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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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어머니의 장례식 일주일 후 자신의 생일 잔치를 열기로 한, 골수암에 걸린 어느 70세 가장이 거느린 식구들을 소개한다. 의부 큰아들놈은 커밍아웃 후 가출하고 둘째 놈은 동네 총격전으로 사망. 여동생은 이혼만 세 번. 재혼으로 얻은 아들놈은 미국놈 군인 말에 속아 입대했다가 제대 후 불법 체류자 신세. 딸은 사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아들만 셋. 손자놈은 데스메탈에 빠져 고함지르며 다니고 제수씨는 입만 열면 욕쟁이에 술을 입에 대기만 해도 대형사고. 자 이만한 콩가루 집안도 없으렷다 싶은데 이게 어느 평범한 멕시코 계 미국인 가족 이야기란다.



조금 길지만 우선 4부로 이루어진 줄거리부터 소개한 후,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상징성과 주제 및 소감을 밝혀보겠다.



줄거리

1부 정신이 혼미해진 장례식

내일이면 70세가 되는 골수암 환자 미구엘 ‘빅 엔젤’ 드 라 크루즈는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에 뒤늦게 도착한다. 장례식 바로 다음 날 자신의 생일잔치를 열기로 준비해둔 그와 그의 아내 페를라는 사실 티후아나에서 샌디에고로 몰래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 한편 빅 엔젤보다 훨씬 젊은 이복동생 가브리엘 ‘리틀 엔젤’ 드 라 크루즈 역시 샌디에고에 도착한다. 빅 엔젤의 딸 미니와 아내 페를라가 그를 휠체어에 앉혀 문밖출입을 거든다. 역시 장례식에 참석한 빅 엔젤의 아들 랄로는 10년쯤 전 동네 총격전으로 사망한 형 브라울리오를 떠올리며 군에 입대했었다. 리틀 엔젤과 미니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장례식에 불참한 페를라의 아들 인디오에 관해 이야기한다. 잔치 전날 밤 빅 엔젤은 페를라를 두 번째 만났던 이야기를 되뇐다.



2부 그때

그때는 곧 빅 엔젤과 페를라가 처음 만났던 당시를 의미한다. 페를라는 고향 라파스에서의 자동차 사고에 엮여 경찰서로 잡혀 온다. 아버지 돈 안토니오가 일하던 경찰서에 동행했던 빅 엔젤은 거기서 그녀를 처음 만난다. 매일 밤을 같이 보내던 그들은, 빅 엔젤이 부모에 의해 고기잡이 배 일꾼으로 버려졌다가 인간 이하의 학대를 피해 돌아온 이후 티후아나에서 재회한다. 이 무렵 페를라는 이미 전 남편과의 사이에 인디오와 브라울리오 두 아들의 엄마였다. 마침내 빅 엔젤은 샌디에고에 가족을 위한 집을 마련하고 국경을 넘어 미국인이 된다.



3부 기념일

드디어 빅 엔젤의 생일잔치 날. 리틀 엔젤은 케잌을 주문하고 구입하기 위해 Target에 두 차례 방문한다. 처음에는 라 글로리오사와, 두 번째는 세자르와 함께. 이웃 소년 우키는 리틀 엔젤에게 빅 엔젤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던 레고로 만든 샌디에고 도시 모형을 보여준다. 랄로는 그의 아들 히오바니와 함께 마약의 힘을 빌려 마약 판매상을 해치우기로 작정하나 막상 겁에 질려 거사를 치르지 못하고 도주해버린다. 엔젤 형제는 서로의 아픈 과거사를 나눈다. 형은 동생에게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털어놓고, 동생은 형에게 지키기로 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형이 성탄절에 그와 어머니를 태우러 오지 않았던 때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지랄 맞은 성격이지만 감정을 억제한 형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너저분한 나이트클럽에서 화려하고 도전적인 셰어로 분장했던 아들 인디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아버지 돈 안토니오가 이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가 브래지어 속에 앵무새를 숨겨 국경을 넘던 이야기를 회상하며 포복절도한다. 한편 랄로가 제거에 실패한 깡패가 보복을 위해 드 라 크루즈 저택에 침입하여 랄로를 권총으로 죽이려 한다. 집 밖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총잡이의 침입을 목격한 인디오는 그를 쫓아가 무력화시킨다. 온몸으로 아들 랄로의 위험을 받아낸 빅 엔젤의 부정에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인 인디오는 가족의 침대에 함께 자리 잡는다.



4부 종결부

가족에 둘러싸인 채 빅 엔젤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리틀 엔젤과 라 글로리오사가 사랑을 나누는 생일잔치 날 밤으로 옮겨간다. 페를라와 빅 엔젤은 함께 했던 그들의 삶을 회상한다. 리틀 엔젤은 다음 날 아침 형을 해변으로 데려가 탁 트인 구릿빛 바다 위를 영원히 떠도는 거대한 파도를 보여주리라 다짐한다.



- 상징성

빅 엔젤의 손목시계 : 자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던 그의 손목시계는 시간에 대한 주의력과 지각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다. 보통의 멕시칸답지 않게 의외로 시간관념에 정확한(?) 이 강박은 또한 삶의 마지막에 가까워지는 그 자신의 시간을 의미한다.



‘나의 멍청한 기도문’ 공책 : 신부이자 친구인 데이브가 준 빅 엔젤의 공책은 그의 삶에 대한 애착의 상징으로, 그는 이 공책에 그가 감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적어놓는다. 이를 통해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상기함으로써 죽음이라는 사실과 화해를 시도한다.



라 글로리오사의 흉터 : 아들 기예르모의 출산 당시 생긴 제왕절개 수술의 흉터는 모성애와 희생의 상징으로, 먼저 세상을 하직한 아들을 떠올리며 슬픔과 회한의 눈물을 쏟게 하는 아들의 분신 같은 존재이다.



장례식 직후의 생일잔치 : 죽음과 삶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며 동일 선상에 놓인 일체임을 암시한다. 골수암으로 시한부 인생의 마감을 앞둔 빅 엔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보기보다 담대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미 죽을 고비를 세 차례 넘겼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축복받을 대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 주제

저자는 이 작품을 ‘불완전하지만 영광스럽고, 엉망이지만 유쾌하며 가끔은 영웅적인, 어쩌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미국인 가족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말하고픈 주제는 가족의 ‘정체성’이다. 각각 멕시코와 미국에서 출생한 형과 동생의 병렬구조를 통해 이 작품은 많은 이민자 가정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고달픈 생활고와 국적과 민족성 사이에서 드러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다루고 있다. 때로는 저속하지만 직설적으로, 또 때로는 거칠지만 유쾌한 어조로 말이다.



멕시코 영토에서 멕시코 부모에게서 태어난 빅 엔젤은 티후아나에서 페를라를 만난 이후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이후 비록 그는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익히고 멕시칸들이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직업을 가지지만 자신은 여전히 멕시칸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국적관을 보인다. 비록 미국 시민증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미국 국적을 자랑스레 내세우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의심의 여지 없는 멕시칸일뿐이며 여타 전형적인 멕시코 이주민과 자신을 대비시킴으로써 다름을 강조한다. 멕시칸과 미국놈의 대비처럼 분노와 슬픔은 이 작품에서 계속 드러나는 하나의 감정 쌍이다. 사랑과 고통, 기쁨과 원한, 증오와 화해, 험담과 다정함 역시 그러하다.



소감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느 멕시코 이민자 집안의 장례식에 잇따른 생일잔치, 단 이틀 동안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주인공에게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의 약 100년의 세월이 녹아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되새기며 일가를 이룬 사나이, 빅 엔젤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장이라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 저속한 언어표현, 노골적인 애정표현과 억압적인 성장 따위는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사랑과 속죄라는 대명제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낸다.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다른 배경의 멕시칸 이민자 집안 이야기지만 그 여운은 매우 강렬하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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