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2021년 제67회 골드대거상 수상작, 크리스 휘타커의 『나의 작은 무법자』(2025)를 읽었다. 범죄소설임을 고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읽는 장르 소설이 주는 기쁨으로 풍요로운 독서였다.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바로 이런 것. 해당 소설을 범죄소설로 일축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것은 명료한 이유에서였다. 소설은 살인과 풀이에 천착하는 일반적인 범죄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야기 속 인물들의 동선에 집중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에서는 마땅히 ‘바람직하다’라고 부를 만한 선악에의 판단이 부재했다. 그렇다고 질문하지도 않는다. 그저 인물들의 손끝과 발끝을 따라갈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듯 해당 소설은 인물들의 선택이 중심이 되는 소설이다. 때로는 판단력이 흐려질 때도 있고 그릇된 선택을 범하기도 한다. 나는 독자들의 도덕적 판단 기제를 흩뜨리는 작가의 기술적인 면모가 흥미로웠다. 독자인 우리는 인물들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두고 명징한 도덕적 판단을 제시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어린 소년과 소녀에 관해서 무언가 확신할 수 없는 우리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여기서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다기보다는 흐려진 문제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여 어떻게 만들어진 세계를 살아가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나쁜 패를 받은” 사람들의 흉터를 바라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한 감정으로 남들과는 다른 유년기를, 그보다 오랜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 사람들을 이해하기에는 소설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이라는 실타래가 한 올씩 풀어 헤쳐진 사람들을 직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과정에서 깊은 피곤을 감내해야 하며 그보다는 더한 세계에의 증오를 꾸역꾸역 삼켜내야만 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녀는―줄곧 “소녀”라고 묘사된다―자신이 무법자의 피를 물려받은 진정한 무법자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녀의 삶에는 정해진 정도(正道)가 없다. 이러한 사실이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데…… 소설은 불친절하게도 500여 페이지가 넘는 동안 계속해서 소녀에게 시련만을 가져다준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소설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상이 세워지려고 하면 자꾸만 무너지는 소녀의 세계를 내가 어떻게 안락한 세계에서 만끽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소녀가 위탁가정에 맡겨진 부분이었다. 자신과 동생을 방치며 자기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위탁 가정의 모습을 관망하며 소녀는 이렇게 느낀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플라스틱 조화, 플라스틱 같은 웃음을 짓는 모델 가족의 사진 액자들을 보았다.”
사실 ‘보았다’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따른 비유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플라스틱 같은 웃음’에서 우리는 그것의 차갑고 단단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위탁가정 내부의 화목한 분위기는 이들 남매와 철저히 유리되어 있으며 그것의 온도 차이를 소녀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독자를 힘들게 한다.
소녀는 이상을 꿈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이상을 상상해봄 직한 세계에 온전히 놓여 있어 본 적 없었기에 소녀는 매우 추상적으로 이상을 말 그대로 이상화할 뿐이다.
“이따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딘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듯, 마치 집이 저기 어딘가에서 자기를 부르지만……”
부서진 이상. 부서진 가족. 그것을 유지하려는 모종의 사랑. 사람들은 “올바른 이유로 그릇된 행동을” 범하기도 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가장자리에서 시작한다. 워커 서장의 말대로 “끝은 또 다른 시작”이므로. 무법자란 올바른 의도를 위해 그릇된 선택을 하기도 하며 또 일을 그르치기도 하지만―사방의 끝으로 밀려가는 것―그런데도 나아가는(Walk) 존재가 아닐까.
감사합니다.
해당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