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구경 - 독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유진 지음 / 포럼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신선하고 참신하다' 였다. 저자 유진은 1999년생 19살이다. 기존의 어른의 세계에 대해서 풍자하고 쓴 소리를 한다. 나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자기계발서가 정형화된 틀에 따라 써내려갔다면, 이 책은 그 틀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저자는 왜 그 틀에 같혀 책을 써야 하는지 반문한다. 나답게 책을 쓰고, 제목을 드러내는 것, 책이란 나의 생각이 오롯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진리에 이 책은 상당히 충실하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 철학이 또렷하게 느껴졌으며 제목을 '책구경'이라고 쓴 이유가 뭔지 알수 있다. 다양한 책에 대해서 거부감 없이 읽어가고 수준에 맞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방법, 그것이 이 책에 나오고 있다. 정독에 욕심내는 우리들에게 ' 책구경'은 또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책에는 상당한 책들이 소개된다. 난이도도 상당히 높으며, 인문학책이 소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책으로 존롤스의 '정의론'이다. 그 책은 마이클 센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기초가 되는 책이며, 상당히 수준이 높고 난해하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간다. 즉 책구경을 통해서 존롤스가 쓴 '정의론'에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을 조금씩 채워 나가고 있다. 책구경에 대해서 저자의 또다른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등을 보며 자신에게 맡는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닌,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인가 읽을 수 없는 책인가 고르는 것이 아닌,저자가 가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사유에 대해서 새로운 답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기준이 된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그 안에서 욕심내지 않는 독서법을 지향하고 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헌법에 대한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법에 대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그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면 책을 덮는다. 


이 책의 시작은 바로 2014년 4월 16일로 향한다. 그날 은 우리에게 참 슬픈 날이다. 세월호 침몰로 저자의 또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인용 이후 저자는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사유하고, 생각하고, 채워 나가는 것, 사회에 대한 이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가 책을 편독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사유하면서 질문을 만들어 나간다. 그 질문에 대해서 계속 채워 나가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된장이 숙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사유를,자신의 방법으로  숙성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책들이 놓여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을 할 수 있는 건 '책구경' 덕분이다. 책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책 제목을 보고, 책의 두께를 보고 이 책은 어려워서 안 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책구경'이라는 하나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리고 작가 유진을 만나면 사인을 받고 싶다.


껌을 씹자.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뒤쫒아 가는 어른들, 오늘의 불행을 참으면 내일이 행복할 거라고 사기차는 꼰대들, 아주 신사적으로 시간을 훔치려드는 회색신사를 비웃어 주자. 껌을 좍쫙 씹으면서,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모모' 같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냥 혼자 조용히 걷기도 하고, 단물 빠진 껌을 종이에 잘 싸서 버리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껌을 씹자. 좀 건들거려도 괜찮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동네 한바퀴 돌듯이 책을 구경하면 된다. 그게 바로 책구경이다. (191페이지~191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Paperback, Open Market - Airside ed)
Kazuo Ishiguro / faber and faber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그 순간,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그의 작품 하나 하나 실검에 오르는 헤프닝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있는 시골에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한권도 없었으며, 읽을 방법이라곤 사서 보는 방법 이외엔 없었다. 때마침 얻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네권을 긴급공수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 내 손에 넣어진 책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였다. 모던 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은 30년전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개정판이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는지 짚러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도덕적인 장막이 벗겨진 한 인간의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한 그 거짓된 신념에 발현된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노벨 문학상 헤르타 뮐러도 그러했고,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그러했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과 전쟁은 동떨어질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보편적인 공감을 느끼는 전쟁이라는 뜨거운 화두, 시인 고은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냥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고, 수많은 문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마스지 오노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지난날을 엿볼 수 있다.물론 그의 자화상을 엿보면 우리는 분노하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마스지 오노에겐 두 딸이 있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난 이후 둘째 딸 노리코과 살아가는 그는 첫째 딸 세쓰코와 손자 이치로가 있으며, 노리코의 혼사 문제로 인해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첫째 딸의 결혼과 파혼의 이유가 바로 자신의 과거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오노는 둘째 딸에겐 그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있으며, 둘째딸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화가로서 전쟁의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림을 활용해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그 과거의 기억들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양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평판을 신경 쓰는 한 노인이 보여질 뿐이다.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의 경력에 대해 알고 있엇던 이들을 만나며 그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마스지 오노의 모습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전쟁이 인간의 생각에 어떤 전환점을 꾀하게 하는지, 전쟁 이전의 삶과 전쟁 이후의 삶의 변화를 마주하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전쟁의 도덕성이나 가책의 유무에 상관없이 성공과 행복에 도취하려 하는지 엿볼 수 잇다. 전쟁에서 승리란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며, 지속될 수 있다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마스지 오노와 같은 인물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지에 숨어있던 그들이 양지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혐오감을 느낄 수 박에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기합리화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된 신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이 외면되고 잇다느 사실을 간과한다. 오로지 실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스지 오노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옳은 신념만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이 햇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 하는 그 이면엔 삶에 대한 집착이 숨어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성공에 대해서 그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 전쟁이 끝타고 난 직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잇는 곳에서 자신의 평판과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는 한 노파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마저 느,끼게 된다.


잠시후 나는 산등성이를 따라 자라고 있는 잡초 한가운데 앉아 모리 선생의 저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역 근처의 가판대에서 오렌지를 좀 사 왔으므로 손수건에 싼 그것을 꺼내 하나하나 먹기 시작했다. 깊숙한 승리감과 만족감이 내안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거기 앉아서 저택을 내려다보며 그 신선한 오렌지의 맛을 즐길 때였다. 그런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소한 승리로 우리가 느까는 고양된 느낌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것 앞서 말했듯이 미기힏리의 축하연 동안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감정과도 다른 -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심오한 행목이었다. 그동안 기울인 힘겨운 노력,회의를 극복한 것이 가치가 있었다는 느낌, 진짜 가치있고 특별한 그 무엇을 성취했다는 느낌 말익다. 나는 그날 그 저택에 더 다가가지 않앗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 같았다. 나느 그저 만족감에 싸여 오렌지를 먹으며 거기 한 시간여 동안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그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더, 거북이 같은 사람들-신타로 같은 이들-은 능숙하고 온순하게 느릿느릿 주어진 일을 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그런 행복은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Paperback)
Ishiguro, Kazuo / Faber & Faber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그 순간,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그의 작품 하나 하나 실검에 오르는 헤프닝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있는 시골에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한권도 없었으며, 읽을 방법이라곤 사서 보는 방법 이외엔 없었다. 때마침 얻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네권을 긴급공수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 내 손에 넣어진 책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였다. 모던 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은 30년전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개정판이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는지 짚러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도덕적인 장막이 벗겨진 한 인간의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한 그 거짓된 신념에 발현된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노벨 문학상 헤르타 뮐러도 그러했고,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그러했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과 전쟁은 동떨어질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보편적인 공감을 느끼는 전쟁이라는 뜨거운 화두, 시인 고은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냥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고, 수많은 문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마스지 오노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지난날을 엿볼 수 있다.물론 그의 자화상을 엿보면 우리는 분노하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마스지 오노에겐 두 딸이 있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난 이후 둘째 딸 노리코과 살아가는 그는 첫째 딸 세쓰코와 손자 이치로가 있으며, 노리코의 혼사 문제로 인해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첫째 딸의 결혼과 파혼의 이유가 바로 자신의 과거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오노는 둘째 딸에겐 그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있으며, 둘째딸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화가로서 전쟁의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림을 활용해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그 과거의 기억들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양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평판을 신경 쓰는 한 노인이 보여질 뿐이다.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의 경력에 대해 알고 있엇던 이들을 만나며 그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마스지 오노의 모습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전쟁이 인간의 생각에 어떤 전환점을 꾀하게 하는지, 전쟁 이전의 삶과 전쟁 이후의 삶의 변화를 마주하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전쟁의 도덕성이나 가책의 유무에 상관없이 성공과 행복에 도취하려 하는지 엿볼 수 잇다. 전쟁에서 승리란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며, 지속될 수 있다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마스지 오노와 같은 인물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지에 숨어있던 그들이 양지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혐오감을 느낄 수 박에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기합리화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된 신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이 외면되고 잇다느 사실을 간과한다. 오로지 실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스지 오노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옳은 신념만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이 햇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 하는 그 이면엔 삶에 대한 집착이 숨어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성공에 대해서 그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 전쟁이 끝타고 난 직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잇는 곳에서 자신의 평판과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는 한 노파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마저 느,끼게 된다.


잠시후 나는 산등성이를 따라 자라고 있는 잡초 한가운데 앉아 모리 선생의 저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역 근처의 가판대에서 오렌지를 좀 사 왔으므로 손수건에 싼 그것을 꺼내 하나하나 먹기 시작했다. 깊숙한 승리감과 만족감이 내안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거기 앉아서 저택을 내려다보며 그 신선한 오렌지의 맛을 즐길 때였다. 그런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소한 승리로 우리가 느까는 고양된 느낌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것 앞서 말했듯이 미기힏리의 축하연 동안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감정과도 다른 -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심오한 행목이었다. 그동안 기울인 힘겨운 노력,회의를 극복한 것이 가치가 있었다는 느낌, 진짜 가치있고 특별한 그 무엇을 성취했다는 느낌 말익다. 나는 그날 그 저택에 더 다가가지 않앗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 같았다. 나느 그저 만족감에 싸여 오렌지를 먹으며 거기 한 시간여 동안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그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더, 거북이 같은 사람들-신타로 같은 이들-은 능숙하고 온순하게 느릿느릿 주어진 일을 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그런 행복은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Cassette)
Kazuo Ishiguro / Books on Tape / 199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그 순간,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그의 작품 하나 하나 실검에 오르는 헤프닝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있는 시골에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한권도 없었으며, 읽을 방법이라곤 사서 보는 방법 이외엔 없었다. 때마침 얻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네권을 긴급공수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 내 손에 넣어진 책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였다. 모던 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은 30년전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개정판이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는지 짚러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도덕적인 장막이 벗겨진 한 인간의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한 그 거짓된 신념에 발현된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노벨 문학상 헤르타 뮐러도 그러했고,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그러했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과 전쟁은 동떨어질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보편적인 공감을 느끼는 전쟁이라는 뜨거운 화두, 시인 고은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냥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고, 수많은 문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마스지 오노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지난날을 엿볼 수 있다.물론 그의 자화상을 엿보면 우리는 분노하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마스지 오노에겐 두 딸이 있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난 이후 둘째 딸 노리코과 살아가는 그는 첫째 딸 세쓰코와 손자 이치로가 있으며, 노리코의 혼사 문제로 인해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첫째 딸의 결혼과 파혼의 이유가 바로 자신의 과거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오노는 둘째 딸에겐 그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있으며, 둘째딸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화가로서 전쟁의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림을 활용해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그 과거의 기억들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양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평판을 신경 쓰는 한 노인이 보여질 뿐이다.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의 경력에 대해 알고 있엇던 이들을 만나며 그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마스지 오노의 모습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전쟁이 인간의 생각에 어떤 전환점을 꾀하게 하는지, 전쟁 이전의 삶과 전쟁 이후의 삶의 변화를 마주하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전쟁의 도덕성이나 가책의 유무에 상관없이 성공과 행복에 도취하려 하는지 엿볼 수 잇다. 전쟁에서 승리란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며, 지속될 수 있다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마스지 오노와 같은 인물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지에 숨어있던 그들이 양지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혐오감을 느낄 수 박에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기합리화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된 신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이 외면되고 잇다느 사실을 간과한다. 오로지 실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스지 오노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옳은 신념만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이 햇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 하는 그 이면엔 삶에 대한 집착이 숨어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성공에 대해서 그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 전쟁이 끝타고 난 직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잇는 곳에서 자신의 평판과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는 한 노파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마저 느,끼게 된다.


잠시후 나는 산등성이를 따라 자라고 있는 잡초 한가운데 앉아 모리 선생의 저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역 근처의 가판대에서 오렌지를 좀 사 왔으므로 손수건에 싼 그것을 꺼내 하나하나 먹기 시작했다. 깊숙한 승리감과 만족감이 내안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거기 앉아서 저택을 내려다보며 그 신선한 오렌지의 맛을 즐길 때였다. 그런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소한 승리로 우리가 느까는 고양된 느낌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것 앞서 말했듯이 미기힏리의 축하연 동안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감정과도 다른 -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심오한 행목이었다. 그동안 기울인 힘겨운 노력,회의를 극복한 것이 가치가 있었다는 느낌, 진짜 가치있고 특별한 그 무엇을 성취했다는 느낌 말익다. 나는 그날 그 저택에 더 다가가지 않앗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 같았다. 나느 그저 만족감에 싸여 오렌지를 먹으며 거기 한 시간여 동안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그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더, 거북이 같은 사람들-신타로 같은 이들-은 능숙하고 온순하게 느릿느릿 주어진 일을 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그런 행복은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Hardcover, Reprint)
Ishiguro, Kazuo / Penguin Books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그 순간,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그의 작품 하나 하나 실검에 오르는 헤프닝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있는 시골에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한권도 없었으며, 읽을 방법이라곤 사서 보는 방법 이외엔 없었다. 때마침 얻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네권을 긴급공수하게 되었으며, 그 첫번째 내 손에 넣어진 책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였다. 모던 클래식에서 나온 이 책은 30년전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개정판이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었는지 짚러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도덕적인 장막이 벗겨진 한 인간의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한 그 거짓된 신념에 발현된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노벨 문학상 헤르타 뮐러도 그러했고,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그러했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과 전쟁은 동떨어질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보편적인 공감을 느끼는 전쟁이라는 뜨거운 화두, 시인 고은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냥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고, 수많은 문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마스지 오노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가 살아온 지난날을 엿볼 수 있다.물론 그의 자화상을 엿보면 우리는 분노하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마스지 오노에겐 두 딸이 있다. 아내와 아들이 죽고 난 이후 둘째 딸 노리코과 살아가는 그는 첫째 딸 세쓰코와 손자 이치로가 있으며, 노리코의 혼사 문제로 인해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첫째 딸의 결혼과 파혼의 이유가 바로 자신의 과거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오노는 둘째 딸에겐 그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있으며, 둘째딸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화가로서 전쟁의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림을 활용해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그 과거의 기억들이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양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평판을 신경 쓰는 한 노인이 보여질 뿐이다. 자신의 제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의 경력에 대해 알고 있엇던 이들을 만나며 그것에 대해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마스지 오노의 모습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전쟁이 인간의 생각에 어떤 전환점을 꾀하게 하는지, 전쟁 이전의 삶과 전쟁 이후의 삶의 변화를 마주하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전쟁의 도덕성이나 가책의 유무에 상관없이 성공과 행복에 도취하려 하는지 엿볼 수 잇다. 전쟁에서 승리란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며, 지속될 수 있다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마스지 오노와 같은 인물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지에 숨어있던 그들이 양지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혐오감을 느낄 수 박에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기합리화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된 신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이 외면되고 잇다느 사실을 간과한다. 오로지 실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스지 오노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했던 옳은 신념만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이 햇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 하는 그 이면엔 삶에 대한 집착이 숨어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성공에 대해서 그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 전쟁이 끝타고 난 직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잇는 곳에서 자신의 평판과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는 한 노파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마저 느,끼게 된다.


잠시후 나는 산등성이를 따라 자라고 있는 잡초 한가운데 앉아 모리 선생의 저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역 근처의 가판대에서 오렌지를 좀 사 왔으므로 손수건에 싼 그것을 꺼내 하나하나 먹기 시작했다. 깊숙한 승리감과 만족감이 내안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거기 앉아서 저택을 내려다보며 그 신선한 오렌지의 맛을 즐길 때였다. 그런 느낌을 정확히 묘사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소한 승리로 우리가 느까는 고양된 느낌 같은 것과는 아주 다른 것 앞서 말했듯이 미기힏리의 축하연 동안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감정과도 다른 -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심오한 행목이었다. 그동안 기울인 힘겨운 노력,회의를 극복한 것이 가치가 있었다는 느낌, 진짜 가치있고 특별한 그 무엇을 성취했다는 느낌 말익다. 나는 그날 그 저택에 더 다가가지 않앗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 같았다. 나느 그저 만족감에 싸여 오렌지를 먹으며 거기 한 시간여 동안 앉아 있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그런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더, 거북이 같은 사람들-신타로 같은 이들-은 능숙하고 온순하게 느릿느릿 주어진 일을 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날 내가 느꼈던 그런 행복은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