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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함께’라는 말에는 감정이 있다. 춤을 추거나 웃거나 말하거나 분노할 수 있다. 이서수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2025)는 쉽게 답할 수 없는 ‘함께’를 이야기한다. 2020년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의 주인공 『당신의 4분 33초』(2020)으로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 작품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기억은 오래되었지만 소설에 줄곧 등장했던 청년 주인공 ‘이기동’과 아티스트 ‘존 케이지’의 이름은 절대 잊히지 않았다. 암울하고 답답하기까지 한 한 청년의 일대기였는데 이서수 작가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누군가들을 향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이전 소설집인 『젊은 근희의 행진』(2023)도 그러했고 이번 소설집도 마찬가지였다.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흥미롭고 따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어달리기」와 「광합성 런치」 그리고 「잘지내고있어」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청춘 미수」 역시 할 말이 많았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당신의 4분 33초』에서는 조금 예외적이었으나, 이서수 작가의 글에는 가족과 연대가 주된 서사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주로 엄마, 이모, 고모 등 여성 관계가 두드러지며 남성 친족보다는 여성 친족과의 연대 및 관계가 주된 인물 구도로 제시된다. 이에 더해 가족과 집단에서의 연대가 보이는 유쾌함이 이서수식 소설의 묘미다. 독자를 울리다가도 능청맞게 웃기는 재주가 남다른 소설이 여기 풍부하다.
주변부 인물을 조명하는 태도에서 확고부동한 의지를 내비치지 않아서 좋았다. 이를테면 악의 없는 질문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보통 인간들이 자기 안팎에서 형성하는 갈등의 양상이 그러했다. 손쉽게 사회적 약자를 자신만의 사전에 등재하지 않고 질문하되 답란은 빈 곳으로 남겨두는 게 핵심이었다. 사유하되 정의하지 않고 묵묵히 보통 인간으로서 행위함으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가 매력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그것이라고 느껴졌다.
잘 짜인 이야기들이 밀집되어 등장하는 해당 소설집은 표지 및 장정은 말할 것도 없고 내용상으로 우수한 점이 돋보였다. 선언은 있으나 판단하지 않는 질문들, 그러니까 쉽게 답할 수 없는 ‘함께’를 이서수 작가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이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어달리기」에서 울었고 「춤은 영원하다」에서 깔깔 울었으며 「광합성 런치」에서 부글부글 끓었다가 「잘지내고있어」에서 펑펑 울었다. 마지막에는 「청춘 미수」에서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미수에 그친 청춘이 얼마나 슬프고 또한 진행 가능한 운명인지 청년인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탓이다. 저렴하게 도시의 청춘을 미화하는 누군가가 있고 가만히 쓸려나가는 청춘이 나머지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이 많이 슬펐던 소설이었다. 나에게 이서수 작가라고 하면 ‘청춘’의 아이콘이었는데 마지막에 실린 「청춘 미수」가 그런 기대에 완전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소설집에는 청년부터 중년까지 많은 화자가 등장하지만, 나이대에 따라 사유의 확장성과 태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인물이 있는가 하면 무방비하게 사회에 노출된 인물도 있었다. 화자를 다른 방식으로 구사하는 점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점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배울 만한 지점이라고 느꼈다.
풍부한 자료조사와 시적인 사유, 많은 시선들이 담겼던 좋은 소설집이었다. 문학동네에서 읽은 근간 중에 강보라 소설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이후로 가장 좋았다. 젊은 화자, 어린 화자, 관리직의 중년 화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청년일 때 읽기 좋은 소설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아질 희망 같은 건 차치하고 ‘지금’과 ‘함께’에 응하는 소설들이다.
해당 리뷰는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