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 48개국 108명의 시인이 쓴 팬데믹 시대의 연시
이오아나 모퍼고 엮음, 요시카와 나기 외 옮김 / 안온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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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사는 루마니아 출신 소설가이자 문화인류학자 이오나나 모퍼고의 멋진 생각에서 출발한 48개국 108명의 시인들이 코로나 상황에서의 고립과 격리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연가(連歌, a renga poem) 처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 원제목은 <AIRBORNE PARTICLES>, 일본어판은 <달빛이 고래등을 씻을 때>이다. 이 특별한 시집은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나왔는데, 48개국에서 출판된다면 48개의 제목으로 출판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고독을 너무 쉽게 놓지 말라 더 깊이 베어라

(하피즈,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서두에 놓인 페르시아 시성 하피즈의 시에 대해서, 터키 시인 괵체누르 체레베이오루는 이렇게 답한다.

1. 설령 당신의 시를 이해해주는 이가 새들밖에 없을지라도

당신의 턱에서 떨어지는 것은 피가 아니라 포도주

바깥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우리 것이다.

격리 중에도 당신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하피즈, 힘내세요, 세계는 없어도 언어가 있으니

설령 당신의 시를 이해해주는 이가 새들밖에 없을지라도

루마니아 시인 도이나 이오아니드의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36. 마스크에 웃음을 붙였다

하늘이 회색이니 오늘은 비가 오겠다. 비를 즐기자, 꽃피는 인동 덤불처럼. 하늘로 뻗은 구불구불한 가지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곧 오순절이 온다. 공포와 고독을 떨쳐버리자. 유배는 이제 질색이다. 신선한 공기. 기분 좋은 아침 산책. 내 발도 마음도 행복하다. 내 마스크는 빙그레 웃고 있다. 그래, 내가 마스크에 웃음을 붙였다. 스쳐 지나가는 당신을 위해.

미국 시인 크레이그 추리의 시에서는 희망이 보인다.

82. 바지에 대리 헝겊 크기의 푸른 하늘만 보여도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계다. 시작도 없다...... 이 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되었다.

끝도 없다...... 이 시는 그날까지 쭉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될 것이다......

오그라라 수족('미국의 원주민'}출신 친구가,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는.

"바지에 댈 헝겊 크기의 푸른 하늘만 보여도 그날은 좋은 일이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가 날 볼 때마다 말한다. 고조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오은 시인은 혼자 있을 때 꿈이 함께 있을 때는 희망이 된다고 노래한다.

107.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꿈이었던 것이

함께 있을 때 희망이 되었다

꿈은 만남을 이루고

희망은 고독사하지 않는다

희망찬 꿈과 꿈같은 희망

108편의 번뇌와 희망이 교차되는 시의 마무리는 17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종교시인 안겔루스 실레시우스 차지다.

벗이여, 네가 누구든지 간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빛으로부터 다른 빛으로

넘쳐흘러야 한다.

이 작품은 영어로 통일된 작품을 한글로 번역했는데, 영한대역으로 편집되어 있어서 원문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재미는 108편의 연시는 별도의 제목이 없는데, 내용을 읽고 소제목을 붙여 보니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108편의 연시(連詩)는 마치 108편의 연시(戀詩)처럼 코로나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전 세계인들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스쳐 지나가는 우리를 위해 마스크에 웃음을 붙인 시인은,

바지에 댈 헝겊 크기의 푸른 하늘만 보여도 그날은 좋은 일이 있다고 말한다.

비가 오면 비를 즐기자.

비가 그치고 나면 분명히 바지에 댈 헝겊 크기보다

더 크고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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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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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으로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빅티켓>(원제 THE TICKET)에서 주인공 잭 파커가 처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천연두가 마치 돈이라도 찾는 듯 마을을 휩쓴 상황은 우리가 처한 코로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은 하루아침에 천연두의 희생양이 되고, 남은 여동생 룰라와 잭은 천연두를 피해 선교사 출신의 할아버지와 캔자스에 있는 고모할머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엎친데 덥친 격으로 할아버지가 은행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동생 룰라는 납치를 당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것도 부족해 할아버지마저 흉악한 은행강도에게 살해당하고 여동생마저 납치를 당해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잭에게 구원을 손길을 내민 것은 무덤을 파주면서 살아가는 흑인 유스터스 콕스였다. 못 미덥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잭은 흑인 유스터스와 유스터스와 함께 살아가는 냄새나는 돼지 한마리, 그리고 난쟁이 쇼티와 함께 여동생 룰라를 구출하기 위해 추격에 나선다. 악명높은 은행강도에 비해 잭과 그 일행은 초라하기만 하다. 게다가 중간에 만난 사창가 여인 지미 수까지 도무지 이런 조합으로 은행강도를 제대로 쫓아가서 여동생을 구할 수 있을까? 설령 여동생을 구한다 하더라도 여동생은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에드거상 수장작인 <밑바닥, Paradise Sky>의 작가인 조 R. 랜스데일은 거침 없는 내용과 문장으로 잭이 처한 곤경을 묘사하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높여간다. 작가는 때로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처절하게 부닥치는 것이 곤경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험난한 여정 뒤에 극적인 반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독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식으로 잭과 룰라가 처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너무 잔인하고 너무 거칠고 너무 직설적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소설보다 더하기도 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잭의 독백이 인상적이다. 

'별들과 그 상이 암흑을 바라보자니 좀 희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과 천국, 하프와 천사에 대핝 나의 오래된 관념은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에 비해 너무나 작았고, 저 위의 암흑과 거기 뿌려진 별들은 하나님보다 더 크고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하고 멋진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생각은 전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빅티켓>은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재미도 있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작가의 대표작인 <밑바닥>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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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가 바꿀 부의 지도
김국현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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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유용한 하인이지만 위험한 주인이다.

- 크리스티안 랑에(역사학자, 1921년 노벨평화상 수상)

'정보통신, IT, 디지털 기술 등등, 우리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IT는 일부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일상이 작은 창 너머에 있는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작은 창 너머의 세계에 의존하게 되면서 IT는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1세대 벤처 출시의 대표적 IT 평론가 김국현 작가의 한 권으로 끝내는 빅테크 수업<빅테크가 바꿀 부의 지도>는 시대적 조류인 기술혁명에 대한 친절한 길잡이 같은 책이다. 플랫폼, 알고리즘, 인공지능에서부터 메타버스, 암호화폐를 거쳐 오픈뱅킹과 로봇에 의한 보험 설계에 이르기까지 빅테크가 가져온 변화에 대한 차근차근한 정의와 앞으로의 금융생활 변화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알기 쉽게, 질문형 환기방법을 사용하여 알려주고 있다.

가장 첫 문장, <기술은 언제나 이깁니다(Technology will always win)>는, 인텔을 초고속으로 성장시킨 전설적인 CEO 앤드로 그로브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한 번 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도구의 인간, 인류는 기술 앞에서 설렙니다. 물론 기술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마기술을 두려워한다기보다 변화를 꺼려하는 것이겠지요.”

한국의 대표적 IT 평론가인 저자는, 다양한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저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문과 주간지 등에 어려운 기술을 잘 설명하면서 그 변화가 가져올 모든 생활환경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특히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의 원료이자 변화의 주역이 ‘데이타’인 점에 주목하여 우리 모두 ‘클라우드 컴퓨팅“기술의 한복판에 서 있으며, 금융, 교육, 의료 등 데이터로 바뀔 세상에서 기업과 개인이 갖추어 나가야 할 현실을 매우 세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클라우드 컴퓨팅은 온실가스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하는 질문을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에 대한 접근성이었다.

컴퓨터가 전기를 쓰고 열을 발생시키는데, 흩어져 있는 것보다 모아서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클라우드의 전력소모량은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서 친환경적이라는, 다소 비약적인 발상인 것 같으면서도 규모의 경제를 언급하여 에너지 효율을 생각하고 환경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착상이었다.

“디지털은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전기라는 현실의 자원을 엄청나게 빨아갑니다. 최신 그래픽 카드와 고성능 CPU가 장착된 가정용 데스크톱도 몇 백 와트나 소진합니다. 이러한 기계를 24시간 한 달 동안 틀어놓는다면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랄 겁니다. 첨단 컴퓨터일수록 에너지 소비량이 상당합니다.”

더불어 우리 생활속 물건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현상, 이러한 기술을 IoT(Internet of Thing, 사물인터넷)라고 소개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기계들의 사교생활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표현은 저자의 기술과 인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연결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고 본다. 우리가 이미 리모컨을 통해 외부에서 가스시설을 끄거나 일출이나 일몰 시각에 맞춰 조명을 끄거나 키면서 사람의 개입 없이도 사물 간에 자율화된 자동화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현상들을 쉽고 간명하게 드러낸 표현에서 나타나듯 대부분의 기술적 용어들을 아주 이해하기 풀이하고 있다.

온라인에 구축된 가상공간을 의미하는 메타버스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분산금융, 탈중앙화 금융을 의미하는 디파이는 금융기관 없이 금융을 재조립할 수 있을까? 로봇이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시대가 올까? 궁금함의 증폭, 친절한 답변, 기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바꿀 힘이 있다고 믿는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래의 흐름을 탈 수만 있다면, 아직 돈이 많지 않아도 즐거울지 모릅니다.”

빅테크 시대의 주인이 되느냐, 아니면 빅테크 시대의 하인이 될 것인가에 따라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부의 지도도 달라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 초창기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는 전자파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작은 창 너머의 세계가 일상이 되어 버린 이후. 전자파 논란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전자파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그런 논란은 무의미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젠가 빅테크가 우리 나라와 전 세계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과 기후 위기 등의 난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메이트북스 #빅테크가바꿀부의지도 #김국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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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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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시리즈, <족하>, <홍녀>로 필명을 날린 만화가 들개이빨의 즐기는 먹거리 생활을 기록한 <나의 먹이>를 흥미롭게 읽었다. 서로 잘난 척 경쟁을 하는 판국에 스스로를 굳이 꿔보(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칭하면서 기약없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작가의 너무나도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에 때로는 참기 힘든 웃음이 터져나왔고, 때로는 만화와 음식에 진심인 작가를 이렇게 까지 몰아부치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분노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힘든 상황을 유머와 재치로 웃어 넘기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작가의 역량이 예사롭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먹는 것과 자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먹는 것은 엄마의 젖에서 시작하여 절박한 순간에는 목에 관을 꽂아서라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시골에서 밥을 먹을 때 지나가면 누구라도 불러서 한 술 먹고 가라고 손짓하던 인정과 서로 만나면 식사하셨느냐고 묻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 기억난다.

우연히 프랑스 문화원에 홍차를 마시러 갔을 때, 마침 이 책을 들고 가서 읽다가 작가가 콩자반을 한 숟갈 떠먹고 날린 육두문자와 저녁 산책길에 횡단보도에서 벌어지는 난감한 생리현상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을 읽다가 폭소를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가 아내에게 면박을 받았다. 분위기 있게 홍차를 마시다가 탁자에 고개를 처박고 낄낄거리고 있으니 한심해 보였거나, 아니면 아직도 몸살 후유증이 완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작가는 자칭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겪게되는 치열한 먹거리와의 한 판 승부를 솔직 담백하다 못해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한 신박한 요리법까지 전수해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내내 작가의 처한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만화처럼 재미있고 각종 먹거리에 대한 일종의 생체실험까지 곁들인 정보가 유익하기만 하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종종 미안한 마음도 살짝 들었다.

밥과 김치에서는 근거가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장수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친다.

'부실하게 먹고 사는 머슴이 주지육림에 빠진 양반보다 대체로 장수했던 것으로 압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후에, 상대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반려동물 쇼핑몰에 들어가서 홧김에 '양뇌, 오리혀, 오리똥집, 토끼간, 캥거루꼬리, 악어고기, 돼지불알, 소좇을 먹으려다 차마 먹지 못하고 자아 성찰에 들어갔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면 불행뿐이라는 지당한 자각이 그제야 겨우 들었습니다. 내 페이스대로 느릿느릿 평화롭게 맥반석 타조알이나 만들어 먹기로 했죠.'

들개이빨은 거리낌이 없다. '단골식당 없습니다. 자신 있게 소개할 맛집도 없습니다. 수입이 줄면 식비부터 줄입니다. 미식가 아닙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덜 먹고 한 푼이라도 덜 쓸 궁리만 하는 사람에게 놀자고 하기도 뭣하지 않습니까.'

몸살로 한 달여를 심하게 앓고 나니, 진짜 절망적인 순간까지 가본 사람은 숨기고 감추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개이빨 꿔보 작가는 정말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아픈 청춘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맑고 순수하게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심지어 이 멋진 작가는 요리법에 이어서 별책으로 먹거리를 활요한 명상법과 버섯을 활용한 체조법까지 전수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을 실어본다.

'쓰고 보기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의 페르소나로 굳게 무장한 정글같은 세상에서 이토록 순수하고 꾸밈없는 작가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아마 많은 우리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들개이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꿔보일지도 모르겠다. 청춘들만 그럴까? 실직자들, 퇴직자들, 갈수록 늘어나는 노령층들. 빈곤층들은 꿔보가 아닐까? 꿔보를 양산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도 아니고 복지사회도 아닐 것이다. 언젠가 꿔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잊지말고 들개이빨 작가를 기억해내서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말고 꿔보만의 즐거운 먹거리 라이프를 실천해야겠다.


누가 말했던가, 밥이 하늘이라고.


#콜라주 출판사 #들개이빨 #나의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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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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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한 편으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질시하고 끝내는 살해하기 까지 해야 하는 걸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돈 앞에서는 서로를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왜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고 얻는 돈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그저 돈을 중심으로 벌이는 살인게임으로 즐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서수 작가의 '헬프 미 시스터'는 가난의 문제, 성폭행, 동성애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수경은 결혼했지만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린 친정 부모님에 더해서 남편의 형이 잠적해버린 탓에 남겨진 2명의 조카까지 6명이 30년 된 15평짜리 낡은 빌라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집에서 유일힌 가장 역할을 하던 수경은 믿었던 동료의 졸피뎀을 섞은 음료수를 이용한 성폭행 시도를 겪은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를 겪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4달을 쉬면서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는 현실 앞에서, 어떤 분노는 가난 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억지로 수습되어 버린다고 하소연한다. 


수경과 어머니 여숙은 생계를 위해 택배 배송일을 나간다. 배송 중에 물웅덩이에서 물을 먹는 비둘기를 발견한 어머니는, "비둘기도 물 먹을 시간이 있는데 우리는 어째 그럴 시간도 없냐."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 막막한 가정에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인 윤슬 한 조각이 찾아올까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을 졸였다.


엄마 친구의 딸인 보라는 수경을 진심으로 따랐고, 수경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히게 해주고 싶었다. 보라 같은 외부인이 등장해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정말로 없었던 일처럼 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건, 그 일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의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처지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무기력하기 그지 없는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가장의 입장에 놓인 수경의 입장은 어쩔 수 없이 달랐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수경은 가난에 대한 기준도 다시 세웠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가난한 게 아니다." 남편 우제가 옆에서 말한다. "우리 지금 고기 먹고 있는데, 가난하지 않다는 거야?" 수경은 대답 대신 흐릿한 미소만 지었다. 한국 남성들은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배송일을 하면서 수경은 '위탁배송 사업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사측이 원하는 것은 무늬만 사업자일 뿐이고, 실은 근로자나 다름없는 노동 수행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갑도,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며, 다쳐도 호소할 곳이 없다. 회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21세기에 왜 이런 노동이 존재하는 걸까. 최저임금과 복지혜택이라는 20세기 노동자의 고뇌는 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걸까' 이 문장을 읽으며,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는 수많은 배달 종사자분들을 생각했다. 그분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위험하다고 불평만 할 뿐 그분들 입장에서 진지하게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택배기사들이 파업을 해서 주문한 택배가 제 때 안오는지에 대해서 불평했던 모습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힘들게 배송일을 하던 수경과 어머니 여숙은 의뢰인도 구직자도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헬프 미 시스터'라는 앱을 보라에게 소개받고 본격적으로 그 업무에 뛰어든다. 동성애자의 결혼식에 가족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쥐덫에 걸린 쥐를 처리해주기도 하고, 키우던 동물을 박스에 넣어서 대신 야산에 버려주기도 하고 온갖 궃은 일을 하던 중에, '앞으로 의뢰받은 일의 90퍼센트는 수락해야 하고 답신은 한 시간 내로 줘야 한다'고 회사의 입장이 변경된다. 여숙씨는 '제일 좋을 때랑 제일 안 좋을 때가 겹치는 수도 있어. 살아보니까 그래."라고 달관한 듯 중얼거린다. 


이 작품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과 결정적으로 다른 장면은, 수경네 가족이 방 세개 짜리 집을 계약한다는 마무리이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격어도 반짝이는 윤슬 한 조각이 찾아오는 법인가 보다. 


이서수 작가의 마지막 말.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가족의 형태 역시 한층 더 다양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인 가구 문제와 고령화 문제 등의 어려움을, 힘들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해결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어려운 사람끼기 가족을 이루면서 살다보면 기적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은행나무출판사 #헬프미시스터 #이서수장편소설 #서수터즈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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