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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021년 10월
평점 :

극장이라는 공간은 오묘하다.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가상의 세계를 만나러 우리는 그곳에 간다. 몇 시간짜리 허구를 기꺼이 함께 용인하는, 약속에 이루어지는 곳, 지구 위에는 내가 사랑하는 극장들이 몇 있고, 사랑을 촉발시킨 것은 대체로 거기서 마주한 허구의 세계였다. 나는 아름다운 가상을 만난 곳에서 , 그 공간을 또한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다. (-11-)
원작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라진 원작을 백 년 동안 기리는 것의 의미는 뭘까.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그럼에도 무언가에 마음을 기대야 한다면, 계속 사랑하기 위해 어떤 흔적이 더 필요할까. 조립될 수 없는 파편들, 그럼에도 당신의 것인 조각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까. 아니면 그것을 붙들고 우리는 울까. (-28-)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부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으로.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으로. 그 먼 곳에서 안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어이 진실을 품고 돌아오는 것이 또한 그들의 몫인지. (-48-)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치를 때마다 알게 된다. 슬픔의 더께와 무관하게 계속되는 의식의 절차 속에서 우리는 때로 비통한 애도를 잠깐씩 쉰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듯, 울음을 유발하는 특정 순간들은 꼬리를 물고 되돌아온다. 그 장치들 앞에 사랑했던 우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잔혹하고 명백하게, 사라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83-)
리델이 말했듯, 세계가 우리의 몸을 지울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믈 끝없이 감각한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그 몸이 존재하는 일이다. 몸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일. 더 아름답지 못한 것이 언제나 책망되는 몸을 데리고 걷는 일.그 몸이 수치스럽게 만져지고 살덩이로, 또는 자궁으로 취급되는 일. 그즈음 나는 특히나 더 내 몸과 관련한 바닥같은 자존감을 끌고 다녔고,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문득 수장된 아이들의 몸을 떠올렸다. (-111-)
무언가를 오래 좋아해온 사랑이 지닌 자신만의 역사와 그 섬세한 애정의 방식. 그것만큼 내게 부러움과 경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없다. 이 부러움은 순전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에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다름 아닌 세월이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따라잡을 수 없을 아저씨의 세월을 따라 극장 별로 정해진 만남의 장소로 나가는 일이 즐거웠다. 오페라 바스티유나 파리 필하모니 같은 현대식 공연장에서 프로그램 판매대 앞.로비가 좁은 샹젤리제 극장은 출입문 앞.오페라 코믹은 마농 앞. 오페라 가르니에는 헨델 앞.헨델 앞에서 보자. 라고 말하는 일. (-135-)
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선형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머릿속에 문장이 줄지어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갈 때, 눈앞에 세계가 지나간다. 그 가없는 흐름 속에서 , 과거와 미래를 잇는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재라는 찰나 속에 우리는 산다. 일몰의 시간, 사라지는 빛이 물들이는 하늘을 보며 옆에 선 이에게 아름답지, 말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가고 없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가 우리에게 허락한 생의 방식이다. (-179-)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은 채 제목에 이끌려서 선택한 책이다. '모국어'와 '침묵'이란 이질적인 단어를 소환하고 있으며, 목정원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 깊은 사유가 들어가 있다는 산문이며, 유튜브에도 잠깐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을 통해,인간이 쓰는 언어가 인간의 삶고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으며,인간의 의식구조를 흔들어 놓는다는 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려수가 있다. 특히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인간의 언어 체계는 다양한 교육과 학습을 기반으로 하여, 가상과 추상적 언어를 표준화하고 있으며, 인간 스스로 소통하고,이해하며, 공감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한다.역설적으로, 인간은 언어로 인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계를 느끼며 살아간다. 즉 세상의 모든 언어 체계를 정리하고, 사전을 만들고, 모르는 단어를 하나의 틀안에 가두어 버린다.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언어에 의존하는 사유는 언어적 자유를 느끼곤 한다.즉 인간은 언어 너머의 세상과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새로운 언어와 문장과 독특한 언어구조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작가 목정원은 미학자이다. 미학자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언어와 예술과 감각에 의존하곤 한다. 본질에 집착하고, 완벽해진 원본에 의존한다.그래서 ,모작을 마주할 때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품, 원본은 진정한 원본은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공연도, 영화도, 무대도 가상의 어떤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그 가상의 세계에서 인간은 웃고, 울고, 분노하고, 우울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인간이 만든 언어가 인간의 살과 인생을 결정하고, 판단하며, 세상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인간은자의적으로 쓰여지기 위한 언어를 만들었지만, 타의 반 자의 반 언어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언어라 하더라도,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하는 이유, 그 차이를 사유에 집어 넣고, 가상 공간에서, 모국어를 쓸 때와 외국어를 사용할 때의 차이를 구분하고,분석한다. 언어가 있어서, 마주하는 세계를 이해하고,깨닫는 동시에 ,분류하고,각각 떼어내어서 분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