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 바로크 음악의 걸작을 따라서 떠나는 여행
에릭 시블린 지음, 정지현 옮김, 장혜리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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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항상 곁에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는게 있다. 공기와 물 그리고 집이다. 이 세가지가 사라진 상태에서 불편함과 아쉬움을 느껴질 때 그 존재와 가치, 의미를 찾게 된다. 300년전 살았던 위대한 음악가 바흐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겨놓은 음악들은 우리 삶 곳곳에 파고 들어가면서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여기서 저널리스트이자 영화제작자인 에릭 시블린은 바흐가 남겨놓은 악보들 중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원본 악보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관심 가지게 된다. 그의 사후 250년이 되는 2000년, 그때까지 <무반주 첼로 악보곡>의 원본 악보만 존재하지 않았고, 그의 음악을 대중화한 파블로 카잘스의 삶을 따라가 보게 된다. 그리곤 그는 분명 원본 악보가 나타나 소더비 경매장에 주인공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는 듯 하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을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최면을 일으키는 결험이다. 수년 전 전곡을 연주할 때 6번의 끝부분에 가까워지면서 무중력과 감사함이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p329)


이 책에서 바흐의 삶과 마주하였다. 그의 이름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이며, 20명의 아이를 안나 막달레나를 통해 얻었다. 그중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몇명이 되지 않았다. 여기사 바흐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음악가 헨델이 있다. 헨델은 생전에 음악가로서 널리 알려졌지만, 바흐는 그렇지 않았다. 독일에 살았던 바흐는 여러 제후들이 존재하는 합스브르크 왕가의 궁정음악가였다. 가정적이면서 루터교를 신봉했던 바흐의 삶은 그의 가족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의 부모님도 음악가였고, 바흐는 그 영향을 온전히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의 20명의 자녀중 첫째 아들 프리드먼과 세째 아들 고트브리트 베른 하르트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 세인트 소피아 교회에서의 바흐의 연주를 상상하게 만드는 그 당시 남아있는 드레스덴 신문의 짤막한 기사는 바흐가 살았던 그 때의 모습을 재현하게 된다.


여기서 시대를 거슬러 바흐의 음악을 추구하는 파블로 카잘스가 나타났다. 그는 독일 제국주의 시대를 온전히 살았던 음악가이며, 첼로와 지휘를 하게 된다.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고, 스페인의 전쟁으로 인해 국내 사정이 어지러웠던 그 당시의 모습들, 카잘스는 국내를 떠나 프랑스와 미국으로 전전하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의 서명이 담겨진 원본 악보가 아닌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가 필사한 악보였다. 그 악보이 외엔 지금 현존하지 않으며, 카잘스는 그 악보를 활용해 바흐의 음악 세계를 재현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흐의 음악세계를 대중들이 관심 가지게 되는 또다른 변화를 야기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 참 흥미로웠다. 저자는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을 교차하여 소개한다. 분명 음악에 관한 책인데, 유럽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음악이 가지는 힘, 바흐의 음악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히트러와 바흐의 음악의 연결고리 그 자체이다. 바흐의 생애와 함께 파블로 카잘리의 생애를 같이 마주할 수 있어서, 바흐를 좋아하는 매니아층에겐 이 책이 참 반가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첼로 거장의 활은 마치 묵직한 실크 같고 비브라토는 마치 젊은 남자의 목에서 흘러나오듯 강하고 빨랐다. 카잘스의 연주는 평생 테크닉에 헌신하면서 최근 몇년의 슬픈 은둔생활로 더욱 풍성해지고 기쁨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유로워진 삶의 정점이었다."(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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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학 하는 여자들 - 빅데이터, 칩 개발, 환경 독성, 의료기기, 영양역학
손소영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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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여성 전공자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공학 분야가 여성에게 적합학 분야라는 걸 느낄 수 있다. 30년전 사회적 차별 속에서 공학도로 새출발 했던 여성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처음은 힘들었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었다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 사회가 공학이 사회의 척도로서 새출발하는 단계였으며, 공학하면 먼저 떠오르는 분야 컴퓨터, IT, 전기, 전자, 통신은 다른 산진국에 비해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육아와 요리만 잘하면 된다는 보편적인 인식들 속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여성들의 남다른 성공 비결과 마주하였다. 


책에는 산업 공학자 손소영, 전자 공학자 임혜숙, 환경공학자 최진희.의공학자 이레나, 식물영양학자 김정선씨가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 산업공학자 손소영씨와 전자공학자 임혜숙씨 이야기가 눈길이 갔다. 산업 공학자 손소영씨의 처음 꿈은 수학이었다. 하지만 수학은 손소영씨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수학이 전공이었지만 겉돌기 일수였고, 경영과 연관된 수업을 듣게 되었다.그리고 우연히 듣게된 산업공학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그녀가 거쳐온 길을 되돌아 보면 산업공학자로서의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고 있었고, 6년동안 관련한 공부를 쭈욱해 나갔다. 수학과 통계, 산업 공학의 융합 , 데이터 마이닝이 가져다 주는 부산물은 무엇이며, 데이터 마이닝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 마이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알파고였다. 딥마인드라고 알려진 알파고의 뇌 역할을 하는 건 그동안 축적된 빅데이터를 데이터마이닝화 하여 예측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국내에 돌아와 자신이 배웟던 데이터 마이닝 연구를 응용하게 된다.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파산하는지 안 하는지 예측하는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직접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또다른 곳에 응용이 가능하며, 책에서는 그 기술의 특징은 무엇이며,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전자공학과 임혜숙씨. 1982년 서울대학교 공대에 입학한 저자는 지금으로 치면 공대 아름이였다. 그 당시 태동기에 있었던 새로운 전공분야 제어계측 공학과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환점과 마주하게 되었다. 회로이론, 전자회로, 전자기기, 전자장을 공부하면서 학교 내에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할 수 있게 된 임혜숙씨는 세계적인 벨 연구소에 들어가 자신의 분야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갔다. 벨 연구소는 전자 분야나 컴퓨터 전공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컴퓨터 하면 떠오르는 것들, 트렌지스터,C언어, 유닉스 운영체제, 광케이블이 만들어진 곳에 바로 벨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통신분야에 공부한 임혜숙씨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라우터에 들어가는 '전달 엔진 칩'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나노 독성 연구를 하는 환경공학자 최진희씨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생리대 독성활학 물질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인간에게 무해한 제품을 개발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화학물질의 독성 유무를 체크하게 된다.의공학자 이레나의 독특한 이력은 눈길이 갔다. 의공학자 하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레나씨는 병원에 일하고 있으며, 의사들의 의료기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이레나씨는 방서선 기기과 관려한 일을 하고 있으며, 인간에 무해한 의료기기를 만들고 있다. 식품 영양학자 김정선씨, 처음엔 식품영양학자가 왜 공학에 포함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자의 부모님의 의사였으며,김정선씨가 식품 영양학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부모님이 환자를 돌보면서 환자의 식단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김정선씨는 환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몸에 이로운 영양식단을 만든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분야애서 전문가로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 번째가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다. 학자로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을 때가 아닌, 양치질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볼 때였다. 평소에도 내내 관심을 갖고 의식과 무의식이 온통 알고리즘에 가 있기 때문에 뜻밖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해야 평소에도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첫 번째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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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하는 여자들 - 빅데이터, 칩 개발, 환경 독성, 의료기기, 영양역학
손소영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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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여성 전공자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공학 분야가 여성에게 적합학 분야라는 걸 느낄 수 있다. 30년전 사회적 차별 속에서 공학도로 새출발 했던 여성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처음은 힘들었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었다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 사회가 공학이 사회의 척도로서 새출발하는 단계였으며, 공학하면 먼저 떠오르는 분야 컴퓨터, IT, 전기, 전자, 통신은 다른 산진국에 비해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육아와 요리만 잘하면 된다는 보편적인 인식들 속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여성들의 남다른 성공 비결과 마주하였다. 


책에는 산업 공학자 손소영, 전자 공학자 임혜숙, 환경공학자 최진희.의공학자 이레나, 식물영양학자 김정선씨가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 산업공학자 손소영씨와 전자공학자 임혜숙씨 이야기가 눈길이 갔다. 산업 공학자 손소영씨의 처음 꿈은 수학이었다. 하지만 수학은 손소영씨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수학이 전공이었지만 겉돌기 일수였고, 경영과 연관된 수업을 듣게 되었다.그리고 우연히 듣게된 산업공학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그녀가 거쳐온 길을 되돌아 보면 산업공학자로서의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고 있었고, 6년동안 관련한 공부를 쭈욱해 나갔다. 수학과 통계, 산업 공학의 융합 , 데이터 마이닝이 가져다 주는 부산물은 무엇이며, 데이터 마이닝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 마이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알파고였다. 딥마인드라고 알려진 알파고의 뇌 역할을 하는 건 그동안 축적된 빅데이터를 데이터마이닝화 하여 예측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국내에 돌아와 자신이 배웟던 데이터 마이닝 연구를 응용하게 된다. 기술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파산하는지 안 하는지 예측하는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직접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또다른 곳에 응용이 가능하며, 책에서는 그 기술의 특징은 무엇이며,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전자공학과 임혜숙씨. 1982년 서울대학교 공대에 입학한 저자는 지금으로 치면 공대 아름이였다. 그 당시 태동기에 있었던 새로운 전공분야 제어계측 공학과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환점과 마주하게 되었다. 회로이론, 전자회로, 전자기기, 전자장을 공부하면서 학교 내에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할 수 있게 된 임혜숙씨는 세계적인 벨 연구소에 들어가 자신의 분야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갔다. 벨 연구소는 전자 분야나 컴퓨터 전공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컴퓨터 하면 떠오르는 것들, 트렌지스터,C언어, 유닉스 운영체제, 광케이블이 만들어진 곳에 바로 벨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통신분야에 공부한 임혜숙씨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라우터에 들어가는 '전달 엔진 칩'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나노 독성 연구를 하는 환경공학자 최진희씨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생리대 독성활학 물질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인간에게 무해한 제품을 개발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화학물질의 독성 유무를 체크하게 된다.의공학자 이레나의 독특한 이력은 눈길이 갔다. 의공학자 하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레나씨는 병원에 일하고 있으며, 의사들의 의료기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이레나씨는 방서선 기기과 관려한 일을 하고 있으며, 인간에 무해한 의료기기를 만들고 있다. 식품 영양학자 김정선씨, 처음엔 식품영양학자가 왜 공학에 포함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자의 부모님의 의사였으며,김정선씨가 식품 영양학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부모님이 환자를 돌보면서 환자의 식단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김정선씨는 환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몸에 이로운 영양식단을 만든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분야애서 전문가로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 번째가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다. 학자로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을 때가 아닌, 양치질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볼 때였다. 평소에도 내내 관심을 갖고 의식과 무의식이 온통 알고리즘에 가 있기 때문에 뜻밖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해야 평소에도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첫 번째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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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皇と東大(1) 大日本帝國の誕生 (文春文庫)
다찌바나 다가시 / 文藝春秋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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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당히 두껍다. 1000페이지가 넘는데 같은 책이 한 권 더 있다. 원래는 그의 저서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으려 했는데, 다른 책을 먼저 읽게 된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이후의 일본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일본과 도쿄대. 이걸 우리의 현실로 바꾼다면 대한민국과 서울대,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고, 일본의 근현대사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마주한다는 걸 추측하게 된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책을 번역하는데 열을 올리게 된다. 물론 그들이 일본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보여졌다. 19세기 후반 대한민국이 조선이라는 명칭에 갇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그때 일본은 먼저 앞서나갔으며, 전쟁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 청일 전쟁은 그렇게 시작하였고, 러일 전쟁이 시작한 계기는 바로 만주 땅 확보 때문이다 그 땅을 잃어버리면 그들의 야욕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그들은 러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중일 전쟁과 양상이 다른 러일전쟁,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였고,러일전쟁 이후  1905년 포츠머스 강화회의는 일본의 굴욕을 선사했고,일본인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음으로서, 일본 국내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그들이 중국으로 진출하고, 러시아로 진출하려는 목적은 바로 일본의 인구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그 당시 인구가 1억을 육박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갈등을 양산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동아시아 교두보를 확보하려 했다. 그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계기였으며,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도쿄대의 모습을 바라보면 , 일본의 주류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도쿄대 법학부는 천황의 도구였으며 일본이 관료 사회로 바뀌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면 일본의 천황은 형식적인 지배자,상징적인 지배자로 보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존재였다. 천황에 가까울수록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되고, 사회의 중요한 직책을 가질 수 있다. 직급이 달라지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에서 요직을 맡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핍박받을 수 있고, 사회에서 배척된다. 도쿄대 법학부가 성장 할 수 있었던 이유,처음 법학부에서 문학부, 이학부가 추가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법학부와 함께 중요한 학부는 의학부이며, 도쿄대의 많은 학생들의 의학부로 채워졌다. 어쩌면 그들이 마루타를 강행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도쿄대 의학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정하게 되었다.


한국이 독립운동을 하고, 천황암살 사건을 주도하는 그 가운데 , 조선은 미국의 대공황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사회였다, 일본 사회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조선과 중국, 일본이 바라보는 두 나라는 미개한 나라였으며, 지배당해 마땅한 나라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자본이 넉넉한 일본이 또다른 야욕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오만함도 있었지만 일본 사회의 여론을 그쪽으로 이끌었던 또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일본 사회에서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던 그 시기. 도쿄제국대학교 법학부 소속의 정치 동아리 '신인회'의 좌익활동이 눈길이 갔다. 자본론을 연구하고, 금서였던 공산당 선언을 번역해 읽었던 그들은 1918년에 발족해 1929년까지 이어졌으며,1928년 1월 24일 도쿄대 내에서 신우익단체 우익동아리 칠생사와 좌익동아리 신인회의 학내 폭력충돌,그들은 학교 내에서 서로 결돌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지켜 나갔다.


천황이 몸통이라면 도쿄대 법학부는 수족이었다.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교차한다. 암기를 통해 자칭 엘리트라 부르는 도쿄대학생, 그들은 똑똑하지만 생각이 없는 존재로 변질되었다. 쇼와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은 정계로 진출하면서 일본 사회의 전공투 세대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1945년 이전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북한과 비교하고 있으며, 일본이 북한의 김정은 체제보다 더 나쁜 현실이라 말한다. 김정은은 독재정치를 하는 한 나라의 지도자이지만, 천황은 신이였기 때문이며, 그들을 떠받치는 그 밑바닥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을 모방하였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은 가져가지 않았다. 학문의 요람이라 부르는 대학교는 일본의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학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국립을 표방하는 도쿄대와 비슷한 대학교로 와세다와 게이코 대학이 있으며, 세개의 대학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수주의와 국가주의를 옹호하고, 그건 철저한 반공주의, 반사회주의, 반데모크라시,반정당정치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교대는 일본 정부의 노예였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렇게 말하는 그 증거들이 이 책에 기록된다. 일본 헌법을 만들었고 다이카 개신과 쇼와 유신 시대를 열었던 도쿄대 법학부 출신 관료들의 작태는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1960년대 우리가 봤던 유신시대는 그들의 모습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으며,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그 이유를 보고 싶다면 일본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면 될 것 같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우리나라의 메이지유신 사례를 봐도 맨 처음에는 소수의 정열가가 현실의 악덕을 견디지 못하고 성패를 초월해서 기폭제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것이 그 후 시간을 두고, 혹은 그 직후에 몇 번쯤 봉화처럼 타오른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면 마침내 군대를 움직이는 자들이 군 내부에서든 민간에서든 여하튼 무력으로 기성세력을 타파하고 개조와 건설에 들어가는 것이 상례다. (P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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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과 도쿄대 1 - 현대 일본을 형성한 두 개의 중심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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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두껍다. 1000페이지가 넘는데 같은 책이 한 권 더 있다. 원래는 그의 저서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으려 했는데, 다른 책을 먼저 읽게 된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이후의 일본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일본과 도쿄대. 이걸 우리의 현실로 바꾼다면 대한민국과 서울대,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고, 일본의 근현대사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마주한다는 걸 추측하게 된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책을 번역하는데 열을 올리게 된다. 물론 그들이 일본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보여졌다. 19세기 후반 대한민국이 조선이라는 명칭에 갇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그때 일본은 먼저 앞서나갔으며, 전쟁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 청일 전쟁은 그렇게 시작하였고, 러일 전쟁이 시작한 계기는 바로 만주 땅 확보 때문이다 그 땅을 잃어버리면 그들의 야욕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그들은 러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중일 전쟁과 양상이 다른 러일전쟁,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였고,러일전쟁 이후  1905년 포츠머스 강화회의는 일본의 굴욕을 선사했고,일본인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음으로서, 일본 국내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그들이 중국으로 진출하고, 러시아로 진출하려는 목적은 바로 일본의 인구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그 당시 인구가 1억을 육박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갈등을 양산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동아시아 교두보를 확보하려 했다. 그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계기였으며,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도쿄대의 모습을 바라보면 , 일본의 주류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도쿄대 법학부는 천황의 도구였으며 일본이 관료 사회로 바뀌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면 일본의 천황은 형식적인 지배자,상징적인 지배자로 보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존재였다. 천황에 가까울수록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되고, 사회의 중요한 직책을 가질 수 있다. 직급이 달라지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에서 요직을 맡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핍박받을 수 있고, 사회에서 배척된다. 도쿄대 법학부가 성장 할 수 있었던 이유,처음 법학부에서 문학부, 이학부가 추가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법학부와 함께 중요한 학부는 의학부이며, 도쿄대의 많은 학생들의 의학부로 채워졌다. 어쩌면 그들이 마루타를 강행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도쿄대 의학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정하게 되었다.


한국이 독립운동을 하고, 천황암살 사건을 주도하는 그 가운데 , 조선은 미국의 대공황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사회였다, 일본 사회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조선과 중국, 일본이 바라보는 두 나라는 미개한 나라였으며, 지배당해 마땅한 나라였다. 전쟁에서 이기고, 자본이 넉넉한 일본이 또다른 야욕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오만함도 있었지만 일본 사회의 여론을 그쪽으로 이끌었던 또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일본 사회에서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전쟁으로 인해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던 그 시기. 도쿄제국대학교 법학부 소속의 정치 동아리 '신인회'의 좌익활동이 눈길이 갔다. 자본론을 연구하고, 금서였던 공산당 선언을 번역해 읽었던 그들은 1918년에 발족해 1929년까지 이어졌으며,1928년 1월 24일 도쿄대 내에서 신우익단체 우익동아리 칠생사와 좌익동아리 신인회의 학내 폭력충돌,그들은 학교 내에서 서로 결돌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지켜 나갔다.


천황이 몸통이라면 도쿄대 법학부는 수족이었다.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교차한다. 암기를 통해 자칭 엘리트라 부르는 도쿄대학생, 그들은 똑똑하지만 생각이 없는 존재로 변질되었다. 쇼와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은 정계로 진출하면서 일본 사회의 전공투 세대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1945년 이전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북한과 비교하고 있으며, 일본이 북한의 김정은 체제보다 더 나쁜 현실이라 말한다. 김정은은 독재정치를 하는 한 나라의 지도자이지만, 천황은 신이였기 때문이며, 그들을 떠받치는 그 밑바닥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을 모방하였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은 가져가지 않았다. 학문의 요람이라 부르는 대학교는 일본의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학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국립을 표방하는 도쿄대와 비슷한 대학교로 와세다와 게이코 대학이 있으며, 세개의 대학은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수주의와 국가주의를 옹호하고, 그건 철저한 반공주의, 반사회주의, 반데모크라시,반정당정치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교대는 일본 정부의 노예였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렇게 말하는 그 증거들이 이 책에 기록된다. 일본 헌법을 만들었고 다이카 개신과 쇼와 유신 시대를 열었던 도쿄대 법학부 출신 관료들의 작태는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1960년대 우리가 봤던 유신시대는 그들의 모습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으며,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그 이유를 보고 싶다면 일본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면 될 것 같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우리나라의 메이지유신 사례를 봐도 맨 처음에는 소수의 정열가가 현실의 악덕을 견디지 못하고 성패를 초월해서 기폭제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것이 그 후 시간을 두고, 혹은 그 직후에 몇 번쯤 봉화처럼 타오른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면 마침내 군대를 움직이는 자들이 군 내부에서든 민간에서든 여하튼 무력으로 기성세력을 타파하고 개조와 건설에 들어가는 것이 상례다. (P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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