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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평점 :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어져서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과연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는지 되묻는 나날 또한 많아졌지만,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 나만 그런 걸까? 사고능력과 철학지식이 고등학생 수준에서 멈춘 이후 나이만 먹어가다가, 처음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최근에야 마주하였음을 고백한다.
각설하고, 유럽 철학의 효시이자 근간인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쓴 이 책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기존의 이해하기 어렵고 따분한 철학용어가 아닌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나와 세간의 시선을 받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 기원전 399년, 나라와 아테네 사람들이 모르는 새로운 잡신을 섬긴다는 불경죄 및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된 재판에서 그가 행한 자기 변론의 기록으로, 1차 변론 이후 배심원들이 유죄를 평결하자 당시 아테네 재판 절차에 따라 원고가 사형을 제안하였고, 2차와 3차에 걸쳐 사형에 대해 자신을 최후 변론함.
크리톤 – 아테네의 중요 종교행사로 미루어졌던 사형집행일을 코앞에 둔 소크라테스가 친구인 크리톤으로부터 탈옥을 권유받았으나, 자신은 이성에 따라 정의로운 삶을 살았고 아테네에 살면서 아테네의 법을 따르기로 합의하였으며 범법자로 남고 싶지 않으니 탈옥은 아니아니 아니되오 불가함을 밝힘.
파이돈 – 아테네 감옥에서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지켜본 친구로서 아침 일찍부터 감옥으로 몰려와 해가 진 후 독약을 마실 때까지 ‘영혼불멸’의 주제를 놓고 대화한 내용.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그의 철학은 육체의 모든 감각의 방해를 단절하고 오직 순수한 사유와 변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이데아들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는 것임을 밝힘. 이는 당시 상대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현실 경험 세계에서의 실용적 지식을 추구하던 소피스트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
향연 – 기원전 416년 비극작가 아가톤이 아테네 비극 경연에서 우승을 기념한 연회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연애의 신 ‘에로스’를 예찬한 이야기. 여기서 에로스는 경애, 친애보다 더 강렬한 성애를 가리키며, 열렬한 감정과 욕망을 포함하여 대상을 향유하고자 하는 죽음보다 더 강한 욕망을 의미함.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라는 점이 본서의 큰 장점으로, 대화제 자체는 마치 독자가 치열한 대화속에 노출되는 현장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원문이 고전인 관계로 ‘아테네인들이여’, ‘~하네, ~하지 않겠나?’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상투어구는 독자에 따라 독서의 피로도 증가요인 일수도 있겠다. 아, 나는 이런 옛날 대화체를 낯설어 하는구나를 속으로 되뇌이면서.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서술적 내용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사고방식도 좋지만, 철학자에게 주류에서 벗어난 언행을 빌미로 어떻게 사형을 요구할 수 있었는지 도대체 어떤 구조의 사회였을까. 당시의 사회상은 이렇게 묘사된다.
- 기원전 427년 당시 아테네는 종교적으로는 대단히 보수적이었고, 거기에 정치적인 의도까지 더해져서, 아낙사고라스와 프로타고라스를 불경죄로 추방하였고, 소크라테스까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소피스트로 몰아 불경죄로 사형에 처한다. (322쪽)
- 인간들아,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너희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다. (23쪽)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라는 동양 고전의 말씀처럼, 소크라테스는 지금 우리가 상위인지라 부르는 학습태도를 철학의 기본으로 강조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겨우 30표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극적인 결과도 있다. 소수의 횡포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사형이 아닌 자연사였다면 철학의 역사가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 30표만 무죄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면 나는 무죄로 석방되었을 것입니다. (배심원이 500명이었다고 한다면, 찬성표는 280표였고, 반대표는 220표였다는 것이 된다. 찬성과 반대가 동수인 경우에는 무죄로 간주되어 석방되었기 때문이다.) (48쪽)
- 여러분을 비판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해서, 자기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을 모면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쉬운 길은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55쪽)
간접 민주주의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권력에 의해 도리어 비민주적인 횡포의 연장 선상에서 억압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묻게 된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히 독배를 들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그의 최후는 비장하지도, 애절하지도 않아 보인다. 삶과 죽음은 서로 연결된 하나이며 철학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는 다음 인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무려 2천 년도 더 전에 그가 간파한 글을 보면 삶과 죽음에 연연하는 마음이 조금은 초연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철학의 힘이겠지?
- 어떤 사람이 자기가 죽게 된 일에 화를 낸다면, 그것은 그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은 재물을 사랑하는 자이거나, 명예를 사랑하는 자이거나, 그 둘을 모두 사랑하는 거겠지. (110쪽)
-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몸에 속한 그 어떤 것도 동반하지 않은 채로 홀로 순수한 상태로 있게 된다는 것이네. 영혼은 이승에서 살아갈 때에 몸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피해서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늘 죽음을 연구하고 죽는 연습을 하지 않았던가? 사실 철학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기꺼이 편안하게 죽는 것을 연구하는 일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지. 철학을 한다는 일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