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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동 선언 - 우리는 글 쓰는 노동자다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4월
평점 :

누군가는 재택노동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할 때 옷을 갈아입습니다. 하루 평균 15시간의 연재노동을 지나고 자궁근종, 이석증, 공황장애를 얻은 작가도 있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겪는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민합니다. 강연료를 정확히 알려주긴커녕 '얼마면 되냐'고 흥정하는 실무자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무급노동을 은근히 요구받는 일이 부지기수고, 계약서의 최저선을 지켜내기 위해 항의하고 싸우기도 합니다. (-6-)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작가 일을 하기 전 학원 강사로 일하고 공부방을 운영할 때는 12시 전에 잔 적이 거의 없고 , 7시 전에 일어난 적도 별로 없다. 주말이면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 사람들을 만나 술도 한잔씩 했다. (-14-)
말일이 되면 기본 교정까지 마친 한 달 분량의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납품한다. 작업이 순조로울 때는 월 30만 자 이상을 납품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컨디션이나 원고 내용, 외부 여건 등이 언제나 최상일 수는 없다. 2023년의 월평균 납품량은 23만자, 2024년은 월평귡 27만자 수준이었다. 2025년 역시 연말에 결산해 보면 총량은 비슷할 것이다. (-36-)
지자체, 지역문화재단과 계약할 때는 매번 인터뷰 대상 인원수와 원고 매수, 교통비, 운영비 등이 포함된 견적서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5년 간 수십 건의 계약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임금 기준을 찾아 헤맨다. 견적서에 책정된 임금은 발주처가 수용 가능한'적정'기준이 돼야 계약이 성사된다. 고민 끝에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강사 수장 및 원고료 등 지급 기준'과 '경남도 생활임금'이다. 내 평균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인터뷰 한 건당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해봤다. (-62-)
그런 경험을 하고 웹툰 시장에서 우왕좌왕하려니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새 작품은 웹툰이 아닌 그래픽노블로 출간되었다. 출판계에서 그림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동료 편집자가 생겼고 , 그의 제안에 따라 출판 계약을 하게 되었다. 작업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도 수월했다. 중심 스토리는 같았지만 세로 스크롤로 기획했던 연출을 페이지 넘김의 구조로 바꾸고 작화 스타일을 삽화 스타일로 손보기도 했다.써놓았던 스토리가 훼손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는 범위에서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116-)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은 천대받는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가로막는 이 나라는 참으로 박한 곳이다. 이 나라는 노동자들이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실질적으로 받는 최저시급이 냉면 한 그릇보다 싼 것이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150-)
나의 첫 소설집 『자연사 박물관』은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해고되어 투쟁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내용 대부분이 자전적인 연작 소설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족 중 누군가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위협을 감당하며, 노동조합을 만든, 그런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한, 짧지 않은 기간 자본과 불법에 맞서 싸운,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추락하는 현실을 경험한 사람이고,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임금 노예, 복종만이 전부인 노동자 개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일에 당당해지는지,기계 부속품과 같았던 옆 노동자가 어떻게 운명을 함께하는 동료가 되어가는지,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이룬 작은 개선들이 어떤 희망과 기쁨이 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187-)
그리고, 6월 26일 서울국제 도서전이 열리던 알, 작가 노조 준비위원회 작가들은 <작가 노동자 선언 :글쓰기도 노조이다> 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글쓰기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삶과 일상이 안녕하기 위해, 오랜 고립과 폄하와 빈곤화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또 답하기 위해,작가노동의 조건과 권리를 범사회적으로 담론화하고 제도적으로 정립하는 과정을 만들어가기 위해 작가도 노동자임을 선언한 것이다. (-214-)
작가와 사장,CEO,예술가의 공통점은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무한 책임을 진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자신의 역량과 성과를 극대화하여야 한다. 그로 인해, 노동의 최저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특히 작가들 대부분 책들은 1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파는 책을 전부 팔지 못해서,출판 재고가 되고, 출판사에게 적자로 남아서,스스로 절판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이제,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수개월 동안 공들여서 준비하였던 책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저작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강의나 강연을 나가는 경우, 무급 혹은 최소한의 실비로 청구되는 경우가 있다. 내 지인의 경우, 작가로 책을 여러권 써왔지만, 편의점에서,일하거나, 주식을 하거나, 다양한 루트로 부업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렇다 해서,그들이 쓰는 책의 내용이 획일적이거나, 부족하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시대의 트렌드에 벗어나거나, 자신의 인지도가 약하고, 책들을 독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해서,생기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책 『작가 노동 선언』을 통해서,작가들이 처한 현실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한 출판 시스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번역을 주로 하는 전문 번역가들조차도, 열정페이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뷰에서,성희롱 발언을 들어도, 따지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자신의 책으 가매하거나, 자비 출판을 하기도 한다,.이런 경우가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작가에 대해서 박하고, 높은 수준을 요구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들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그들의 노동 가치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작가들 스스로 책을 쓰고,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서로 응원하고,지지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함이다. 서로 책을 홍보하고,팔아주는, 관행에서 벗어나,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권리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그것이 결국, 건강한 출판환경을 만들고, 작가들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고자 한다. 마트에서,일하는 시간에 대한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작가들의 노동의 가치의 바닥 수준을 볼 수 있고,잘못된 계약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왜곡된 시선과 착각들이 여전하다.그들에게 때로는 무리한 요구르 생각하고,2025년 현재에도,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최근 세상을 떠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를 쓴 베스트셀러 백세희 작가가 되는 것은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