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앤드 산문집 시리즈
이소연 지음 / &(앤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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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가난을 각오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별로 많이 가난하지도 않다. 막상해 보면 멀리서 생각할 때보다 언제나 사정이 나은 것 같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없지 않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부자는 아니지만,밥도 잘 먹고, 멋도 부리고, 다니고, 돌아갈 집도 있다.가끔 비싼 물건이 갖고 싶을 땐 좀 참는다. 그것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7-)

글을 쓸 때마다 완벽에 대해서 생각한다. 완벽한 것은 어디에 있을까? 완벽해 보이는 것 일수록 흠이 많았다. 그렇다면 흠이 많아서 완벽하다는 건가? 틈을 벌리고 들어찰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강물은 아래로 흐르고 어떤 물은 위로 또 어떤 물은 가장자리로 또 어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어떤 물은 위로 또 어떤 물은 가장자리로 또 어떤 물은 나뭇가지에 거리거나 돌에 걸려 아주 늦게 흐른다. (-61-)

유배지에서 생각의 매듭을 풀어헤쳐 나간 정약전과 교도소에서 소설을 구상한 도스토엡스키는 고립된 상황 속에서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겼다.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대신에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글을 썼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를,고스토엡스키는 『농부 마레이』 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생각했다. 무엇인가 묶여 있는 매듭을 풀면, 그것은 한 사람의 운명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90-)

어느 날 농부 친구가 손 위에 쌀을 올린 사진을 보내왔다.다음 날엔 가재를 다음날엔 도마뱀을,청개구리를 , 냉이를, 밤을,산딸기를, 복분자를, 매미를 ,논병아리를,우렁이를, 참새를, 새집을 , 첫눈을,오이를, 끝도 없이 손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손 위에 올려진 모든 것은 전생에서나 본 것 같은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끼게 했다. 나는 어느새 도시 생활에 젖어 있었고 이 세계를 구성하는 그런 작고 귀한 것들과 멀어져 있었다. (-145-)

인도 출신의 세계적 석학인 가야트리 스피박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읽기』에서 평서문에 의문 부호를 다는 것이 바로 상상력의 임무라고 거듭 강조했다.나는 법에 따라 쫓겨난 이들이 다시 법을 전유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단지 버텨 냄으로써 제한된 구역에 거주하기가 가능해질 수도 있을까?

이날, 유현아 시인이 낭독한 김현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사무친다. (-204-)

시인 이소연은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 외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2023년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인 이소연의 남편 또한 시인이며, 아이들은 부모의 시작인 감수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인이 쓴 산문집에는 시적인 순간이 있었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전환한다.문장을 빠꿔 쓰는 노력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한라산에 오르는 건 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시는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해서,저절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며, 항상 스스로 극단적이 상황에 내몰리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 숙명적인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인은 시를 써서,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시인에게 시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반드시 시를 써야 하는 순간이다. 예쁜 단어 하나 찾아서,내 삶을 녹여내고, 타인의 삶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샘솟는다. 시인에게 인생이란 매듭을 잘 푸느 데 있었다. 시인 이소연은 산문집에서 '윤슬'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시인은 언어적인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두 부부가 시인이기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 시적인 감수성을 키우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두 부부가 쓴 시가 자신에게 언어적 족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된다. 완벽한 언어를 추구하는 삶에서,스스로 그 삶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지적에 대해 ,부부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시로 쓴 삶과 현실의 삶은 언제나 이율 배반적인 결정과 판단을 하게 된다.시인은 책에서 언어의 향기를 느끼며 간접적인 경험을 현실과 시에 반영하고 있으며, 시인에게 춘궁기나 다름 없는 겨울에 시 낭송회, 시낭독회를 주로 하는 이유도,가난한 시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은 삶의 자구책이었다.


ㅏ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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