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없는 제국주의 시대 - 다가온 탈제국의 조류, 한국호의 방향타는 어디로? 지금+여기 13
김성해 지음 / 개마고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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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요한 문제의식, 집요한 열정이 있는 책이다. 세부적인 내용 전개가 섬세하지는 못한 듯 보이는 부분들도 일부 있지만, ‘미 제국’의 핵심 지배 전략인 ‘제국이라는 말과 인식 자체를 없애기’를 겨냥하고,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 과학적 사실 인식으로서의 “미 제국주의”라는 말을 확고히 사용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정치적 가치가 높다.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한미동맹’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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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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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 책은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 ‘내전’ 속에서 분신한 “영원한 건설 노동자” 고 양회동 열사의 2주기 특별기획으로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제안하고 경남도민일보가 결합하여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울경 지역본부와 협력해 건설 노동자 12명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정리해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의 경우 2019년 이래 지속적으로 노동자 구술을 기반으로 한 책들을 출간해오고 있다.
_ 노동 현장에 발을 딛게 된 과정, 주로 하는 일, 노조에 가입한 계기, 노조가 한 일들, 정권의 ‘건폭 몰이’와 힘겨운 시간들, 지금의 마음가짐과 각오 등의 순서로 모든 인터뷰가 정리되어 있다. 크게 보면 모두 비슷하게 풍성한 보편적인 지금 여기의 ‘계급’과 ‘민중’의 이야기면서, 세세히 보면 특유의 고유함이 가득한 ‘한 사람’, ‘개인’의 이야기다. 특히나 자신이 현장에서 수행하는 노동에 대해 모든 이들이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타설‧골조‧굴착‧형틀‧내장‧철근‧비계‧중장비(덤프, 레미콘) 등의 일들을 보고 있으면 건설 노동자들 특유의 “세상의 외형을 창조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정직하게 일한 만큼 버는 직업”으로서의 건설-육체노동에 대한 자부심 역시 여러 차례 언급된다.
_ 산재(중대재해) 및 건강권‧안전권, 다단계 불법‧비법 하도급, 노동 대비 저임금, 임금 체불, 특수 고용, 공기(마감) 압박, 무연금 등 한국 사회 노동 ‘문제’가 집약된 건설 현장의 현실도 자연스럽게 고발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평범한 현장의 ‘중견’들이 하나둘 힘을 모아 스스로 단결하고 조직하고 투쟁하는 노조를 건설한 2010년대 현재의 역사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회고한다. “인간다운 삶”, “노가다가 아니라 노동자”, “불법인 사람은 없다”, “세상 앞에 떳떳하게”, “스스로와 자식에게 떳떳한 삶”, “노동자도 당당하게 목소리를”과 같은 말들로 소박하고 담담하게 주인으로서의 삶, 주체로서의 투쟁, 그 중심에 있던 건설노조를 말한다. 평범한 말들이 집단의 절실함과 함께 하나의 외침이 되었다. 삶과 밀착된 언어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아마도 그러한 힘이 기반이 되어 지난 수년간 건설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아래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권과 경찰 ‘광역수사대’의 노조 파괴 공작, 범죄자 몰이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금 희망을 말하는, 결국은 바위 같은 우직함 역시 그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나 이 부분은 유명인들 또는 전문 직종에 대한 ‘검경 수사’에 관한 이야기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현실적으로 와닿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_ 구술자들도 여러 번 언급했듯, 건설노조가 현재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 파괴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위기를 맞았지만,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노조를 통해 자신들이 일궈온 것에 대한 자긍심을 지닌 이들은 미래에서 끝끝내 희망을 보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노사 협의를 ‘협박 갈취’로 둔갑시키는 경찰서 취조실 옆 방에서 수사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노동자이자 노조원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기백은 소중하다. 이런 글을 읽고 나면 보약을 먹은 듯 튼튼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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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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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의 모음. 작가는 식물과 햇빛과 거울과 ‘그 집’ 모두를 닮았다. 다 읽고 나니 제목, 표지가 참 사려 깊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오래된 코트에 관한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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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 나는 고발한다, 이 참혹한 노동 현실을
월간 <작은책> 엮음 / 플레이아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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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장구한 역사를 쌓아온 월간 <작은책>의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는 언제나 평범한 노동자들 특유의 ˝건강함˝과 ˝활력˝을 안겨주어 아름답다. 30주년을 맞는 제6권은 여기에 ˝투쟁˝을 더 부각했다(앞의 이야기들과 항상 어울려 왔던 것이다. 그래서 ‘부각‘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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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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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독특한 관점의 저술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수많은 글들로 알려진 우치다 다쓰루의 새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글쓰고 수련하는 사상가이자 무도가”로 소개됐다. 현재 고베여학원대학 프랑스 문학 명예교수(레비나스 철학 전공)이자 개풍관(합기도장) 창립 사범이며, 블로그 ‘연구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집단적 지적 흥분”(차분하고 지적인 개념이다)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그를 “마치바街場의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적절한 듯하다. 마치바는 ‘지식인도 자연스레 포함된 사람들의 저잣거리’다.
_ 저자의 책은 한국에 여럿 소개되었는데, 이 책은 그 특유의 “전도자” 개념에 공감하며 직접 교류하는 박동섭 독립연구자가 번역했다. 사실 번역 이상의 작업이었던 듯하다. 이번 책의 경우, 질문과 응답의 형식의 기획을 번역자와 출판사 편집부가 제안하여 성립하였다고 한다. 그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관점 성립의 배경을 이루는 “배움”과 “지적 폐활량”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_ 그는 무엇보다도 해결되지 않는 것을 그 자체로 끌어안고 분투하며 나아가는 즐거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해하는 것”만큼 “이해하지 못한 것”의 목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강박(지배권력이나 체제 또는 자기 자신만을 앞세우는 교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무방비) “억지로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무구). 과정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하나씩 깨달아가며 검증하고 다져가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무지의 즐거움”은 곧 ‘배움의 즐거움’이다(제목이 아주 멋진 이유다). 미지의 세계를 기지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미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 폐활량”이 필요하다. 내가 느끼기에 이는 사실상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과 공존할 수 있는 ‘인내심’과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_ 마치 아포리즘처럼 재미있는 구절이 많다. 이런 방식의 대화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라 그런지, 질문을 ‘모티프’ 삼아 유려하게 흘러간다.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 외의 일들은 조건을 모두 똑같이 해 두는 게 좋다”. “(개성 있는 저의 관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제가 집단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늘 고민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성’이란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지성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상태’가 생기는지로 평가해야 합니다.”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애정이나 신뢰보다 훨씬 전달력이 강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발신자의 의도를 올곧게 수신해 주는 것은 경의입니다.” 그 특유의 스승과 제자론, 조술자와 전도자, 고유의 ‘보이스’(차이의 아이덴티티가 아닌 게 핵심), 그릇을 키우는 수행으로서의 배움, 몸으로 소화하는 배움(과 무도의 연결), 종교성과 과학성의 일치, 교육에 관한 관점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좋다.
_ 그의 이런 이야기들이 현학에 머무르거나, 자기계발로 흘러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자유로움’이 전후 일본의 ‘꼬마 군국주의’와 선명하게 대립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는 <사쿠라 진다>, <속국 민주주의론>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미국 중심 전후 세계체제와 그 속에서 ‘속국’이자 ‘군국주의’형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작동하는 일본에 대한 선명한 비판을 담지는 않았지만, 그와 상통하는 민주주의에 관한 꼭지도 하나 담겨 있다. “자기 개인과 나라의 운명 사이에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체제”로 “완성된 적 없는 하나의 이상향”이자 “과정”이며, 바로 그렇기에 정치, 외교, 경제, 사회의 모든 사안은 전문가와 관료의 것이 아닌 그 사회 모든 이들이 알고 느끼는 만큼 자유롭게 말하고 듣고 영향을 끼쳐야 하는 집합적 의제라는 것이다.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_ 결국 그가 말하는 “어른”은 공적 책임감을 윤리적으로 끊임없이 인식하는 기반 위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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