 자율화를 앞서 실천하고 있는데 규정은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말로는 미래 민주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를 키운다면서 단지 골치 아픈 민원이나 사고 무마 선에 머물 뿐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실제 도움이 되지도 않는 후진적 규정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례 3. 시대에 뒤처지는 규칙은 이제 그만.

학교도 사람 사는 사회의 축소판인지라 규칙에 저촉될 만한 온갖 잡다한 일이 벌어진다그러나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나 교권(엄밀히 말하자면 수업을 보장받는 학습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명확한 책임과 의무의 한계 없이 그 결과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이고오히려 학교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염려하여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예도 있었다그나마 최근 들어서야 관리자들의 입에 인권 교권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는 형편이고특히 정해진 법규를 따르는 국공립이 아닌 사립학교는 별도의 사립학교법 영향 아래 놓여있고 때에 따라 그 규정이 매우 자의적으로 이행되므로 학교가 학생과 교사를 보호해주리라는 기대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학교생활의 일부 단면들을 모아 위와 같은 사례를 들어보았다저자들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의 핵심은 관계를 살리는 규칙을 만들 때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관계를 염두에 두고 지향할 것인가에 있다주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단지 통제와 규제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자신을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교사 역시 실제 학교생활과는 동떨어져 지나치게 학술적인 선발기준을 통과하여 교직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생기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한 규칙을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적용받는 상황에서 벗어나하루 대부분을 머물러야 하는 힘든 학교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성장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학생다움을 구실로 정작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가려왔던 학교가이제는 학교다움을 회복하고 관계를 해치는 규칙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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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기 싫은 개 - 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팔리 모왓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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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누구나 개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를 키울 여건은 못되지만, 개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방바닥을 몇 번은 굴렀을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코드는 가족 같은 개와 야생동물을 포함한 대자연을 함께 했던 저자의 유쾌한 어린 시절 추억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28년부터 대략 10년 정도 저자의 유년기이고 실제 출간된 해는 1957년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한국 동란을 겪으며 어렵게 사는 동안 저 건너 지구 반대편의 캐나다에서 저자는 대자연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살았으리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살짝 부럽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자연주의 작가로 유명한 저자의 놀라운 어휘력과 자조적 유머는, 문법에 엄격하고 완전한 언어사용을 추구하던 도서관 사서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동시에 유쾌한 어조의 농담으로 살짝 비틀어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은 미국 대공황 시기에 먼지 구덩이 시골로 가족이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시골 생활을 모르던 엄마에게 이 여행은 하나의 도전이었지만 저자에게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새로운 종류의 모험에 무수한 기회를 가져다줄 모험의 땅이었다.

 

아버지 앵거스는 직업이 사서인 반면 타고난 뱃사람으로 평야지대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엽사가 되기로 한다. 이는 당연히 새 사냥에 필요한 사냥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몸값 비싼 사냥개를 찾던 와중에 어머니는 새끼 오리를 두당 10센트에 팔러 온 시골 꼬마로부터 4센트에 강아지를 사들임으로써 지혜롭게 일을 해결한다. 비싸고 근사한 사냥개 살 돈도 굳었고 꼬마 저자가 좋아하는 사냥개도 얻었으니 일거양득인 셈.

 

명견을 원하던 아버지에게는 조금 유감스럽지만 머트라고 불리게 된 이 리트리버 바둑이가 바로 국면을 전환할 엄청난 존재였다. 사냥에 바로 투입된 건 아니지만 사냥감을 잘 물어와 내기에 이길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다. 동네 총포상에 전시된 뇌조 박제를 순식간에 물어와 사냥개로서의 물어오기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머트는 훌륭한 사냥개일 뿐만 아니라 자기 주도학습으로 스스로를 훈련하여 고양이들의 전매특허인 울타리 위 걷기를 시전함으로써 동네 고양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악취를 풍기는 골칫거리 스컹크를 쫓아내기도 하고 높은 나무와 사다리에 오르는 재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꼬마 저자에게 머트는 풍부한 상상력과 초자연적인 언어 능력을 지닌 완벽한 동료였다.

 

인물에 대한 세부 묘사는 거의 없지만 저자의 부모님에 대한 언급 역시 눈에 띈다. 하나뿐인 아들을 애지중지 키울 법도 하건만, 아무리 너그러운 부모라도 수리부엉이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야생동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생활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임에도 동물을 해부하고 방부제를 쓰도록 허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이들 세 가족이 매우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아들에게 굉장한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순수하고 유쾌한 유년 시절 저자의 추억 이야기라 독자에게는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술술 읽히는 이 책은 쉬지 않고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가독성과 흥미, 몰입도 면에서 훌륭하다. 독자가 만일 동물 애호가라면, 특히나 개를 좋아하는 경우라면 틀림없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읽게 되시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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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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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는 온통 카우보이와 카우걸뿐이고, 주일이면 동네 교회에 빠짐없이 모인 주민들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설교를 듣는 마일스 시 같은 곳에서 십 대 소녀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다. 역사 선생님이나 편의점 직원이 알지 못하게 누군가와 드러내놓고 키스하기란 더 어렵고, 하나님조차도 다른 모습의 소녀를 허락하지 않는다.

 

1989년 몬테나 주의 포트 마일스 시에서 가장 친한 친구 아이린과 키스를 나눈 어느 여름날 밤, 열 두 살의 주인공 캐머런의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감정적 혼란의 시초가 된 친구와의 키스를 계속 원했고,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첫 반응은 의외의 안도감이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픈 감정이 넘쳐 오르는 대신, 친구 아이린과 저지른 부끄러운 비밀이 세상에 드러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안도감과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죄책감은 점점 커져 자신의 감정을 갉아먹게 되고, 부모님의 사망과 이 비밀은 헤어나올 수 없는 상심과 맞물리게 된다.

 

이후 부모님의 사고 여파로 대단히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루스 이모와 구시대의 유물 같은 할머니가 캠을 돌봐주기 위해 함께 살게 된다. 이 시점부터 캠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리라 짐작한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캠은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 들키지 않고 물건을 슬쩍하는 재주, 훔친 술을 마시면서 알아낸 자신의 주량, 마리화나는 언제나 옳다는 것 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매료되면 아주 정신없이 푹 빠진다는 점이다.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던 콜리 타일러 같은 이성애자 소녀에게 빠져들면서 캠은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일스 시에서의 생활은 타인과 섞여들어 아무런 삶의 파도를 일으키지 않음을 의미하며, 특히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파도가 곧 닥쳐오고 말았다.

 

캠은 가족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한 좌충우돌의 삶을 살며 다른 여자애들과 엮이게 된다. 이미 멋진 남자친구가 있으며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매력적인 카우걸 콜리 테일러가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다. 콜리와 절친이 된 캠은 자신도 모르게 친구 이상의 것을 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캠의 열망은 곧 밖으로 노출되고 만다.

 

콜리의 남자친구가 그해 여름 멀리 떠나가 있는 동안 이들은 친구 이상의 각별한 사이가 된다. 이성과 동성 친구의 사이에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던 콜리는 자신의 가족과 교회에 이들 사이의 관계를 알리고 만다. 극도로 종교적인 루스 이모는 특단의 조치로 동성애 호감 증후군 환자인 조카 캐머론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기숙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이후의 줄거리와 리뷰는 2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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