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 살아요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14
안성하 지음 / 책고래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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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생각 납니다. 부모님이 일이 생겨서 집에 안 계실 때 저는 가까운 할머니 집에서 며칠 지내야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주신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 시골에서 살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고구마, 감자를 먹었으면서 , 추운 거울 아랫목에서 사촌들과 즐겁게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과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설아는 남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한 설아는 사촌들은 먼저 보게 됩니다. 고모네 송이랑 민수, 큰 삼촌네 윤아랑 지수, 작은 삼촌네 유진이까지 다섯명의 사촌들이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으며, 설아는 할머니 집에 도착한 첫날 할머니와 함께 잠을 청하게 됩니다. 둥그런 높은 베개와 무거운 이불, 잠을 청하던 설아는 다음날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바쁜 아침을 보게 됩니다. 사촌들은 아침부터 화장실에 줄 서 있었으며, 설아의 사정에 대해 배려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 써야 비로서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아침을 먹는데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있지만, 설아 몫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음날이 찾아옵니다. 할머니를 도와준 설아는 계란말이를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촌들은 계란말이를 다 먹지 않고 남겨 놓았으며, 밖으로 나갑니다. 아이들이 계란을 남겨놓고 밖에 나온 건 비가 왔기 때문이며, 설아는 찌그러진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제서야 설아는 사촌보다 빨리 움직이고,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으며, 그날 또한 비가 옵니다.. 설아는 할머니 집에서 제일 좋은 노란 우산을 차지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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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로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나와 있어서 관심 갑니다.. 리더로서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강점, 그 강점을 활용해 조직에 성과를 만들고 성공적인 조직을 이끌어가는 비결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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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나와 영원의 당신 - 불안 속에서 더 나은 순간을 찾으려 애쓴 시간들
손현녕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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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나이테, 나이테가 한줄 한줄 세기면서 많은 걸 생각하고, 많은 걸 선택하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며, 많은 걸 쏟아 붙지만, 나의 기대치와 현실은 언제나 서로 엇갈리게 된다.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면서도 벗어나려는 나의 마음, 살아가면서 포기한다는 게 참 어렵다. 당연한 것만 늘어나면서, 그만큼 주름이 깊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붙잡으려는 나의 마음, 작가 손현녕의 글 속에서 나의 잊혀진 상념들을 다시 끄집어 낸다.


어깨동무
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세상이지만 그것에 의존하고 나의 감정과 기분, 아니 나의 하루를 온통 관계에 쏟아버리고 나면 초조함과 두려움에 벌벌 떠는 내 초라한 모습만 남을 뿐이다. (p26)


살아가면서 관계는 참 어렵다.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살이, 적당한 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그 '적당한'의 의미조차 모를 때가 있다. 초라함 속에 감춰진 건 어쩌면 가까워진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다 쏟아부엇기 때문에, 기대치가 커서 그런 건 아닌지..


따스한 언어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프거나 아파본 사람이다. 제 아무리 이해하며 다 안다고 말해도 겪지 않았다면, 진실로 와 닿지 않을 낭비의 말일 뿐, 겪고 또 겪고 찢어지고 넘어진 사람은 말없이 당신을 바라보며 안아줄 것이다.(p85)


아파본 사람은 그 아픔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얋은 위로는 그 사람에게 똑다른 낭비가 될 수 있다. 대로는 어줍잖은 위로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더하고 빼는게 참 어려운 듯 하다.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 자신은 안 그런 듯 하지만, 나의 선택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나의 경험의 정도에 따라 그 사람에게 위로의 깊이도 달라지게 된다.


동력
세상은 인간의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야금야금 빨아대며 몸집을 키운다. 나보다 잘난 상대를 보며 대놓고 부러움을 느끼거나, 아닌 척 뒤로 숨어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다. 어쩌면 그 힘으로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p97)


어릴 때의 부끄러움과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은 다른 것 같다. 어릴 때 부끄러움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마주하는 부끄러움은 고여있는 물과 같다.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기억 속에 저장하려는 우리의 삶,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해 내고 나는 그로 인해 상처를 얻게 된다.


이별
우리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고 갑자기 닥쳐온 공허함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길 잃은 강아지 마냥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p150)


이별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별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이별일 것이다.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이별, 준비되지 않은 이별일수록 공허함은 더 커지며, 그 끈을 놓치 않으려 한다. 이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약이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에서 그런 약을 찾을 수 없다.


아량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조율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사람이다.(p194)


인간관계는 그런 것 같다.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닌 나와 조율할 수 있는 사람, 나와 소토이 가능한 사람, 수많은 자기계발서는 소통을 밑바닥에 놓고 시작한다. 그런데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 절대 조욜이 불가능한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말은 없다. 이럴 때 헤어지는게 답이지만 , 현실은 헤어질 수 있는 경우보다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어쩌면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는 건 이런 이유가 아닐런지.나와 조율할 수 없는 그런 사람과 헤어지고 싶다.


월요일의 메모
매주 월요일이 오면 작은 메모지를 한장 꺼내요. 그리고 이번 주에 하고 싶은 일,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영화,보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음악 등 소소한 희망사항을 써보는 거에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면 메모지에 달성 여부를 적고 자물쇠가 달린 상자에 메모지를 고이 넣어둬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손자,손녀가 무릎에 앉아 그 상자 속 메모지를 읽어보는 순간을 상상해요(p254)


추억을 담자. 나의 일상의 일부분을 작은 냅킨에 담아내자. 한 주 한 주가 모여서 1년이 되어도 50개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500개로 늘어난다. 그것이 20년이 지나 30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색이 바랜 종이하나 조차 추억이 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손자 , 손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매 순간 주어지는 현재라느 순간은 과거가 되고, 미래는 다시 현재로 옮겨진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깐의 여유,시간의 공백을 가지며 살아가는 건 어떨지, 나에게 주어진 삶을 앞당기지 않는 것,그것이 때로는 지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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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 믿음에 갇힌 여자들
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뜨인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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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주 보는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무슬림 출연자들이 나와서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할랄, 여성할례,히잡,차도르, 라마단 등 무슬림을 상징하는 용어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으며, <이웃집 칠스> 출연자중 마흐무드와 13살 소녀 나히드 가족이 생각났다.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올리며, 라마단을 꼭키ㅁ키면서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간다.


무슬림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한다. 7세기 무함마드가 완성한 이슬람교는 익히 알고 있듯이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수니파와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조카인 알리를 지지하는 수니파로 나뉘며, 전체 무슬림 중에서 시아파가 10퍼센트를 차지 하고 있다. 그들간의 종교적 갈등은 걸프전을 낳았으며, 아랍 사회의 무슬림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살인적인 더위에도 그들은 왜 히잡과 차도르를 쓰면서 살아가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여기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게 된 그 근본은 무함마드 마지막 아내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와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사이에서 후계자 문제로 인해 빗어졌다.


히잡과 차도르는 무슬림 여성이 꼭 착용해야 하는 옷이다. 얼굴과 몸을 가리는 옷은 무슬림 여성을 보호하고, 무슬림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길들여지게 된다.저자는 차도르는 무슬림 여성의 후천적 피부이며, 무슬림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방편이라 부른다. 또한 남성과 여성을 분리 지으며, 일부 다처제의 무슬림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불평등과 인권이 실종된 그 모습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세상이 변화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곳이 바로 무슬림 세계이며, 무슬림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태도와 관습이다.


제럴딘 브룩스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살아가면서, 그녀 또한 무슬림 여성과 동일한 삶을 강요당한다. 남성을 만날 때 히잡을 써야 하며, 그것을 어길 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길에서 외국인 여성을 파묻고, 돌팔매질 당할 수 있는 상황이 무슬림에는 통용이 되며, 이슬람 율법을 어기고 간통을 저지를 시 태형이나 명예살인이 허용된다. 여기서 대다수 무슬림 여성에게는 피선거권과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재산권과 상속권 또한 남성이 가지는 구조, 무슬림 여성에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무슬림에는 지하드가 있다.성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이슬람을 위해 투쟁을 벌이는 행위를 지하드라 부르며, 1988년 살만 루슈디가 쓴 소설 '악마의 시' 로 인해 무슬린 자히드의 포적이 되어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렇게 영국의 보호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잇는 살만 루슈디는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으며, 그의 책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슬람에 수치스런 행위를 할 경우 무슬림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슬림 여성에게는 남녀 분리가 원칙이다. 속옷을 구매하는 것 또한 자신이 구매할 수 없으며 남성을 통해 구매해야만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남녀 혼성이 연습하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히잡을 벗거나 차드르를 쓰지 않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 무슬림 세계, 무슬림 여성에게 수영이란 남의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책에는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아시아 축구 강국 ,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축구는 무슬림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인기 있는 종목이다. 무슬림 남성은 월드컵 경기를 보는데 있어서 자유롭지만 무슬림 여성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히잡을 쓰고 차도르를 입지만, 남성들이 이슬람 복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스포츠 경기를 볼 권리조차 차단된다.아시아 경기에 출전하는 무슬림 여성은 육상 경기에 나올 때도 차도르를 입어야 하며, 사격이나 승마 등 무슬림이 허용하는 일부분의 종목에서만 출전이 가능하다.


이슬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피선거권과 투표권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반면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는 이슬람 원리주의(Islamic Fundamentalism) 로 인해 걸프전 이후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며, 서방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투쟁은 서방 세력에 대한 배척이며, 그들이 수천년동안 지켜온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걸프전 이후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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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저스티스맨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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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저스티스맨>의 표지를 바라 보았다. 붉은 불빛 아래 서 있는 한사람, 그 한사람은 누구였을까, 우리의 또다른 자아는 아닐까 생각하였으며, 저자 도선우씨께서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 그 사건들은 연쇄살인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연쇄살인에 초점을 맞추면 저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의뭉스럽다. 소설 속 연쇄살인이라는 하나의 껍데기를 들어내면서 나는 과거 10년전 사건 하나가 생각났다. 그건 '미네르바 사건'이다.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썻던 사람은 그 당시 미국 경제, 리먼 브라더스 부실과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해 언급했으며, 수많은 네티즌의 관심과 이목을 끌게 되었다. 처음 '미네르바'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이들은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마니아층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 , 메시지를 그대로 복사하고 붙여넣었으며, 바다위의 잔잔한 작은 파도가 쓰미로 바뀌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박대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은 경제에 능통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익힌 경제적 지식을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뱉어냈으며, 인터넷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익명성을 동원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프리즘에 대해 차별화 하였고, 표현의 자유가 먼저이냐, 사회의 질서가 우선이냐 공분을 양상시켰다.


사람들은 미네르바 사건이랑 이 소설이랑 무슨 상관일까, 그건 '미네르바'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터넷 까페 운영자 '저스티스맨'을 연상할 수 있었다. 그 두사람은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사회에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권력이 아닌 네티즌들이 모이고 관심가지면서 형성해 놓은 권력이다. 네티즌이 얻고자 하는 관심과 그 관심에 충족시켜 주는 그들이 던지는 생각과 가치관, 그것이 진실이던, 거짓이던 우리는 상관없다. 물론 그들은 정의를 표명하지만, 그 정의에 대한 허구적 실체에 대해 관심가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정의는 껍데기였으며,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인간의 욕망이 감춰져 있다. 소비할 가치가 있으면, 소비하는 인간의 특성, 소비할 가치가 사라지면 그것은 철저히 잊혀지고 만다. 미네르바에 대해 수많은 언론들이 단독, 속보라는 타이틀을 제목에 붙이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바꿔쓰는 그들에겐 사명감이나 정의감은 개뿔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닌 밥벌이를 하게 만들어 주는 기사들을 찾아 재탕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거짓된 신념이었던 것이다. 소설 <저스티스 맨>에서도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모습들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 안에는 정의와 사명감 선과 악의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


소설 <저스티스 맨>에는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연쇄살인 사건의 첫 시작은 인터넷에 올라온 하나의 사진이다. 그 사진이 자극적일 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한국인이 가지는 오지랖은 그것을 민주주의와 정의로 포장하게 된다. 복사하고 붙여넣기 하면서 그들은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능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르다는 걸 보여주는 이중적인 행태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연쇄살인 사건에 관심 가지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포털 사이트에서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며, 운영자 '저스티스맨' 이 만들어 놓은 까페였다. 그는 첫번째 살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예리한 관찰력과 언론과 경찰이 흘려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가상의 공간에 모여들게 되었으며, 선과 악으로 나누어 자신의 생각을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이들로 구분지어진다. 이 공간에서 욕설이 오가며, 서로의 생각에 대해 작의적인 비판도 이어지는 가운데 '저스티스맨'의 생각은 예리한 칼날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그 메시지가 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하나의 완성된 퍼즐을 맞추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첫번째 연쇄 살인은 두 번째 연쇄 살인과 세번째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처음과 두번째의 연결고리를 알고자 했으며,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는 무관심한 형태를 보이며, 정의라는 허구의 실체가 인간의 공격성과 파괴성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첫번째 살인에서 피해자는 '피해자로서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형태의 피해자'였다. 자시니 한 행동으로 인해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간의 설전을 보고 있는 제3의 인물 '관찰자' 가 존재한다. 언론과 범인 그리고 연쇄살인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자신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들, 게시글이나 댓글을 전혀 남기지 않는 그들은 모두 제 3의 인물에 해당된다.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신적인 존재이며, 권력의 실체는 바로 '저스티스맨'이라는 까페 운영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처음엔 놀이의 형태에서 남의 일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영웅을 만들어내는 행태에서 점차, 자신의 숨어있는 불안과 공포, 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살인행위가 자신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게 되면서 ,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 하나의 인간의 군상이 소설 <저스티스 맨>에 압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저자는 범인의 실체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고 소설은 마무리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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