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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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바하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은 작곡가의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음악이 분수처럼 영롱한 무지개를 그리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비발디 (Antonio Vivalidi,1678~1741)의 이름은 독일에까지 널리 퍼져 바하조차도 큰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39-)

다른 지휘자의 『마태 수난곡』 에서는 한 곡 한 곡이 독립되어 있지만,멩겔베르크의 연주는 전곡을 하나의 끈으로 엮어 유기적인 연결을 돋보인다. 이는 녹음을 의식하지 않은 실황 연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비단 합창 뿐만 아니라 독창자들도 최고의 열연을 펼친다. (-105-)

1960년 12월 7일 브뤼셀에서 하스킬은 갑자기 죽었다. 철도역 층계를 내려오다 굴러 떨어진 때문이었다. 이 때 나이 65세였다.

예술가로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인간으로서는 하스킬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다.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몸소 겪어야 했던 점은 동시대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체험한 일이므로 그녀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등이 굽은 곱추로서는 남달리 전쟁의 혼란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병마는 그녀의 등만을 굽혀 놓지 않고 뇌종양이 정신까지 위협했다. (-245-)

1826년은 베토벤의 생애에서 최악의 해였다. 조카 카알 때문에 죄로워하다 보니 건강도 따라서 나빠져 죽음까지 각오할 정도가 되었다. 이 해 2월과 3월에 신경통과 소화기 계통의 병 및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7월 29일에는 자식처럼 돌보던 카알이 불량한 생활 끝에 빚에 몰려 권총 자살 미수사건까지 일으켰다. (-327-)

청년은 살아갈 기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히 힘을 쓰나, 곡의 장조와 단조의 교체가 마음의 불안을 드러내고 만다. (-409)

19세기 중엽의 빈 월쯔는 오늘날의 팝송만큼이나 빈 시내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국민에게 향락주의를 권장하는 정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크게 유행했다. (-531-)

타협을 모르는 그의 완벽주의는 악단원에게서 완전한 인토네이션과 균형 있는 아름다운 음향을 이끌어 내고 순수하게 음악 자체에 육박하여 청중을 진한 감동 속에 감싸 버린다. 첼리비다케는 음악이 지니는 생명감과 즉흥서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여 그 음악이 표현하는 내용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부각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633-)

시에서 피를 빨아들이는 동안에 음악은 살이 쪄서 모습을 바꾸었다. 대부분의 가곡 작곡가가 선을 자체에 전념했지만, 불후는 시의 뜻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서만 선율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가곡은 하나하나가 언어의 의거한 회화(繪畵)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732-)

발터 지휘의 교향곡 제1번은 그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모두가 말러의 음악 자체에 동화되어 있고 또 나아가서는 말러의 음악 자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있다. 발터, 말러하는 음악가에 대한 좋다, 싫다는 따위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만인을 감동시키는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815-)

공산권에 속한 폴란드가 어떻게 그토록 전위적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 오랫동안 계속된 전란과 황폐 속에 싹튼 저항 정신과 자립 정신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이래로 전통적인 자주 독립의 기개와 권위에 대한 강한 저항심이 빚어낸 혁명 정신 같은 민족성이 예술 분야도 전위적 자세로 이끌어 갔을지 모른다. (-929-)

슈바르츠코프 (1915~) 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래의 영역은 서로 다르지만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세계 정상의 프리마돈나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연주의 정점을 어느 해쯤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녀의 오페라와 가곡의 전성기가 각기 다르므로 둘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045-)

언젠간 베트로폴리탄이 내 앞에 무릅을 꿇고 노래해 달라고 애원할 날이 올 거예요, 그대가 와도 나는 절대로 응하지 않을테니 단단히 기억해 두세요.

그로부터 거의 11년 후에 정말 요청이 왔을 때 죤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1122-)

『휘가로의 결혼 』 은 모짜르트가 좋아한 오페라 부활의 걸작이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가장 생동감이 넘치며 매력적인 인물은 수잔나이다. 서민적인 매력을 지닌 수자나에게서 모짜르트는 처녀 시절의 콘스탄제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며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1205-)

로엔그린은 백조가 가까이 오자 그 목의 사슬을 풀어준다. 순간 백조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강가에 치솟으며 소년으로 바뀐다. 소년의 출현과 동시에 오르크루트가 기성(奇聲) 을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 소년이야말로 오르트루트의 마술로 백조가 되었던 영주 고트후리트였다. (-1306-)

오페라 『카르멘 』 은 1875년 3월 3일, 바리의 오페라 꼬히끄 극장에서 초연의 막을 올렸으나, 대개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처음에는 뜻밖의 냉대를 받는 통례대로 평이 나빴다. 대본 작가의 한 사람인 알레비는 "마지막에 갈수록 냉랭한 분위기로 바뀌다가 제4막에 이르러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얼음 같은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쓰고 있다. (-1420-)

브루크너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는 그의 아홉곡의 교향곡에 있다.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베토벤을 이은 대교향곡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낭만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4번 교향곡이 인기가 있지만 작품의 깊이로 보면 제7번 , 제 8번 그리고 마지막 악장이 미완성인 제9번 교향곡이 심원한 브루크너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교향곡에서 아다지오 악장은 든는 이를 자연의 신비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1508-)

청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안동림 교수는 1932년에 태어나 2014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남긴 저서 『이 한장의 명반 클래식 』은 자신의 삶을 바친 명저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LP 판이나 ,mp3 로 들어왔던 우리가 이제 유투브로 검색을 하면 찾아들을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클래식에 대한 깊이와 의미를 향유하게 되었으며, 소비와 생산, 영감과 창의력을 노펴 나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바하,비발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벱,슈베르트,드뷔시,쇼팽, 리스트,. 무쏘르그스키 교향시 ,드보르자크, 펜데레츠키, 살리라핀 등등의 음악가가 추구해왔던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엿볼 수 있으며, 왜 클래식 음악이 나의 마음과 감정의 동선에 따라가게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즉 음악가는 싫어할 수 있다.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음악가의 음악은 싫어지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고유의 음악적 보편성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내 마음을 동요 시키며, 마음의 평온을 가져 놀 때가 있었다. 나의 마음이 격정적일 때느,격ㄹ적적인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면서 , 내 마음의 펴온을 가져온다.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그들이 남긴 그림과 동화되었고,그 음악을 통해서 , 한사람의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위대한 화가라 하더라도,그 시대에 그림이 파리지 않으면,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눈은 닫혀 있어도 귀는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내 마음이 기쁘면, 긍정적인 클래식을 듣게 되고, 내 마음이 분노로 동화되면,그 감정과 일치하는 음악에 따라가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 미국의 팝음악, 사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향한 음악적 색과 향,그 하나하나가 주는 울림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며,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때로는 분노의 늪으로 끌어 달길 때가 있다.음악에 의해서 ,내 삶은 완성될 수 있고, 음악의 깊이와 소양에 따라서, 내 삶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그 믿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은 안동림 교수는 자신의 노년 이후의 마지막 삶을 이 책 한 권에 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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