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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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에 관한 책이라면 주제나 소재를 막론하고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책은 제목처럼 패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여 온 국제 ‘선수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이름이 한두 번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데 대해 살짝 섭섭한 나머지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일 거란 짐작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이 선수들이 경쟁을 벌여온 패권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육지-바다-하늘-인터넷으로 형성되며 변화해온 세계사의 주 무대 형성을 주도하고 구조를 유지하며 질서의 중심축에 있는 나라를 패권 세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육지 패권의 시대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농경민, 목축민, 상인, 기마 유목민 등 다양한 계층의 주인공이 등장하며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 중국 전국시대 왕조,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를 거쳐 몽골제국까지 이어집니다. 이어 바다의 패권은 해상교역과 식민지 확장 위주로 450년간 군림했던 주연 영국과 조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현재에 와서는 하늘의 패권을 두고 신흥강자 미국과 전통고수 중국이 용호상박의 형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패권을 노리게 되는 강력한 동인으로 결핍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보고 있습니다. 패자 간의 세력이 균형 상태이거나 평화로운 시기에는 교역이란 이름으로,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약탈을 자행하여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늘렸고 그렇게 해서 얻은 자원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야만의 시대인 셈입니다. 로마와 몽골 등 육지 패자와 영국과 같은 바다 패자는 급속한 영토확장과 장기간 식민지를 운영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던 반면, 미국과 중국 같은 하늘 패자는 영토확장 대신 정보와 금융으로 상대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5G로 표현되는 정보혁명과 인터넷 시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저자는 예상합니다. 주 무대의 배경과 시기에 따라 세계정세의 흐름에 따라 패권을 쥐게 되는 여건도 다르고 그 양상 역시 다르게 펼쳐지지만, 이들 패권국은 세계의 ‘주도권’에 지대한 관심 혹은 집착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권한이 있으면 의무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패권을 쥐었으면 패권국다운 품위를 유지해야 여타 국가들이 권위를 인정할 것 같은데,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언제나 이상의 반대편에서 손짓하게 마련입니다.



현재 지구라는 행성의 빅브라더를 자처하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 의무보다 권한에 집중하는 현상이 마치 500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모습을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전염병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와 지도자의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단지 전염병만의 문제가 아닌 지난 150년 넘게 쌓여온 인종차별의 대가를 치르게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패권 쟁탈전 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선진국으로 알고 있던 나라들보다 전염병에 슬기롭게 잘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제정세 동향을 잘 살펴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때로 보입니다.


이 책은 공간적 개념을 주제로 한 패권 쟁탈의 세계 역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마치 교과서를 방불케 하는 시각 자료가 풍부하여 이것들만 빠짐없이 훑어보아도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상식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당시 처음 만났던 세계사 과목을 암기과목으로 알고 아무런 이해 공감 없이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다 할 시청각 자료도 없이 흑백 인쇄된 교과서로 오로지 선생님의 설명만 듣고 이해하려 했으니 참 아쉽지요. 당시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아마도 전공 분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그의 과거를 돌이켜 보라 하였던가요. 이 책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전망을 도와줄 훌륭한 조력자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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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은 왜 고장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 - 대중을 사로잡은 글로벌기업의 스토리 전략, 개정판
자일스 루리 지음, 이정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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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의 힘

좋은 이야기의 힘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정받아 왔으며, 시대와 인종을 떠나 우리 인류는 분명 좋은 이야기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는 순수한 즐거움의 원천인 동시에 교육과 학습을 위한 강력한 도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마케팅 입문용 교과서일 뿐만 아니라 읽기 쉽고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마케팅의 핵심 원리를 살려내는, 즐거운 '이야기보따리'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과 제품의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인 셈인데, 사실 소개된 일화들 가운데 일부는 꽤 놀랍기도 하고 아하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였구나 싶기도 한데, 중요한 점은 모두 실화라는 것입니다.



2.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최근 정보화 시대의 강력한 입소문 효과로 주목받는 바이럴(자발적 소문) 마케팅처럼, 경영자와 사업가들에게 최고의 마케팅은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다시 회자되어 복고풍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아기자기한 사연을 읽으면서 과연 경영은 무엇이고 마케팅은 무엇인가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세상의 기업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일은 곧 사람에 의해 실행됩니다. 결국, 기업의 경영과 마케팅은 사람을 대하고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어야 합니다. 물론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은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에 언급되는 성공적인 기업과 제품들은 사람을 우선시하는 경영자의 철학을 반영한 결과로 읽힙니다. 회사의 이윤이 아니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훌륭한 경영철학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 진가를 발휘하기 마련입니다.



3. 감동+교훈=이야기

브랜드, 혁신, 아이디어, 실행, 리더의 다섯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유명 상표와 회사들에 관한 60개의 일화로 구성된 이 책의 각 일화는 길어야 서너 페이지 분량이라 출퇴근길 자투리 시간에도 즐거운 속도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각 일화의 끄트머리에 마케팅 관련자들이 브랜드별로 적용해볼 만한, 실행 가능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화가 한결같이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을 선사하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마케팅 분야의 보편적 교훈들은 거의 언제나 일관성 있게 마무리됩니다. 의사소통과 형평성의 가치, 끊임없는 혁신과 호기심의 중요성, 브랜드 신뢰도를 유지하겠다는 소비자에 대한 진지한 약속 등으로 요약되며, 무엇보다 강력한 교훈의 중심에는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들어 공감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김없이 들어있습니다.



4. 추천사

저자가 교훈을 단순하고 잘 기억나는 문체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작은 모임이나 회합에서 다시 사용하기에도 좋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간단한 질문들이 성찰과 변화의 큰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이 책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자, 이제 숨겨진 일화부터 경영과 마케팅 실무자의 조언까지 두 시간짜리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이류는 광고를 하고 일류는 스토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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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FAANG으로 빵빵하게 공부하는 비즈니스 영어
최숙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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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carefully and choose the correct answer”.

 

이거 어디서 숱하게 들어 본 지시어 아닌가요? 학교 영어 회화 시간이든, 공인어학 시험이든 그동안 우리는 주어진 질문을 듣고 역시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 듣기 시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정답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재주껏 잘 듣고 정답을 고르면 되는 시험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시중에 나온 여타 교재들과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맨땅에 박치기하듯, 먼저 주어진 표현에 익숙해질 때까지 영어 텍스트를 반복하여 읽어 문자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다음 익힌 내용을 불러와 작문으로 문자정보를 활성화하고, 이를 읽을 때 입에서 나오는 음성정보와 결합한 후 눈으로는 한국어 번역을 보며 익혔던 영어 문장을 다시 적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네 가지 학습법을 동시에 적용하여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게 저자의 의도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세계적 5대 기업인 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의 이름 앞글자를 묶어 책 제목을 FAANG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계 시가총액 기준 10위안에 들며 기존의 하드웨어 제조 시대를 마감하고 플랫폼 시대를 선도하는 거대 기업들입니다. 제시된 예문들을 잘 읽어보면 이들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도 제법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회사별로 5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으며 한 회사에 50개씩 250개의 예시문을, 그리고 예문 10개마다 5개의 듣고 쓰는 연습 문장을 제공하였습니다. 각 회사의 최고 경영진이 운영 실적을 보고하는 Earnings Call 혹은 Conference Call에서 사용되는 용어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실제로 원어민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거나 높은 수준입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영어 학습을 위해 출판사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음성파일을 내려받도록 구성되었습니다. 50분 분량으로 회사별 5개의 파일로 나뉘었으며 비교적 정확하고 또렷한 미국 표준발음의 남자 성우가 예문을 읽어줍니다. 50문장씩 묶어서 읽어주기 때문에 예문별로 듣고 적는 연습을 하려면 디지털 기기의 작동/중지 기능을 수동으로 반복해야 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은 있습니다.


이 책에 제시된 비즈니스 용어를 업무상 접하는 환경의 독자라면 매우 적절한 영어 학습교재로 보이며, 각자의 업무 영역 특성에 따라 주어진 예문을 적절히 응용해도 좋겠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과 듣고 완성하는 영작문학습법 그리고 유명 기업들의 컨퍼런스 콜 내용을 통하여 국제 비즈니스 분야의 상식을 넓히고 수준급 영어 사용 능력도 향상할 좋은 기회를 얻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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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방어 -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의 놀라운 비밀
맷 릭텔 지음, 홍경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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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일단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 면역학의 역사와 기초를 이해하고, 무너진 면역체계의 위험성을 깨우치며, 마음이 따뜻한 괜찮은 의사를 알게 된다. 대부분 내용은 의학적 발견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복잡한 임상 치료법으로 가득하지만, 분량과 비교하면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다. 퓰리처상 수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독자들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정성을 기울여 설명한다. 그는 스포츠, 전쟁, 경찰 등 설명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와 적절한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여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설명함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점차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가독성을 높이는 동시에 독자에게 이 책은 의학전문 학술서가 아닌, 궁극적으로 면역 및 자가 면역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임을 상기시키고자 저자는 제이슨, 린다, 메러디스, 밥 네 명 환자들의 치료 여정을 나누어 담아내고 있다. 그는 또한 산뜻한 유머를 자유로이 구사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그의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관심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면역학 분야가 닭 한 마리로부터 유래된 것일 수도 있다는 유머에 거부감을 느낄 독자는 거의 없지 싶다.

면역학 초창기에는 돌파구라는 명칭이 딱히 어울리지 않았겠지만, 저자는 이 분야의 주류를 이루는 흐름으로 독자를 서서히 이끌어 나간다. 조류 독감, 흑사병, 소아마비, 루푸스, HIV/AIDS, 천연두, 류마티스 관절염, 암 등 16세기부터 등장하여 치료법이 알려지기 시작한 질병과 그 극복의 역사를 되짚어준다. 또한, 개별적인 과학적 발견이 다른 과학자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무수한 학문 분야와 다국적 과학자들의 놀라운 다양성을 강조한다. 유명인사들의 행적을 묘사하기보다는 되도록 그들의 아이디어, 업적 및 해당 분야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인터뷰 발췌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면역학적 진전을 이루어낸 긴 역사 속 시간 여행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면서 그간 제시되었던 기본적인 질문의 답을 알려준다. 알레르기의 원인; 기생충, 바이러스, 박테리아의 차이점; 우리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염증이나 열이 발생하는 이유; 항체의 정의; 자가면역의 작동법; 미생물의 정체와 건강 유지에 미치는 역할 등이 그 좋은 사례이며, 산더미처럼 쏟아져나오는 면역체계 강화 제품들의 선전 문구가 과연 믿을만한지를 묻기도 한다.

또한, 집단에 대비된 개념으로서의 개체별 면역체계의 실패와 성공, 쇠약해지는 자가면역체계의 유지 관리 방법, 건강 유지에 필요한 요소 등 평소 우리가 궁금해했던 질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스트레스와 가공식품 소비를 줄이고, 금연과 항생제 과다 사용을 자제하며 수면 시간을 늘리라는 권고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수도 있겠다. 인간 역시 자연계의 일부로서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세균을 방어할 필요가 없으며, 실제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흙과 세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한편 청결 이외에도 정상적인 면역체계 유지를 위해 저자는 건강한 수면을 언급한다. 청결 유지를 위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조절하기 가장 쉬운 약품인 수면은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피로감이 사라질 때까지 취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겪어봐서 알겠지만,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월등히 나아진 성능의 면역체계가 간밤의 피로감을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세상에 장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면역학 분야의 과학에 관한 입문서 그 이상이다. 면역 및 자가면역 질환과 장애를 앓고 있는 네 환자의 투병기인 동시에, 이들과 유사한 환자들의 치료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여러 세대에 걸쳐 노력해 온 의료인들의 인도적인 이야기이다. 면역체계의 역습에 직면한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그동안 견뎌온 신체적, 감정적 시련을 검증받을 좋은 기회라 여길 것이고, 아울러 질병을 더 깊이 널리 이해하고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인체에 미치는 해로움이나 치유능력에 관심을 둔 교양있는 독자들 또한 이 근사한 면역학 이야기에 매료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은 어쩌면 최근의 화두인 뇌과학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의료혜택과 건강 상식의 보급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늘어난 수명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된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일대 면역학 분야의 선구자인 루슬란 메지토프의 말처럼 우리는 불멸의 삶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다만 나이 들어도 건강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다운 삶을 지탱해주는 건강을 위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면역학 기초교양 강좌에 독자들을 초대하는 바이다.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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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박소연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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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아침 회의에서 멀쩡하게 얘기를 주고받던 중, 정전으로 화면이 꺼지는 텔레비전처럼 나도 모르게 앉은 채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누가 보면 마치 회의가 지루해서 졸고 있는 줄 알았을 겁니다. 1분쯤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바로 위 직급의 상사가 쯧쯧 혀를 차며 비웃듯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그런 형편없는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꼭 동생 같아서 아끼는 마음에 한 소리랍니다. 글쎄요, 친동생이라면 어디가 아픈지부터 물어봤겠죠.

 

아침 일찍 열린 거래처 기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업무상 필요하니 듣기는 하는데 문과 출신이라 어려운 기술용어는 외국어나 한가지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이느라 긴장이 풀리면서 덥고 답답하고 어둑한 강당 구석에서 잠시 졸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장님이 조용히 저를 불러내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거래처 직원들 다 보는데 졸음이 오나? 만약 나한테 권총이 있었다면 바로 쏴 죽였을 거야!” 그에게는 직원의 상태보다 거래처의 눈에 비치는 대표의 체면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사장님이 졸았더라도 거래가 끊기거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기면증 환자였습니다. 수면이 발작처럼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회의나 강의 도중, 심지어는 운전이나 시험 중에도 발생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호르몬의 교란이 원인이며 결국 약물치료를 받고 나았습니다. 미련하게도 모든 잘못은 본인에게 있으며 대오각성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틈바구니에서 꼬박 5년을 버티다 결국 이직하고 말았습니다.

 

20대와 30대 초반 젊은 날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많은 추억과 상처를 남겨 준 직장생활 기억의 일부입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차라리 고생했던 추억으로 남지만, 직장 상사들이 놀린 세 치 혀끝에서 시작된 상처의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마땅히 대응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새내기 사원이기도 하였고, 소심한 성격상 바보같이 웃어넘기고 말기가 일쑤였습니다. 정도만 다르다 뿐 이건 마치 내 이야기 아닌가 착각할 분들,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힘든 직장생활 얘기에서 책으로 돌아와 봅니다. 저자의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관찰력과 통찰로 펴낸 이 책은 가히 일터에서 필요한 올바른 언어생활 안내서이며, 최근 필자가 읽은 자기계발 서적 가운데 가장 실용적이고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범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오가는 업무용 언어는 일상 언어와는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히 넘길만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말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일상과는 다른 언어생활의 중심을 꿰뚫는 규칙 또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배워둘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사용 범위를 좀 더 확대하여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대체 일상 언어와 일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저자가 말하는 일상 언어는 첫째, 머릿 속 생각을 혼선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는 단순하고 정확한 소통이 핵심이며 둘째,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활용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양질의 언어 선택을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며 셋째, 감정적으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영역의 골디락스, 즉 중간 온도의 관계 언어가 기본이며 마지막으로 부서원이 존중받고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리더의 언어를 구사하라고 합니다. 정확성과 단순함 그리고 우아함을 가지고 말하는 일의 언어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면서, 가장 비중 있는 네 가지 분야 즉 정확성을 높이는 소통법, 설득법, 일의 관계 맺기 및 밀레니얼 세대 통솔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세월 겪었던 직장생활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이 책을 접했더라면 좀 더 슬기로운 언어사용으로 상처받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으리라는 일말의 후회가 종종 밀려왔습니다. 당시에도 시중에 이러한 종류의 서적은 분명 나와 있었을 겁니다만, 돌이켜보건대 세상 물정에 어둡고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여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겁니다. 또한, 분명 누군가는 질적인 조언을 해 주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둘 그릇이 못 되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당시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인 신입사원에게 가혹한 말 대신 격려의 공치사 한 마디만 해 주었다면 그 회사는 말도 잘하고 일도 제법 하는 괜찮은 인재를 거둘 수도 있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is the limits of my world.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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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2020-05-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