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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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군의 침략은 벌써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의 매년 거란은 고려를 침략했고 무수한 고려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9년 전 (1010년),3년 전 (1016년) 에는 양측의 주력군 간에 대규모 회전이 벌어졌었다. 그 두번의 전투에서 고려군은 모두 패해서 수만 명이 전사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 전투에 고려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2-)

왕건은 사망하기 전에 ,후손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그것을 '훈요 10조'라고 한다. '훈요10조'에는 연등회와 팔관회의 지속적인 개최를 강조하고, 거란에 대한 적개심과 북진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33-)

고려 국경지역에 서북면과 동북면이라는 특별행정구획이 설치된다.서북면은 거란을 방어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었고,동북면은 동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고려는 서북면과 동북면에서 걷히는 세금을 모두 이 지역의 국방비로 충당했다.

서희가 거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설계한 방어 전략은 '방패와 창' 이 었다. (-95-)

거란군의 침공이 예견되자,고려는 세 가지 방어계획을 준비한다.

첫 번째는 압록강에서 도강하는 거란군을 기습하는 작전이었다.

두 번째는 통주 근처 삼수채에서 거란군과 일대 회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앞의 두 작전은 비록 실패했지만 고려에는 아직딕 마지막 작전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동북면에서 군사를 차출하여 서경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010년 12월,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과 중랑장 지채문은 3천여 명의 동북면의 군사를 이끌고 서경으로 들어갔다. 탁사정과 지채문은 항복을 결정했던 서경부유수 우너종석 등 서경 지휘부를 일소하고, 서경에 온 노의와 유경을 베어버림으로써 항전의 결의를 다졌다. (-159-)

또한 성종 때 폐지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켰다. 연등회와 팔관회 모두 국가와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하나로 모를 수 있는 국가적 행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불에 타버린 고려 초기 기록들을 복원할 것을 명령했다. (1013년). 이 일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서 20여 년이 지나서야 (1034년 즈음),칠대실록이라고 불리는 고려 초기 역사 기록물이 어느 정도 복원된다. (-229-)

소배압은 이번 전쟁을 준비하며 대담한 전략을 세웠다. 고려의 성곽을 공격하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려의 주력군은 패배시키는 것도 그다지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두 번이나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니 고려를 무릎 꿇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이었다. (-291-)

한국인에게 익숙한 노래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에는 노래가사'바다의 왕자 장보고 발해 대조영,귀주대첩 강감찬' 이 나온다. 이 노래가사 말 속 인물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과 연관된 현대인이 사극 전문 배우 최수종이다. 2023년 하반기에 살수대첩, 한산대첩과 더불어 3대 대첩으로 손꼽히는 귀주대첩을 모티브로 한 사극이 방영된다고 한다. 작가 길승수의 『고려거란전쟁』 의 주인공 강감찬이 2023년 하반기 KBS에서 방영될 사극, 최수종의 역할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라는 나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려는 936년 태조 왕건이 세운 나라다. 고려 (918~1392)는 몽골,여진,거란, 왜나라의 침략으로 500년 내내 전쟁 속에 살아왔다. 신라(BC 57~935년) 의 국운이 서서히 꺼지고 소멸되고 있었던 시점에, 북방에는 발해(698~926) 가 있었으며, 발해는 요나라가 될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한반도에는 고려가, 거란 옆에는 여진족이, 중국 본토에는 송나라가 있었다. 유목민이었던 거란족은 호시탐탐 고려 땅을 탐내었으며, 26년간 3차에 걸쳐,고려거란전쟁, 즉 여요전쟁이 시작되었다.여요전쟁 중에 서희의 담판, 그리고 강감찬 장군의 승부수였던귀주재첩이 있다.

거란족 장수였던 소배압 (~1023) 은 10만 정예군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고려를 침입하였으며, 10만 대군으로 개경으로 곧바로 진군한다. 그가 개경으로 들어온 시기는 고려 8대 왕 현종이 있었던 시기로서, 서서히 왕권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였다.거란족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흥화진을 거치면서 ,곧바로 개경으로 가는데, 그 당시 문인이었던 강감찬 장군은 소배압의 전략을 미리 눈치채고, 철저한 준비를 하게 된다. 고려의 수도 개경을 탈취하려던 소배압의 계획은 실패하였고, 귀주에서,고려군과 전면전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귀주에는 강감찬의 전투부대가 대기하고 있었으며,소배압의 10만 군대가 섬멸된다. 평생 전쟁으로 살아왔던 고려 거란 전쟁의 귀주대첩의 결과, 요나라가 멸망하고, 여진족의 금나라가 세뤄졌다. 물론 고려는 앞으로 100년간 평온한 채, 몽골 족이 고렬를 침입하기 전까지, 고려는 평온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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