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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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먹는 존재> 시리즈, <족하>, <홍녀>로 필명을 날린 만화가 들개이빨의 즐기는 먹거리 생활을 기록한 <나의 먹이>를 흥미롭게 읽었다. 서로 잘난 척 경쟁을 하는 판국에 스스로를 굳이 꿔보(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칭하면서 기약없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작가의 너무나도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에 때로는 참기 힘든 웃음이 터져나왔고, 때로는 만화와 음식에 진심인 작가를 이렇게 까지 몰아부치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분노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힘든 상황을 유머와 재치로 웃어 넘기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작가의 역량이 예사롭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먹는 것과 자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먹는 것은 엄마의 젖에서 시작하여 절박한 순간에는 목에 관을 꽂아서라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시골에서 밥을 먹을 때 지나가면 누구라도 불러서 한 술 먹고 가라고 손짓하던 인정과 서로 만나면 식사하셨느냐고 묻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 기억난다.

우연히 프랑스 문화원에 홍차를 마시러 갔을 때, 마침 이 책을 들고 가서 읽다가 작가가 콩자반을 한 숟갈 떠먹고 날린 육두문자와 저녁 산책길에 횡단보도에서 벌어지는 난감한 생리현상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을 읽다가 폭소를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가 아내에게 면박을 받았다. 분위기 있게 홍차를 마시다가 탁자에 고개를 처박고 낄낄거리고 있으니 한심해 보였거나, 아니면 아직도 몸살 후유증이 완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작가는 자칭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겪게되는 치열한 먹거리와의 한 판 승부를 솔직 담백하다 못해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한 신박한 요리법까지 전수해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내내 작가의 처한 상황이 심각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만화처럼 재미있고 각종 먹거리에 대한 일종의 생체실험까지 곁들인 정보가 유익하기만 하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종종 미안한 마음도 살짝 들었다.

밥과 김치에서는 근거가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장수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친다.

'부실하게 먹고 사는 머슴이 주지육림에 빠진 양반보다 대체로 장수했던 것으로 압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진 후에, 상대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반려동물 쇼핑몰에 들어가서 홧김에 '양뇌, 오리혀, 오리똥집, 토끼간, 캥거루꼬리, 악어고기, 돼지불알, 소좇을 먹으려다 차마 먹지 못하고 자아 성찰에 들어갔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면 불행뿐이라는 지당한 자각이 그제야 겨우 들었습니다. 내 페이스대로 느릿느릿 평화롭게 맥반석 타조알이나 만들어 먹기로 했죠.'

들개이빨은 거리낌이 없다. '단골식당 없습니다. 자신 있게 소개할 맛집도 없습니다. 수입이 줄면 식비부터 줄입니다. 미식가 아닙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라도 덜 먹고 한 푼이라도 덜 쓸 궁리만 하는 사람에게 놀자고 하기도 뭣하지 않습니까.'

몸살로 한 달여를 심하게 앓고 나니, 진짜 절망적인 순간까지 가본 사람은 숨기고 감추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개이빨 꿔보 작가는 정말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아픈 청춘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맑고 순수하게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심지어 이 멋진 작가는 요리법에 이어서 별책으로 먹거리를 활요한 명상법과 버섯을 활용한 체조법까지 전수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을 실어본다.

'쓰고 보기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의 페르소나로 굳게 무장한 정글같은 세상에서 이토록 순수하고 꾸밈없는 작가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아마 많은 우리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들개이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꿔보일지도 모르겠다. 청춘들만 그럴까? 실직자들, 퇴직자들, 갈수록 늘어나는 노령층들. 빈곤층들은 꿔보가 아닐까? 꿔보를 양산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도 아니고 복지사회도 아닐 것이다. 언젠가 꿔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잊지말고 들개이빨 작가를 기억해내서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말고 꿔보만의 즐거운 먹거리 라이프를 실천해야겠다.


누가 말했던가, 밥이 하늘이라고.


#콜라주 출판사 #들개이빨 #나의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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