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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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만나지 않는다. 언제나 서로라는 존재의 곁을 맴돌지만 마주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실명을 모르고 서로의 민낯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가 꾸며놓은 각자의 공간을 구경하며 그것이 서로의 본모습이라고 믿는다. 이미지가 사람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정성껏 꾸며놓은 이미지에 휩쓸리듯 빠져든다.(-15-)



엄마의 서재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1952년 판이 꽂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늘 친구들에게 선물해줄 정도로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데, 이렇게 우연히, 게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서재에서,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판을 발견하게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65-)



소견은 자유지만 진단은 신중해야 한다. 생전에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았던 고흐가 삶의 죽음 직전까지 예술혼을 태울 수 있었던 건 그린에 대한 열망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 덕분이 아니었을까.따듯한 사람 곁에 있으면 온기가 전해지기 마련이듯 그가 남긴 작품들에서도 가려진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누군가는 고흐의 삶이 고통으로 얼룩진 비극에 불과했다고 말할 테지만, 과연 고흐 자신도 짧았지만 누구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던 자신의 삶을 ,단지 비극이었다며 머리를 감싼 채 절망의 표정을 지을까.뒤돌아보는 고흐의 저 깊은 침묵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바로 그때가 찾아온다면,나는 그 대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99-)



출근하면 저는 가면을 쓰고 남들만큼의 연극을 시작합니다. 마치 제가 연극배우가 된 것처럼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을 대면합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한 연극이 아닌 오로지 저의 삶과 밥벌이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극인 셈입니다. 그렇게 저는 받아가는 돈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합니다. 어떤 날은 저의 연기가 완벽하게 성공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심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어설픈 연기를 보여줍니다. 저의 연기를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저는 명확한 사람이거나 사회 부적응자이고, 개성이 강하거나 유별난 사람이며, 자기 지향적인 사람이거나 이기주의자가 되겠지요. 분명한 건 제가 스스로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든 그 모습들이 저를 구성하는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모두 저의 모습인 동시에 모두 저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저도 모르는 제 모습에 대해 애써 증명하려는 노력은 늘 무력해집니다.사람은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지만 대부분 순간적인 인상만으로 서로를 판단하니까요. (-191-)



작가 오수영은 항공사 승무원이면서 작가다. 저서로는 『조용한 하루』 ,『사랑의 장면들』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아무 날의 비행일지』 ,『긴 작별 인사』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진부한 에세이』 가 있으며 ,일상속의 소소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다.



에세이에는 생각이 담겨져 있다. 그 생각은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생각이며, 그것이 온전히 진리, 진실은 아니다. 솔직함보다 가면이 더 익숙하고, 실명보다 닉네임을 쓰는 게 편리한 세상 속에서,우리는 디지털 공간에서 만든 디지털 이미지를 먹고 살아간다. 간혹 과거 드라마 속 불편한 장면들을 보면,시대에 따라서,우리가 만든 가면이 트렌드에 따라서,달라지고, 서로의 가치관,신념, 소신에 의해 바뀌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드라마 속 『한지붕 세가족』은 없다. 서로 단절되어 살아가고,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지가 만든 행복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며,나이가 들어가고, 노화가 진행되는 모습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한다.이미지라는 것이 그런 것이며, 서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가식은 허용해 주고 있다. 연기하는 것도 허용해주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건만 전부라고 생각하고,가짜가 진짜보다,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인간의 내면 속에, 솔직한 모습이 나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기술이 진보할 수록 인간은 모험과 용기와 멀어지고,나를 지키려는 안전지대에 숨고 있다.사람에 대해 관찰하면서, 시험하지 않고, 사물에 대해서, 실험하지 않는다. 항공승무원으로 살아가면서, 서비스 직으로서,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도, 집에 어떤 일이 생겨서,웃을 수 없는 상황에도 웃어야 하는 이유,우리의 밥벌이가 진실보다 가짜,가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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