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 이매진의 시선 6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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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저자는 한참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할 나이의 청년인데 가장이 되어야 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행복한 결혼으로 인생을 시작할 나이인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롯이 가장의 책임만 남았다. 그것도 한참 일할 나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아직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 지낼 수 많은 또래들을 생각해보자 스무 살에 가장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지.

 

뭐라도 해 볼 스무 살 나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장 병원비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마땅한 재원은 없고 친척들마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을 빼다가 급한 불은 껐지만 알코올성 치매인 아버지는 두 차례 더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다.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된 저자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주위로부터의 변변찮은 도움에 기대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제하고 나선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얻는 것부터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걸려있는 조건도 한둘이 아니다. 군에 입대하면 눈높이 보호자로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므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 요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영화인이 되는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미래를 생각한다.

 

부양자가 사회적으로 안정적 지위를 획득하고 규칙적인 수입의 경제권을 확보한 상태라면, 돌봄의 문제는 크게 부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남들보다 수십 년 먼저 돌봄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불의의 사고로 근로 능력을 상실한 후 알코올성 치매가 찾아온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자 치료기관에 맡겨야 했다. 그의 사례를 통해 치매 난민이자 의료 약자는 곧 사회 보호제도의 하한선인 요양난민이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그는 이미 두 사람의 어른 몫을 해내고 있었다. 남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할지 모르지만, 그는 돌봄이 효자 한 사람의 덕목이 아닌 사회 문제라고 말하면서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청년층에 기본소득 얼마씩을 제공한다는 어느 지자체의 얘기가 정말 필요한 정책임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은 투표권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이 사회의 취약계층을 떠받쳐주는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기본 실천방안임을, 저자는 효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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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수 가짜 보수 - 정치 혐오 시대,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
송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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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찾아보면 보수에 대한 설명으로 세 가지 단어가 나온다. 일한 대가를 뜻하는 pay,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는 conservatism 그리고 손보아 고친다는 repair. 독자 제위께서 단어만 보고 혼동할리는 없겠지만 책 제목을 보아하니 conservatism이 분명하다. 내용 역시 어느 유명 보수 논객의 자칭 보수 정체성 탐구 보고서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과연 그러하다.

 

보수세력이 말하는 보수라는 말은 사실 좋은 뜻을 지녔다. 최근에 와서 보수주의는 영국 근대사에 유명한 보수당의 대처리즘으로 읽히는 동시에 과거 익숙하게 들어왔던 조선 왕조의 부국강병 국태민안 국시와도 상당히 닮아있다. 백성은 편안하고 전통과 예의를 전수하는 이상적인 국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지금은 보수라 하면 보수를 받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휘두르며 폭력집단으로 추락한 노년층을 떠올리는 걸까.

 

저자는 조선일보에서 기자를 거쳐 편집인까지 무려 38년간을 함께한 베테랑이자 자칭 보수 언론인이다. 이 책에서 그는 과거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쇠락한 보수의 미래 부흥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문제 해결의 최우선 조치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임을 잘 아는 듯, 대한민국 정권의 주류였던 보수의 민낯을 솔직히 들춰 보이려 시도한 모습이 역력하다. 또한 비교적 적은 양이기는 하나 때로 보수에 비견되는 진보세력의 장단점도 함께 아우르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보수정권의 폭력적 과오를 인정 할 테니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스스로를 보수 아님, 또는 진보적 세계관을 지닌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약간 속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도 뭔가 아쉽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칭찬보다 험담을 더 많이 듣는 것 같은 보수도 과감히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머리 맞대고 자구책을 궁리하는 판에, 그렇다면 자칭 진보세력은 왜 이런 자기 탐구가 없는가 말이다. 아마 이 역시도 이 책을 저술한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으로 넘겨짚어 본다.

 

이 책을 일독한 후에도, 비록 저자가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보수의 진정성 어린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과연 순수한 의미의 보수, 진짜 보수가 환골탈태하여 정당성을 지닌 정권을 거듭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다가올 국가의 미래는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지나간 과거의 아름다움에 연연하면서 그런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소수의 세력을 발판으로 어떻게든 권력의 끝을 움켜잡아 보겠다는 생각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결국 오늘날의 보수가 공허하게 들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권획득과 유지에 몰두한 나머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지켜오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전통을 이제야 지켜보려 나서는 때문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묻고 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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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끝! -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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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법률가이다. 오늘 일은 끝! 이라는 제목이 매우 신박하게 다가오는 한편, 적용 대상에 따라 탄력적인(?) 우리네 법과는 달리 독일의 법 세계는 융통성이 별로 없고 그런 국가의 법률가가 쓴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저자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치 같은 재료로 만든 요리라도 요리사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격이랄까.

 

저자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일은 필요하지만, 일하기는 행복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이런 생각, 우리는 언제부터 해 보기는 하고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이미 나이 든 계층이야 관성적인 직장생활로 어쩔 수 없다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층의 직업관은 예전과는 달리 좀 더 논리적 이성적으로 가는 추세다. 일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일을 직업으로 불러 하나의 개념이 되었고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씌워진 이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며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직업관이 지배적이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일자리는 꼭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되었다. 이 세상이 하나의 종합운동장이라면 일자리는 입장권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어떤 종목에 참가하여 어떤 성과를 낼지 여기서부터 딴지에 걸린다. 저자는 직장생활에 대한 거짓된 환상 일곱 가지를 나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1. 열정을 불태우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냉철한 머리는 열정에 취한 머리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냉철하게 거리를 둘 수 없게 된다. 열정적이어야 정상이거나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힌다.

 

2.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한다? 도전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곳곳에 가득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직원들이 도전에 맞서고 있다면 어떤 회사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습관화 반복화 된 업무 숙련도이다.

 

3. 자유롭게 무언가 만들어 낸다? 일의 자유와 사회적 중요성은 서로 반비례 관계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자유롭지 못하다.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못할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일의 자유, 당신은 얼마나 누리시는지?

 

4. 일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은 일 말고도 얼마든지 있지만, 어떤 대상이든 의미를 찾으려면 일을 통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본 재원을 갖추어야 하는 딜레마.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마다 의미를 두는 대상과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5.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자아는 오직 스스로만 찾을 수 있고 실현하는 주체 역시 자신뿐, 일이 우리에게 자아를 찾아주지는 않는다. 일은 자아실현의 징검다리 혹은 매개체일 뿐 최종목표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6.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내가 회사에 내어놓을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과 시간이며, 회사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는 전제하에 중요한 사람으로 본다.

 

7.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좋은 사람이 된다. 가장 큰 이직 요인이 바로 사람 때문이다. 싫어도 피해갈 수 없는 경우 종종 마지막 선택을 결심하게 된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평생 간다. 20년 전 들었던 듣기 싫었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많은 관심거리였다. 이 현상의 뿌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할 줄 모르면서 내 돈 주고 사람 부리는데 뭔들 못 시키겠냐는 고용주들의 천박한 생각에 있다. 임금을 주는 이유는 피고용인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일 뿐이지 그의 인생과 인격까지도 돈으로 산 것이 아니다. 물론 피고용인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만큼 개인적인 일은 최대한 자제하고 응분의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해야 맞다. 저자가 독일인이고 독일의 현실에 바탕을 둔 저서이므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과 직장에 대한 개념이 점차 논리적 이성적으로 움직여가는 추세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작고 얄팍하지만 다루는 이야기는 절대 가볍지 않다. 책 뒷부분의 일과 회사에 대한 솔직한 조언이야말로 이 책의 고갱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물론, 직업의 세계를 잘 모르는 중고등학생부터 일에 대한 개념과 노사관계 등을 제대로 알고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세상을 너무 모른 채 처음부터 일일이 겪어가며 배우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청년층 80%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데, 행복한 삶을 언제 가져볼까 행여 더디 오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오지랖일까?

 

#자기계발 #오늘일은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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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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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어머니의 장례식 일주일 후 자신의 생일 잔치를 열기로 한, 골수암에 걸린 어느 70세 가장이 거느린 식구들을 소개한다. 의부 큰아들놈은 커밍아웃 후 가출하고 둘째 놈은 동네 총격전으로 사망. 여동생은 이혼만 세 번. 재혼으로 얻은 아들놈은 미국놈 군인 말에 속아 입대했다가 제대 후 불법 체류자 신세. 딸은 사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아들만 셋. 손자놈은 데스메탈에 빠져 고함지르며 다니고 제수씨는 입만 열면 욕쟁이에 술을 입에 대기만 해도 대형사고. 자 이만한 콩가루 집안도 없으렷다 싶은데 이게 어느 평범한 멕시코 계 미국인 가족 이야기란다.



조금 길지만 우선 4부로 이루어진 줄거리부터 소개한 후,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상징성과 주제 및 소감을 밝혀보겠다.



줄거리

1부 정신이 혼미해진 장례식

내일이면 70세가 되는 골수암 환자 미구엘 ‘빅 엔젤’ 드 라 크루즈는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에 뒤늦게 도착한다. 장례식 바로 다음 날 자신의 생일잔치를 열기로 준비해둔 그와 그의 아내 페를라는 사실 티후아나에서 샌디에고로 몰래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 한편 빅 엔젤보다 훨씬 젊은 이복동생 가브리엘 ‘리틀 엔젤’ 드 라 크루즈 역시 샌디에고에 도착한다. 빅 엔젤의 딸 미니와 아내 페를라가 그를 휠체어에 앉혀 문밖출입을 거든다. 역시 장례식에 참석한 빅 엔젤의 아들 랄로는 10년쯤 전 동네 총격전으로 사망한 형 브라울리오를 떠올리며 군에 입대했었다. 리틀 엔젤과 미니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장례식에 불참한 페를라의 아들 인디오에 관해 이야기한다. 잔치 전날 밤 빅 엔젤은 페를라를 두 번째 만났던 이야기를 되뇐다.



2부 그때

그때는 곧 빅 엔젤과 페를라가 처음 만났던 당시를 의미한다. 페를라는 고향 라파스에서의 자동차 사고에 엮여 경찰서로 잡혀 온다. 아버지 돈 안토니오가 일하던 경찰서에 동행했던 빅 엔젤은 거기서 그녀를 처음 만난다. 매일 밤을 같이 보내던 그들은, 빅 엔젤이 부모에 의해 고기잡이 배 일꾼으로 버려졌다가 인간 이하의 학대를 피해 돌아온 이후 티후아나에서 재회한다. 이 무렵 페를라는 이미 전 남편과의 사이에 인디오와 브라울리오 두 아들의 엄마였다. 마침내 빅 엔젤은 샌디에고에 가족을 위한 집을 마련하고 국경을 넘어 미국인이 된다.



3부 기념일

드디어 빅 엔젤의 생일잔치 날. 리틀 엔젤은 케잌을 주문하고 구입하기 위해 Target에 두 차례 방문한다. 처음에는 라 글로리오사와, 두 번째는 세자르와 함께. 이웃 소년 우키는 리틀 엔젤에게 빅 엔젤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던 레고로 만든 샌디에고 도시 모형을 보여준다. 랄로는 그의 아들 히오바니와 함께 마약의 힘을 빌려 마약 판매상을 해치우기로 작정하나 막상 겁에 질려 거사를 치르지 못하고 도주해버린다. 엔젤 형제는 서로의 아픈 과거사를 나눈다. 형은 동생에게 힘들었던 결혼생활을 털어놓고, 동생은 형에게 지키기로 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형이 성탄절에 그와 어머니를 태우러 오지 않았던 때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지랄 맞은 성격이지만 감정을 억제한 형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너저분한 나이트클럽에서 화려하고 도전적인 셰어로 분장했던 아들 인디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아버지 돈 안토니오가 이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가 브래지어 속에 앵무새를 숨겨 국경을 넘던 이야기를 회상하며 포복절도한다. 한편 랄로가 제거에 실패한 깡패가 보복을 위해 드 라 크루즈 저택에 침입하여 랄로를 권총으로 죽이려 한다. 집 밖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총잡이의 침입을 목격한 인디오는 그를 쫓아가 무력화시킨다. 온몸으로 아들 랄로의 위험을 받아낸 빅 엔젤의 부정에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인 인디오는 가족의 침대에 함께 자리 잡는다.



4부 종결부

가족에 둘러싸인 채 빅 엔젤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리틀 엔젤과 라 글로리오사가 사랑을 나누는 생일잔치 날 밤으로 옮겨간다. 페를라와 빅 엔젤은 함께 했던 그들의 삶을 회상한다. 리틀 엔젤은 다음 날 아침 형을 해변으로 데려가 탁 트인 구릿빛 바다 위를 영원히 떠도는 거대한 파도를 보여주리라 다짐한다.



- 상징성

빅 엔젤의 손목시계 : 자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던 그의 손목시계는 시간에 대한 주의력과 지각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다. 보통의 멕시칸답지 않게 의외로 시간관념에 정확한(?) 이 강박은 또한 삶의 마지막에 가까워지는 그 자신의 시간을 의미한다.



‘나의 멍청한 기도문’ 공책 : 신부이자 친구인 데이브가 준 빅 엔젤의 공책은 그의 삶에 대한 애착의 상징으로, 그는 이 공책에 그가 감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적어놓는다. 이를 통해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상기함으로써 죽음이라는 사실과 화해를 시도한다.



라 글로리오사의 흉터 : 아들 기예르모의 출산 당시 생긴 제왕절개 수술의 흉터는 모성애와 희생의 상징으로, 먼저 세상을 하직한 아들을 떠올리며 슬픔과 회한의 눈물을 쏟게 하는 아들의 분신 같은 존재이다.



장례식 직후의 생일잔치 : 죽음과 삶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며 동일 선상에 놓인 일체임을 암시한다. 골수암으로 시한부 인생의 마감을 앞둔 빅 엔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보기보다 담대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미 죽을 고비를 세 차례 넘겼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축복받을 대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 주제

저자는 이 작품을 ‘불완전하지만 영광스럽고, 엉망이지만 유쾌하며 가끔은 영웅적인, 어쩌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미국인 가족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말하고픈 주제는 가족의 ‘정체성’이다. 각각 멕시코와 미국에서 출생한 형과 동생의 병렬구조를 통해 이 작품은 많은 이민자 가정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고달픈 생활고와 국적과 민족성 사이에서 드러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다루고 있다. 때로는 저속하지만 직설적으로, 또 때로는 거칠지만 유쾌한 어조로 말이다.



멕시코 영토에서 멕시코 부모에게서 태어난 빅 엔젤은 티후아나에서 페를라를 만난 이후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이후 비록 그는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익히고 멕시칸들이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직업을 가지지만 자신은 여전히 멕시칸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국적관을 보인다. 비록 미국 시민증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미국 국적을 자랑스레 내세우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의심의 여지 없는 멕시칸일뿐이며 여타 전형적인 멕시코 이주민과 자신을 대비시킴으로써 다름을 강조한다. 멕시칸과 미국놈의 대비처럼 분노와 슬픔은 이 작품에서 계속 드러나는 하나의 감정 쌍이다. 사랑과 고통, 기쁨과 원한, 증오와 화해, 험담과 다정함 역시 그러하다.



소감

품위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느 멕시코 이민자 집안의 장례식에 잇따른 생일잔치, 단 이틀 동안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주인공에게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의 약 100년의 세월이 녹아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되새기며 일가를 이룬 사나이, 빅 엔젤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집안의 가장이라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 저속한 언어표현, 노골적인 애정표현과 억압적인 성장 따위는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사랑과 속죄라는 대명제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낸다.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다른 배경의 멕시칸 이민자 집안 이야기지만 그 여운은 매우 강렬하고 유쾌하다.



#빅엔젤의마지막토요일 #루이스알베르토우레아 #다산책방 #멕시코 #멕시코소설 #가족소설 #소설추천 #열독응원 #미공개 #리뷰 #도서 #소설 #추천 #사전리뷰단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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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병법 - 고전의 병법에서 배우는 소통의 지혜
김해원 지음 / 바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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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수십 년째 이어오는 동안,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패를 이루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다수의 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어느 패에도 끼지 않는 소수를 발견한다. 패거리끼리는 얼마나 죽이 잘 맞는지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며 잘도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직장을 벗어난 야유회나 연수를 가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남들과는 소통이 안 된다며 늘 불만이다. 아주 볼썽사나운데 조직의 원활한 소통과 효율성에 끼치는 악영향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 , 이를 어찌한담?

 

저자는 중국의 고전 손자병법에서 이름을 따 책 제목을 소통병법이라 하였다. 소통의 큰 그림은 고전에서 가져온 사례들로, 영문으로 된 부제는 전략적 의사소통의 기술로 읽힌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사소통의 매개체는 이지만 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낸 치밀한 전략의 결과이다. 소통(疏通)은 곧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서로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심통(心通)이며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듣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소통의 사례집이라 하여도 좋을 정도로 삼국지와 수호지 등 중국 고전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철학자, 종교인, 역사적 사실, 국내외 석학들의 발언 등을 아우르며 소통 위주의 새로운 해석과 풍부한 예시를 제공한다.

 

저자는 또한 소통의 본질을 다각도에서 비추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실제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지침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일부를 발췌해본다.

- 가장 좋은 소통은 상대방이 경조사를 당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25p.)

- 소통의 목적은 소통을 통해 최종 얻고자 하는 바를 얻는 것(71p.)

- 자기와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고 소통에 도움 되는 내용이라면 폭넓고 깊이 있게 배워 두는 것이 좋다(88p.)

- 소통의 본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97p.)

-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이 소요되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일관성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말수를 줄이는 것이 좋다.(132p.)

- 소통의 학문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공부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마음을 알아내는 공부, 인간 본연의 속성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144p.)

- 소통을 함에 있어서 자기의 자랑 이외에 특별히 자기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기의 감정 상태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과의 협상이나 논쟁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대하자.(201p.)

 

언어 형식 면에서 ’~함에 있어서’, ‘~하는 것과 같은 표현은 다소 오래된 문어체 느낌이 들어 구어체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한편 중국 고전의 고사성어를 인용하는 특성상 사용빈도가 낮은 한자어 표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 독자들을 위한 상세한 설명에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일독 후 소통의 달인으로부터 간결하고 기억에 남는 소통 특강을 받은 느낌이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조직이라도 소통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읽어두실 것을 권한다. 개인과 조직 모두에 유용한 자산이 되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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