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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시인 R. 타고르, 미술교육의 개척자 되다
최은주 지음 / 예술시대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R.타고르의 교육철학이 형성된 배경에는 유럽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서구식 사상과 생활방식에 호의적이었던 집안 분위기에서 어려서부터 영어를 사용하며 성장했던 R.타고르는 청년기까지는 자연스럽게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다는 주장을 했다. (-11-)
한편 람 모한 로이의 민족주의 사상은 초기엔 소수 집단에 한정되어 있었다.하지만 람 모한 모이의 주장처럼 영국이 행정조치에 의해 영어를 행정업무와 법정에서 공식적인 언어로 채택하자,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계층을 중심으로 인도의 새로운 중간 엘리트 계층이 생겨났다. 법관, 변호사, 의사,기술자, 부유한 상인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서구의 문명과 사상의 선택과 수용에 몰두하였다. (-20-)
R.타고르는 학생들이 나무들과 자연미로 둘러싸인 아슈람의 정신 아래서 양육되길 바랐고, 자연에서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발견하길 바랐다. R.타고르에 있어서 자연은 언덕과 산과 계곡과 숲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환경이란 의미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정신적 내면적으로 감싸주는 살아있는 현존을 의미했다. (-52-)
1854년에는 대도시 캘커타에 본격적인 미술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후 인도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많은 화가들이 양성하는 곳이 되었다. 그 작은 역시 인도의 토착적인 민속공예가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생산물들의 예술적 수준을 좀 더 세련되고 서구화된 방식으로 제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J.J.School과 구분되는 점은 독창성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펼쳤는데, 이런 교육을 통해 역량 있는 도안사나 디자이너나 판화가를 양성하기 위함이었고, 본격적인 화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86-)
이후 하벨은 디자이과 공예에 대한 그의 관심을 지속했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고 캘커타 미술학교와 미술 갤러리를 재조직했다. 그리고 순수미술의 관점에서 인도에서 영국이 행하는 미술교육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영국식 교육이 잘못된 점을 지적함과 어부어 다지 공예가가 아닌 인도 예술가들의 양성에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A.타고르가 그런 하베의 새로운 실천을 상징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114-)
인도 미술의 전통 회복과 철저한 문화민족주의를 주장했던 쿠마라스와미는 1909년 캘커타에서 스와데시 운동이 폭력과 과도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실망과 혐오감을 나타낸다. R. 타고르가 스와데시 운동의 폭력성에 실망하고 정치적인 일보다 교육적인 일에 관심을 돌린 것처럼, 쿠마라스와미도 정치적인 실망감을 표현했고, 민족주의 운동이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0-)
근대 인도에서 모더니즘 미술에 관한 본격적 논의의 출발은 1922년 캘커타에서 있었던 바우하우스 전시에 의해서였다. 이 전시를 통해서 인도 미술가들은 서구에서 전개되던 모더니즘 미술에 관해 눈뜨게 되었고, 순수 회화, 즉 주제가 없는 회화라는 용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식민지 미술과 그에 대한 반발인 토착적인 민족주의 미술운동의 대립에 매달렸던 인도 미술가들에게 국제적 모더니즘 미술이라는 전시 내용은 미술에 관함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181-)
작가 최은주는 36년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경력으로 국립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 경기도 미술관장,대구 미술관장이 있으며,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으로 일하며, 아시아에 유럽 근대 미술 전시 등 다수 기획한 바 있다.
책 『인도 시인 R. 타고르, 미술교육의 개척자 되다』은 2019년 타고르의 미술교육 철학과 그가 설립한 미술학교에 관한 연구 성과의 일부분이다.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R.타고르의 또다른 면은 예술가로서의 타고르였다. 그는 인도의 간디와 다른 길을 걸었고, 그의 내셔널리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특히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근대화기로 가는 그 모습이 실제로 올바른 근대화인지 비판의식을 가지고 예술 교육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였고,그것을 실천해 왔다. 타고르 또한 미술가로서, 예술작품을 다수 완성하였고, 서구의 모더니즘에 , 토착적인 인도의 전통과 예술을 접목하는데 최선을 다하였고, 그가 만든 예술 교육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데 있었다.
결국 타고르의 교육 철학은 그가 살아있을 땐 인정 받지 못했다.하지만 , 후대에 그의 생각,그의 교육 철학이 옳았음이 증명되었고,그의 교육 철학에 대한 안목과 통찰을 높이 사고 있었다. 인도의 간디에 가려져서,그의 교육 철학은 시대를 앞서 나간다.하지만, 그가 미래의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고, 미래 세대의 교육의 방향성을 높이 샀다는 점은 그의 교육 철학이 21세기 지금 현재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암기식 교육, 주입식 교육이 쇠퇴되고,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창의적 교육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