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광고 & 타겟마케팅 - 하루 5000원으로 10만명 도달하기
페꼼마 이종근 지음 / 리텍콘텐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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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마케팅 기법은 소비자가 배너를 클릭해 새로운 웹사이트로 유도하는 형태였다. 배너 클릭률이 높아지면, 그에 따른 광고비가 올라가는 형태였으며,그 특징에 따라 CPA,CPC,CPM,CPP,CPR,CTR로 불리게 된다. 이런 광고 기법은 배너를 클릭한 사람의 성향이나 특징을 파악할 수 없으며, 그에 맞춤형 서비스를 유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이다. 이런 모양새는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검색해 새로운 사이트에서 광고를 클릭 유도하는 특징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 일방적인 Push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는 그런 광고에 대해 정크 광고, 스팸 광고라 생각해 차단하거나 재방문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그런 단점에서 벗어나 소비자 맞춤형 타겟 광고를 진행한다. 사실상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광고 정책은 구글이 보여주는 광고 정책과 흡사하다. 소비자에게 불쾌감을 줄이고 광고 서비스를 하는 것, 잠재고객을 발굴해 자신의 목적에 맞는 서비스 제공하는 것,그것이 구글과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광고 정책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페이스북을 SNS 용도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도 페이스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막힌 상태이며, 구글은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어지기 때문에 페이스북 광고 효과가 크지 않다. 그것이 구글을 포털로 사용하는 다른 나라와 한국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기업의 페이스북 관리자나, 자영업자이면서 페이스북과 다양한 포털사이트 SNS 같이 운영하는 이들에겐 참고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 대해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행동 변화를 추구하도록 이끌어 나간다. 국가, 나이, 지격,성별,관심사 등등 페이스북 안에서 제공되는 도구들을 활용해 그들이 필요한 정보 제공과 함께 점재적인 고객을 발굴해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뒤 우리가 해야할 목표이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제공하고, 컨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과정은 복잡하다.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툴이 있지만, 실제로는 포토샵,일러스트, 프리미어나 페이지 메이커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잇어야 한다. 네이버나 다음처럼 비주얼에 중점을 두고, 우리에게 친숙한 레이아웃과 달리 페이스북을 보면 무언가 어색한 측면이 보여진다. 하지만 누구나 페이스북을 개설해 놓고 있으며, 수많은 고객이 페이스북에 모여들고 있다. 특히 국내 소비자 뿐 아니라 해외 소비자를 타겟으로 고객을 불러 들일 수 있는 장점을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페이스북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들과 기능이며, 그 기능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페이스북 정책에 따르지 않은 채 페이스북을 운영하게 되고, 비활성화 될 경우 페이스북은 차단되고 복구하는데 시일이 걸린다. 그럴 경우 기업의 입장에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1PHONE, 1PC, 1브라우저(크롬)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페이스북 보안 정책이 사용자의 로그인 특징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벗어난 행동들 보일 때,페이스북은 해킹당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차단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페이스북 로그인 했던 사용자가 갑자기 중국이나 미국에서 로그인 시도했을 경우 차단될 수 있다.


페이스북은 광고에 의한 광고를 위한, 광고에 의한 SNS 이다. 나이나 성별, 학교, 지역에 따라 각자 다른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같은 페이지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메일과 전화번호가 페이스북과 연동되어서, 페이스북 마켕팅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가 인스타그램을 인수함으로서 인스타그램 사용자를 페이스북 안으로 끌어 당길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B2C 마케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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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버드 행복 수업
유키 소노마 지음, 정은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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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아간다.  TV 에서 우연히 보았던 20년 전 방영했던 프로그램 '한지붕 세가족'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행복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뉴스에는 항상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비추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기득권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행복을 자주 말하느 사람들은 과거 행복했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다. 물질적인 풍요와 과거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은 행복을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단골 멘트가 나온다. 덴마크의 행복 지수는 세계1위이고, 스리랑카, 태국의 행복 지수는 한국보다 높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행복 지수는 낮은 편이다. 여기서 덴마크인의 삶을 보면 알게 된다. 우리 나라에는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한번 직장을 가지게 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그 일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직장을 가지는 문턱도 전문직을 제외하고 과거엔 높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에 대한 문턱은 점점 높아졌으며, 그로 인해 한 직장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옮겨 다니게 된다. 실직이 되면 실업 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현실이 덴마크와는 다른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실상 우리의 사회적 안전망의 미흡함은 갑질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것에 대해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견디고 참으면서 일하라고 말한다.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 그것에 대한 왜곡이 우리가 불행한 이유가 된다.


끊임없이 쳇바퀴 위를 달리다가 완전히 지쳐 버렸고, 마침내 노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바로 부지런함과 헛수고다.

부지런함은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의미있는 목표를 위해 꾸준하게 일하는 태도를 뜻한다. (p192)

부지런함과 헛수고, 바로 우리들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의 부지런함과 근면성은 한 때 세계최고를 자랑했다. 돌이켜 보자면 언론에서 말하는 그 부지런한 모습들은 우리 사회를 왜곡시켜 왔다. 왜 부지런함이 문제이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걸까, 목표 없는 쳇바퀴를 돌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바로 부지런함의 부작용이며, 불행의 이유가 된다. 참고 견디고 일해야 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렇다. 미래의 행복을 앞당겨 현재의 즐거움을 내려 놓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우리가 왜 부지런해야 하는지 되묻게 만든다.열마전 TV 에서 졸음 운전을 했던 버스 기사가 생각났다. 사고를 낸 버스기사가 잘못일까, 그렇게 버스 운행을 지시한 버스회사와 사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걸까, 불행은 바로 이런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경험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현재보다 느린 삶에서 벗어나 경과보다 과정을 우선하며, 그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1.삶의 속도를 느리게 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꾸준히 유지한다.
3.좋은 일의 장점을 충분히 음미 한다.
5.자신이 실천한 친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의식한다.
6.좋아하는 일에 열중한다.
9.타인과의 유대를 형성한다.
10.자연을 자주 접한다.
11.마음 챙김을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
12.사랑과 배려에 대해 명상하고 실천한다.

책에 나오는 행복 찾기에 대한 실천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행동을 하고,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 사랑과 배려, 감사함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감사일기를 통해 나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 보는 것,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에 대한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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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행복 수업 - 왜 세계 최고 지성들은 행복 수업을 듣는가
유키 소노마 지음, 정은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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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아간다.  TV 에서 우연히 보았던 20년 전 방영했던 프로그램 '한지붕 세가족'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행복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뉴스에는 항상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비추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기득권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행복을 자주 말하느 사람들은 과거 행복했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다. 물질적인 풍요와 과거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은 행복을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단골 멘트가 나온다. 덴마크의 행복 지수는 세계1위이고, 스리랑카, 태국의 행복 지수는 한국보다 높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행복 지수는 낮은 편이다. 여기서 덴마크인의 삶을 보면 알게 된다. 우리 나라에는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한번 직장을 가지게 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그 일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직장을 가지는 문턱도 전문직을 제외하고 과거엔 높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에 대한 문턱은 점점 높아졌으며, 그로 인해 한 직장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옮겨 다니게 된다. 실직이 되면 실업 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현실이 덴마크와는 다른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실상 우리의 사회적 안전망의 미흡함은 갑질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것에 대해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견디고 참으면서 일하라고 말한다.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 그것에 대한 왜곡이 우리가 불행한 이유가 된다.


끊임없이 쳇바퀴 위를 달리다가 완전히 지쳐 버렸고, 마침내 노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바로 부지런함과 헛수고다.

부지런함은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의미있는 목표를 위해 꾸준하게 일하는 태도를 뜻한다. (p192)

부지런함과 헛수고, 바로 우리들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의 부지런함과 근면성은 한 때 세계최고를 자랑했다. 돌이켜 보자면 언론에서 말하는 그 부지런한 모습들은 우리 사회를 왜곡시켜 왔다. 왜 부지런함이 문제이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걸까, 목표 없는 쳇바퀴를 돌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바로 부지런함의 부작용이며, 불행의 이유가 된다. 참고 견디고 일해야 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렇다. 미래의 행복을 앞당겨 현재의 즐거움을 내려 놓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우리가 왜 부지런해야 하는지 되묻게 만든다.열마전 TV 에서 졸음 운전을 했던 버스 기사가 생각났다. 사고를 낸 버스기사가 잘못일까, 그렇게 버스 운행을 지시한 버스회사와 사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걸까, 불행은 바로 이런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경험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현재보다 느린 삶에서 벗어나 경과보다 과정을 우선하며, 그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1.삶의 속도를 느리게 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꾸준히 유지한다.
3.좋은 일의 장점을 충분히 음미 한다.
5.자신이 실천한 친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의식한다.
6.좋아하는 일에 열중한다.
9.타인과의 유대를 형성한다.
10.자연을 자주 접한다.
11.마음 챙김을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
12.사랑과 배려에 대해 명상하고 실천한다.

책에 나오는 행복 찾기에 대한 실천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행동을 하고,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 사랑과 배려, 감사함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감사일기를 통해 나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 보는 것,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에 대한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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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明の憂鬱 (新潮文庫) (文庫)
平野 啓一郞 / 新潮社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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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두 편의 소설을 출간한 뒤 2년간 잡지에 연제된 글들이 모여진 책이며,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일본 사회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스물네살 그 당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의 모습과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사회의 모습들, 자취생활을 병행하면서 20대이고, 직업으로서 소설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간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사유가 담겨져 있다.


소설 <장송>을 읽고 난 뒤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 세계가 궁금했다.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들, 그에게 왜 천재 작가가라고 꼬리표가 붙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의 소설가 입문 초기, 20년전 일본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기 딱 좋은 에세이였다. 지금 20대 초반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명의 우울>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 내 머리 속에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것들이 필터링 된 채 나에게 익숙한 것들만 받아들이듯 말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아이보였다. 로봇 장난감 아이보는 소니가 만든 획기적인 로봇 애완동물이다. 이 로봇 장남감이 개발된 이후 혼다에서 개발된 이족 보행 로봇 아시모(ASIMO)가 개발되었으며, 그것은 지금 우리 삶이 바뀌게 된 시작이며,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 혁명의 시작이 되었다. 저자는 그 당시 자신이 바라본 문명이 가져다 주는 우울감을 생각했으며,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불안을 예측했다는 사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은 문명을 잉태했으며, 인간은 그 문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과 매스 미디어가 그 본질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히라노 게이치로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인공 애완동물이 살아있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소유하면서부터 비로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애완동물을 모방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혹 창조에 대한 우리 무의식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생물 그자체를 모방해 로봇 동물을 만들고,애완동물에게 쏟는 것보다 더 보편적인 애정을 로봇 동물에게 쏟게 될지도 모른다. (p10)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가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정보의 수신자와 송신자 모두를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유입된 정보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에 대해 더욱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론은 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인 우리도 매스미디어와 좀 더 냉정하고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p19)


매스미디어와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TV 를 보지 않고,신문을 보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럴 경우 우리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되고, 멀어져 간다. 거리를 유지한다는 걸 반기지 않는 매스미디어의 생산자와 그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이들은 우리의 삶 깊숙히 파고 들어간다. 정치인들은 매스미디어를 활용하고, 기업도 그것을 활용한다. 일반 자영업자도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많은 걸 변화시키고 있다. 책에는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태에 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생각이 엿보인다. 수많은 인명 피해자가 나타난 그 현장을 매스미디어가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현장을 전달하지 않고 잇으며, 왜곡하고, 반복 재생함으로서 사람들은 점점 더 무덤덤해지면서, 그것을 영화처럼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은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잇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지마느 우리는 그것에 노출되면서, 그 잔인함에 대해 무덤덤 해져가고 있다.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이는 그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의 계절>이다. 이 책은 랭보가 16살 때 쓴 책이며, 소설가로서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술가로서 소설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 롤모델이 존재하며,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그 대상이 히라노 게이치로에겐 아르튀르 랭보였으며, <금각사>,<가면의 고백> 을 쓴 미시마 유키오였다.


과학에 대한 신앙은 오늘날에 와서 퇴색되기는 커녕 더욱 강해진 듯하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p33)


낙서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존재를 그 장소에 새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때로 낙서가 치누들끼리만 통하는 연락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그러한 특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p43)


히라노 게이치로는 낙서에 대해서 일본인은 낙서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낙서를 하지 않는 일본인의 해위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인처럼 낙서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낙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 뿐 아니라 해외 각국의 여행지에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한글로 쓰여진 낙서가 현존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런 한국인의 특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인과 한국인은 뭔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이질감도 함께 가진다.


지진은 이를 테면 갑작스러운 허무의 습격이다. 그것은 매우 직접적인 파괴를 위한 파괴이며, 생각을 허락치 않는 찰나적인 현상이다. 지속되는 재해가 인간들로 하여금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면, 지진은 그런 여유조차 주려고 하지 않는다. 화산의 분화가 현상으로 볼 때 얼핏 지진과 같으면서도 종교적으로는 지진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지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이라는 것, 나아가서는 상징의 차원에서 물과 동등한 의의를 가지는 불이 파괴의 실태로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p74)


히라노 게이치로는 로봇을 좋아한다. 그리고 때로는 주변에 보이는 걸 유심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본질을 찾아 나간다. 그래서인지 사회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혐오감도 보여진다. 비행기와 통조림, 고질라, 구제역에 대한 혐오, 매쓰미디어에 대한 혐오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고베 대지진을 가까운 곳에서 마주해야 했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허무함과 두려움은 무엇인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순식간에 모든 게 파괴되고, 준비되어짐이 없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지진이며, 가족의 붕괴의 이유가 된다. 슬퍼할 겨를도, 여유조차 지진앞에선 무기력해진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작가로 살아진다는 건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풍요를 가져다 주면서 때로는 사람을 옭아매고 ,집착을 강요당하게 된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했던 직업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동경하지만, 실제 삶으로서의 소설가는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마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그 불안함이 그의 새로운 작품을 잉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으며, 천재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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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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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두 편의 소설을 출간한 뒤 2년간 잡지에 연제된 글들이 모여진 책이며,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일본 사회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스물네살 그 당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의 모습과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사회의 모습들, 자취생활을 병행하면서 20대이고, 직업으로서 소설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간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사유가 담겨져 있다.


소설 <장송>을 읽고 난 뒤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 세계가 궁금했다.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들, 그에게 왜 천재 작가가라고 꼬리표가 붙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의 소설가 입문 초기, 20년전 일본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기 딱 좋은 에세이였다. 지금 20대 초반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명의 우울>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 내 머리 속에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많은 것들이 필터링 된 채 나에게 익숙한 것들만 받아들이듯 말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아이보였다. 로봇 장난감 아이보는 소니가 만든 획기적인 로봇 애완동물이다. 이 로봇 장남감이 개발된 이후 혼다에서 개발된 이족 보행 로봇 아시모(ASIMO)가 개발되었으며, 그것은 지금 우리 삶이 바뀌게 된 시작이며,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 혁명의 시작이 되었다. 저자는 그 당시 자신이 바라본 문명이 가져다 주는 우울감을 생각했으며,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불안을 예측했다는 사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은 문명을 잉태했으며, 인간은 그 문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과 매스 미디어가 그 본질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히라노 게이치로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인공 애완동물이 살아있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소유하면서부터 비로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애완동물을 모방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혹 창조에 대한 우리 무의식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생물 그자체를 모방해 로봇 동물을 만들고,애완동물에게 쏟는 것보다 더 보편적인 애정을 로봇 동물에게 쏟게 될지도 모른다. (p10)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가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정보의 수신자와 송신자 모두를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유입된 정보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에 대해 더욱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론은 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인 우리도 매스미디어와 좀 더 냉정하고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p19)


매스미디어와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TV 를 보지 않고,신문을 보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럴 경우 우리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되고, 멀어져 간다. 거리를 유지한다는 걸 반기지 않는 매스미디어의 생산자와 그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이들은 우리의 삶 깊숙히 파고 들어간다. 정치인들은 매스미디어를 활용하고, 기업도 그것을 활용한다. 일반 자영업자도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많은 걸 변화시키고 있다. 책에는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태에 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생각이 엿보인다. 수많은 인명 피해자가 나타난 그 현장을 매스미디어가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현장을 전달하지 않고 잇으며, 왜곡하고, 반복 재생함으로서 사람들은 점점 더 무덤덤해지면서, 그것을 영화처럼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은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잇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지마느 우리는 그것에 노출되면서, 그 잔인함에 대해 무덤덤 해져가고 있다.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이는 그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의 계절>이다. 이 책은 랭보가 16살 때 쓴 책이며, 소설가로서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술가로서 소설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 롤모델이 존재하며,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그 대상이 히라노 게이치로에겐 아르튀르 랭보였으며, <금각사>,<가면의 고백> 을 쓴 미시마 유키오였다.


과학에 대한 신앙은 오늘날에 와서 퇴색되기는 커녕 더욱 강해진 듯하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p33)


낙서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존재를 그 장소에 새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때로 낙서가 치누들끼리만 통하는 연락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그러한 특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p43)


히라노 게이치로는 낙서에 대해서 일본인은 낙서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낙서를 하지 않는 일본인의 해위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인처럼 낙서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낙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 뿐 아니라 해외 각국의 여행지에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한글로 쓰여진 낙서가 현존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런 한국인의 특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인과 한국인은 뭔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이질감도 함께 가진다.


지진은 이를 테면 갑작스러운 허무의 습격이다. 그것은 매우 직접적인 파괴를 위한 파괴이며, 생각을 허락치 않는 찰나적인 현상이다. 지속되는 재해가 인간들로 하여금 괴로움과 절망 속에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면, 지진은 그런 여유조차 주려고 하지 않는다. 화산의 분화가 현상으로 볼 때 얼핏 지진과 같으면서도 종교적으로는 지진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지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이라는 것, 나아가서는 상징의 차원에서 물과 동등한 의의를 가지는 불이 파괴의 실태로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p74)


히라노 게이치로는 로봇을 좋아한다. 그리고 때로는 주변에 보이는 걸 유심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본질을 찾아 나간다. 그래서인지 사회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혐오감도 보여진다. 비행기와 통조림, 고질라, 구제역에 대한 혐오, 매쓰미디어에 대한 혐오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고베 대지진을 가까운 곳에서 마주해야 했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허무함과 두려움은 무엇인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순식간에 모든 게 파괴되고, 준비되어짐이 없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지진이며, 가족의 붕괴의 이유가 된다. 슬퍼할 겨를도, 여유조차 지진앞에선 무기력해진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작가로 살아진다는 건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바라본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풍요를 가져다 주면서 때로는 사람을 옭아매고 ,집착을 강요당하게 된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했던 직업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동경하지만, 실제 삶으로서의 소설가는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마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그 불안함이 그의 새로운 작품을 잉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으며, 천재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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