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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밀레니엄 도트 시리즈 9
이민섭 지음 / 아작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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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에서 출간된 도트 시리즈, 아홉 번째 이야기인 이민섭 작가의 『다시 한번, 밀레니엄』(2024)을 읽었다. 도트 시리즈를 받자마자 1권부터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으려니 끌리는 순서 대로 읽고 말았다.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흠, 도트 시리즈는 표지부터 흥미롭다. 원색 계열과 선명한 픽셀 그림들이 아기자기하다. 글을 모두 읽고 나면 표지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 작품도 그랬다. 어린 아이와 게임기로 보이는 물건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까지. 이것을 제외하고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뒷면 표지에 쓰인 짤막한 시놉시스. '아버지의 복수'와 새천년으로의 회귀까지. 나는 '타임슬립 지구촌'에서 '다시 한번 새 천년을 살아보자'는 발칙함에 이끌렸다.

시간관리국의 주요 인물 설정부터 남다르다. '미느세브'와 '혀느세브'라니. 딱 봐도 작가의 이름을 따온 인물 설정이 아닌가! 작가는 참 뻔뻔(?)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차용하면서까지 유머를 고수한다. '미느세브'를 "늘 빵빵 터지는 유머를 구사하는 유쾌한"(170 지면) 인물이라고까지 묘사하니…… 예사롭지 않다. 이밖에도 재미있는 영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장면이 많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회귀한 새천년 세계에서) "산부인과에서는 갓난아기들이 울지 않고 조용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미지, "실제로 미래에 큰 죄를 저질러 은퇴한 모 배우"가 "2000년에서까지 일이 끊겨버"리는 이미지, "점심시간에 몰래 술을 가져와 반주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라는 장면 들.

시간관리국 요원 '서주'의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했으나 개인적으로는 회귀의 당사자성을 보여준 '현기'가 초점 화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었다는 생각에 그가 등장한 대목이 좀 더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단순한 타임슬립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회귀가 아닌 70억 전 지구인의 회귀였다는 점이 특별했다.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가차 없이 판이 커진다니,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기억이 성인의 그것을 유지한 채로 미성년자로 회귀한다니. 물론 이것은 중년이었던 '현기'와 동 세대를 공유했던 회귀자들에 한한 설정이지만 말이다.

소설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많은 이야기에서 비슷한 질문을 다뤄 왔다. 모두 닮은 질문들이다. 그런데 누구도, 새천년을 살아가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갈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은 했더라도 '범지구적 회귀'라는 설정을 쏟아 붓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소설이 기특했다. 지레 포기하지 않고 '선택'과 '운명'에 번뇌하는 인물들을 움직여 어딘가로-그곳이 어디인지는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잔인했지만-적절히 보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현기'가 갖는 '아버지의 복수'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기'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터닝포인트였는데 이것이 과거를 통해 해결되었다는 점이 중요해 보였다. 사소한 클리세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겐 인물들이 자신이 파 놓은 수렁에서 벗어나 '화해'하는 삶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현지인'이라는 개념에 마음이 쓰였다. 회귀자가 다수인 세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일순간 자신의 죽음을 견지한 존재라니. 에필로그에서 모두가 현지인이었던 아이를 잠시나마 기억해주는 장면이 좋았다. 이 아이에게는 선택도 운명도 없었지만 누군가의 기억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초점 화자 '현기'가 어릴 적 후회했던 일들을 만회하는 장면들도 좋았다. 어린 마음에 미처 신경 써주지 못한 누군가의 연약한 마음을 기억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화자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다.

시간관리국 요원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영화적 상상력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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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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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육선민 작가의 『비에』(2024)를 읽었다. 쨍한 보라색 표지에 담긴 기계 심장과 부러진 팔 그리고 앙증맞은 안드로이드 한 '사람'의 이야기. "낡은 안드로이드와 그를 깨운 하나의 하나뿐인 삶을 찾는 이야기. 그들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시놉시스를 보고 읽지 않을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품는 모종의 노스텔지어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과 『바이센테니얼 맨』(2000) 들이 그렇다. 이런 작품을 보면 늘 마음이 안 좋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은 일종의 소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로봇이 등장하든 그것은 모두 인간의 이야기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원. 점차 살갗이 맨들맨들해지고 딱딱해지는 우리들이 목전에 둔 가공할 이야기라서 그렇다.

보모형 안드로이드에게 갖는 기대는 용도에 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그 이상을 원한다. 더 사람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더 희망했으면 좋겠다. 어떤 세계를 찢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보모형 안드로이드 '비에'의 이야기는 태어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인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서사다. '비에'는 '하나'가 지어준 유일무이한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비에'라는 이름이 '다를 별'(別)의 중국어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다, 대충 그런 뜻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소설은 정확하게 나의 기대가 오류였음을 지적해주었다. '비에'는 프랑스어로 '삶'이란 뜻이었다.

'비에'는 자신을 개조한 '하나'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품는다. 그것이 애정인 줄도 모르고 내뿜는 애정으로서 '비에'는 그것을 감출 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다소 묵시론적이면서도 잔인하게 들린다. 실제로 '하나'는 원본 개체의 '보관함'으로 살도록-그녀의 유일한 재능까지-설계된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비에'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에'는 그러한 삶을 모른다. '비에'에게 새로운 삶은 곧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예견된 미래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럴 이유가 드물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꼭 슬퍼야 하는 법은 없지만 슬프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작가의 사변적 문체가 마음을 내내 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에'의 삶이 '하나'와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미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군가는 그것을 안고 지지부진한 삶을 이어가야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이지 넘김이 계속된다.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라서. 버려진 사람들이 '파이프' 속에서 근근히 살아남으려 애쓰는 이야기라서.

로봇의 마음에 천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봇의 심연, 그러니까 '비에'와 대상자인 '하나'와의 거리가 다소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지만,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들이 향한 곳이 '기계들의 무덤'이었다는 것이다. "비에야. 이건 삶이야. 비록 우리는 소모적인 존재였지만, 이 공간에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지만, 여기에 우리의 삶이 있어. 살아 있어."라는 '하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죽어버린, 말 그대로 '죽은 공간'에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이곳이 자신들의 삶이라 믿는 애처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를 다해 죽은 공간에 처박혀도 그곳에서라도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하나'는 '비에'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탄생을 가르친다. '비에'에게 그녀는 잠시 신이었던 걸까?

'하나'뿐인 '하나'가 되고 싶어 스스로 '하나'가 된 복제인간은 '하나뿐인 자아'에 회의를 느낀다. 유일성에의 도덕적 혼란을 빚으며 역설적이게도 개조 안드로이드 '비에'와 그녀는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힘들지만……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보게 된다. 버려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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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도트 시리즈 4
위래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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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위래 작가의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2024)를 읽었다. 서평단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일단 표지부터 노란색이라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도깨비 픽셀까지. 사실 이 작품이 궁금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허깨비 신'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감조차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참 발랄한데 내용은 심오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노란색에 안심하지 말걸 그랬나! 생가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되먹음 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내용 상에 등장하는 바가 있으나…… 작가가 다소간 신경을 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실 '되먹음 말'에 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감응관'으로 등장하는 초점 화자 '시운'의 기능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시공간의 기억을 읽는다는 설정의 '감응관'이라는 존재부터 재미있다. 어쩐지 '치트키'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 포인트. '시운'은 이것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받기 때문이다.

'시운'이 감응할 때마다 묘사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작가의 작법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미리 장면을 전개해놓고 그것을 뒤엎는 방식으로 썼을까? 그것이 아니면 처음부터 뒤엎어 놓은 채로 쓰기 시작했을까? 읽는 데에 약간의 수고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불편한 독서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되먹음 말처럼 문자를 되감아 읽는 신선함 때문일까? 읽고 싶은 텍스트의 향연이었다.

'시운'과 '나연'이 쫓기는 대목은-과장 보태서-숨을 헐떡거리며 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공안들이 픽픽 쓰러지는 장면을 상상하니까 현장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다 좋았지만…… 나에겐 딱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이도'라는 캐릭터가 너무 좋았는데. '나연'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도'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앞서 '이도'와 '시운'이 쌓아온 유대감이 무색할 정도로 일순간 일이 발생했던 터라 어떻게 수습할 수는 없겠으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헛헛함이 들었던 캐릭터 갈무리였던 것 같다.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소설의 결말 부분이 특히나 강렬하게 여운을 남겼다. 소설에서 '되먹음 말'이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시운'과 상황과 다른 인물들이 수거되며 자리를 찾아가는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래 고민하여 쓴 느낌이 들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 소설을 100%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길게 소설을 볼 수 있었으면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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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인 더 미러 도트 시리즈 3
황모과 지음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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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황모과 작가의 『노바디 인 더 미러』(2024)를 읽었다. 흠, 황모과 작가의 이름은 내게 익숙한 편이다. 『서브플롯』(2023)이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2023) 등 다양한 SF적 실험을 한 작가로 알고 있다. 이것을 '실험'이라고 재단해도 될는지 알 길은 없겠으나…… 황모과 식의 SF는 과감할 정도로 '약한 것들'의 편이라서 재미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영문(텍스트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제목을 선택했는지에의 의문은 일지만. 아무튼. 표지부터 끌렸던 작품이고 내용 역시 범상치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나눠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중 인격 서사일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내 기대 이상으로 복합적인 서사를 다루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200페이지 안으로 할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명료하고 흥미진진했다.

여성 서사로 읽을 수 있다. 작품은 삶에의 의욕을 잃은 연구원 '이혜'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뇌사 판정 이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남편 '영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여성은 뒤로 갈수록 대담한 행보를 보인다. '영일'의 뇌사 판정에 연구원으로서 그녀가 개입되었다는 점도 등골이 으스스해지는데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뇌사 이전의 '영일'은 작품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타인과 '공존'하기로 결심한 '이혜'의 그릇과 회복 이후 '제삼'이 된 '영일'이다. 정확히는 '영일'이었던 '제삼'이겠지만.

나는 작품이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거울에 있는 내가 '나'가 아닌 어떤 것, 어쩌면 내가 선택한 '다른 모든 존재'라면? 나의 인격은 사본에 불과하다면? 어지러운 문제다. 사실 실제로 작품 속 사건과 닮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회는 당연히 엉망진창이 될 테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그릴 수 있다면 상황은-관망하기로서는-재미있다. 작품이 자꾸만 중요하다고 짚어주는 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되는데, 소설이 짚어주는 '중요함'에는 이런 것도 있다. '사본과 원본으로서의 인격'이 그렇다. 복잡하지만 이건 꽤 생각할거리인 것 같다. '독립된 사본'이라는 개념이 영 낯설긴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 사본의 주체적 의지로 작용한다는 설정이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혜'처럼 누군가와 공존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내가 무엇이 됨'은 내가 정할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혜'와 '주희'의 관계가 좋았다. '제삼'의 선택들을 관찰하는 여정 역시 재미있었지만 작디작은 설정들은 뒤로하고…… 나는 연구원이었던 '이혜'와 버려진 카데바였던 '주희'가 맺는 연결감이 인상적이었다. '이혜'는 내적으로 자아가 버려진 상태였고 '주희'는 외적으로 그것이 버려진 상태였다는 점, 둘은 서로의 의지로 인해 연결되었고 종내 '공존'하기를 선택했다는 점이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여자들의 이야기라니. 자아를 공유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건 독자인 나 역시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착취하지 않고 그릇됨 없는 테두리 안에 존재하며 서로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렇게 공존하기를 약속하는 사회. 약자들이 꿈꾸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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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 도트 시리즈 1
이경 지음 / 아작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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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도트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이경 작가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2024)를 읽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형광 컬러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우측 상단의 픽셀이 손전등이 아니라 '분유'였다는 사실을! 책을 뒤집어 시놉시스를 보면 더 재미있다. "의족을 끼고 매일 저녁 필라테스를 수강하는 71세 실버 택배원. 24년 무사고 택배 경력을 자랑하는 귀자는 과연 오늘 밤 아기를 무사히 배달할 수 있을까?"라니. 생뚱맞다고 느껴질 정도로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귀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선희'의 손녀 '다인'가 아프자 갓난아기인 '다인'을 가까운 도심 병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문제는 오늘이 '마적'들이 활개를 칠 정도로 어두운 '그믐'인데다 경찰 인력이며 소방 인력이며 도심에서 발생한 모종의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그들 중 누구도 두메 산골의 응급 사건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귀자'는 대기업 '웨스턴 익스프레스'의 '실버 딜리버리' 배달 기사로서 자신의 트럭을 한 대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할부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귀자'는 대기업의 기술로 안전을 보장하는 트럭 안에 '다인'을 싣고 멀고 험난한 길을 떠난다. 그러던 중 '귀자'는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귀자'의 스펙타클한 모험이 누군가에게는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로 소설은 그녀의 험난한 여정을 매우 아찔하게 묘사하곤 했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냥 유희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노인 화자 '귀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기 '다인'을 응급실로 데려가고자 노력한 과정에서 인물의 집요함이 휴먼 다큐처럼 억척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자'는 '다인'이 자신의 손녀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려는 '귀자'의 모습은 어쩐지 약자를 보호하려는 약자의 표상처럼 느껴져 애처롭다. 그렇다면 '귀자'는 무엇을 지키려고 이렇게 애를 썼던 걸까? 색이 바래고 물렁해질 정도로 줄기차게 쓰고 다닌 '귀자'의 웨스턴 익스프레스 빨간 모자를 떠올려 본다. 그녀가 지키고자 한 것은 쓸모를 위한 삶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교육 강사가 내던진 토끼를 안쓰러워한 시점부터 그것은 시작되었다고.

'귀자'는 직접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난데없이 야생 동물을 만나거나 마적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보았는데 작가는 '영웅'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귀자'는 약자들의 영웅이었다. 본인도 약자이면서 말이다.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얻어내고 싶은 최소한의 삶. 스포츠 스타 '톰 고든'의 사인이 담긴 모자는 '귀자'가 누군가를 구할 새로운 영웅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당도했다.

노인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쓰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당 소설은 노인 화자 영웅담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정확히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건 독자인 내가 '귀자'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함께 걱정하고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정도. 안전하게 '다인'을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귀자'의 의지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 이미 거기서부터 나는 '귀자'의 팬이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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