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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ㅣ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작' 도트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육선민 작가의 『비에』(2024)를 읽었다. 쨍한 보라색 표지에 담긴 기계 심장과 부러진 팔 그리고 앙증맞은 안드로이드 한 '사람'의 이야기. "낡은 안드로이드와 그를 깨운 하나의 하나뿐인 삶을 찾는 이야기. 그들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시놉시스를 보고 읽지 않을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품는 모종의 노스텔지어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과 『바이센테니얼 맨』(2000) 들이 그렇다. 이런 작품을 보면 늘 마음이 안 좋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은 일종의 소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로봇이 등장하든 그것은 모두 인간의 이야기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원. 점차 살갗이 맨들맨들해지고 딱딱해지는 우리들이 목전에 둔 가공할 이야기라서 그렇다.
보모형 안드로이드에게 갖는 기대는 용도에 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그 이상을 원한다. 더 사람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더 희망했으면 좋겠다. 어떤 세계를 찢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보모형 안드로이드 '비에'의 이야기는 태어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인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서사다. '비에'는 '하나'가 지어준 유일무이한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비에'라는 이름이 '다를 별'(別)의 중국어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다, 대충 그런 뜻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소설은 정확하게 나의 기대가 오류였음을 지적해주었다. '비에'는 프랑스어로 '삶'이란 뜻이었다.
'비에'는 자신을 개조한 '하나'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품는다. 그것이 애정인 줄도 모르고 내뿜는 애정으로서 '비에'는 그것을 감출 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다소 묵시론적이면서도 잔인하게 들린다. 실제로 '하나'는 원본 개체의 '보관함'으로 살도록-그녀의 유일한 재능까지-설계된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비에'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에'는 그러한 삶을 모른다. '비에'에게 새로운 삶은 곧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예견된 미래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럴 이유가 드물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꼭 슬퍼야 하는 법은 없지만 슬프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작가의 사변적 문체가 마음을 내내 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에'의 삶이 '하나'와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미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군가는 그것을 안고 지지부진한 삶을 이어가야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이지 넘김이 계속된다.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라서. 버려진 사람들이 '파이프' 속에서 근근히 살아남으려 애쓰는 이야기라서.
로봇의 마음에 천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봇의 심연, 그러니까 '비에'와 대상자인 '하나'와의 거리가 다소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지만,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들이 향한 곳이 '기계들의 무덤'이었다는 것이다. "비에야. 이건 삶이야. 비록 우리는 소모적인 존재였지만, 이 공간에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지만, 여기에 우리의 삶이 있어. 살아 있어."라는 '하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죽어버린, 말 그대로 '죽은 공간'에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이곳이 자신들의 삶이라 믿는 애처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를 다해 죽은 공간에 처박혀도 그곳에서라도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하나'는 '비에'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탄생을 가르친다. '비에'에게 그녀는 잠시 신이었던 걸까?
'하나'뿐인 '하나'가 되고 싶어 스스로 '하나'가 된 복제인간은 '하나뿐인 자아'에 회의를 느낀다. 유일성에의 도덕적 혼란을 빚으며 역설적이게도 개조 안드로이드 '비에'와 그녀는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힘들지만……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보게 된다. 버려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