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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ㅣ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영화 《로키Rocky》(1977)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분한 ‘로키’는 평범한 복서였다. 무명에 불과했던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기회이자 시련이 찾아오기 전까진 그랬다. 우연히 챔피언과 대적할 절호의 찬스였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로키’는 당당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을 갈고 닦았다. 열심히 단련하면 기적이 찾아오리라.
경기가 시작되고 ‘로키’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것만 같던 산을 향해 일격을 날린다. 거대한 산과의 승부에서 그는 누구와 겨뤄도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눈부신 투지와 당당함이 ‘로키’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나는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크게 외친 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에이드리안!”
영화에서 ‘에이드리언’은 ‘로키’의 연인이자 굳센 지지자로 기능했다. 기능자로서의 역할에 그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에이드리언’이 가진 지지자로서의 기능이 이 사회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반추했다. ‘로키’와의 마지막 포옹이 보여주듯 작은 친절 작은 연대는 가공할 기적으로 몸체를 바꿔 온다.
‘ㄹ’이 들어가는 특이한 이름의 어린이가 있다. 미로처럼 굽이쳐 잘못 쓰인 글자 같은 이름, ‘이록희’가 그 주인공이다. ‘록희’의 아버지는 용해시의 시장이다. ‘록희’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시청 인근 관저에 거주하는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록희’는 그가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을 뿐이다.
자율 동아리 시간이라니. 대충 시간이나 때울 요량이었다. 혼자서 아무것이나 하거나 아무것이나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기존에 창설된 동아리에 가입할 순 없었다. 동아리를 만들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누가 이 계획에 동의하겠는가? 대충 데굴데굴 알아서 잘 굴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되지 않을까? ‘록희’와 친구들이 이름부터 단순한 ‘왜왜왜 동아리’로 뭉치게 된 계기는 그저 심심해서였다.
‘왜왜왜 동아리’에는 본디 상호 협력이 배제된 말 그대로 ‘자율 단체’였다. 아무거나 궁금한 걸 동아리 시간 내내 혼자 대충 파헤치면 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록희’와 친구들은 그들이 발 딛고 사는 용해시가 눈에 띄게 망가지고 있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초심을 몽땅 잃고 만다. 작은 것들의 세상이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작은 존재가 모여 사는 지구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으니까. 푸른 바다를 지켜야 했다.
마을이 통째로 불바다가 되어 반려 동물을 잃고 터전마저 잃은 ‘기주’는 기후 위기의 피해 어린이다. “낡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 같”고 “한쪽을 겨우 여며 놓으면 다른 쪽이 또 벌어져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속살을 자꾸만 들키는”(p.55) 기분을 ‘기주’는 종종 느낀다. 불타오른 마을과 길 잃은 강아지 ‘다정’ 그리고 이모네에 얹혀 사는 가족들까지. ‘기주’는 왜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 알길이 없다.
사정은 다른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진모’는 손님이 끊긴 게스트 하우스로 인해 살곳을 옮겨야 할 위기에 처했다. 어떤 친구는 기후 위기로 바다 수온이 올라가 대대로 이어오던 명태 어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런가 하면 병충해로 과실목에 피해가 상당해 농사를 더는 이어갈 수 없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왜왜왜 동아리’가 있었다.
“왜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를 함부로 망치려 드나요?”
‘왜’라는 질문과 함께 ‘록희’와 친구들은 진실에 가까워진다. 작은 것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아간다. 가뭄으로 산이 불타고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세계, 식량 싸움이 벌어지고 전염병이 창궐해 생명이 꺼져가는 세계, 혹서와 혹한을 오가는 세계, 폭우와 폭염으로 지워지는 세계를 호위하기 위해서.
작은 것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모두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도 ‘왜왜왜 동아리’는 작은 친절과 작은 연대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마음이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갈 때마다” ‘왜왜왜 동아리’ 친구들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 준다. 불러 세워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인상적인 점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어른들의 태도였다. 무시하고 넘기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 대부분은 그들에게 작은 친절을 안겨주며 아이들이 지지와 연대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자그마한 힘을 믿어준다. “결정적일 때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작은 관심과 친절도 (골대에) 공을 넣는 데에 분명 보탬이”(p.58) 된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초점 화자가 문제의 화신인 용해시 시장의 ‘딸’로 등장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지구를 책임지는 두 세대의 입장이 대비되어 배치된 서사 전략이 재미있었다. 용해시의 현재와 희망 중 누가 승리할지 보는 맛이 있었던 소설이었다.
사소하게는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다. 아이들이 동아리를 개설하고 첫 모임을 가졌을 때 ‘기주’의 고민을 바로 열어보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입시키지 않고 독자의 시야와 거리를 충분히 늘어뜨림으써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드는 서사 전략이 흥미로웠다.
아이들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부분들도 좋았다. 옅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소설에 재미를 더해준 부분이었다. 이밖에도 아이들의 사회적 활동이 묘사되는 장면에서는 독자인 나 역시 그들과 동화되어 ‘참여’하고 싶다는 동기가 들었는데 어린이 시절을 지나 보낸 어른의 처지에서 새롭고도 설레는 체험적 읽기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왜왜왜 동아리’ 부원들과 다른 어린이들처럼 코스튬을 입고 동물과 함께 환경 운동을 하는 상상을, ‘진경’처럼 ‘미래를 지키는’ 모임을 꾸려 실천적인 자아를 만들어가는 상상을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작은 포옹이 생겨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로키’에게 ‘에이드리안’이 있고 ‘록희’에게 친구들이 있었던 것처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