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선언 - 완벽한 스펙, 끝없는 노력 그리고 불안한 삶
맬컴 해리스 지음, 노정태 옮김 / 생각정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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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얼 세대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2019년 기준 19살부터 39살을 아우른다. 이 용어는 미국의 세대 전문가인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2011년 펴낸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흔히 세대론을 말할 때 각 세대의 특징을 드러내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는데, 우리 식으로 연도별로 정의하자면 1955~1965 ‘베이비붐 세대’, 1965~1975 ‘386세대’, 1975~1985 ‘X세대라 할 수 있고 그 이후는 N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로 나누어 부르지만, 그냥 밀레니얼 세대로 대신해 부르기도 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의 인구수는 18억 명 이상으로 전체의 25%에 이른다고 한다. 인구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새로운 소비 패턴을 형성하는 등 소비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이들의 성향과 생활방식이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화 등 우리 사회가 겪게 될 미래의 방향에 주류를 이룬다.

 

  책 내용은 비록 미국이란 나라의 밀레니얼 세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무척 많이 겹쳐있다. 저자 자신이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어조로 자신들의 현실을 잘 들춰주고 있다. 사실 목차만 읽어보아도 밀레니얼 세대의 실상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Human Capit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원제처럼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인간 자본으로 길러지며, 한 번 이탈하면 복귀할 수 없는 단선 선로에서 무한경쟁의 시장에 내던져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점 등, 정도의 차이만 있고 도리어 더 안 좋은 경우도 많은 작금의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된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각설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서 나타나는 연령대별 특징을 살펴보자면,

 

  10: 산업혁명 시기 같았으면 진작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 내몰렸을 테지만, 지금의 10대는 고난의 삼춘기(tween)를 지나면서 공부라는 아동노동에 무자비하게 노출되고 살인적인 학습계획에 따라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공부하는 기계의 삶을 강요 당한다. 그 어느 세대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으나 인생의 행복감이나 만족감은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일상적인 억압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한 비참한 심정에 아이들은 공감하고 있었다. (중략) 이후 살펴보게 되겠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우울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는 미국에서 아이들이 이전 세대에 비해 확연히 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십 대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니,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72)

 

  20: 죽어라 공부한 결과 대학에 진학하여 대출을 받아가며 역시 죽어라 노력하여 졸업장을 따기는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유례없이 높아지기만 했던 등록금에 반비례하는 혹독한 취업난과 채무불이행에 따른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는 사회진출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절망부터 맛보게 된다. 심지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졸자보다 대출없는 고졸자의 형편이 더 낫다는 연구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없는 돈 들여 공부했더니 여건이 더 나빠진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겪는 건 비단 미국의 대졸자들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인생에서 엄청나고 대단한 걸 원하지 않는 혹은 못 하게 된 단면은 소확행이라는 유행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큰 고민거리 없이 일생 생활에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살고 있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한 가구의 순자산의 중위값은 65,000달러.. 대학을 졸업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은 가구는 순자산의 중위값인 8,700달러의 7배가 넘는 액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지 않았지만 학자금 대출도 받지 않은 가구의 평균 자산은 11,000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데, 이것은 빚을 지며 대학에 다닌 이들의 자산보다 높다. (중략) 학자금 대출을 통해 교육을 받으면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지던 부는 X세대가 다 큰 성인이 될 때까지 획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172)

 

  30: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용케 취업하여 자기 앞가림을 하나 싶더니 장시간 저임금의 근무환경과 선배 들 때보다 더 가혹해진 경쟁체제 속에 살아야 한다. 1973년을 기점으로, 생산성은 뛰어올랐는데 노동 비용은 감소한 현상이 젊은 노동자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면,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젊은이들이 막대한 수준의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창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자로서 받는 보상보다 많은 생산을 해내고 있다는 말이다. (133)

 

  기쁨보다 슬픔이 압도적이었던, 주어진 조건의 반작용으로 더는 착취당하지 않겠다는 지배적인 인식으로 결과적으로 이들은 고용 관계에서 법과 계약, 공정함을 매우 중시하는 성향을 지니게 된다. 기성 사회에서 요구했던 삶의 보편적인 공식에 따르는 삶이 아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자 한다. 정답이 있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만의 기준에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해졌다. 스스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는 한편, 기성 사회로부터의 인정과 존중을 바라는 모습 또한 보인다.

 

  ”인적 자본에서 자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더 큰 생산 과정 중 일부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체된) 임금과 (감소한) 노동참여율 같은 지표를 통해 우리는 노동시장의 경쟁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추적해볼 수 있다. 노동자를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은 이전보다 적어졌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넉넉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 일은 극히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45)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인 전직 대통령의 생각을 좇아 사람을 교육의 대상이 아닌 자원의 개념으로 취급하던, 그 명칭도 해괴망측한 교육인적자원부가 존속했었다. 오죽했으면 요즘 와서는 사람이 먼저라는 당연한 말이 큰 화두가 되었겠는가마는. 자본과 매우 밀접한 관계인 기업들의 측면에서 보면, 온갖 스펙과 학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취업불안에 떨고 있는 고급인력들을 입맛에 맞게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큼 강력한 유혹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굳어져 사회 전반에 걸쳐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단지 미국이라는 국가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는 새마을운동에 나서야 했던 아버지 세대처럼 불이익이 오더라도 묵묵히 순종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순을 따르지 않는다. 소위 엿 같은 직장생활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시라. 이들은 직장에서 필요한 만큼, 기능적으로 일하고 퇴근 후 직장 밖에서 자아를 찾아 열심히 활동한다. 태어날 때부터 IT 기기를 접해 인터넷에 능한 이들은 온라인에서 찾은 정보로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쇼핑을 즐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도 익숙하다. 다소 암울하고 답답한 느낌의 책의 분위기에 반영되지 않은 현실적으로 긍정적인 면모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본격 진출하면서 기성세대가 만든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특히 이들은 조직의 미래에 헌신하라, 회사가 바로 당신이라는 돌격 앞으로 식의 충성 일변도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정시 퇴근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Balance'를 줄인 말)이 무엇보다 중요한 그들이기에 조직 내 관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근로기준법 등을 찾아 자신의 합당한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미래 보다 현재의 일상과 여유에 더 집중하는데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성향도 강하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평생직장은 애초 무의미한 단어이다. 일주일에 두 개의 직장을 나눠서 다니는 ‘N잡러도 있고, 자신의 지향점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참고 버티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 201015.7%에서 201627.7%로 실제 신입사원의 입사 1년 이내 퇴사율이 이전보다 높아졌고 퇴사를 준비하는 책이나 강연도 늘고 있다. 모 서점에서 최근 5년 사이 제목에 퇴사나 회사를 나가는 내용을 다룬 서적을 살펴보니 총 40종의 책이 출간됐다고 한다.

 

  적어도 향후 5 ~ 10년간은 밀레니얼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흐름을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기에 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책 뒷부분 옮긴 이의 제안처럼, 기성세대는 밀레니얼에게 기성세대에 저항하라고 외쳐댈 게 아니라, 다행히도 이 책이 세대 문제에 대해 완벽하지는 않아도 완결성을 지니는 어떤 설명서의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이 책을 읽고 그들을 만나 기꺼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생각정원 Thinking Garden’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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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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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살이의 편의를 돕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진보하였다 하더라도,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은 결국 그의 마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일의 결과를 좌우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야말로 가장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대인기술이야말로 일의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고 진정한 일의 성공을 원한다면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비록 21세기 격변의 대한민국과 20세기 초 산업기술 및 상업화의 발흥 시기이던 미국이라는 시간과 장소의 배경적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함에도, 미국 역사 속의 실화, 기업가들의 성공담, 저자 자신의 경험담, 사교계의 숨겨진 일화 등에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며 통찰력 넘치는 인간관계에 대한 카네기의 조언은 그 간결함으로 더욱 빛난다.

 

  내용 전체가 버릴 것 하나 없이 인간관계에 대한 주옥같은 조언이지만, 지금껏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와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건대 특히 울림이 강한 구절들을 일부 모아보았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라. 절대로 그 사람이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마라. (175) Show respect for the other man’s opinions. Never tell a man he is wrong. 자신은 틀려먹었다고 스스로 책망부터 하는 사람은 없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금방 혼날 짓을 하다 들켰을 때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부터 찾는다. 자신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 본성이고 역설적이게도 그래야만 생존에 유리하다.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서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내가 먼저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면 되는데, 글쎄 이를 알면서도 과연 일상에서 얼마나 실천하는지는 각자가 돌이켜 볼 일이다.

 

-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양보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는다. 따라서 사람들을 당신 뜻대로 움직이고 싶다면 이 규칙을 기억하라. 당신이 틀렸다면 빨리, 분명히 인정하라. (184) If you are wrong, admit it quickly and emphatically.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 또는 강압적으로 양보하거나 양보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고맙게도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발견된다. 잘못을 서로 먼저 인정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몹시도 아쉽다. 사회적 강자일수록 약자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이 부족하여 갑질이 횡행하는 요즈음 더욱 절실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 이 책을 읽어서 단 한 가지, 즉 항상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당신뿐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태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그 한 가지만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 생애의 경력에서 중요한 이정표 하나가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불쾌감을 주지 않고 적개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꾸고 싶다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애써라. (229) Try honestly to see things from the other person’s point of view.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역지사지,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지능지수보다 훨씬 중요한 감성지수 혹은 사회성지수를 많이들 얘기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 따위는 개에게나 주라는 식으로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한 사람의 인성을 알아보려면 약간의 권력을 주어보면 안다고 했다.

 

- 다른 사람과의 교제에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나름의 방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결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람을 찾는 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당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324) 생각해 보라 타인의 영향으로 나는 대체 얼마나 바뀌었다고 보는가.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한, 사람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사람은 고쳐 못 쓰는 법이라고 하겠는가. 상대를 바꾸려 들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나 비결이라도 실천에 옮겨졌을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안 그래도 서로 마음의 위로가 아쉬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금과옥조뿐만 아니라 학식 지식 금전보다 사람 됨됨이가 최우선적 가치관인 시대를 열망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네기가 말하는 성공적인 인간관계란 단순히 개인의 이익과 영달의 목적을 넘어선 사회와 인류 전반의 믿음을 회복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독자분들의 생각도 이러한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감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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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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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는 부제로, 신경전문의인 저자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흥미로운 뇌 이야기. 전체 10가지 특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알기 쉽도록 풀어 썼기 때문에 상식의 폭을 넓히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책자가 단색 인쇄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화질에 간결한 설명을 곁들인 삽화가 내용 이해를 돕고, 각 챕터가 검은 색상지로 구분되어 있어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도 좋다. 한 번 읽어보고픈 마음이 드는 저자의 영어 원서도 그러하리라 짐작되지만, 번역된 외서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번역체 어투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힌다.

유투브에서 노르웨이 의사인 저자가 영어로 진행하는 TED 강연을 보시라 권유 드리면서, 목차별 주제에 간단한 언급 방식으로 평을 달아 본다.

1. 뇌의 진화.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이어진 진화의 흔적이 뇌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현생 인류의 탄생지는 바다라는 주장을 믿는 필자는 파충류가 아니라 어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차이 이외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의 인간다움 역시 대뇌피질이 발달한 때문.

2. 성격의 탄생. ‘나다움(me-ness)’을 결정하는 건 결국 뇌 특성의 발현 정도이며, 정신질환 및 성격장애 역시 뇌의 건강상태에 따른 결과.

3. 기억력과 학습.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설명하느라 유명 인물이 등장한다. 우연히 예전에 읽고 서평을 써보기도 했던, 뇌 의학 역사상 최초로 일부 뇌 절제술을 받았던 뇌전증 ‘환자 Henry Molaison’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여 사실 좀 놀랍고도 반가웠다. 저자가 신경전문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어 특히 외국어 습득과 밀접한 뇌의 학습 기제를 공부하느라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 이상으로 깊이 들여다본 경험상 ‘베르니케 영역’처럼 관련 내용을 상기하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4. 뇌 GPS.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각종 첨단 장비의 역할을 하는 세포들을 소개한다. 위치파악, 거리측정, 방향과 장애물 감지, 속도감, 정보수집 그리고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한 모든 길치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덤.

5. 감정.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했는데 알고 보니 감정의 근원은 호르몬, 즉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감정을 억제 조절하는 전전두엽의 역할이 잘 설명되었는데, 굳이 부연하자면 생후 일정 기간에 전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여 스마트폰에 너무 일찍 노출되는 요즘 세태가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한다, 또는 유전적으로 발달이 모자란 집단이 역사 속의 바바리안 집단이었고 야만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등의 자잘한 내용을 넣었으면 어떨까 하는 사족을 달아본다.

6. 지능. 외모와 지능은 대체로 정비례 관계이며, 지능보다는 후천적 노력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으며, 사람은 적당히 똑똑해야 인생이 즐겁다.

7. 다른 문화, 같은 뇌. 인간의 선천적인 뇌 구조는 큰 차이가 없으나 문화와 같은 대표적인 후천적 학습요인에 의해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달.

8. 밥상 위 과학. 뇌를 속임으로써 식욕을 자극하거나 억제할 수 있으며 이를 가장 잘 알고 이용하는 이들이 바로 식품회사들이라는 사실.

9. 중독. 일상적으로 접하는 카페인, 니코틴부터 헤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향정신성 화학물질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줌.

10. 지각. 인간의 5감(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을 비롯하여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연구 분야인 두뇌인지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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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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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표지 상단의 제목은 '괴물'을 뜻하는 monster와 '학문'을 뜻하는 영단어 logic을 합성하여 '괴물학'이라는 신조어를 틀에 쇳물을 붓듯 주조(coining)한 것이다. 세상에 괴물은 있어도 괴물을 학문으로 체계화한 괴물학은 처음이다. 아무렴 처음이면 어떤가 괴물을 좀 연구했다기로 그게 무슨 대수람? 이렇게 혼자 궁시렁대며 책장을 펼쳐본 바,

이야기 극초반부는 독자의 호기심과 빠른 사건전개를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괴물의 모습과 활약상을 살짝 드러낸다. 본문에는 그 흔한 삽화 한 장 없이 오로지 글자뿐인지라 작가가 설명하는 괴물의 모습을 머릿속에 잘 그려놓고 있어야 했다. 머리는 없고 커다란 입은 가슴팍에 있으며 초점없는 까만 눈은 양 어깨에 박혀있으며 치명적인 급소인 뇌는 인간의 방광 자리라니..

최근 보았던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사실상 후속편인 에일리언 커버넌트를 보았다면 훨씬 이해가 빠를것같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에일리언이 더 후한 점수를 받을 것 같은데 날카로운 손톱 무기와 10미터를 뛰어오르는 다리 근력과 상어이빨 전투력으로 치자면 밀리지는 않겠다 싶다. 외계생명체를 병기로 만들어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기업정신 투철한 회사와 인류평화를 위해 이에 맞서는 주인공의 선악 대립구조가 이 소설에서도 엿보인다. 영화 커버넌트처럼 후속편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대놓고 예고하지는 않지만 아직 읽지못한 나머지 3권의 내용이 자못 궁금하긴 하다.

괴물을 연구하는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괴물학자와 대를 이어 그를 보좌하는 주인공 소년이 주고받는 애증 쌍곡선과, 괴물의 발견에 이어 생포와 비밀스런 사육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이어지는 처절한 결투장면 등의 장면을 어떻게 영화화할것인가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대개의 스릴러 장르가 그렇듯 흑백톤의 음습한 배경이 당연히 어울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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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에 대하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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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심리학, 여성 심리학, 임상 심리학, 소비자 심리학, 상담 심리학 등등 이 많은 심리학 분야 가운데 유독 남성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남자 어른의 심리를 다룬 학문은 없는 걸까 평소에도 참 궁금했다. 일단 청소년기에 자리 잡으면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살다 가기 때문인 걸까? 아 그런데 바로 이 책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가 특히 고통이 필수인 마흔 이후 어른, ‘특히 마음만은 청춘인데...’ 하는 남성들 심리학의 빈자리를 채워주는가 싶다. 근거는 참으로 빈약하지만 일단 저자의 이름이 어릴 적 친구와 똑같아 괜스레 친근감이 든다. 참고로 그 친구와 나는 인문계 출신으로 정신과 전문의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 가정에 대형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쌍둥이 아이들에게는 북한에서도 무서워 못 내려온다는 중2병이, 엄마에게는 항암 발병과 수술 후 병치레가, 아빠에게는 40대의 사춘기인 사추기가 온 것이다. 이름하여 호환 마마 역병보다도 무서운 재앙 3종 세트. 솔직히 고백하자면 급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어리석은 마음에 자주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떠올렸던 적 있었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서늘 해온다. 하여 지난 십 년을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다쳤고 아픈지조차 모르고 지나왔는데, 마침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볼 기회가 되었다.

 

어떤 책을 접하든, 독자는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맞는 수준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마련인 것 같다. 현직 심리상담사인 저자와 내담자들과의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했고, 많지 않은 분량과 길게 늘여 빼지 않는 간결한 설명체 문장이라 쉽게 읽히는 한편,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의 사례를 통해 아 그래 이거야말로 나의 모습이었어라는 공감의 탄식을 연발할 것이다. 목차의 구성 역시 참으로 알차다. 큰 제목만 봐도 그렇고 길어야 석 장을 넘어가지 않는 짤막한 그러나 울림 깊은 각각의 일화들에 하나같이 공감이 간다. 굳이 목차의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도록 각 일화의 제목들만으로도 내용을 짚어가며 읽기 좋게 되어있다.

 

1부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생각 공부

2부 나와 당신을 절실하게 느껴야 하는 시간-감성 공부

3부 인간은 점점 더 추운 곳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자다-관계 공부.

 

나름 힘들었던 지난 10년을 떠올리며 읽던 가운데 우울하지 않은 우울증부분을 읽다가 놀라운 적중률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게도 우울증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지나갔다니. 어떤 증상은 거의 무관하지만 다른 증상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각 증상을 전혀 아니다(1) 부터 보통이다(3), 매우 그렇다(5) 까지의 척도로 표시해보았다. 다른 독자들께도 이 같은 오지랖을 실천해 보시라 권하는 바이다.

 

일에 지나치게 빠져든다: 2. 다행인가 의외로 게으름을 많이 피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본다: 3. TV 대신 영화관으로 달려감.

조급해하고 기다리지 못한다: 5. 특히 과속난폭 운전으로 증상이 심하게 드러남.

쓸데없는 걱정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5. 이렇게 걱정만 하다간 곧 죽지 싶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4. 깊은 한숨과 더불어 자유롭던 과거가 아른거림.

성적인 환상에 집착하거나 빠져든다: 4. 금연했는데 한 대 생각나는 것과 같은 수준.

고집스러워지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4. 그래서 돌아오는 건 욕 바가지 뿐.

자꾸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5. 불과 반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천사.

의심이 많아지고 사소한 일에 집착한다: 2. 생존본능인가 의외로 감각이 무뎌짐.

사소한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말한다: 5. 못하는 술 한잔 걸치면 더더욱.

술에 빠져든다: 2. 다행히도 술에는 약해서 해당 무.

친구를 만나도 재미가 없고 사소한 말에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4. 이걸 타파해 보려고 새로운 모임에 자주 나가다 보니 출석 중독됨.

 

마음만은 아직도 철딱서니 없는(?!) 20대라지만, 생각/감성/관계의 마음 공부를 제대로 하고 40대를 거쳐왔더라면 훨씬 더 좋았으리라는 일말의 후회도 든다. 그러나 조금 늦더라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어느 화장실 벽에 써 놓은 낙서 글귀가 새삼 다가온다. 책에 수록된 다양하고 상세한 경우들을 모두 합치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일찍 알게 될수록 인생이 행복하다. 자신과 다툴 일이 적을 테니.’

마흔을 위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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