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난중일기에 묻다 - 조직을 세우고 팀원을 성장시키는 자기경영 리더십
김윤태 지음 / 성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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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는 도전가
열세릐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창의적 혁신가
정의 앞에 물러섬이 없는 원칙주의자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여준 행동하는 리더십
막강 정보력으로 최선의 작전을 구사한 치밀한 전략가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에도 꺽이지 않는 애민 정신의 소유자.(p23)

원칙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다. 진정한 탁월함에 도달하려면 목표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원칙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원칙은 탁월한 성과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강한 의지력과 자기희생 정신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장기적인 안목이 있다.(p43)


첫 번째는 주인공이 충분한 고토을 받아야 하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주인공이 그 목표를 이룰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p66)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약점에 발이 묶이지 마라. 상대의 약점을 연구하고 다방면으로 지식을 탐구해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어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공동체도 살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p133)


이순신의 리더십은 리더의 표본이 되고 있다. 23전 23승, 임진왜란이라는 조선시대 최악의 전쟁 속에서 이순신이 보여주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 놓는 것,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리더란 무엇이며,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리더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였다.우리 사회에서 리더로서 이순신을 분석하고 있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순신이 갖추고 잇는 리더의 자질.그는 자신을 알고, 남을 알고, 상황을 예의주시하였다. 항상 배움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않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상황으로 바꿔 놓았던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순신에 대한 일화 중 하나이다. 이순신을 알게 되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이순신을 분석하고,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약한 리더가 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지(知),행(行),용(用)훈(訓),평(評) 이 다섯가지는 리더의 핵심 자질이자, 이순신을 말할 때,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순신은 스스로 원칙을 세웠고, 관행을 없앴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 중 하나로 스스로 배웠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갔다. 공정하게 평가할 줄 알았고, 인재를 가르치고, 훈련할 줄 알았다.또한 인재를 등용하고,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줄 아는 것, 이러한 모습들은 리더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질이다. 여기서 보자면, 이순신에 대한 리더로서의 분석은 많지만, 이순신처럼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이순신에 관한 책이 나오고 있지만,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잘 나오지 않는 또다른 이유가 된다. 현실과 타협하려고 하고, 리더로서 편한 길로 가고 싶어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들은 리더가 되기 힘든 또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리더란 모름지기 이순신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약점에 집착하지 않고, 강점을 보완해 나가고, 배움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리더가 왜 리더로서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리더십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걸,이순신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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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ddlepause: On Life After Youth (Paperback)
Marina Benjamin / Catapult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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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직업, 집, 아이들, 심지어 중요한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내가 선택해온 모든 것에 대해 갑자기 다시 생각하게 되고 바꾸고 싶어지니까 . 하지만 이제 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 그 친구는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세상이 후진 기어로 바뀌면서 자신이 인생 전반기에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다며 ,중년이란 나이의 대담한 공격에 비틀거렸다. (p26)


'중년'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원래 중년이란 말은 사회 경제적인 배경과 관련 있었다. 대서양 양편에서 제국주의와 산업화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중년이란 말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자녀를 적게 낳는 추세와 연결되었다. (p88)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을 누비고 싶어하는 두 발에 매달리는 대신, 마음을 진정시키는 다정한 말과 지루한 눈물과 짧은 한숨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때가 된 것임을, 그리하여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일은 자신의 자아를 풍요롭게 하는 것뿐임을..(p195)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은 중년이 된다. 중년은 노년이 되어서 새로운 삶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 죽음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나이가 중년이라는 나이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왜 우리는 중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중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이 책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삶 속에서 중년을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중년은 인간에게 또다른 위기로서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중년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그 시기의 삶은 또다른 위기와 만나게 된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반면에 우리 몸은 그 변화를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중년은 중년 그대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쓸쓸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그 나이에, 현대인들은 결혼이 늦어지면서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과 21세기 지금 현대인에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에 대한 인식은 점차 바뀌고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고 싶지 않다. 중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중년이 지나면, 곧바로 노년, 시니어로 불리게 되는 그 상황이 불편하다. 여전히 청춘이었던 그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과학기술과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에겐 언제나 숨어 있다. 폐경기가 오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심리적 압박은 여전히 중년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은 이 책을 쓴 마리나 벤저민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엔 중장년이라 불렸던이들이 이젠 장년이라는 단어조차 삭제하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이제 결혼하고 십대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삶의 패턴은 우리또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 경제적 활동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중년과 가장 밀접하다. 10대 청소년 어린 나이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죽음을 생각하는게 이상하고 안타까운 거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의식하게 된다. 나와 함께 살고 , 함께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걸, 중년들은 매순간 자각하고 ,의식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중녀이 되면 허무함과 쓸쓸함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음과 허무함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감춰버린다. 그래야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걱정, 쓸쓸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얻는 가운데, 그것이 내 몸 안에 층층히 쌓임으로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위기에 노출하고, 다양한 부정적인 심리기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분노와 아픔 ,쓸쓸함을 마주할 대 그 사람의 인생 스펙트럼을 들여다 보고, 그의 나이테를 본다. 그래서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중년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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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ddlepause : On Life After Youth (Paperback)
Marina Benjamin / Scribe Publications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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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직업, 집, 아이들, 심지어 중요한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내가 선택해온 모든 것에 대해 갑자기 다시 생각하게 되고 바꾸고 싶어지니까 . 하지만 이제 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 그 친구는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세상이 후진 기어로 바뀌면서 자신이 인생 전반기에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다며 ,중년이란 나이의 대담한 공격에 비틀거렸다. (p26)


'중년'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원래 중년이란 말은 사회 경제적인 배경과 관련 있었다. 대서양 양편에서 제국주의와 산업화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중년이란 말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자녀를 적게 낳는 추세와 연결되었다. (p88)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을 누비고 싶어하는 두 발에 매달리는 대신, 마음을 진정시키는 다정한 말과 지루한 눈물과 짧은 한숨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때가 된 것임을, 그리하여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일은 자신의 자아를 풍요롭게 하는 것뿐임을..(p195)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은 중년이 된다. 중년은 노년이 되어서 새로운 삶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 죽음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나이가 중년이라는 나이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왜 우리는 중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중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이 책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삶 속에서 중년을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중년은 인간에게 또다른 위기로서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중년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그 시기의 삶은 또다른 위기와 만나게 된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반면에 우리 몸은 그 변화를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중년은 중년 그대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쓸쓸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그 나이에, 현대인들은 결혼이 늦어지면서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과 21세기 지금 현대인에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에 대한 인식은 점차 바뀌고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고 싶지 않다. 중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중년이 지나면, 곧바로 노년, 시니어로 불리게 되는 그 상황이 불편하다. 여전히 청춘이었던 그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과학기술과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에겐 언제나 숨어 있다. 폐경기가 오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심리적 압박은 여전히 중년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은 이 책을 쓴 마리나 벤저민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엔 중장년이라 불렸던이들이 이젠 장년이라는 단어조차 삭제하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이제 결혼하고 십대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삶의 패턴은 우리또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 경제적 활동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중년과 가장 밀접하다. 10대 청소년 어린 나이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죽음을 생각하는게 이상하고 안타까운 거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의식하게 된다. 나와 함께 살고 , 함께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걸, 중년들은 매순간 자각하고 ,의식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중녀이 되면 허무함과 쓸쓸함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음과 허무함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감춰버린다. 그래야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걱정, 쓸쓸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얻는 가운데, 그것이 내 몸 안에 층층히 쌓임으로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위기에 노출하고, 다양한 부정적인 심리기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분노와 아픔 ,쓸쓸함을 마주할 대 그 사람의 인생 스펙트럼을 들여다 보고, 그의 나이테를 본다. 그래서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중년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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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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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직업, 집, 아이들, 심지어 중요한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내가 선택해온 모든 것에 대해 갑자기 다시 생각하게 되고 바꾸고 싶어지니까 . 하지만 이제 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 그 친구는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세상이 후진 기어로 바뀌면서 자신이 인생 전반기에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다며 ,중년이란 나이의 대담한 공격에 비틀거렸다. (p26)


'중년'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원래 중년이란 말은 사회 경제적인 배경과 관련 있었다. 대서양 양편에서 제국주의와 산업화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중년이란 말은 인구통계학적으로 자녀를 적게 낳는 추세와 연결되었다. (p88)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을 누비고 싶어하는 두 발에 매달리는 대신, 마음을 진정시키는 다정한 말과 지루한 눈물과 짧은 한숨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때가 된 것임을, 그리하여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일은 자신의 자아를 풍요롭게 하는 것뿐임을..(p195)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은 중년이 된다. 중년은 노년이 되어서 새로운 삶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 죽음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나이가 중년이라는 나이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왜 우리는 중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며, 중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이 책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삶 속에서 중년을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중년은 인간에게 또다른 위기로서 인지하면서 살아간다.


중년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진 그 시기의 삶은 또다른 위기와 만나게 된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반면에 우리 몸은 그 변화를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중년은 중년 그대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쓸쓸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그 나이에, 현대인들은 결혼이 늦어지면서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과 21세기 지금 현대인에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에 대한 인식은 점차 바뀌고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고 싶지 않다. 중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중년이 지나면, 곧바로 노년, 시니어로 불리게 되는 그 상황이 불편하다. 여전히 청춘이었던 그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과학기술과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전성기 시절의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에겐 언제나 숨어 있다. 폐경기가 오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심리적 압박은 여전히 중년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은 이 책을 쓴 마리나 벤저민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엔 중장년이라 불렸던이들이 이젠 장년이라는 단어조차 삭제하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이제 결혼하고 십대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삶의 패턴은 우리또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 경제적 활동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중년과 가장 밀접하다. 10대 청소년 어린 나이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죽음을 생각하는게 이상하고 안타까운 거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의식하게 된다. 나와 함께 살고 , 함께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걸, 중년들은 매순간 자각하고 ,의식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중녀이 되면 허무함과 쓸쓸함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죽음과 허무함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감춰버린다. 그래야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걱정, 쓸쓸함과 허무함을 동시에 얻는 가운데, 그것이 내 몸 안에 층층히 쌓임으로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위기에 노출하고, 다양한 부정적인 심리기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분노와 아픔 ,쓸쓸함을 마주할 대 그 사람의 인생 스펙트럼을 들여다 보고, 그의 나이테를 본다. 그래서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중년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중년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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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씨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3
강동수 지음 / 호밀밭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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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를 홀로 떠다니자니 무섭다. 은수와 같이 다닌다면 이렇게 겁이 나진 않을텐데.. 그래도 나는 갈 것이다.불과 물, 그리고 얼음의 도가니를 건너야만 생명을 다시 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곳을 통과할 거다. 어둡고 컴컴하게 벌어진 땅의 아가리에라도 주저 없이 뛰어들 거다. 그래야만 은수를 다시 만나고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생이라는 게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부표의 점멸등처럼 흐리고 약한 것이라는 걸 나는 죽어서 깨닫는다. (p152)


생과 사는 엮여 있다. 생이 어느 순간에 사가 될 수 있고, 사가 생이 될 수 있다. 죽음이 삶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안도의 한순을 내밷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지면, 우리는 고통과 슬픔에 몸서리 치게 되고, 위로를 얻기 위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본이 되고, 권력이 되면서 그렇게 살아온 현대의 지금 삶 속에서 때로는 죽음보다 자본과 권력이 앞서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우리가 자본을 바라보는 시선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교차되고 , 충돌될 가능성도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서두에 밝혀놓은 이유는 소설가 강동수의 <언더 더 씨>를 언급하기 위해서였다. 책은 7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일곱 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느 것은 삶과 죽음이다. 첫번째 작품 정염은 조선시대 정약용이 살았던 그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과 관련하여, 그 죽은의 원인을 밝혀내고 있으며, 점룡과 수향이 불타죽은 원인을 들여다 보고 있다. 물론 죽음은 다양한 사람들이 얽혀 있으며, 그 흐름 속에서 죽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두번째 단편은 <가족 소풍>이다. 책 제목과 달리 이 소설은 씁쓸함 그 자체이다. '(주) 굿윌 역할 대행' 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우리 삶 속에 비여있는 공간과 시간, 장소들을 채워 나간다. 때로는 팬이 되고, 때로는 가족 중 누군가가 되어서 시간을 채워주는 것,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누군가를 대체하고 있다. 편모 가정이라면 아빠 역할을 대신해 주고, 편부 가정이라면 엄마 역할을 대신하고, 결혼식에서는 하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있다. 시간이 돈을 벌어다주고, 사람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 수요와 공급이 있다면 그것이 돈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단편이다.


네번째 이야기가 책 제목과 같은 <언더 더 씨>였다. 이 소설은 세월호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물속에 잠겨 버린 은수와 나. 나는 물속에 잠겨진 채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영혼이 살아남은 채 주인공 '나'는 세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실체에 접근하면서 , 사람들은 두 주인공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찰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혼으로 존재하는 내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한 채 구천으로 떠도는 그 모습을 본다면,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향하는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으며, 죽은 이가 다시 가족 곁으로 되돌아 오지 않음에도 생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죽음에 대해서 왜 죽어야 했는지 찾기 위한 그 몸부림, 내 아이를 그대로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고 ,그것이 앞으로 똑같은 형태로 누군가를 삼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원인을 찾고,진실을 찾기 위해서 연대라는 또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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