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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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한 편으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질시하고 끝내는 살해하기 까지 해야 하는 걸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돈 앞에서는 서로를 죽여도 괜찮은 것일까? 왜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고 얻는 돈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그저 돈을 중심으로 벌이는 살인게임으로 즐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서수 작가의 '헬프 미 시스터'는 가난의 문제, 성폭행, 동성애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수경은 결혼했지만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린 친정 부모님에 더해서 남편의 형이 잠적해버린 탓에 남겨진 2명의 조카까지 6명이 30년 된 15평짜리 낡은 빌라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집에서 유일힌 가장 역할을 하던 수경은 믿었던 동료의 졸피뎀을 섞은 음료수를 이용한 성폭행 시도를 겪은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를 겪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4달을 쉬면서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는 현실 앞에서, 어떤 분노는 가난 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억지로 수습되어 버린다고 하소연한다. 


수경과 어머니 여숙은 생계를 위해 택배 배송일을 나간다. 배송 중에 물웅덩이에서 물을 먹는 비둘기를 발견한 어머니는, "비둘기도 물 먹을 시간이 있는데 우리는 어째 그럴 시간도 없냐."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 막막한 가정에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인 윤슬 한 조각이 찾아올까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을 졸였다.


엄마 친구의 딸인 보라는 수경을 진심으로 따랐고, 수경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히게 해주고 싶었다. 보라 같은 외부인이 등장해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정말로 없었던 일처럼 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건, 그 일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의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처지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무기력하기 그지 없는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가장의 입장에 놓인 수경의 입장은 어쩔 수 없이 달랐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수경은 가난에 대한 기준도 다시 세웠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가난한 게 아니다." 남편 우제가 옆에서 말한다. "우리 지금 고기 먹고 있는데, 가난하지 않다는 거야?" 수경은 대답 대신 흐릿한 미소만 지었다. 한국 남성들은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배송일을 하면서 수경은 '위탁배송 사업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사측이 원하는 것은 무늬만 사업자일 뿐이고, 실은 근로자나 다름없는 노동 수행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갑도,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며, 다쳐도 호소할 곳이 없다. 회사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21세기에 왜 이런 노동이 존재하는 걸까. 최저임금과 복지혜택이라는 20세기 노동자의 고뇌는 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걸까' 이 문장을 읽으며, 오토바이 배달일을 하는 수많은 배달 종사자분들을 생각했다. 그분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위험하다고 불평만 할 뿐 그분들 입장에서 진지하게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택배기사들이 파업을 해서 주문한 택배가 제 때 안오는지에 대해서 불평했던 모습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힘들게 배송일을 하던 수경과 어머니 여숙은 의뢰인도 구직자도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헬프 미 시스터'라는 앱을 보라에게 소개받고 본격적으로 그 업무에 뛰어든다. 동성애자의 결혼식에 가족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쥐덫에 걸린 쥐를 처리해주기도 하고, 키우던 동물을 박스에 넣어서 대신 야산에 버려주기도 하고 온갖 궃은 일을 하던 중에, '앞으로 의뢰받은 일의 90퍼센트는 수락해야 하고 답신은 한 시간 내로 줘야 한다'고 회사의 입장이 변경된다. 여숙씨는 '제일 좋을 때랑 제일 안 좋을 때가 겹치는 수도 있어. 살아보니까 그래."라고 달관한 듯 중얼거린다. 


이 작품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과 결정적으로 다른 장면은, 수경네 가족이 방 세개 짜리 집을 계약한다는 마무리이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격어도 반짝이는 윤슬 한 조각이 찾아오는 법인가 보다. 


이서수 작가의 마지막 말.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가족의 형태 역시 한층 더 다양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인 가구 문제와 고령화 문제 등의 어려움을, 힘들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해결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어려운 사람끼기 가족을 이루면서 살다보면 기적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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