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마
김하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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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되었던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하인의 <안녕, 엄마>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막내인 김하인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고단한 삶이, 힘든 시절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모든 엄마 모습을 보는 듯 했다.

* 엄마는 잠시라도 한가하게 앉아 계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셨지만 언제나 바쁘셨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군불을 때시면서 방안도 따뜻하게 하시고, 아침밥도 준비하셨다.

작가의 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언제나 농투사니('농부'를 낮춰 부르는 사투리)셨다. 고동색 몸빼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엄마는 시커먼 아궁이 앞에서 몽당빗자루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풍로를 돌리며 불을 때고 계셨다. 과일 껍질이 둥둥 떠 있는 구정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돈사로 걸어가 돼지 밥통에 부어 주시거나 아니면 해거름 녘까지 호미를 들고 드넓은 밭두렁을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 '함창장사'의 아내

함창면민 씨름대회에서 3등으로 송아지를 상품으로 받아온 아버지는 함창장사로 불리었는데, 낮에는 순한 양이었지만 저녁이 되면 주막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셨다. 잠을 자다가도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온 가족이 부리나케 장독대 뒤로 숨곤 했다. 그 순간 장독 밑바닥 가까이 놓여 있는 엄마의 푸른 맨발을 보면서 작가는 눈물을 흘린다. 장농 안에다가 보라색 보자기로 보따리 하나를 싸서 깊숙이 넣어두었다는 엄마의 고달픈 삶이 눈물겹다.

* 엄마의 갱시기(잡탕으로 끓여 낸 죽)

엄마가 해주시던 추어탕과 개떡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음식을 통해서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의 엄마가 해주던 갱시기에 대한 추억이다.

'엄마는 오른손에 숟가락 하나만 들고 찬장 안에 있는 반찬 그릇을 집히는대로 끄집어낸다. 싸악 싹 비워서 솥 안에다가 마구 떨어넣는다. 썰어 놓은 김치포기, 신 김치며 마늘짱아찌, 먹다 남은 멸치조림, 깜장 콩자반, 씨래기무침, 시들어 빠진 채소 나부랭이며 바짝 말라붙은 파래, 눅눅해진 미역튀각 등등 찬장 안 반찬 그릇 안에 늘러붙어 있는 것들이라면 모조리 긁어서 솥 안에다가 내버리듯이 쏟아붓는다.'

어렸을 적 갱시기를 먹다가 혓바닥을 몇 번이나 데었던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갱시기를 거부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향 집에 내려가면 엄마에게 간청하듯이 졸라 엄마표 갱시기를 얻어 먹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다.


* 엄마의 눈물

어렸을 적 누에고치에서 풀어내는 잠사(蠶絲)가 주수입원이었던 작가의 엄마는, 잠사 기술을 익히려다가 펄펄 끓는 물에 두 손 전체를 벌겋게 익혀버린다.

'커다란 단풍잎 빛깔의 두 손을 방티(큰대야) 속에 집어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고 있던 엄마가 어느 순간 흑! 하는 소리를 냈다. 참고 참았던 울음을 가늘고 길게 뽑아냈다. 나는 엄마가 울면 진짜로 슬퍼진다. 삽시간에 세상 전체가 컴컴해진다.'

'하늘로 가신 울 엄마, 이제는 평안하셔야 할 텐데, 아직도 세상에 남겨 둔 자식 걱정에 펄펄 끓는 그 뜨거운 모정의 강을 홀로 아득히 건너가고 있는 중이신가......'

* 안녕, 엄마

폐암 말기에 병상에 누운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다시 2인실 병실 침대로 돌아와 눕자마자 검버섯이 손등에 가득 핀 손을 내게로 뻗었다.

'- 마, 막내야! 나, 날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다 데려다 다고......

- 집은 왜? 도대채 시골집에 누가 기다린다고 그렇게 집에 가시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 빈집이야.

- 아녀 아녀. 니 아부지가...... 있짜......나.

아버지는 이미 8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떻게 지금 그 집에 계실 수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감은 눈가에서 가늘게 넘쳐흐르는 눈물 줄기를 한동안 지켜봤다.


아......! 미련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제야 엄마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우리 아버지도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마치는 것을 거부하셨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자신이 누워 자던 방에서, 자신이 덮었던 이불을 덮고 잠을 자듯이 영면하길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가 엄마한테 평생 잘해 준 게 없다고 여겼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신 거다. 머잖아 죽게 된다면 저승에서 남편인 아버지를 제일 먼저, 꼭 다시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고개가 꽉 꺽어졌다. 나는 한 손을 내 입을 틀어막았다. 핏덩이 같은 울음이 목젖 밑에서 울컥울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 두 눈가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넘쳐 나왔다.'

--- <안녕, 엄마>를 읽는 내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엄마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엄마 #김하인에세이 #국화꽃향기 #에세이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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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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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는 MORE고 毛漁다.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있고 없고

그저 인간이다

"나는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누구든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저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했던 모지민 작가의 에세이집 <털난 물고기 모어>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쓴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일까 거칠고 적나라하다. 황인찬 시인은 그런 모지민 작가의 글을 자신이 본 글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라고 표현한다.

* 나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아름다움

'어미 배 속에서부터 구더기를 씹어 먹고 세상이 규정한 성에서 조금 다른 색을 가지고 나온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형 불행이었다. 유년기는 치욕으로 얼룩져 있다.'

어려서부터 춤추기를 좋아하고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쓰는 걸 좋아했던 작가는 두꺼운 철로 된 세숫대야 받침대에 머리를 간신히 집어넣었다가, 아빠와 여러 사람들이 톱으로 쇳덩어리를 썰어서 겨우 빠져나온 경험담도 남다르다.

'느그 아들은 참말로 희한하다. 저걸 뭔 염병한다고 뒤집어썼을끄나."

"그랑께야 저것이 커서 뭐가 될랑가 모르겄다." 그러나 아빠는 '너는 왜 다른 모시마들처럼 굴지 않느냐'고 단 한 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는, "나는 우리 지민이가 암시렇지도 않은디, 왜 사람들은 가시내냐 모시매냐 하는지 모르겠씨야."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왜 다른지 생각해보았다.

* 드래그 아티스트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지민 작가는 한예종 무용원 발레 전공 출신으로, 2000년에는 이태원 트랜스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드래그퀸(스커트, 하이힐, 화장 등 옷차림이나 행동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이 되었다.

'처음으로 힐과 가발을 썼다. 이것이 내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겠지.'


2019년 6월 뉴욕에서 열리는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에 초대받아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실험극장 무대에서 공연했다.


2020년 여름, 살다 살다 처음으로 대낮에 누워보았다

편하고 좋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세상은 무사했다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척

외롭지 않은 척해 보았다

그런 허세도 있는 법


* 낮은 곳에서 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고

저는 무대에서 아주 잠시 번쩍거리기 위해 버티는 것 같아요. '쟁이'로 사는 건 웃기고 슬프고 고단해요. 또 어떤 순간은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겠어요. 이번 생이 이 팔자라면 그 개 같은 운명에 백기를 들고 순리로서 살아가야지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처량하다 생각이 들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요.


2017년 5월 24일 시베리아가 고향인 남편 줴나(예브게니 슈테판)과 결혼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모지민 작가는 23년째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 '모어'로 제작되어 6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세상이 규정한 성과 다른 색을 가지고 태어난 모어의 아름답고 끼스러운 삶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모어 #털난물고기모어 #모지민 #드래그퀸 #드렉퀸 #은행나무출판사 #책추천 #책 #끼 #그런날도있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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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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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이 마음을 움직인다.

'이 책을 자이루스에게 바칩니다.

천국에 가서도 당신 손은 알아볼 수 있어.'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헨치>의 작가 나탈리 지나 월쇼츠Natalie Zina Walschots는 '슈퍼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처럼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관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들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는데,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삼국지를 읽으면서 관우와 장비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와 장팔사모(丈八蛇矛)를 휘두르면서 적군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징집되었다가 어이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의 운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빌런(악당, villain )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헨치(악당의 편에 서서 온갖 잡일을 하는 프리랜서, HENCH) 애나는 자신의 보스 E가 시장의 아들 제레미를 납치해서 협박하는 기자 회견장에서 들러리를 섰다가, 때마침 나타난 슈퍼영웅 슈퍼콜라이더에 의해 공중에 들렸다가 심각한 다리 골절을 입게 된다. 꼼짝할 수 없이 친구 준의 집에 혼자 있게 된 애나는 슈퍼히어로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사례를 분석해서 '부상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날 기자 회견장에 머무른 짧은 시간 동안 슈퍼 히어로는 우리 모두에ㅐ게서 도합 152년의 수명을 앗아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리 거지 같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스스로가 정의의 심판이며 악의 처단자라고 믿는, 망토 두른 개자식 한 명 때문에 우리의 시간이 송두리째 빼앗겨서는 안 된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가며 마련한 건물을 히어로들이 아무 생각 없이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돌무더기로 전락했다는 사연'

'자신이 일으킨 인적 피해와 물적 피해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히어로들의 기만성, 그리고 내가 가장 증오하는 슈퍼콜라이더. 그는 내 삶을 위태롭고 삭막하게 만든 재앙 그 자체였다.'

결국 애나는 '부상 보고서'를 눈여겨본 슈퍼 악당 레비아탄의 최측근이 되어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렇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듯이 슈퍼악당의 최측근이 된 애나는 절친한 친구 준과 이별하게 된다.

"사람들은 위험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까 봐 두려워해. 알잖아, 폭력이 전명되다는 사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히어로들이나 그 조수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두려울 것 같지 않아?"

"왜죠?"

"우리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야."

나는 숨이 턱 막힌 듯한 소리를 냈다.


애나는 슈퍼히어로를 직접 상대하기 보다는 슈퍼히어로 주변의 취약한 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공격을 전개한다.

슈퍼히어로 슈퍼콜라이더와 슈퍼악당 레비아탄의 대결, 슈퍼콜라이더와 그의 아내 퀀텀의 결별, 그리고 슈퍼콜라이더의 스승 닥터가 등장하여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은 흡사 서양판 무협지를 읽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계를 위해 악당 기지에서 일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악당을 물리친다고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슈퍼히어로의 정당성 또한 의심스럽다.

악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악을 처단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살상 또한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작가의 관점에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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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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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러난 모방과 감추어진 진실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유명작가의 범죄소설의 살해방식을 모방해서 살인사건을 저지른다는 내용의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다.

 

미 보스턴 지역에서 주인공 맬컴이 운영하는 서점의 블로그에 올린 책 리스트대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5년 전 사랑하는 아내 클레어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맬컴 커쇼 앞에 눈 내리는 어느 날, 그웬 멀비라는 여성 FBI 요원이 최근 일어난 살인사건에 맬컴이 연루된 것은 아닐까 또는 기타 살인사건 관련한 정보를 얻으려고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맬컴은 손님과 짧은 대화를 즐기며 책을 판매하는, 독서를 천직보다 더 사랑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현재 운영하는 올드데블스라는 서점 홍보용 블로그에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리스트를 따라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8권의 책은,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실종 처리되어 실종된 동생이 형을 죽인듯해 보이나 실은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죽은 <붉은 저택의 비밀>, 일부러 모르핀을 중독시켜 아내를 독살한다는 시골의사가 나오는 <살의>, 이름자가 연관된 사람이 연속적으로 계획적으로 죽는 <ABC 살인사건>, 선로 사고사로 위장했으나 사실은 다른 곳에서 시신이 옮겨진 <이중 배상>, 서로 원하는 상대를 대신 살해해주기로 약속살인을 저지르는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말 그대로 익사사고를 가장한 <익사자>, 자연사인 심장마비로 가장한 <죽음의 덫>, 매번 같은 곳을 등산하던 사람을 위험한 곳에서 계획적으로 밀어 사고사로 가장한 <비밀의 계절>이다.

 

이 책들은 곳곳에서 그 주요 내용이 소개되면서 책 속의 등장인물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읽혀진다. 책 내용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머리가 곤두서는듯한 공포감이 조성된다.

 

이야기는 서점 경영인답게 서점 인수과정과, 책과 연관된 주변인으로 서점 동업자 조 브라이언과 부인 테스, 두 직원 에밀리와 브랜든, 서점의 책 낭독회 등을 통해 알게 된 지인 마티 킹십과 팬사인회 저자, 단골손님, 비호감 손님, 고양이 네로 등이 등장한다.

 

오로지 책만 읽으며, 친구는 없고 술을 너무 마시는 아버지와 오직 참기만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외로운 소년으로 자란 주인공 멜컴에게 아내 클레어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멜컴에게는 첫눈에 반한 여성이었다.

중학생 시절 성추행을 당한 탓인지, 이성 관계가 복잡하고, 마약까지 한 부인 클레어는 결국 자동차사고 추락사로 사망하는데, 나중에 밝혀진 범인은 평범한 주인공 멜컴이었다. 연이어 부인을 성추행한 상대를 <비밀의 계절>을 모방하여 살해하고, 불륜과 마약을 부추긴 또 다른 상대까지 <열차 안의 낯선자들>을 모방한 교차살인으로 살해한 다음에도 평범한 서점주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 결국 교차살인을 한 반대편 인물인 전직 경찰출신의 마티가 결국 그교차살인으로 미치광이로 변해 추가 살인을 저지르고 멜컴과 대면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두다 마티는 맬컴에 의해 죽고, 마지막 소설 <익사자>를 모방한 자살로 마무리된다. 주인공의 성격대로 세밀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서 급격하게 종결된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결코 완전한 진실을 얻을 수 없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 전에도 이미 거짓과 절반의 진실이 존재한다. 우리가 입은 옷은 진실을 가리지만, 또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준다. 옷은 직조이자 날조다라고 주인공을 통해 말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묵직하다.

 

겉으로 드러난 절반의 모방과 함께 완벽하게 감추어진 나머지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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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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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아무리 죽여도 머리가 뒤틀린 채 살아남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블랙피트족(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자전적인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와 호러 소설을 주로 써온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Stephen Graham Jones 의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인디언 리키 보스 립스는 인디언 자치 지구에서 도망을 치다 살해당하는데, 위기의 순간에 그를 기다리며 가로막고 서 있는 건 엘크 무리였다.

또다른 인디언 루이스는 백인 여성 페타와 결혼해서 10년째 결혼 생활을 해오고 있었는데, 살고 있는 집에서 10년 전에 사냥했던 엘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후에 기르던 개 할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루이스는 10년 전 친구 게이브, 리키, 캐스와 함께 인디언 자치구 내의 연장자 전용 사냥 구역에 몰래 들어가서 엘크 사냥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루이스가 쏜 소총에 맞은 어린 앨크는 등뼈가 부러진데다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는데도 루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어린 앨크는 임신한 상태로 태아 상태였던 새끼 앨크를 보호하려고 끝까지 저항했던 것이다. 결국 루이스는 원주민 출신 동료 셰이니를 살해하고 아내 페타마저 죽고 나서 경찰이 쏜 총에 살해당한다.

결국 남은 두 친구 게이브와 캐스도 죽음을 맞이하고, 앨크 머리를 한 여자는 게이브의 딸 데노라를 겨냥한다.

"우리 아빠요? 왜죠? 아빠가 뭘 어쨌는데요? 아빠는 당신을 알지조차 못한다고요."

"우리는 10년 전에 만났단다. 네 아빠는 총을 갖고 있었지. 나는 없었고."

"아빠는......, 아빠는 안 그랬."

"그래서는 안 되었지. 하지만 그랬단다."

"그냥, 그냥 저를 보내주면 안 돼요? 이건 당신과 아빠 사이의 문제예요, 안 그래요? 왜 저까지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죠?"

"너는 네 아빠의 새끼이기 때문이지."

쫓고 쫓기던 데노라와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드디어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다.

"뭐지?"

그녀가, 그녀가 그렇게 멀리 왔을 리가 없다, 안 그런가? 여기가 마리아스, 그 대학살 현장이라고? 그 때의 그 뼈가 아직까지 여기 흩어져 있을 리가 없다, 안 그런가?

엘크.

데노라는 머릿속에서 뼛조각을 맞춰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크다, 확실하다. 이곳이 그 장소일 리가 없다. 아빠와 친구들이 10년 전 엘크들을 전부 쏴 죽였던 그곳 말이다.

블랙피트에게 일어난 일처럼, 전국의 모든 인디언에게 일어난 일처럼, 비 내리듯 쏟아지는 총알이 야영지 로지(임시거처)의 숨겨진 벽을 뚫고 들어오는 가운데 로지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데노라의 아빠는 그날 총알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쏴서는 안 되었던 엘크 떼를 향해 총을 쏘는 아빠를.

"미안해." 데노라는 자신이 만지고 있는 엘크의 갈비뼈를 만지며 눈을 감는다.

그녀는 피범벅된 무릎으로 미끄러지듯 가서는 자신의 작은 몸을 총과 자신의 아빠를 죽인 엘크 사이에 들이민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공기에 대고또렷이 말한다. 안 돼요, 아빠(새아빠)!안 돼요!

끝났다. 그거면 됐다. 정말로 멈추길 바란다면 여기서 멈출 수 있다. 암컷 앨크는 눈에서 일어나 새끼를 향해 몸을 숙이고 새끼가 뒤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새끼의 얼굴을 핥는다. 그 모습을 끝으로 둘은 자취를 감춘다.

이 작품은 원제목은 <THE ONLY GOOD INDIANS> 다. 백인들이 서부 개척에 방해가 되는 인디언을 잔인하게 소탕할 때, 코만치족의 추장 토와시가 부족원들을 이끌고 투항하면서 "나 토와시, 좋은 인디언"이라고 선처를 호소하자 토벌대의 필립 셰리든 장군이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어버렸어."라고 대꾸한다. 이 말이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원주민 출신 작가는 원주민과 엘크의 관계를 통해서 학살자 백인의 원주민 학살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끼를 잃은 엘크가 죽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것처럼, 비 내리듯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학살당한 인디언은 죽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단 앨크와 원주민만 그런 참상을 당했을까?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죽음을 당한 우크라이나 국민들, 80년 광주에서 학살당한 시민들, 4.3 제주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양민들 등 죽어도 죽지 못하는 원혼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왜 이런 참혹한 일들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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